후보 추천 안했다→전화로 지원해보라 했다…탈락 사유도 '개인적 문제'→'7대 검증'으로 변화
  • ▲ 문재인 정부 초기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분류되는 장하성 정책실장. 사진은 그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청년들과 토론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정부 초기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분류되는 장하성 정책실장. 사진은 그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청년들과 토론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제공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최고투자 책임자인 기금운용본부장(CIO)에 역대최고점을 받고도 탈락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더군다나 정권의 실세로 분류됐던 장하성 정책실장의 공모 권유 전화까지 받은 상태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장 실장보다 더 큰 실세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오전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곽태선 전 대표 같은 전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3일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곽 전 대표는 서류와 면접 전형에서 후보자들 가운데서 최고점인 것은 물론, 역대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도 최고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지만 기금운용본부장직에서 내정되지 못했다. 

    기금 이사추천위원회는 지난달 27일 곽 전 대표에 탈락 사실을 공식 통보하고 재공모 절차를 밟기로 했다.

    ◆ 靑, 장 실장의 후보 추천 여부와 탈락 사유에 대해 수시로 말바꿔

    곽태선 전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곽씨가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인사 개입을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곽 전 대표는 지난 5일 "장하성 정책 실장이 지난 1월 30일 전화를 걸어 기금운용본부장직에 지원할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이때는 CIO 자리에 대한 공고가 나온 지난 2월 초보다 앞선 시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곧 "장 실장이 추천한 것이 아니라 덕담으로 전화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곽 전 대표는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도 '지원서 작성에 어려운 점이 있으면 이야기하라, 일단 3배수 안에는 올라오셔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다시 "장 실장이 지원해보라고 전화로 권유한 것은 맞다"고 정정했다. "다만 심사는 무관하게 진행됐다"며 "병역도 있고 국적 문제도 있어 우리 정부의 기준에 맞지 않아 탈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하성 실장의 후보 추천 여부에 대해 청와대의 말이 바뀐 셈이다. 탈락 사유인 병역 문제 역시 곽 전 대표가 1990년 미국 국적을 포기했기 때문에 이민 세대인 곽 전 대표에게 병역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곽 전 대표 역시 "그간 잘 쌓아온 레퓨테이션(평판)을 망치기 싫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무슨 문제냐"고 답했다고 한다.

    ◆ 역대 최고점 + 정권 실세의 추천도 안먹혀

    여러 의문이 뒤따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곽 전 대표가 반드시 합격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지니고도 탈락했다는 점이다. 역대 최고점에 가까운 서류·면접 점수를 기록하고도 떨어진 것만으로도 의혹이 제기되는데, 정권의 최고 실세로 불리는 장하성 정책실장의 추천까지 더해졌음에도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월은 장하성 실장이 한창 청와대 권력의 핵심으로 불릴 때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장하성 정책실장의 라인 인사들에 비해 대선 캠프 출신들이 홀대 받는다'는 뒷말이 돌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이동걸 KDB산업은행장 등이 모두 장하성 정책실장과 가까운 것으로 분류됐다. 이런 상황에서 곽 전 대표가 장 실장의 추천을 받은 것이다.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석연찮은 지점을 남기며 낙마로 결론 났다. 이후 청와대는 장하성 정책실장에 힘이 빠지는 모양새로 가고 있다. 장 실장은 지난달 말 일자리 수석과 경제 수석이 교체되면서 언론으로부터 경고성 인사라는 평가를 받아들었다.

    또한 인도 순방을 앞두고는 문 대통령의 친기업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기재부가 상대적으로 대기업들과 관련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동연 경제부총리에 힘이 실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의 아이콘으로 문재인 정권 초 장하성 정책실장의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경제정책의 양대산맥으로 불렸다.

    ◆ '정권 실세 위 실세' 있나?

    그 때문에 청와대 안팎에서는 정권 실세로 알려진 장하성 정책실장보다 더 큰 실세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현재 위치가 워낙 높아서다. 청와대 내에는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을 '3 실장'으로 부른다. 결재라인 상으로 장 실장까지 결정한 사안을 뒤집을 수 있는 인물은 대통령 정도밖에 없다.

    특히 이번 인사는 처음에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뒤집혔다. 결정적인 순간에 대통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3의 인물이 상정되는 또 다른 이유다. 문 대통령 본인의 의지일 수도 있지만 범 여권의 인사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곽태선 전 대표 역시 6일 다시 추가 폭로를 통해 "김성주 이사장이 장하성 정책실장과 본인이 아닌 '윗선'에서 탈락 지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다만 김성주 이사장은 "장하성 실장과도 인사에 관해 통화한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