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 고발... '탈북자 북송' 발판 만들어
  • ▲ 민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범죄 대응TF' 변호사들이 이병호 전 국정원장, 홍영표 전 통일부 장관 등을 고발하기 위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하는 모습.ⓒ뉴시스
    ▲ 민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범죄 대응TF' 변호사들이 이병호 전 국정원장, 홍영표 전 통일부 장관 등을 고발하기 위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하는 모습.ⓒ뉴시스

    국정원에 의한 북한 식당 종업원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한 JTBC 보도가 고약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통일부는 입장을 바꿨고 민변은 전 정부 관계자들을 고발했다. 검찰은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탈북자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착착 맞아 떨어지는 모양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14일 과거 북한 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에서 탈북 사건을 기획한 정황이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병호 당시 국정원장 등 4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민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6년 총선을 닷새 앞둔 시점에 통일부가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을 긴급 브리핑했다"며 "종업원들이 가족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보장하고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민변은 11일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대응TF'를 꾸렸다. JTBC 방송에 따른 움직임이다. 10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탈북 종업원들이 목적지를 모른 채 국정원을 따라왔으며 여종업원 12명 중 일부는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허강일(당시 북한 식당 지배인)씨 인터뷰를 보도했다.

  • ▲ 통일부 청사 내부.ⓒ뉴데일리DB
    ▲ 통일부 청사 내부.ⓒ뉴데일리DB

    지난 2016년 4월 중국의 북한 음식점(류경 식당)에서 근무하던 종업원 12명은 한국에 집단 입국했다. 북한은 이 사건을 두고 "괴뢰(남한) 정보원 깡패들이 조작한 전대미문의 납치 사건"이라며 탈북 종업원들의 북송을 요구해왔으나 우리 정부는 거절했다.

    민변 역시 북한의 주장과 비슷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2016년 4월 이후 줄곧 기획 탈북 의혹을 언급했다. 같은 해 5월 국정원에 종업원들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신청했으나 국정원으로부터 거절당했다.

    민변은 "종업원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한국에 왔는지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며 법원에 인신 보호 청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이 자유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볼 정황이 없다"며 청구를 각하했다.

    당시 통일부는 북한의 주장이나 민변의 의혹에 맞서 "이들이 해외에서 한국 드라마 등을 시청하며 집단 탈북을 결심했다"고 반박했다. 탈북 종업원들이 자유 의사로 한국행을 택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일각의 북송 요구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또한 그 해 5월 종업원 전원을 수차례 면담한 국정원 인권보호관(변협 추천 외부 변호사) 조사에서도 북송을 요구하는 종업원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최근 통일부는 돌연 입장을 뒤집었다. JTBC 방송 이틀 뒤 통일부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며 탈북 경위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직후 민변이 가세하며 '기획 탈북설'에 힘을 실었다.

  • ▲ 2016년 4월 7일 한국에 들어온 中북한식당 여종업원들.ⓒ뉴시스.
    ▲ 2016년 4월 7일 한국에 들어온 中북한식당 여종업원들.ⓒ뉴시스.

    당사자들의 심경은 어떨까. 조선일보에 따르면 탈북 종업원들은 극도의 불안감과 당혹스러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 여종업원을 접촉한 NGO 단체 관계자는 "이들이 언론사가 자신들의 주거지를 알아냈다는 점과 관련해 자신들이 언제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겁을 먹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탈북 여종업원이 '어머니 품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 점과 관련해서도 "고향에 가고 싶다는 일반적 이야기인데 마치 기획탈북을 당했으니 북한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가 됐다"며 '조작 보도' 의혹을 제기했다.

    민변 다음은 북한이었다. 14일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논평을 내고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민족의 심판대에 올라야 할 역적배들이 탈북자들"이라며 탈북민들을 협박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역시 같은날 "여종업원 집단 탈북은 집단유인 납치돼 남조선에 나타난 사건"이라며 "정치에 악용하려고 꾸며진 집단유인납치사건의 피해자들도 가족들이 기다리는 조국의 품에 당장 돌려보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를 두고 김태희 자유인권탈북민연대 대표는 "고향과 가족이 그립지 않은 탈북민이 어디 있나? 앞뒤 문맥을 다 자르고 '그립다'는 표현만으로 북한에 돌려보낸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강력히 비판했다.

    김 대표는 "당시 북한식당에 있던 종업원이 20명인데 7명은 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대한민국으로 올 의사가 있는 사람만 오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는 것인데 민변은 탈북민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가"라고 질타했다.

    탈북민들에 대한 보호 책무를 저버린 듯한 통일부의 태도를 꼬집는 목소리도 쏟아진다. 북송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 속에서 과연 탈북민들이 진실을 언급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점 때문이다. 이들은 살기 위해 혹은 북에 남은 가족들의 생사를 위해, 사실이 아니더라도 '기획탈북'에 동조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수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한변)은 "정부가 2년 만에 입장을 바꿔 종업원들의 입국 경위를 재조사하고 북송을 언급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민과 그들의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규탄했다.

    한변은 "탈북 종업원들의 입국 경위를 다시 조사하고 북송까지 나아간다면 탈북민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심각한 인권침해"라며 "이 순간에도 북한 주민들은 극약을 입에 물고 사선(死線)을 넘어 자유를 찾고 있다"고 탈북민 인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구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14일 민변이 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을 고발한 사건을 공안 2부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