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2선으로 물러날 듯...책임총리 국정 리더십에 나라 명운 달려
  • ▲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뉴시스
    ▲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뉴시스

     

     

    그야말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한민국이다.

    '정운호 게이트'에서 시작된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결국 정국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홍만표-최유정-진경준' 가장 먼저 법조계를 훑고 지나간 나비는 롯데와 넥슨을 거쳐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의 어깨에 머물렀다.

    이 나비의 날개짓이 영 못마땅했는지 조선일보는 곧장 청와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3개월 간의 혈투 끝에 최순실 사태를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마침표를 찍는 듯 했다.   

    하지만 나비의 날개짓은 여기서 끝이 아닐 수 있다. 무너져가는 국정(國政)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나비의 날개짓은 여야를 넘어 국민 전체를 대혼돈으로 빠뜨릴 수 있다.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내외적 위기를 외면하고 정쟁(政爭)만 일삼는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입에선 한숨만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당장 여야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삐걱삐걱 흔들리는 대한민국호(號)의 키는 이제 김병준 국민대 교수에게 넘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일 오전 신임 국무총리에 김병준(62) 교수를 내정했다.

    여야가 합의해 총리와 장관을 지명하는 형태의 거국중립내각 구성이 야당의 반대로 사실상 어려워지자,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을 대신해 국정을 이끌 총리를 인선한 것이다.

    신임 국무총리는 사실상 책임총리에 버금가는 권한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교수는 총리직을 수락하면서 가장 먼저 전남 영광 출신의 박승주(64)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를 추천했다.

    김병준 교수는 잘 알려진 것처럼 야권(野圈) 핵심 인사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던 원조 친노(親盧)로 꼽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속마음을 모두 터놓고 지낸 몇 안되는 측근이라는 평가다.

    199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특강을 진행한 것을 계기로 둘의 오랜 인연이 시작됐다. 이듬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구소장으로 김병준 교수를 임명했다.

    2002년 대선 때는 학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 놓고 선거운동에 주력했다. 김병준 교수는 당시 대선후보 정책자문단의 단장을 맡아 정책캠프를 운영했고, 대통령 취임 이후 핵심 요직을 잇따라 맡으며 행정개혁과 규제개혁을 이끌었다.

    공교롭게도 2006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됐다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반대로 낙마했던 적도 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한나라당 측은 김병준 교수의 논문표절 의혹을 제기했고, 그는 결국 취임 13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병준 총리' 카드는 새누리당 지도부와 사회 원로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제안을 놓고 며칠 간 밤잠을 설친 끝에 결정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내쳤던 김병준 교수가 이제 국무총리로 돌아와 무너진 국정을 수습할 전망이다.

     

  • ▲ 舊 통진당 이정희 전 대표와 손을 잡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 舊 통진당 이정희 전 대표와 손을 잡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이례적인 상황이다. 얼마나 현 상황이 녹록치 않은지, 먹구름이 가득한 정국의 기상도를 투영한 결과물이다. '내일(來日)의 정국(政局)은 알 수 없다'는 정치권의 옛 말이 떠오른다. 

    김병준 총리가 취임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당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유사하다. 박 대통령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동시에 총리가 국정의 리더십을 갖게 되는 형태다.

    박 대통령은 신임 총리에게 내치 전반을 맡기는 한편 자신은 외교와 안보 분야만 관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총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가장 먼저 최순실 일가(一家)가 저지른 불법 비리행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지위고하를 막론한 사건 관계자들의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만약 사건 수사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진술이 필요하다면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까지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북(對北) 결재' 사건도 마냥 덮어둘 수 없다. 이른바 북한 내통 의혹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활동하던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김정일 정권의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했다는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폭로한 것에 대해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친문(親文) 인사들까지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만큼, 만약 문재인 전 대표가 끝까지 입을 다문다면 검찰수사에 박차를 가해 조속히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난국 수습과 국정 정상화를 위해 대한민국호(號)의 키를 잡게 된 김병준 내정자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전날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무너져 가는 나라를 보고 있을 수 없어 강진에서 하산했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책임총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병준 내정자 본인은 "(총리는) 너무 힘든 자리로, 누가 하든 정말 상처뿐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언젠가 정치권의 고질병을 강하게 비판했던 김병준 내정자의 글을 기억한다. 나눠먹기식 권력 구조를 꼬집으면서 "대중적 인기가 있으면 누구든 불러들여 대통령 후보 옷을 입힌다"고 여야를 쏘아붙였던 그다.

    아울러 김병준 내정자는 2013년 12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다음과 같이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정치권의 민주세력에 당부합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이기고 난 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상대를 비난해서 이기겠다는 생각, 그리고 반사이익을 통해 이기겠다는 생각도 그만 둬 주십시오."

    중책을 맡게 될 김병준 내정자 스스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나라가 망하길 바라는 것처럼 책임추궁에만 여념 없는 친문(親文) 더불어민주당의 행태와는 달라야 한다.

    신임 총리가 최근 일련의 사태를 정리하고 기울어진 대한민국을 바로잡길 원하는 것이 바로 국민들의 타들어가는 심정임을 김병준 내정자는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았던 3년 전 그의 소신이 여전하길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김병준 내정자 스스로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