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날 같은 지역 조사 결과 판이… 유권자 정치 냉소만 부추겨
  • ▲ 주승용 전 최고위원과 장병완 전 정책위의장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뒤 국민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튿날의 김승남 의원 탈당과 국민의당 이후 더민주·국민의당 사이의 정당 지지도가 춤을 추면서 더민주에 잔류한 의원들은 민심의 추이를 살핀다는 핑계로 탈당을 주저하고 있는 형국이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주승용 전 최고위원과 장병완 전 정책위의장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뒤 국민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튿날의 김승남 의원 탈당과 국민의당 이후 더민주·국민의당 사이의 정당 지지도가 춤을 추면서 더민주에 잔류한 의원들은 민심의 추이를 살핀다는 핑계로 탈당을 주저하고 있는 형국이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4·13 총선이 불과 76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지역 선거판은 물론 중앙 정치권을 뒤흔드는 정계 개편까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표본과 조사 방법, 가중치에 따라 조사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오고 있어 유권자의 혼란과 정치 냉소만 부추기는 '선거 공해'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한국갤럽의 전국 정례 정당 지지도 조사가 국민일보 등에 의해 보도됐다. 야권발 정계 개편과 관련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호남 지역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29%, 국민의당 25%로 오차범위 내의 혼전인 가운데 더민주가 약간 앞서는 양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같은날 조원씨앤아이가 조사해 돌직구뉴스가 보도한 전국 정당 지지도 정례조사에 따르면, 호남권에서 국민의당은 38.1%의 지지를 얻어 더민주(21.0%)를 오차범위 밖에서 압도했다.

    같은날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된 두 개의 여론조사에서 양당의 지지도가 들쭉날쭉인 것이다. 이같은 경향은 비단 이날에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최근의 여론조사 추세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알앤써치가 조사해 데일리안이 26일 보도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호남권에서 더민주는 43.8%의 지지를 얻어 15.7%에 그친 국민의당을 세 배 가까이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돌직구뉴스와 보도와 결합해서 살피면, 불과 사흘 사이에 호남권의 여론이 천지개벽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면 그 하루 전인 25일 디오피니언이 조사하고 내일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호남에서 "앞으로 호남 민심을 더 잘 대변하는 정당"을 묻는 질문에 국민의당은 30.7%로 더민주(17.0%)보다 크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쯤되면 더 이상 열거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가 모두 맞다고 하면 우리 국민들은 사나흘 사이에 지지하는 정당이 죽 끓듯 하는 정치적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문제는 이렇게 연이어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다투어 보도되고 이에 따라 정치인들이 일희일비하며, 이것이 다시 민심에 역으로 영향을 미치는 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민심을 일정 부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호남 지역을 찾아 탐방 취재를 해보면 더민주나, 이 당의 간판 인물인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13일 더민주를 탈당한 장병완 의원은 취재진과 만나 "지역구민들을 만나보면 더민주에 호의적인 사람은 백 명 중에 세 명 정도인데, 여론조사 결과를 도저히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비단 중앙 정치권 뿐만 아니라 지역구 단위의 선거판도 여론조사가 뒤흔들어놓고 있어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기 의왕·과천 선거구에서는 25일과 26일, 하루 간격으로 상반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돼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 선거구에서는 박근혜정부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최형두 예비후보와 이완구 전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요찬 예비후보가 새누리당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데, 각자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서로 자기가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25일 최형두 후보의 의뢰로 조원씨앤아이가 조사해 28일자 경기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층 사이에서 최형두 후보의 새누리당 후보 적합도가 40.4%로 박요찬 후보(32.9%)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인국 후보의 적합도는 13.7%였다.

  • ▲ 경기 의왕·과천에서 새누리당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최형두 예비후보와 박요찬 예비후보의 적합도가 하루 간격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판이하게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경기 의왕시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개소식을 갖고 있는 최형두 후보(사진 가운데). ⓒ의왕(경기)=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경기 의왕·과천에서 새누리당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최형두 예비후보와 박요찬 예비후보의 적합도가 하루 간격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판이하게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경기 의왕시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개소식을 갖고 있는 최형두 후보(사진 가운데). ⓒ의왕(경기)=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반면 이튿날인 26일 박요찬 후보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조사해 마찬가지로 28일자 경기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층 사이에서 박요찬 후보의 새누리당 후보 적합도가 45.6%로 최형두 후보(30.4%)를 앞섰다. 이 조사에서 여인국 후보는 19.0%였다.

    하루 사이에 20여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한정된 지역에서, 그것도 새누리당이라는 정당을 지지하는 상당히 동질적인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의 공직선거 후보자 적합도가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연 이틀 접하는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상반된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알 수 있는데, 실제로 홈페이지에서 꼼꼼히 들여다보면 최형두·박요찬 두 후보가 각각 발표한 내용은 결과 수치의 차이만큼 방식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공통점은 주말에 실시하였고, 자동응답 방식(ARS)으로 진행했다는 점 뿐이다.

    박요찬 후보는 유선조사(93%)와 면접(7%)을 병행했고, 최형두 후보는 무선(50%)과 유선(50%)을 병행했다. 박요찬 후보가 의뢰한 리얼미터에서는 기본 가중 외에 18대 대선 투표율을 기준으로 '림가중'을 추가 가중 적용했고, 최형두 후보가 의뢰한 조원씨앤아이는 '셀가중'만 줬고 추가 가중은 주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다.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같은 일시와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더라도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리 나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론조사는 한순간을 촬영하는 스냅샷"이라며 "어떤 각도에서 어떤 카메라로 찍는가에 따라 장면이 달리 나올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앞서도 여론조사가 민심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라고 했지만, 해당 선거구에 출마를 결심한 최형두·박요찬 두 후보 모두 아마 여론조사 결과를 '여론화'하기 위해 열심히 SNS와 문자 메시지 등으로 지지자들에게 결과를 알리고 있으리라. 25일 특정한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가 담긴 문자 메시지를 받았던 유권자가 이튿날 전혀 상반된 내용의 여론조사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면, 이 유권자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할 뿐이다.

    아마도 일단은 여론조사, 그리고 나아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 혐오만 커지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최형두·박요찬 두 후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의 응답률을 보니 각각 3.1%와 3.0%에 그쳤다. 전화가 걸려왔는데도 응답하지 않은 97%의 지역구민들은 왜 그랬을까.

    선거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여론조사가 선거 환경의 공해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민심이 이렇다, 라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심을 왜곡하고 호도하고 선동하는 데 조사 결과가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총선이 76일 남았는데도 이 지경인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선거 6일 전까지 앞으로 70일 동안 매일같이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고, 각자 상반된 내용을 담은 결과가 SNS 등으로 인터넷 공간에 범람하고, 그것이 다시 문자 메시지를 통해 유권자의 손 안 스마트폰에까지 날아든다면 어떻게 될까.

    유권자가 이를 삭제하는 데에는 채 5초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4년 만에 돌아온 장날을 만난 것처럼 함께 춤추고 있는 여론조사 기관들과 매체들은 자신들이 시행하는 여론조사를 선거 공해로 전락시키고 유권자의 정치 냉소를 부추기는 행태에 대해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성찰해보길 바란다.

    정치인들 또한 "민심을 거스를 수 없다"는 고아한 핑계로 민심의 추이를 살핀다며 여론조사 결과에 자신의 거취 결정을 기대려는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지 말고, 소신과 원칙에 따른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유권자도 연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거나 휩쓸려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 공약을 바탕으로 남은 76일 동안 판단을 좁혀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