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 '아픔' 간직한 의원 많아… 지방의원·기초단체장 출신들도 한몫
  •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21일 경남 고성 지원 유세에서 오픈프라이머리의 불씨를 되살리는 발언을 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21일 경남 고성 지원 유세에서 오픈프라이머리의 불씨를 되살리는 발언을 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꺼진 듯 했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공천제)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여야 양쪽에서 동시에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21일 경남 고성읍시장에서 열린 10·28 고성군수 재선거 새누리당 최평호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당대표로서의 모든 권력을 다 내려놓겠다고 하루에 몇 번씩 마음의 다짐을 하는데도, 최평호 후보가 공천 신청하고 내게 전화 한 통도 없고, 공천되고 나서도 전화 한 통 안 하고 인사 한 마디 없는 걸 보면 솔직한 말로 섭섭하다"고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당대표인데 공천이 됐으면 와서 인사 한 번 하는 게 예의가 아니냐"고 이어가 좌중의 폭소를 유도한 김무성 대표는 "이게 새누리당에 정당민주주의가 정착돼 가는 과정이 아니겠느냐"고 평했다.

    나아가 곁에 있던 이군현 전 사무총장(경남 통영·고성)을 가리키며 "이번에 당선될 최평호 군수도 이군현 의원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다음 공천을 받기 위해 아부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설은 상향식 공천을 강조하며, 오픈프라이머리 재추진의 의지를 뚜렷이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김무성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위해 권력자 뒷꽁무니를 따라다니며 90도로 절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못난 짓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추방돼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일"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내년 4월 총선은 당헌·당규에 보장된대로 100% 상향식 공천을 여러분 앞에 약속드린다"며 "그렇게 해야만 우리 새누리당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김무성 대표의 이날 연설이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운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김무성 대표는 시종일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4대 구조 개혁을 강조하며 청와대가 추진하는 국정 과제에 발을 맞췄다.

    결국 청와대가 설정한 국정 과제 등 국사(國事)에는 적극 협조하면서도, 공천은 국사가 아닌 당무(黨務)이므로 당대표인 자신이 소신대로 상향식 공천을 해서 총선을 치러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는 18대 총선 당시 친이(親李)계의 공천 학살에 의해 낙천했고 19대 총선에서도 또 낙천해, 권력자의 자의적인 사천(私薦)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다"며 "자신이 걸어온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소신이기 때문에, 이것만은 쉽게 꺾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공천권을 누군가 밀실에서 자의적으로 휘두르지 않고, 국민과 당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대의명분이 워낙 뚜렷해서 반대할 만한 명분이 마땅치 않다. 그간 친박(親朴)계에서 이를 반대해 온 주요 논거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려면 역선택 등을 방지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동시에 실시해야 하는데,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합의가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전병헌 최고위원, 이석현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의원총회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전병헌 최고위원, 이석현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의원총회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그런데 엉뚱하게도 야당발(發)로 오픈프라이머리의 불씨가 되살아날 조짐이 보인다. 최근 공천 문제와 관련해 말을 아끼던 김무성 대표가 다시 힘을 받은 것도 야당 내의 이러한 움직임에 고무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규성 의원(전북 김제·완주)이 주도해서 돌린 오픈프라이머리 입법화 추진 연판장에는 야당 의원 79명이 서명했다. 최규성 의원은 이를 바탕으로 당헌 제66조에 따른 의원총회의 소집을 요구하며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연판장에는 친노(親盧) 원로로 분류되지만 지난달 23일 혁신위에 의해 적지 출마 요구라는 '총기 난사'를 당한 이해찬 전 대표도 서명했다. 주류와 비주류, 지역과 선수(選數)를 넘어선 움직임에 문재인 대표가 21일 비공개 최고위에서 화를 낼 정도로 초조해 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오픈프라이머리 입법화 추진을 위한 의총 소집 요구에 대해 "당이 하나가 돼도 모자랄 판인데, 지금이 의총을 열 때냐"라고 화를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은 오픈프라이머리 입법화 추진에 소속 의원의 3분의 2가 서명할 정도로 이미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은 정작 문재인 대표 자기 자신"이라며 "공천 학살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고서야, 자신이 2·8 전당대회에서 공약했던 오픈프라이머리를 입법화해달라는 의총 소집 요구에 이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여야에서 동시에 다시 탄력을 받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 논의가, 농어촌 지역대표성의 실질적 확보 방안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선거구 논의처럼 문재인 대표와 한줌 친노만 고립되는 형세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오픈프라이머리의 불씨가 쉽게 꺼질 수가 없다"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최근 십수 년간 주요 선거에서 공천과 관련한 아픔을 겪은 사람이 지금 여의도에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비단 김무성 대표 뿐만이 아니라 17대, 18대, 19대 총선에서 여야가 공히 '물갈이'를 일삼으면서 한 번쯤 낙천 안 당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지방의원이나 기초단체장 출신으로 국회에 들어온 의원들이 늘어난 것이, 오픈프라이머리 논의가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원동력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새정치연합 안민석 의원(경기 오산)은 최웅수 전 오산시의회 의장으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해 화제가 됐다. 최웅수 전 시의회 의장은 〈일요시사〉와 인터뷰에서 "연평도 포격 사건 때 봉사활동을 갔다가 우연히 뉴스에 출연하게 되자, 안민석 의원이 '언론에 왜 자꾸 노출되느냐'며 '언론으로 흥한 자, 언론으로 망한다'고 질책하더라"며 "시의원들이 너무 뜨면 총선에서 경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안민석 의원은) 같은 당 시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견제했다"고 술회했다.

    한 재선 의원은 "(지방의원으로) 공천받을 때 국회의원 눈치를 살피며 줄을 서야 하고, 의정활동이나 지방행정을 열심히 해서 (정치적으로) 커질 만하면 어김없이 국회의원들이 견제를 하며 짓밟으려 드는 것은 공공연히 저질러지는 일들"이라며 "이러한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지방의원·기초단체장 출신 의원들에게 오픈프라이머리 주장은 우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