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동부, 당·현역 의원에 대해서는 너그러워도 문재인은 '비토' 여론
  • ▲ 전남 동부에 해당하는 여수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 대한 민심이 여전히 냉담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6일 여수 쌍봉사거리 여천농협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관련 발언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와 주승용 최고위원. ⓒ여수(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전남 동부에 해당하는 여수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 대한 민심이 여전히 냉담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6일 여수 쌍봉사거리 여천농협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관련 발언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와 주승용 최고위원. ⓒ여수(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여기 사람들이 주승용 씨는 좋아해도 허허허, '그 분'은… 서울에서 이야기하는 게 크게 틀리지도 않을 거에요."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총회가 열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모두 전남 여수를 찾은 지난 26일, 지역에서 확인한 '호남 민심'은 여전히 '그 분' 문재인 대표에게 냉담했다.

    전남 여수 쌍봉사거리의 엔제리너스 앞에서 롯데시네마로 이동하며 만난 택시기사 한모 씨는 정치에 관한 질문에 말을 아꼈다. "나는 택시한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공단에서 계속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와서 할 게 없다보니 이거라도 하는데 정치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답을 피하려 했다.

    공단으로 화제를 돌렸다. 공장이나 산업체 없이 소비도시로 성장한 대도시들이 있는 호남 서부와는 달리 호남 동부의 중심 도시인 여수는 배후에 여수국가산업단지를 끼고 있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KTX가 여천역에 접근하자, 전라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길 양옆의 논 뒤로 그 동안은 보이지 않던 거대한 공장들이 끊임없이 희뿌연 연기를 하늘을 향해 뿜어내고 있었다.

    한 씨는 "여기는 공단이 있고 해산물이 많이 나오고 이러니까 (먹고 살 걱정이) 덜하다"며 "엑스포 이후로는 해양케이블카도 놓고 (관광객들이) 아주 많이 와서, 길을 많이 고쳤는데도 주말에는 외지인으로 붐비고 막힌다"고 자부심을 슬몃 내비쳤다.

    ◆전남 동부, 신당론 잦아들어

    이러한 활력 때문일까. 새정치연합에 대한 여론도 전남 서부보다 너그러운 듯 했다. 한 씨는 "신당에 대해서는 별로 무관심이더라"며 "기사들 (손님) 기다리면서 차 대놓고 있으면 그리 깊은 이야기는 안 해도 여기는 뭐 전부 다… (새정치연합) 하하하"라고 웃어넘겼다.

    여천역에서 쌍봉사거리로 이동할 때 이야기를 나눈 택시기사 최모 씨도 "지금 호남 민심은 어떻게 된 게 전라남도지사했던 박준영 씨 그 사람하고 또 저기서 신당 창당을 하니 어쩌니 하니 시끄럽다"면서도 "신당 창당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크게 인기를 얻거나 그러지는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지역 국회의원으로 내년 4·13 총선에서 5선 고지에 도전하는 김성곤 의원(전남 여수갑)이 지난 8월말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최근 지역을 다니다보면 얼마 전까지 거세게 불었던 분당, 신당 이런 론(論)들이 잦아들어서 상당히 다행"이라고 지역 민심을 전했던 그대로인 듯 했다.

    ◆"주승용, 다들 좋아해… 사람들이 친근감 갖고 있다"

    지역구 의원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었다. 특히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호남인의 압도적인 성원을 등에 업고 최고위원 경선에서 최다득표를 해 수석최고위원이 된 주승용 의원(전남 여수을)에 대해서는 호남 다른 곳의 지역구 의원에게는 쉽사리 들을 수 없던 극찬이 쏟아졌다.

    한 씨는 주승용 최고위원에 대해 "지역에 오면 다들 상대하는 게 친구 같이 하고, 손이라도 한 번씩 잡으면서 이야기도 친구 같이 해주고 하니까 다들 좋아한다"며 "그냥 들여다보고 쓱 지나가는 것보다는, 와서 손이라도 잡고 '아유 어떻게 지내시냐, 뭐 어떠냐' 이렇게 하면 친근감이 간다. 내가 시골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은…"이라고 평가했다.

    흥국실내체육관 앞에서 엠블호텔로 이동할 때 만난 택시기사 김모 씨도 "왠만한 분들은 왔다가 행사 끝나면 차 타고 싹 가버리잖느냐"며 "주승용 씨는 무슨 행사가 있어 참석을 하더라도 일단 끝나면 그냥 가는 법이 없더라"고 평했다. "다들 손잡고 다정하게 이야기 잠깐잠깐이라도 하고 가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다 친근감을 갖고 있고 인기가 높다"고 덧붙였다.

  • ▲ 전남 동부에 해당하는 여수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 대한 민심이 여전히 냉담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6일 여수 쌍봉사거리 여천농협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관련 발언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와 주승용 최고위원. ⓒ여수(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전남 동부에 해당하는 여수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 대한 민심이 여전히 냉담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6일 여수 쌍봉사거리 여천농협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관련 발언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와 주승용 최고위원. ⓒ여수(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문재인 평 안 좋아…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당(새정치연합)도 좋다, 지역구 의원(주승용 최고위원)도 좋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재인 대표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서울에서는 호남 민심이 문재인 대표에게 돌아섰다고들 하는데 정말인지를 묻자, 한 씨는 "평이 뭐 크게 좋은 편은 아니더라"며 "여기 사람들이 주승용 씨는 좋아해도 그 분은… 서울에서 이야기하는 게 크게 틀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완곡하게 문재인 대표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최 씨는 여천역에서 손님을 기다리다가 전라선KTX에서 내리는 문재인 대표와 주승용 최고위원을 본 듯 했다. 그는 "금방 조금 전에 온 차(KTX)로 (문재인 대표가) 주승용 의원이랑 같이 가던데…"라며 "주승용 의원은 여기가 지역구고… 문재인 대표는 지원 나오셨는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재인 대표가 주승용 최고위원을 '지원'하러 나왔더라도,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도움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의아함이 말 속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문득 지난 8월,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SBS라디오에 나와 "(호남에서는) 심지어는 문재인 대표와 함께 사진에 나오는 것 자체도 문제삼는다"고 하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역 민심을 직접적으로 묻자 최 씨는 "여기도 별로 문재인 대표가 썩 안 된다"며 "두각을 나타내지를 못하니까…"라고 말을 흐렸다.

    김 씨도 "내 의견이 아니라, 또 들어보면 글쎄, (문재인 대표가 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손님들 탄 분들도 이야기하다가 그런 (정치) 이야기 나오고 그러면 그 별로 뭐… (문재인 대표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더라"고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했다.

    ◆교과서 정국에도 지지율 안 오르는 文, 어쩔텐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3~15일 전국 성인 남녀 5225명에게 휴대전화 RDD 무작위 추출해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최종 1003명에게 응답을 받은 바에 따르면(응답률 19%), 문재인 대표는 호남 지역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불과 8%를 얻는 데 그쳐, 이날 함께 여수에 내려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9%)에게조차 뒤처졌다.

    한국갤럽 조사는 표본오차가 95% 신뢰수준에서 ±3.1%p이기 때문에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의 선호도 격차는 오차범위 내이기는 하지만, 새누리당 대표와 새정치연합 대표가 호남에서 오차범위 내에서 선호도 시소 게임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충격적인 일이다.

    새정치연합 김한길 전 대표는 지난 5월, 5·18 35주년을 맞아 "호남이 거부하는 야권 주자는 있어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으며, 있더라도 승리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있어본 적 없고, 있을 수도 없다던 '호남이 거부하는 야권 주자'라는 개념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점차 구체화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친노(親盧) 세력은 "막대기만 꽂아놓으면 당선되는 호남은 지역구 관리가 소홀해 민심이 현역 의원 교체를 원한다"며 '인위적 물갈이'의 필요성을 강변하지만, 정작 여수 출장에서 접한 호남 민심의 '분노'는 당이나 지역구 의원이 아닌, 친노 그들 세력의 수장인 문재인 대표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데도 정작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은 횡보하거나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현실, 새정치연합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이 돌아서지 않는 게 근저에 깔린 이유가 아닐까. 내년 4·13 총선이 불과 5개월여 앞으로 바짝 다가온 이 때, 통합과 단결을 통해 모두가 승리하는 길으로 갈 것인지, 계파패권주의를 고집하며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갈 것인지, 언젠가는 끝날 교과서 정국 이후 문재인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