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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아성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 고아성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본격 스릴러는 처음이에요”

     
    10여 년 간의 안정된 연기로 견고한 아성을 쌓아온 배우 고아성이 스릴러로 그의 아성에 접근하는 이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려 한다. 바로 27일 개봉하는 영화 ‘오피스’를 통해서 말이다. 첫 스릴러에 도전하는 고아성의 부푼 기대감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오피스’ 완성본을 처음으로 본 건 ‘칸영화제’에서였어요. 칸에서는 환호성을 지르며 까르르 웃는 분위기여서 별로 안 무서웠던 것 같았는데, 3개월 만에 한국에서 다시 보니 이렇게 무서웠나 싶었어요. 그런 감정이 들어서 은근히 만족스런 영화였죠. ‘괴물’과는 또 다른 현실적인 스릴러에요. 촬영 현장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제 영화가 무섭긴 하더라고요.(웃음)”

     
    ‘오피스’는 제68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되며 이미 큰 화제 몰이를 한 바 있다. 고아성의 ‘괴물’ ‘여행자’에 이은 3번째 칸 진출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는 점에서 한 번 놀랐고, 그 큰 자리에서 떨리거나 긴장된 마음을 가지기보다 그저 상황을 즐겼다는 큰 배포에 또 한 번 놀랐다.

     
    “시나리오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제가 원래 스릴러를 좋아했거든요. 그 중에서도 스토리가 탄탄한 스릴러가 좋더라고요. 예를 들면 영화 ‘구타 유발자’나 ‘악마를 보았다’ 같은? 특히 ‘악마를 보았다’는 TV 편집본을 접하게 됐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DVD를 사서 친구한테 추천까지 했을 정도로요.(웃음)”

     
    생각보다 독하다. 그 나이 대에 비해 차분하고 예사롭지 않은 강인한 눈빛을 선보여 왔던 고아성은 취향 또한 남달랐다. 어쩌면 이러한 취향이 그를 자연스레 스릴러를 할 운명으로 이끌고 간 것은 아닐까.

     

  • ▲ 고아성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 고아성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경험하지 못한 회사라는 공간에서의 촬영은 새롭고 재밌었어요. 촬영장이 실제 회사를 본 따 만들어서 진짜 회사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죠. 한편으론 ‘오피스’가 직장인 이야기를 다뤘지만 전반적인 조직생활과 폭력, 동료들끼리의 자격지심, 열등감 같은 것들은 제가 일하는 환경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이미례 캐릭터는 실제로 인턴 생활을 했던 친언니와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도움을 많이 얻었어요.”


    이미례는 인턴이라는 캐릭터 때문인지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미생’의 인턴 ‘장그래(임시완 분)’와 벌써부터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장그래는 따뜻한 동료애가 있는 직장이 배경이었다면, 이미례가 속한 제일 F&B 영업 2팀은 각자가 오로지 자신만이 중심인, 삭막하고 피폐한 야생 같은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오피스’는 ‘여고괴담의 사무실 버전’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아무래도 회사가 배경인 작품이다 보니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건네주신 다음 ‘미생’ 전 권을 주시더라고요. 미생은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버티는 인간적인 끈끈함을 다뤘다면, 오피스는 각자 일을 하려는 의지들은 너무 강하지만 주변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 상황을 그렸죠. 오피스 촬영 중에 미생 드라마가 방영됐었는데, 혹시나 비슷한 느낌으로 연기하게 될까봐 저는 나중에야 봤어요.(웃음) 요즘에는 임시완 씨와 영화 ‘오빠 생각(감독 이한)’을 촬영 중인데, 오피스 얘기를 하면서 미생 세트장 얘기도 들어보고 공감대가 많이 형성됐죠.”

     
    임시완과의 대화를 통한 비교로 미생과 전혀 다른 음침하고 소름 돋는 사무실 촬영 현장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오피스는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정신적으로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촬영을 해보니 제가 그 정도로 힘들지 않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출연 배우들과의 합이 좋았어요. 또 아무래도 촬영 순서가 이야기 흐름대로만 진행되는 게 아니다보니 그 정도로 무서운 느낌은 안 들더라고요. 그때그때 촬영이 끝나고 배우들끼리 얘기하면서 고통에 몰입했던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죠. 그리고 박성웅 선배님은 실제로 너무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반전 매력이 넘치셔서 다음에 코미디극을 하게 된다면 꼭 함께 참여해보고 싶어요.(웃음)”

     
    정말 즐거웠던 촬영 현장이었나 보다. 당시를 회상하는 고아성의 눈빛이 한순간 크게 빛났다. 의외의 화기애애한 촬영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결과물을 보고 고아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 ▲ 고아성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 고아성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물론 무서운 장면들이 있었죠. 저는 주차장 장면이 가장 무섭더라고요. 그 촬영 과정을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화면으로 접하고는 너무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요즘엔 주차장 가는 게 무서워졌어요. 그리고 점심시간에 선배들에게 전화를 하지만 선배들이 ‘안 받아도 되는 애’라고 말하는 장면도 섬찟했죠. 백주대낮이 배경이지만 소외감에서 오는 공포감이 오히려 더 무섭더라고요.”
     

    ‘오피스’가 확실한 스릴러임을 입증하는 순간이다. 출연 배우가 촬영 결과물을 보고서 새삼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추격자’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 등 흥행 스릴러를 전문으로 연출해온 홍원찬 감독의 뛰어난 감각 때문이리라. 홍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된 고아성은 촬영 전부터 마음가짐이 색달랐다고.
     

    “인턴의 불안한 표정연기에 가장 초점을 맞췄어요. ‘우아한 가족’에서 윤리적인 문제,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고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경험해보지 않은 출산 연기를 했었죠. 이번에도 제가 경험해보지 않은 역할을 소화하게 됐네요. 돌이켜보니 독특한 역할만 하고 있었어요. 뭘 더 새로운 걸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따뜻하고 착한 영화를 찍는 것만큼 새로운 게 없더라고요. 지금 촬영 중인 ‘오빠 생각’이 딱 그런 영화에요. ‘오피스’를 본 분들이 ‘오빠 생각’에 감정 이입을 하면서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 작품의 색깔이 참 달라서 걱정도 되지만 기대도 돼요.(웃음)”
     

    새로운 걸 자꾸 시도하는 게 좋다는 고아성의 최근 슬로건은 ‘Be on the hip’이란다. 대중의 반응에 대해 걱정하는 측면도 있지만 크게 휘둘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그는 지금 충분히 hip하다. 꾸준히 작품을 찍는 게 멋있는 것 같다고 담담히 전하는 고아성은 크게 꾸미지 않아도 빛나는 존재감으로 20대 여배우들 중 단연 그 중심에 서게 됐다. 20대 여배우의 기근이라 불리는 충무로의 상황 속에서 고아성을 보고 있노라면 거침없는 다양성에, 그 존재 하나만으로 일당백을 충분히 하는 느낌이다.
     

    “영화를 오랫동안 찍어오면서 굉장히 위험한 순간이 있었어요. 영화의 스토리들은 다 다르지만 나의 접근방식과 개봉할 때의 떨림 등이 어느 순간 다 똑같아지면서 무뎌짐을 느꼈거든요. 그 때 흥미를 잃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더 안하던 역할에 도전하는 것 같아요.”

     

  • ▲ 고아성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 고아성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