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의원 조부 친일행적 고백, 사죄 앞서 은근 자기자랑
  • ▲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조선닷컴DB
    ▲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조선닷컴DB

    홍영표 새민련 국회의원이 일제시대에 중추원 참의를 지냈던 조부의 친일행적을 사과했다.

    홍 의원은 지난 8월10일 인터넷 등에 올린 글을 통해 “친일후손의 오늘을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준비한다는 한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 응했다”면서 “인터뷰가 나오기 전에 공개적으로 사죄의 글을 쓴다"고 밝혔다.

    그는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들은 잊지 마시되, 그 후손은 어떤 길을 걷는지 지켜봐주십시오. 저는 조부의 행적을 원망하지만 조국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지었다.

    홍영표 의원의 사과문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언뜻 보면, 구구절절한 사죄의 글처럼 읽힌다. 아버지가 조부의 친일행적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해방 후 낙향해서 교육자로 살았다는 것, 자신이 ‘단 한 번도 일제의 만행을 옹호하지 않았고, 일본의 현대사 왜곡과 제국주의 부활에 동조하지도 않았으며, 조부로부터 그 어떤 자산물림이나 부의 혜택도 받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그 사죄의 글 사이에는 거슬리는 점들도 보였다. 자기가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사업에 앞장서 왔으며 이 공로를 인정받아 독립운동단체들로부터 상을 받았다는 내용은 자기 자랑으로 보여 불편했다.

    조부의 친일행적을 10년 전 친일인명사전에 조부가 등재될 때 처음 알았다는 대목도 의구심이 일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조부의 친일행적에 대해 속죄하는 삶을 살았다면, 왜 아버지는 조부의 친일행적에 대해 자식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을 것일까? 20대에 법조인의 꿈을 접고 시골에 은둔하면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속죄의 삶을 살 정도의 양심적인 인물이라면, 마땅히 자식들에게 부친의 부끄러운 행적을 솔직하게 알려주고 근신하도록 했어야 마땅한 것 아닌가?

    하지만 홍 의원의 고백을 보면, 그는 조부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그 때까지 저는 제 조부가 몰락했지만 한 때 나눌 줄도 알던 넉넉한 지주였고, 고창고등보통학교 설립에 참여한 교육자‘로 알았을 뿐, 조부가 중추원 참의까지 지낸 거물 친일파였다는 것은 몰랐던 걸로 되어 있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홍 의원이 조부의 친일행적을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그 하나다. 그게 아니라면, 홍 의원 아버지가 속죄의 삶을 살았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다. 어느 쪽이든 홍영표 의원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10년 전 조부의 친일사실을 알았다고 하면서도, 홍영표 의원은 아버지처럼(?) 은둔하면서 속죄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오히려 2009년 부평을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일선에 나섰다.

    홍영표 의원의 조부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거물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2년 총선 때였다. 상대방 후보가 이 사실을 폭로했던 것이다. 그러자 홍 의원측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상대 후보를 다섯 번이나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그것이 조부의 친일행위를 평생 속죄하면서 산 교육자의 아들이 취할 행동인가? 그것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활동에 전념해 왔다고 자부하는 국회의원이 할 행동인가? 그것이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 ‘용서를 구하는 후손’이 할 행동인가? 그는 왜 그때, 이번에 발표한 것 같은 ‘감동적’인 사과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일부 언론에서는 홍 의원에 대해 ‘용기 있는 고백’운운하면서, 홍 의원 띄우기에 나섰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홍 의원에게 물어보고 싶다. 상대 후보가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나왔어도, 홍 의원은 자신의 조부가 거물 친일파였다고 ‘용기 있게’ 자복하고 사과했을까?

    혹시 계속 그 사실은 숨기면서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는 국회의원으로 광을 내고 다니지 않았을까?

    혹시 홍영표 의원이 이번에 자기 조부의 친일행적을 사과하고 나선 것은 영화 <암살>의 흥행, 광복 70주년 등으로 친일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내년 총선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은 아닐까? “나는 조부의 친일행적을 깨끗하게 인정했고, 국민들로부터도 그 진정성을 인정받았다”고 내세우려고.

    인천평화복지연대라는 단체는 지난 12일 논평을 내고 "비록 늦었지만 사회지도층의 친일파 후손은 홍 의원처럼 용기 있는 결단으로 역사 앞에 반성하길 바란다"면서도 "홍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고 공직생활을 자제하는 것이 자기고백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에게 이러한 지적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권하고 싶다.

    홍영표 의원의 사과문 내용 중에서 제일 고약한 것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들은 잊지 마시되, 그 후손은 어떤 길을 걷는지 지켜봐주십시오”라면서 “저는 조부의 행적을 원망하지만 조국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라고 한 대목이다.

    여기서 자기 조부의 친일사실을 고백하면서 슬쩍 친일의 화살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속내가 엿보인다. 자기는 이렇게 쿨하게 조상의 친일행적을 사과하고 반성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과 자기를 비교해 달라,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홍영표 의원의 사과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친일파'라는 화살을 날리는 자들이 나타났다.

    새민련 김성주 의원은 13일 “홍영표 의원의 용기 있는 고백을 들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가 세운 만주국 주둔 일본 육사 출신의 관동군 중위 ‘다카키 마사오’였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인정하거나 사죄했다는 말을 들은 적 없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홍영표 의원의 조부 홍종철씨 사건을 조사했다는 고 아무개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홍영표 의원이 `굳이 자기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 나서 사죄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눈물 나게 고맙고 한편 또 마음이 아프다”면서 “제 아버지 친일을 언급도 하지 않는 박씨 집안이 대통령하는 나라에서 감동했다”고 했다.

    더 나아가 일부 언론 등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이인호 KBS이사장의 조부의 행적을 문제 삼고 나섰다.

    이쯤 되면 저쪽 사람들이 ‘친일’을 가르는 기준은, 친일행위자의 죄질 여부가 아니라는 게 분명해진다. 죄질을 말하자면, 홍영표 의원의 조부 홍종철씨의 친일이 훨씬 엄중하다. 중추원 참의를 하고 작위를 받았다는 것은 최고 수준, 거의 이완용 수준의 친일을 했다는 이야기다.

    1944년에 만주군(관동군이 아니다) 소위로 임관해 만주군 연대장의 부관을 하다가, 이듬해 중위 계급장을 달자마자 해방을 맞은 박정희의 친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새민련과 좌파세력은 과거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주구장창 ‘다카키 마사오’의 친일만을 시비 삼아왔다. 그러면서도 독립투사들을 고문했던 헌병 오장의 아들 신기남과 일본 헌병의 딸 이미경, 금융조합 서기의 아들 정동영, 만주국 훈도의 아들 유시민은 여전히 ‘진보정치’를 외치며 행세하고 다녔다.

    증조부가 동학란을 유발한 탐관오리 조병갑이었고, 조부가 일제 하에서 친일을 했던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역시 아직도 그 동네 언저리에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다닌다.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민주당은 이들을 ‘친일파의 자손’이라고 문제 삼은 적이 없다.

    말은 그럴듯하다. 조상이 친일을 했더라도 그 잘못을 뉘우치고 민주와 진보의 편에 섰으면 용서가 되지만, 권위주의 정권의 편에 섰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인 모양인데, 그냥 쉽게 얘기하자. 우리 편에 선 사람 집안의 친일행적은 덮어줄 수 있지만, 적의 편에 선 사람 집안의 친일행적은 마르고 닳도록 물고 늘어지겠다고 말이다. 그가 아무리 대한민국을 위해 많은 성취를 이루었더라도.

    사실 이런 치사한 일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분단 시절 독일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동독은 뤼브케 서독 대통령을 비롯해 서독의 정치인, 관료, 군인들의 나치시절 행적을 끊임없이 시비 걸었다.

    서독의 ‘진보적’ 지식인, 언론, 학생들은 여기에 열심히 호응해 ‘과거사 청산’을 외쳐댔다. 그런데 이런 문제 제기의 뒤에는 동독의 비밀정보기관 슈타지가 있었다. 뤼브케 대통령은 슈타지의 중상모략에 결국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해야 했다. 이 사실은 나중에 동독이 무너지고 슈타지 문서고가 열리면서 알려졌다.

    그런데 실은 동독의 인민의회 의원, 공산당 간부들 가운데도 나치 당원, 나치군 출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동독 공산정권은 이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도 동독이나 좌파세력이 나치부역 여부를 단죄하는 기준은 자기들 편이냐 아니냐였다.

    마지막으로 하나,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대목이 있다. “조국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는 홍영표 의원의 마지막 다짐이다.

    그는 의정활동을 하면서 정말 조국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나?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대북규탄결의안에 반대한 것이 조국을 사랑하는 모습일까? 북한인권법을 대북 퍼주기를 내용으로 하는 북한민생인권법으로 변질시키는 것이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일일까?

    홍영표 의원이 사랑하겠다는 조국은 ‘대한민국’이기는 한 것일까? 그는 또 다른 조국을 남몰래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홍영표 의원의 사과문>


    ‘아니 좀, 웃으세요.’

    2013년 11월, 생존 애국지사 모임인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임우철 회장님께서 대표해서 주신 감사패를 받을 때 사진입니다.

    촬영하던 분은 제 속내를 모르고 웃으라 했지만,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친일부역자들의 명부인 친일인명사전, 제가 그 사전에 올라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의 손자이기 때문입니다.

    친일파의 후손인 제가 민족 앞에 사죄하는 길은 민족정기사업에 더욱 매진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고 독립유공자 어른들과 후손들도 자주 뵙습니다.

    그러나 저 사진촬영 때처럼 그분들 앞에서 웃을 수가 없습니다. ‘조부의 죄지, 태어나지도 않았던 네가 무슨 죄냐’고 위로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렇게 제가 민족정기사업으로 칭찬을 받을 때는 거리 한복판에 벌거벗고 서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에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습니다.

    사법적 연좌제는 없어졌다 해도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국민들 가슴 속 분노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사실을 밝히며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이 자손인 저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 인터뷰가 나오기 전에 공개적으로 사죄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7월 하순, 친일후손의 오늘을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준비한다는 한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인터뷰에 응할지, 무척이나 망설였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조용히 하던 일을 해가면서 용서를 구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마음부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 오히려 더 화를 부를지 모른다’는 주변의 걱정까지…

    인터뷰 전날 잠을 설치고 아침까지도 망설이다 결국 인터뷰를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 용서를 구하는 후손으로 사는 것이 그나마 죄를 갚는 길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저는 그 날을 잊지 못 합니다. 제가 참여정부에서 일할 때 큰 집 형님들이 갑자기 찾아오셨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조부가 등재되었다며 이의제기를 하자고 자료들을 들고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크게 놀랐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 때까지 저는 제 조부가 몰락했지만 한 때 나눌 줄도 알던 넉넉한 지주였고,고창고등보통학교 설립에 참여한 교육자로 알았습니다.

    형님들이 가져오신 자료들을 보며, 어떤 사정이 있었건, 교육자로 선행을 했던,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고 부역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친일행위라고 말씀드리고, 형님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청춘을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자동차회사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단 한 번도 일제의 만행을 옹호하지 않았고, 일본의 현대사 왜곡과 제국주의 부활에 동조하지도 않았으며, 조부로부터 그 어떤 자산물림이나 부의 혜택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아버지는 서울대 법대에 재학하며 법조인의 꿈을 키우다가, 이 사실을 알고 20대에 스스로 낙향해 평생 후학을 가르치며 사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재작년 작고하셨을 때 독립유공자 어른들께서 조문을 오셨습니다. 독립유공자 어른들의 조문을 받으시는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하시나요?’

    평생 속죄하면서 사셨던 아버지와 국회의원이 되어 민족정기사업에 힘을 보태는 아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알고 있습니다.

    민족 앞에 당당할 수 없는 저는 친일후손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부평은 일제 때는 병참기지로, 해방 후엔 미군기지가 연이어 주둔한 곳입니다.

    구구절절 아픈 역사가 흐르는 이곳은 또한 독립운동의 거목 조봉암 선생께서 처음으로 정계에 입문한 곳이며, 부평 미군기지가 있는 땅이 자신들의 소유라며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특별법’으로 지켜낸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저도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서명에 나섰습니다. 거리에서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시민들께 서명을 부탁드렸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계속 민족정기사업에 나서다보니 독립유공자 어른에게 감사패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 보다 먼저 어쩔 수 없는 친일후손으로서, 운명같이 제가 할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 3.1절, 광복 70주년인 이번 8.15광복절이 다가올 때는 솔직히 부끄럽고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그럴수록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냅니다. 더 질책 받고, 그래서 더 민족정기사업에 정진하며 살아야한다고 다짐합니다.

    조부의 친일행적에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피해를 입고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거듭 용서를 구합니다. 저 역시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제가 조부님을 선택할 순 없는 일이겠지요. 앞으로도 평생, 민족정기사업에 더욱 힘을 바치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들은 잊지 마시되, 그 후손은 어떤 길을 걷는지 지켜봐주십시오. 저는 조부의 행적을 원망하지만 조국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