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 해외출장 두고 비판여론 확산, "대통령도 방미 연기했는데.."


  • 정치권에서 이른바 '메르스 외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정국을 뒤로하고 외유 출장을 다녀온 것에 대한 비판이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서울 도봉구의회 소속 구의원 7명은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북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서초구의장 등 구의원 5명도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6일까지 8박10일 일정으로 유럽 '의회 공무국외연수'차 출장을 다녀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경기도도 예외는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A 경기도의원은 통일교육 아카데미 연수단과 함께 지난 7일 독일 연수를 떠났다가 15일 귀국했다.

이를 두고 경기도 여야 의원들의 정쟁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도의회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A 의원은 지난 4일 지역구 교육청·보건소 관계자들에게는 상황이 심각하다며 적극 행정에 나설것을 주문했지만, 정작 자신은 독일로 출국했다"며 사죄를 촉구했다. 

이에 경기도의회 야당 의원들은 여당의 외유 사실을 폭로하며 맞대응했다. 도
의회 여야 의원들이 메르스 확산 방지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외유 논란을 빚은 뒤 정쟁 몰두 양상을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중앙당 의원 뿐만 아니라 지방의원 역시 개인이 아닌 하나의 기관으로 볼 수 있다"며 "메르스 정국에서 해외출장을 다녀온 뒤 서로 싸움질이나 하고 있다니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도의회 의원들의 해외출장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도당 위원장인 새누리당 함진규 의원은 "의원 해외출장은 두 가지로 분류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통상적으로 안 가도 상관없는, 즉 불가피성이 없는 경우에는 지금같은 메르스 상황에서는 연기를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다면 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도저히 조정이 불가능한 '국제단체 회의'라든지 '외국 의회와의 회의' 등의 경우가 아니라면 지방 의원들도 가급적 출장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함 의원은 경기도당 여야 의원들이 외유 논란을 두고 정쟁을 벌이는 데 대해는 "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모두 힘을 모아 메르스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인데, 서로 이런 논란을 두고 싸우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며 "모두가 메르스 예방을 위해서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마당에 지금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 노현송 강서구청장.ⓒ연합뉴스
    ▲ 노현송 강서구청장.ⓒ연합뉴스

    함진규 의원은 다만 "지자체장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해외출장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구청장은 구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진 집행권자라는 점에서 메르스 상황에서의 해외 출장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지자체 중에서 외유 논란이 확산하고 있는 지역은 서울 강서구다.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해 구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음에도 노현송 강서구청장이 열흘 가량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앞서 노 구청장은 지난 1일 중소기업들의 해외시장 판로 개척을 이유로 관내 기업인들을 인솔해 캐나다 밴쿠버로 출국했다. 메르스가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할 기미가 보였음에도 캐나다 등 유럽과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는 장장 보름짜리 출장에 나선 것이다.

    논란이 일자 노현송 구청장은 11일 오후 5시쯤 남은 스케줄을 취소하고 중도 귀국했다. 하지만 사태는 이미 겉잡을 수 없이 확산한 뒤였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당일 공식 발표한 메르스 환자 발생 및 경유병원에 강서구 강서미즈메디병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구민들의 안전은 뒤로 한 채 무책임한 외유 출장을 떠났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정부와 구청장을 포함한 지자체장은 특정 감염병이 생기면 역학조사와 방역 예방조치에 나서야 함에도, 노 구청장이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노 구청장의 해외출장 논란과 관련, "이게 말이 되는 얘기냐. 이 엄중한 시기에 메르스 방지와 대책에 대한 총괄 책임자인 구청장이 자리를 비운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강서구 관계자는 "출국 당시에는 메르스에 대한 위험도가 지금과 같이 높지 않았다"며 "또 
    올해 1월부터 예정된 일정이라 관내 기업인들에게 경제적인 손실을 끼치면서까지 취소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회 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 소속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노현송 구청장이 출국한 날은 메르스 사태가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를 만큼 확산일로의 상황이었다"며 "그런 시기에 구청장이 지역을 떠나 있었다는 것은 지역주민이나 국민 입장에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반박했다.

    문 의원은 이어 "게다가 지역민들이 메르스를 국가 재난처럼 의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장으로서 밤새 대책을 강구해도 모자랄 판에 해외출장으로 외유 논란에 휩싸였다는 것은 지역민 입장에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구청 관계자는 "노 구청장은 현지에서도 유선 등으로 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지휘했다. 10일 처음으로 강서구민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하자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문정림 의원은 "메르스는 기존에 알려진 병도 아니고 새로 유입된 신종 감염병이이라는 점에서 국민 불안이 매우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구청장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출장을 나갔다는 것은 지역민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판단을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박근혜 대통령도 메르스 사태로 인해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음에도 국민을 위해 방미 일정을 연기했다"며 "
    구청장은 이번 외유출장 논란으로 구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의무를 다하지 않고 부적절한 행태를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