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혁신 불가능한 문재인, 손 안에 남은 카드는 사퇴 뿐?
  • ▲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광주시당위원장(오른쪽)과 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이 18일 광주 풍향동 모처에서 광주·전남 의원 회합을 가진 뒤 대표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광주시당위원장(오른쪽)과 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이 18일 광주 풍향동 모처에서 광주·전남 의원 회합을 가진 뒤 대표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4·29 재보선 전패 이후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혁신기구' 설치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지만, 당내의 반응은 냉담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17일 광주로 내려가기 직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이른바 '혁신기구'를 이번 주내로 발족시키기로 했다. 혁신기구는 공천과 인사쇄신, 당무혁신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기구로, 혁신기구에서 결정한 사항은 당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뒤집거나 거부할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재인표 혁신기구에 벌써부터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손에 넣게 될 위원장을 누가 맡느냐부터가 논란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외부에서 영입할 경우) 중립적이고 모든 당내 인사가 수용할 수 있는 분이 돼야 한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인사를 이번 주내에 영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압도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이상돈 중앙대 교수를 국민공감혁신위원장으로 영입하려다 친노(親盧, 친노무현)계의 극심한 반발에 자기 자신조차 원내대표에서 물러나야 했던 사례를 거론하며 "현실적으로 외부 인사 중 당내 모든 인사가 수용할 수 있는 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당내 인사를 앉히자니, 계파색이 문제가 된다. 당 핵심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계파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특정 계파 인사가 위원장이 되는 순간 그러한 원칙이 깨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주승용 최고위원을 혁신기구 위원장으로 앉힌다든지 하는 '혁명적인 결단'을 해야 하는데 문재인 대표에게는 불가능하다"며 "(유성엽 의원이) 주승용 최고위원을 공천혁신특별위원장으로 하자고 건의하자마자 '공천권' 운운하며 대뜸 날을 세운 게 문재인 대표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처럼 위원장 인선부터가 답이 안 나오다보니, 문재인표 혁신기구는 첫 삽을 뜨기 전부터 회의적인 시각에 직면한 상황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혁신기구 설치안이 발표된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지도부가 당의 위기 상황을 안이하게 파악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혁신기구 설치는) 시간벌기, 물타기가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이 18일 광주 풍향동 모처에서 광주·전남 의원들과 회합을 마친 뒤 문재인표 혁신기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이 18일 광주 풍향동 모처에서 광주·전남 의원들과 회합을 마친 뒤 문재인표 혁신기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새정치연합 호남 지역 의원들도 이에 가세했다. 광주·전남 지역 의원 13명은 18일 광주 풍향동 모처에서 회합을 갖고 "문재인 대표가 책임져야 할 범위와 방법에 대한 논의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혁신기구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와 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회합 이후 의원들을 대표해서 입장을 공동 발표한 박혜자 광주시당위원장과 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은 "문재인 대표는 현재 당이 처한 상황에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며 "당의 혁명적 변화가 절실한 시점으로, 광주·전남 의원들이 이번 (재보선) 패배에 자성하며 혁신의 선두에 서겠다"고 자처했다.

    이는 혁신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4·29 재보선 전패로 촉발된 '문재인 책임론'을 수습하는 적절한 방법인지 의구심을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문재인표 혁신기구가 친노패권주의를 청산하는 등 실질적인 혁신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는 별반 기대하지 않는 '호남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이다.

    박혜자 위원장은 "(문재인 대표가) 책임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혁신부터 사퇴까지 모두 다 거론될 수 있다"고 밝혀, 이같은 해석에 무게를 실었다. 황주홍 위원장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표현 속에 (사퇴 요구도) 포함"이라며 "싸늘하게 식어버린 호남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지도부부터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이날 회합에 참석한 주승용 최고위원 또한 "(혁신기구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는다"며 "구성 자체부터가 어려울 것이고, 기존의 혁신기구가 있는데 또 무슨 혁신기구를 중복으로 구성을 하느냐"고 극도로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이윤석 원내수석부대표도 "호남 (민심)만 엄중한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민심이) 엄중하다"고 이날 회합의 심각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문재인 대표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책임론을 모면하기 위해 내놓았던 '혁신기구 설치안'이 회의적인 시각에 직면하면서, 출범도 하기 전에 이미 동력을 상당 부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혁신의 본질적인 내용은 친노패권주의 청산이 돼야 하는데, 친노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대표가 '셀프 혁신'을 할 수 없는 것이 딜레마의 근원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한길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호남이 거부하는 야권(의 대선) 주자는 있어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으며, 있어도 승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문재인 대표가 야심차게 내놓은 '혁신기구' 카드가 '호남 민심'을 대변하는 광주·전남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침에 따라, 이제 그의 손 안에 남은 카드는 '사퇴' 외에 이렇다할 게 없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