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도 너무 닮아...애국 위한 所信도 나란히, 부국 이끈 두 '지도자'

  •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오늘날의 부강한 싱가포르를 만든 1등 공신으로 꼽힌다. 가난한 어촌 마을이었던 싱가포르는 리콴유 전 총리가 펼친 각종 경제정책 덕분에 반세기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부국(富國)으로 거듭났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다.

    그는 여론에 좌우되는 포퓰리즘(Populism, 인기영합주의) 정치를 극도로 혐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리 전 총리는 "유권자의 표는 정책을 실행한 결과가 정한다"는 소신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지켜왔다.

    자타가 공인하는 마키아벨리 골수 추종자였던 그는 타협을 거부해 고집불통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2005년에는 평생의 원칙이었던 도박 금지를 버리고 정부의 카지노 건설정책을 지지해 유연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가 입장을 뒤집은 이유는 간단했다. 싱가포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하다면 변화하겠다는 애국심(愛國心)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리콴유 전 총리는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끈 영웅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투명한 강소국을 만들겠다는 그의 곧은 신념은 정치적 반대세력과 언론탄압으로 이어졌고, 엄격한 사회 통제로 민주주의 발전을 억압한 '독재자'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현재, 금융과 물류의 세계적 중심지로 거듭난 싱가포르의 성장 배경에 리콴유 전 총리의 리더십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리콴유 전 총리는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까지 나라의 경제기적을 일군 지도자다. 그래서일까? 그의 어록에는 배불리 먹기 위해 '권위적 통치'가 불가피하다는 정치관이 짙게 녹아있다.

    "언론의 자유는 싱가포르의 통합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구와 선출된 정부의 주요 목적에 종속돼야 한다."

    "나는 시민의 개인적 삶에 간섭한다는 비난을 종종 듣는다. 그래,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 치의 후회도 없이 말하는데 당신의 이웃이 누군지,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당신이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언어를 쓰는지 같은 아주 개인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경제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웃나라들처럼 하면 죽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남들에 비해 내놓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다르고 나은 것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청렴이고 효율이며 성과주의다. (이런 것들은) 효과가 있었다."

    "다음 세대에 말해야겠다. (이전 세대가) 이뤄놓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그간의 발전이) 영구적인 것이라고 믿으면 모두 무너질 것이고 두 번째 기회는 없을 것이다."

    "내가 한 것 전부가 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고결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현실 안주다.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이 원하는 경향이 있다."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 소식 이후, 그가 '아시아의 3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리콴유 전 총리는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최고지도자,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일본 총리와 함께 '아시아 3대 지도자'로 꼽았었다.
      
    너무도 닮은 꼴이다. 국가를 부(富)의 반석에 올리기 위해 타협을 거부해야만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리콴유 전 총리의 강단(剛斷)과 소신(所信)을 보고 있자면,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아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긴 어록이다.

  •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생전 모습.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생전 모습.


    "역사는 언제나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국민에게 발전과 영광을 안겨주었다."

    "바르게 알도록 하고 바르게 판단하도록 하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무거운 책임이 바로 우리 언론에 있다."

    "농사는 하늘이 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서 짓는 것이다."

    "100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만전을 기하는 것, 이것이 국방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천에 관계없이 노동은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생활 무기이다."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적어도 일세기라는 시간을 잃었다. 이제 더 잃을 시간의 여유가 없다. 남이 한 가지 일을 할 때 우리는 열 가지 일을 해야 하겠고 남이 쉴 때 우리는 행동하고 실천해야 하겠다."

    "우리는 자유 민주 체제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아직 갖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 제도처럼 취약한 제도도 또한 없는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해가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잔재하는 수구(守舊)와 파쟁(派爭)이며, 시기와 모함이며, 독선과 아집이며 단견(短見)과 무정견(無定見) 등 전근대적이며 비생산적인 요소이다."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이끈 정치 지도자로서 통하는 바가 많았던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리콴유 전 총리의 사이는 각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지막 만났던 외국 정상도 리콴유 전 총리였다. 1979년 10월 16일. 박근혜 대통령도 정상회담 당시 자리에 함께 했다. 작고한 모친인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이날 리 전 총리는 "만약 (박 전 대통령) 각하께서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했다면, 오늘 우리가 본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특히 싱가포르의 고도성장을 모색하던 리콴유 전 총리는 우리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그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배워야 한다는 '코리아 벤치마킹론'을 설파했다.

    리콴유 전 총리를 수행했던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은 "경부고속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누런 벼 이삭과 빨간 고추 등 가을 들녘의 풍요로운 풍경을 바라보던 리 전 총리의 얼굴이 부러움과 오기가 뒤섞인 표정으로 상기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 리콴유 전 총리가 한국을 떠난 뒤 닷새 만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됐다. 


  • ▲ 사진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과 리콴유 전 총리의 모습. 이날 정상회담때 박근혜(왼쪽) 대통령이 당시 영애시절 통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사진 제공=한국정책방송원)
    ▲ 사진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과 리콴유 전 총리의 모습. 이날 정상회담때 박근혜(왼쪽) 대통령이 당시 영애시절 통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사진 제공=한국정책방송원)


    그리고 27여년이 지나 박근혜 대통령은 2006년 한나라당 대표로 지방선거를 지휘하던 때 흉기 테러를 당하기 직전 리콴유 전 총리를 면담했다. 당시 리 전 총리 부부는 지방선거 유세를 다니던 박 대통령의 목이 아플 것을 염려해 사탕을 선물했다. 박 대통령은 이듬해 싱가포르에서도 리콴유 전 총리와 회동을 갖고 정치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자서전에서 리콴유 총리와의 인연을 언급하며 "리 수상 부부는 나에게 부모님 같은 정을 주시는 분들"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식사 내내 화기애애했는데 일주일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리콴유 수상은 너무나 애통해하는 조문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리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접한 박근혜 대통령의 심정은 상당히 복잡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23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애도 성명은 그간 부녀(父女)가 쌓아온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리콴유 전 총리의 국장(國葬)에 직접 참석키로 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 정상급 지도자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2월 서거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식에는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를 조문 특사로 보냈고, 올해 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 서거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조문사절단을 사우디에 파견했다.

    일찍이 부모를 먼저 떠나보낸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어 리콴유 전 총리는 든든한 멘토이자, 따뜻한 정을 나눈 가족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박 대통령이 직접 싱가포르행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리 전 총리와의 인연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