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가 중앙정보부? 하급 정보경찰 출신인데 DJ 측근 조풍언 덕분에 성장”
  • ▲ "그에게서 희망을 봤다…." 누가 이런 말을 할까?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의 그룹 홈페이지 인사말. ⓒ일광그룹 홈페이지 캡쳐
    ▲ "그에게서 희망을 봤다…." 누가 이런 말을 할까?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의 그룹 홈페이지 인사말. ⓒ일광그룹 홈페이지 캡쳐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지난 15일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지난 17일에는 채널A가 이규태 회장과 연예인 클라라 사이에 있었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녹취록에서 이규태 회장은 “내가 중정(중앙정보부) 출신”이라고 클라라를 윽박질렀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규태가 진짜 중앙정보부 요원 출신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규태 회장에 대해 조사했던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을 안다. 이규태 회장이 사실 한국 방산비리의 몸통이 되기까지는 거물급 로비스트의 ‘수족(手足)’ 생활을 했다는 것도 수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이 방산비리 몸통?


    방산비리 정부합수단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법은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과 솔브레인 임원 조 모 씨, SK C&C 권 모 상무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혐의는 솔브레인이 SK C&C로부터 500억 원대의 공군 전자전 훈련사업(EWTS) 연구개발 용역을 재하청 받으면서 비용을 부풀려 자금을 빼돌렸다는 것이었다. 예비역 공군 준장인 조 씨는 이규태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규태 회장과 조 씨, 권 씨 주변을 수사 중이라고 한다. 군과 정관계 로비 정황도 수사 중이라고 한다. 이를 보고 언론들은 “박근혜 정부의 방산비리 수사가 몸통을 향하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코웃음 친다. 지난 15년 동안 일어난 방산비리의 핵심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 ▲ 미국으로 망명한 전직 국정원 요원 김기삼 씨의 블로그.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김기삼 씨 블로그 캡쳐
    ▲ 미국으로 망명한 전직 국정원 요원 김기삼 씨의 블로그.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김기삼 씨 블로그 캡쳐

    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 가운데는 재미 저널리스트 안치용 씨와 미국으로 망명한 前국정원 요원 김기삼 씨도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美뉴욕 변호사로 활동 중인 김기삼 씨는 2010년 출간한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라는 책을 통해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의 방산비리를 폭로한 바 있다.

    김기삼 씨가 과거 언론들과 인터뷰한 내용에도 이규태 회장이 나온다. 주제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던 차세대 전투기 사업(F-X 사업)이었다.

    김기삼 씨는 “DJ 시절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논란 끝에 보잉의 F-15K가 선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DJ는 보잉社로부터 엄청난 리베이트를 챙긴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기삼 씨는 “F-X 사업 당시 DJ의 차남 김홍업 씨, 천용택 前국방장관(국정원장 역임) 등 여러 명의 ‘측근’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때 권노갑 前민주당 대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당시 문광부 장관)은 프랑스 닷소社의 ‘라팔’을 밀었다는 것이다. 김기삼 씨는 이들이 ‘라팔’을 지지한 데 대해 “물론 라팔 쪽의 리베이트가 훨씬 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때 김기삼 씨는 중요한 말을 했다. 거물 무기 로비스트의 후원을 등에 업은 일광공영 이규태가 라팔 쪽 업무를 대행했다는 이야기였다. 즉 이규태 회장은 ‘몸통’의 ‘수족’이라는 뜻이었다.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의 배후
    거물 로비스트 ‘조풍언’


    김기삼 씨가 말한 ‘거물 무기 로비스트’는 조풍언 씨였다. 조풍언 씨는 2014년 10월 14일 사망했다. 김대중 정권 당시 대우정보통신 1대 주주가 된 배경, DJ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국내 시사월간지에서도 자주 거론됐던 유명인이다.

    김기삼 씨는 조풍언 씨에 대해 “80년대부터 20여 년 동안 한국 최고의 무기 브로커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DJ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모든 무기사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김기삼 씨에 따르면, 조풍언 씨는 미국제 무기와 이스라엘 무기 도입 사업에 관여했으며, 정부 감시가 미흡한 1,000억 원 안팎 규모의 사업을 주로 취급했다고 한다.

    조풍언 씨는 김영삼 정권 시절 ‘불곰사업(러시아 경협 차관을 무기로 대신 상환받은 사업)에도 개입했는데 이때는 일광공영을 내세워 러시아제 대전차 미사일 '메티스-M', 고철 및 비금속 수입 사업을 독점했다고 한다.

  • ▲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SBS 관련 보도화면 캡쳐
    ▲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SBS 관련 보도화면 캡쳐

    김기삼 씨는 “하급 경찰관 출신에 불과한 이규태가 러시아제 무기도입 사업(일명 불곰사업)과 고철, 비금속 수입 사업을 독점한 것은 미스터리일 것”이라며 “이는 이규태 뒤에 조풍언 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풀이했다.

    부산고 출신인 이규태 회장은 본인 입으로 1985년 3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규태 회장이 차기 잠수함(KSS)사업, FX(차세대전투기도입)사업, KHP(차세대헬기)개발사업 등에도 관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 김기삼 씨의 말처럼, 이규태 회장은 중앙정보부 출신이 아니라 경찰 출신이다. 부산 출신으로 1980년 간부후보생 29기로 경찰에 임용돼 1985년까지 강남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했다. 근무할 당시 맡았던 업무 때문에 중앙정보부 관계자와 만날 기회는 있었을 것이라는 정보관계자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클라라 등에게 ‘중앙정보부’ 운운하는 것은 단순한 허풍이거나, 아니면 조풍언을 통해 만나게 된 정보기관 요원을 '배경'으로 사용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이규태 회장은 김기삼 씨의 주장처럼 1990년대 후반부터 급성장했다. 그가 학교법인을 설립하고, 회사를 ‘그룹’으로 키운 때도 모두 2000년 이후다. 


    2014년 조풍언 사망, 이규태 배후 못 캐나


    김기삼 씨는 지난 10년 사이 언론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며 방산비리에 대해 설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기삼 씨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이규태 회장의 구속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2009년 10월 18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이규태 회장을 ‘조세포탈, 업무상 배임,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2010년 8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기삼 씨는 이규태 회장 같은 ‘조풍언의 대리인’이 아니라 그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김대중 정권 시절 방산비리의 핵심이라는 로비스트 조풍언 씨와 천용택 前국방장관, 이원형 前국방부 획득국장, 문일섭 前국방부 획득실장, ‘DJ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수동 씨 등이 그들이다.

  • ▲ 2008년 귀국 후 구속될 당시 조풍언 씨. ⓒSBS 관련 보도화면 캡쳐
    ▲ 2008년 귀국 후 구속될 당시 조풍언 씨. ⓒSBS 관련 보도화면 캡쳐

    김기삼 씨는 아래의 사업들에 모두 조풍언 씨가 개입돼 있었으며, 이 사업에는 ‘대리인’을 내세워 정부의 감시를 피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장거리 공대지 유도 미사일(AGM-142 Popeye) 도입(K 前공군참모총장, S사)
    - AN/ALQ-165 ASPJ 대 전자전 방어 및 교란 시스템 도입(조풍언, 기흥물산)
    - 전투기 레이더 경고 수신기(RWR) 교체(L 예비역 준장, P사)
    - 렙콘 항공기 착륙 유도용 항공관제 레이더 도입
    - 공군 공중지상 통신장비 도입
    - 이스라엘제 Harpy 대 레이더 공격용 무인정찰기(UAV) 도입


    김기삼 씨는 “물론 큰 덩치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챙겼을 것이다. 그 돈은 평생 금고지기인 이수동 씨가 관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조풍언 씨는 김대중 정권 시절 방산비리 뿐만 아니라 ‘대우그룹 구명 로비’에도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다. 


    ‘대우그룹 구명로비’ 했다던 조풍언, 2008년 자진 귀국


    전남 목포 출신인 조풍언 씨는 김우중 前대우그룹 회장과 고교 동문이자 故김대중 前대통령과는 동향이다.

    조풍언 씨와 故김대중 前대통령은 ‘이웃사촌’이었다. 故김대중 前대통령이 조풍언 씨 아버지가 경영하던 선박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조풍언 씨는 1980년대 초반 ‘DJ계열’로 분류돼 미국으로 이민 갔다고 주장한다.

    1992년 故김대중 前대통령이 대선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에 갔을 때 둘은 다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故김대중 前대통령을 만난 조풍언 씨는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친해졌고 이후 故김대중 前대통령 아들들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조풍언 씨는 또한 경기고 54회로 51회인 김우중 前대우그룹 회장의 후배다. 故김대중 前대통령 아들들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던 조풍언 씨에게 김우중 前회장이 먼저 접근해 친분을 쌓았다는 주장도 있다.

    대우 사태가 일어난 뒤인 2001년, 검찰은 김우중 前회장의 비자금 조성 경로를 밝혀냈고, 예금보험공사는 비자금 중 상당액이 조풍언 씨가 소유하고 있던 ‘KMC’로 흘러들었다고 판단, KMC가 보유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163만 주(액면가 81억 5,000만 원)에 대해 가처분 금지신청을 했다. 하지만 조풍언 씨는 이미 KMC 명의의 대우정보시스템 지분을 다른 곳으로 빼돌린 뒤였다.

    조풍언 씨는 2003년 3월 20일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 특검팀이 꾸려지자 한국에 1,4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그대로 놔둔 채 미국으로 떠났다. 검찰은 조풍언 씨에 대해 ‘기소중지’를 신청했다. 그런데 조풍언 씨는 ‘기소중지’ 상태임을 알면서도 2008년 3월 자진 귀국했다.

  • ▲ 2008년 조풍언 씨가 귀국할 당시 재미교포 매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 선데이저널USA 화면 캡쳐
    ▲ 2008년 조풍언 씨가 귀국할 당시 재미교포 매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 선데이저널USA 화면 캡쳐

    조풍언 씨는 ‘대우그룹 구명로비’와 대우정보시스템 불법 BW(전환사채) 발행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72억 원을,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86억 원을 선고받았다. ‘대우그룹 구명로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풍언 씨는 6개월 간 구치소에 갇혀 있다 2010년 초 미국으로 돌아갔고, 오랜 기간 앓던 지병으로 2014년 10월 14일 사망했다. 


    이규태 회장, 조풍언 빈자리 어떻게 채웠을까


    조풍언 씨가 귀국했을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조 씨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의미 있는 진술을 제법 많이 했다”고 전한다. 김대중 정권 시절의 의혹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뜻이었다.

    조풍언 씨가 가벼운 처벌을 받고 미국으로 간 뒤 한국 내에서는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조풍언 씨가 한국에 남긴 재산 1,400억 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는 점, 30년 넘게 로비에 성공해 ‘타고 난 로비스트’로 불리는 D기업 Y회장이 조풍언 씨와 연결돼 있다는 의혹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처럼 조풍언 씨와 이규태 씨의 비리의혹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도 현재 박근혜 정부의 방산비리 척결은 조풍언 씨의 비리와 배후 보다는 이규태 회장을 중심으로 한 노무현 정권 시절의 방산비리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 제51회 대종상 시상식에 나온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그는 대종상영화제시상식의 조직위원장이기도 하다. ⓒ대종상 시상식 KBS 생중계 화면 캡쳐
    ▲ 제51회 대종상 시상식에 나온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그는 대종상영화제시상식의 조직위원장이기도 하다. ⓒ대종상 시상식 KBS 생중계 화면 캡쳐

    여기에 '팁(Tip)'이 될 만한 기사가 있다. 2013년 5월 1일(현지시간) 재미저널리스트 안치용 씨는 자신의 블로그미디어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일광그룹과 관련한 내용을 게재했다. 여기에 이규태 회장의 그룹 계열사 대표로 근무했던 김영한 前기무사령관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일광공영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김 前사령관이 기무사령관 취임 전부터 일광공영을 드나들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장군들이 드나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 때는 전라도 출신의 로비스트들, 노무현 정권 때는 이규태 씨와 동향인 부산출신 장군들과 방위사업청 고위공직자들, MB 정권 때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고위공직자들의 출입이 빈번했다”고 말했다.” 


    참고로 육사 29기인 김영한 장군은 2005년 2월 5일부터 2006년 12월 4일까지 제36대 기무사령관으로 재임했다.

    노무현 정권 2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이규태 회장과 관련된 ‘권력형 방산비리’를 추적한 바 있지만, 당시 ‘권력층’은 이를 중단시킨 바 있다. 

    대체 노무현 정권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