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 5부 능선 돌파한 '국제시장'..변호인도 넘어설까?


  •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독식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이 마침내 '천만 고지' 점령의 5부 능선을 넘어섰다.

    국제시장은 31일 오전 7시 50분 500만 관객을 돌파, '기술자들' '상의원' 같은 화제작들의 상영에도 파죽지세 흥행세를 과시하고 있다.

    '국제시장'은 개봉 2주차 주말(27일, 28일) 양일 동안 109만 2,023명을 동원, 89만 7,133명을 불러모은 개봉주 주말(21일, 22일)보다 약 22% 관객수가 늘어났고, 3주차 평일을 맞이한 29일(28만 2,232명)에는 지난 주 22일(20만 4,535명)보다 무려 38%나 상승한 스코어를 기록해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밝게 했다.

    충무로 흥행사를 장식한 역대 작품과 비교해도 '국제시장'의 식을줄 모르는 흥행세는 단연 돋보인다. '국제시장'의 500만 돌파 속도는 2012년 추석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광해, 왕이 된 남자(누적 1,232만 3,408명)보다 3일 빠르고, 지난해 겨울 극장가에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7번방의 선물(누적 1,281만 776명)보다도 2일 빠르다.

    영화계에선 '국제시장'이 이같은 추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누적 관객 '천만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역대 흥행 랭킹(국내 개봉 기준) 5,6위를 달리고 있는 작품보다 흥행 추이가 좋고, 시간이 흐를수록 흥행 위력이 배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전망은 점점 현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국제시장'이 아직 넘지 못한 산이 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삼았다는 영화 '변호인'이다. 부림사건을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변호인'은 누적 관객 1,137만 5,954명을 기록, 역대 흥행행킹 10위에 올라있는 영화다. 최종 스코어에선 앞서 '국제시장'과 비교된 '광해, 왕이 된 남자'나 '7번방의 선물'보다 뒤졌으나, 적어도 500만 관객을 돌파할 때까지는 역대 흥행랭킹 1위까지 점쳐졌던 영화다.

  •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 위키백과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 위키백과


    지난해 12월 18일 개봉한 '변호인'은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놀라운 기록을 선보였다. 24일과 25일 이틀간 108만명이 관람하는 진기록을 세운 '변호인'은 7일 만에 누적 관객 300만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역대 흥행랭킹 2위를 마크한 '아바타(누적관객 1,362만 4,328명)'가 개봉 5일째 166만명을 넘어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성탄절에만 64만 546명을 동원, 국내 개봉 영화 중 역대 크리스마스 흥행 최고기록을 보유한 '아바타(60만 2,123명)'의 성적을 뛰어넘은 '변호인'은 개봉 10일 만에 400만 고지를 점령하며 12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7번방의 선물', 개봉 16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명량'이 개봉하기 전까지 역대 국내 개봉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던 '아바타'도 개봉 11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변호인'은 '천만 관객'이 문제가 아니라, 역대 흥행랭킹 1위가 유력시 되는 영화였다.

    ■ '국제시장'과 '변호인'은 이란성 쌍둥이?

    다시 '국제시장'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국제시장'의 흥행추이를 논하다 갑자기 '변호인'의 사례를 거론한 것은 두 영화가 태생적으로 '이란성 쌍둥이'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제작사(국제시장 : JK필름 / 변호인 : 위더스필름)도 다르고 배급(국제시장 : CJ엔터테인먼트 / 변호인 :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월드)도 각기 다른 곳에서 진행했지만, 특정인의 라이프 스토리를 극화한 '휴먼영화'라는 점에서 장르적 유사성이 있고, 무엇보다 이념적으로 대한민국을 양분하고 있는 '보수우파 세력'과 '깡통진보 세력'을 대변한다는 면에서 두 영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무늬가 다르다고 해서 동전의 앞뒤가 다른 동전일 수 없듯이, '국제시장'과 '변호인'도 각기 다른 시각에서 현대사를 그렸지만 대한민국에서 만든 영화라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 개봉일도 하루 차이(변호인 : 2013년 12월 18일 개봉 / 국제시장 : 2014년 12월 17일 개봉) 밖에 나질 않는 두 영화는 '흥행 추이'마저 비슷한 성적을 보여,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기록만 보면 '변호인'이 근소한 차로 '국제시장'을 앞서고 있다. '변호인'은 개봉 12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국제시장'은 15일 만에 500만을 넘어섰다. '변호인'보다 3일 뒤쳐진 기록이다.

    물론 이같은 흥행 추이를 '타 영화'와 비교해보면,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개봉 17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영화 '광해, 왕이된 남자'는 개봉 18일 만에 500만 고지를 점령했다. '7번 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된 남자', '변호인' 모두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국제시장' 역시 한국 영화 흥행의 새로운 방점을 찍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 위키백과



    ■ '변호인', 초반까지 흥행광풍..뒷심 부족으로 10위 마크


    하지만 기록상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변호인'은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5일 만에 200만 고지를 점령했다. 개봉 10일 만에 누적 관객수 489만을 넘어선 이 영화는 12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영화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관객몰이를 한 영화가 됐다.

    반면 '국제시장'은 개봉 4일째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크리스마스인 25일 하루 54만 2,775명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한 '국제시장'은 개봉 10일 째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광해, 왕이 된 남자', '수상한 그녀'를 모두 제치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국제시장'은 개봉 12일 만에 400만, 개봉 15일 만에 500만을 돌파하는 등 역대 한국 영화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개봉 초부터 신기록 행진을 이어간 '변호인'에 비해선 1% 뒤쳐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500만 돌파까지 역대 최고 수준의 흥행 추이를 보였던 '변호인'이 최종 누적 관객 랭킹에선 역대 10위에 그쳤다는 점이다. 500만 고지를 점령할 때까지 '변호인'에게 뒤쳐졌던 '7번 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된 남자'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서 나란히 5,6위를 기록했다.

    초·중반까지 강력한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변호인'이 막판 뒷심 부족으로 하강 곡선을 그린 반면, '7번 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된 남자'는 꾸준한 관객몰이로 초반의 여세를 끝까지 유지하는 저력을 선보였다.

    따라서 '국제시장'이 '변호인'의 전철을 밟게 될지, 아니면 '7번 방의 선물'처럼 변동없는 흥행곡선을 그리며 멋지게 대미를 장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온라인상에서도 네티즌들은 '국제시장'과 '변호인'을 닮은꼴 영화로 간주, 두 영화의 흥행대결에 높은 관심을 쏟는 모습이다.

    ■ 정치색 배제한 '국제시장', '변호인'과 강제 대결?

    물론 '국제시장'은 '변호인'과는 달리 정치색을 철저히 배제한 영화다. 영화 속 어디에도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념보다는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나선 평범한 소시민의 삶에 포커스를 맞췄다. 거대한 담론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이슈를 풀어가는 미시적 연출이 돋보인 영화다. 사회 현안을 얘기할 때에도 최대한 밝은 면을 거론하려 애썼다. 누군가와 싸우거나 항변하는 것이 아닌, 그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시대'의 산증인인 덕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시장'은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에게는 '격한 공감'을, 기성 세대에 대한 반감이 여전한 철없는 짝퉁진보 일파에겐 참을 수 없는 '구토(?)'를 일으키는 영화가 되고 있다.

    사실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하는 영화와, 누군가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영화는 성격상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보수우파의 '산업화'를 전면에 내세운 '국제시장'과, 깡통진보의 '엉터리 민주화'를 대표하는 영화 '변호인'은 그저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영화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이분법적 사고로 '국제시장'을 바라보는 '허지웅류'의 발언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국제시장'과 '변호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결의 장으로 들어선 모습이다.

    두 영화가 숙명의 흥행대결을 펼치는 작금의 현실이 윤제균 감독이 가장 크게 걱정했던 부분이라는 점에선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태생적으로 '변호인'과 끊임없이 비교회자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로부터 '꼴통보수'라 손가락질 받고 매도 당했던 우리네 아버지들을 아낌없이 칭찬한 유일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 위키백과



    ■ '산업역군'으로 살아온 아버지들은 더러운 부역자?


    아래에 나열한 평론가들의 말을 살펴보면, 아버지 세대에 대한 찬사를 혐오스럽게 여기는 사고가, 한국 영화계 주류를 이끄는 이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편협되고 졸렬한 사고가 메인스트림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그동안 산업화를 일군 세대를 미화하는 것은 영화인들에겐 변절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게 어째서 잘못인가? 일부 영화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산업화 시대에 '산업역군'으로 살아온 아버지들은 더러운 부역자(附逆者)일 뿐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들의 문제가 다루어져야 마땅한 시점에,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잘 썼어.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 수준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

           - 허지웅

    국제시장 봤습니다. 서독 파트까지는 그럭저럭 봤는데 베트남, 이산가족찾기 파트는 불편하고 지겨웠습니다. 이 영화의 문제점은 신파가 아니에요.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거죠.

    생각할수록 빡치네. 영화 만드는 사람은 다른 나라 전쟁터에 달러 벌러 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영화가 밀고 있는 건 단 하나. 덕수 나이 또래의 노인 세대가 자식 세대를 위해 개고생하며 일했다는 것이죠. 그게 전부입니다. 덕수가 말려든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정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없는 거 같고, 있어도 의견을 내기 싫은 모양입니다.

           - 듀나

    나이 든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또 영화로 볼 것까지야….

           - 김태훈


    윤제균 감독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래서' 국제시장이란 영화는 잘 돼야 한다. '국제시장'은 모두의 무관심 속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세대에 대한 마지막 헌사(獻詞)다. 영화 속 '덕수'처럼 우리네 아버지 세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는 길목에 서 있다. 윤제균 감독은 "아버님 돌아가실 때 '참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 한 마디를 못 드린 게 평생의 한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만일 이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는 신세로 전락한다면, 그동안 아버지 세대에 칼을 겨눴던 대한민국 영화계는 돌이킬 수 없는 업보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국제시장'을 보러가는 것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부채를 조금이라도 덜어내고자하는 일종의 몸부림이다. 이 정도의 몸짓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배은망덕한 세대'라는 따가운 지적을 피할 길이 없어진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은혜를 배신하고 베풀어 준 덕을 잊는다는 뜻. 누구에게는 이 고리타분한 사자성어가 깊은 찔림으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 CJ엔터테인먼트 / 위더스 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