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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수령한테 잘 배웠소” 목사의 고백

"건국절 제정하시오. 목숨을 걸면 두려움이 없습니다"자살하려다 성령 받고 미국행...4~14세 교육에 올인

입력 2014-11-27 14:57 수정 2014-11-28 14:35

뉴욕서 <건국절 제정 촉구대회> 개최한 '프라미스 교회' 김남수 목사 인터뷰

“김일성 수령한테 잘 배웠소” 목사의 고백

"북한은 거대한 로봇 양성소...완전독재의 비결은 0~18세 세뇌교육"


90년대 초 그는 북한을 다섯 번이나 방문했다.
미국의 대형 기독교단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선교사로 선발되어
중국 북경에서 곡식을 싣고 평양으로 날아간 것이 처음이다.
다행히 북한측은 ‘보여 달라는 것’들을 거의 보여주었다.
북으로 청진에서 남으로 판문점까지 도시와 농촌을 찾아서,
양노원, 탁아소등 구호 대상자를 모두 돌아 볼 수 있었다.

“김일성 수령한테 한수 배웠소이다.”
 마지막 북한 방문을 마친 그는 서슴없이 말했다.
안내역 북측 해외동포위원회 간부는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잘랐다.

"건국절 제정, 대한민국 정통성과 국민정신 살려라"

그는 누구인가?
미국 뉴욕의 한인타운 플러싱(Flushing) 소재 ‘프라미스 교회’(Promise Church)
담임목사 김남수(金南壽,70), 그는 지난 11월11일 이민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대회를 개최하였다.
<미주 신뢰포럼-건국이념과 이승만대통령> 간판을 걸고
“고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200만 애국동포의 목소리 ‘건국절을 제정하라’”는
강연회 겸 결의대회였다.

한미간 전시작전권 전환을 사실상 무기 연기한 것을 계기로 ‘한미동맹 61주년’을 기념하여
프라미스 교회에서 열린 대회는 건국66년이 되도록 ‘생일도 모르는 대한민국’에
“국가정통성을 확립하고 해이된 국민정신을 살리는 길은 8월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 뉴욕 프라미스교회서 열린 '건국절 제정 촉구대회'에 참헉한 교포 대표들.


"북한은 로봇 양성소...목숨을 걸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는 왜 이런 대회를 열었나?
“목숨을 내 놓으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에겐 목숨을 바칠 조국이 있으니까요.”
그가 ‘조국 대한민국’을 재발견한 것은 10여년전 북한의 탁아소를 방문했을 때였다.

“북한은 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핏덩이를 빼앗아 갑니다.
탁아소에 수용하여 ‘0세부터 18세까지’ 아버지 김일성을 섬기는 로봇으로 키웁니다.
육아가 아니라 ‘로봇 양식장’입니다.”
여성해방이란 구호아래 엄마는 아이 낳는 기계일 뿐 출산즉시 노동에 내몰리는 수용소 체제.
‘내가 잘못 봤구나. 북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 껍질을 쓴 로봇들의 거대 동물원이다.
북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번번히 속는다. 한국 정부가 걱정이다’

그것이 바로 북한 왕조의 <완전통치> 비결이었다.
역사상 이런 집단이 어디에 있었던가.
김 목사는 소름끼치는 전율과 함께 ‘대한민국 큰일 났다’는 위기감에 떨었다. 
동시에 “조국을 구하자, 어떻게? 교육이다”라는 전략적 깨달음에 소스라쳤다.
‘김일성 수령한테 한수 배웠다’는 말은 이런 자각의 고백이었다.

"월간 조선을 10여년 읽으면서도 전향 안해?"

그는 자기 교회부터 새로운 교육에 발 벗고 나섰다.
한국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교포사회 교회에도 주사파나 친북활동에 기운 신도들이 있다.
특히 장로나 젊은 목회자들이 문제였다. 그는 1대1 대화교육을 시작했다. 
“조선일보 잡지 ‘월간 조선’을 10년이상 보면서도 바뀌지 않는 사람은 바꾸기 힘듭니다.”
김 목사는 북한의 현장과 통치전술을 증거로 끈질기게 설교 아닌 설교를 계속하였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서 그런 집단이 하나님의 적인 줄 모른다면
당신도 하나님의 적이 되려느냐.” 한 사람 두 사람씩 사상전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5년동안 ‘프라미스 교회’는 마침내 완벽한 기독교 정신으로 일체화에 성공하였다.

▲ 환영사를 하는 김남수 목사. "안심하라 조국아, 우리가 있다"


전세계 상대로 '4~14세' 교육...남미 실험에서 대성공

그는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중남미로 날아갔다.
온두라스, 에콰도르, 볼리비아등지에 학교를 짓고 어린이들을 모아 교육을 시작하였다.
6개월이 지나자 야생동물 같던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품위있는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교육의 힘! 조기 기독교 교육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름길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유명한 10~40세 선교전략가인 루이스 부쉬 목사와 함께 김남수 목사의 창안 4~14세 교육 프
로그램을 세워서 전세계 교육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일년의 절반은 해외에서 살기도 한다.
“신도 6천700만을 가진 교단 ‘하나님의 성회’의 힘으로 새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600만 마일을 비행기로 날았다고 한다. 신앙교육 투자는 무려 700만달러. 얼마 전엔 세계 교육지도자 1천5백명이 프라미스 교회에 모여 1주일간 4/14 윈도우 컨퍼런스도 가졌다.
“북한처럼 0세부터 강제할 순 없지만 우리 대한민국도 교육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목사가 안 가르치면 누가 가르칩니까?" 한국교회에 일침

그는 한국 교회들을 향하여 분노의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 교회 40%가 좌파에 물 들고, 더구나 교육계와 교과서가 전교조에 점령당했다는 현실을 알게 되자 벌떡 일어섰다. 정부가 세금으로 미래세대를 북한식 분노와 증오심 교육에 맡겨 국가전복의 혁명집단으로 키우다니 나라가 나라가 아니요, 정부가 아니라고 했다.
“목사가 안 가르치면 누가 가르칩니까. 목사가 말을 안하면 누가 한단 말입니까”한국 사회의 좌파공세를 몰라서 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목사가 설교에서 한마디 하면 일주일 내내 못살게 구는 세력의 횡포를 잘 안다고 했다. 
“그러기에 더더욱 교회가 나서야지요. 싸우지 말고 뭉쳐야지요. 이승만 대통령의 말대로 뭉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무엇을 위한 헌금이고 무엇을 위해 산단 말입니까?”

▲ 김남수 목사 부부.

자살하려다 성령 받아...한달동안 통곡 기도

그가 한국을 떠나 미국에 간 것은 1977년이다.
1944년 철원 출생, 대학 졸업후 군대를 나와 건축업을 시작했다가 몽땅 까먹고 말았다.
절망 속에 남은 것은 죽음 뿐, 자살하려고 길을 나섰다. 멀리 교회 십자가가 보였다.
불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어려서 교회에 가본 그는 발길이 교회 문으로 향하였다.
순복음 교회, 엎어져서 무작정 기도하는 중에 “예수는 나를 위해 죽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성령의 불덩이가 벼락 치듯 떨어진 순간, 통곡이 터졌다. 그 순간부터 한달간 통곡기도를 계속하였다. 죽음도 포기하고 사업도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3년간 굶주리면서 개척 선교의 길을 걸었다. 
월남전 막바지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이공이 무너질 때 마지막 비행기로 탈출하였다.
독일의 서베를린 철조망 속에서 목회활동도 하였다. 역사적 현장을 두루 경험한 셈이다.
미국에 건너 간 그는 고행 길을 거쳐 오늘의 대형 교회 ‘프라미스 처치’를 일으킨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내 목숨은 내 목숨이 아닙니다.”

▲ 뉴욕 프라미스 교회 내에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뉴욕지회' 현판식. 왼쪽부터 서울 출판사 기파랑 안병훈 대표. 강연자 수미 테리 박사, 인보길 뉴데일리 이승만 포럼 대표. 맨 오른쪽은 대회장 김영길 회장.

미주교포사회의 대부...신도들이 '이승만 기념사업'에 앞장

“김 목사님의 힘이 아니면 이분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지 않습니다”
프라미스 교회서 열린 ‘건국절 제정 대회’에 참석한 동포들은 스스로 놀라면서
“김 목사님은 교민사회의 대부”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 동부지역 주요단체 대표들이 평일임에도 바쁜 이민생활을 떨치고 500여명이나 모였다.
그들은 대회가 시작되기 전 김남수 목사가 개최한 <이승만 기념사업회 뉴욕 지부> 현판식부터
참석하여, 기도와 찬송으로 조국애의 열기를 보여주었다.
교회 2층 큰 사무실 입구에 대형 간판을 달고 나서
 ‘이승만의 건국정신’을 설파한 김 목사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 안병훈 엮은 [사진으로 보는 이승만 대통령] 화보집 표지. 기파랑 출판.


“교회 내에 이승만 사무실을 차리시다니 신도들의 거부감이 없지 않을 텐데요?”
기자의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신도들이 앞장서서 차린 것입니다.”
넓은 로비에선 서울에서 가져온 ‘건국대통령 이승만 화보집’과 ‘이승만 다시 보기’ 책을
배포하고 있었다. “싸인 좀 부탁합니다” 책을 든 신도들이 줄을 섰다.

막이 오르자 공동대회장을 맡은 김 목사가 무대에 올라 짧고도 긴 환영사를 하였다.
“안심하라, 조국아! 우리 해외동포가 있다!” 이 한마디에 환호의 박수가 장내를 덮었다.
특별히 “4.19세대 강연자를 모셨다”는 소개와 함께 <이승만과 4.19>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표되자 “우리가 너무 몰랐어. 역시 이승만대통령은 독재자만은 아니었다”는 탄성과 ‘아멘’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 인보길 엮음 [이승만 다시 보기] 표지. 기파랑 출판.


[이승만 다시 보기] 영어로 번역, 1만부 배포하기로 

“이승만의 실체를 가장 잘 설명해주신 분을 만났습니다.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기자의 손을 흔들며 김목사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한국 교회들이 건국절 살리기에 앞장 서야 합니다.
‘기독교 천국’을 세워준 이승만 박사의 은혜를 모르면 되겠습니까.
북한 전체주의에 퍼주기 하지 말고 자유의 적들을 물리쳐야지요.”
그리고 뜻밖의 제안으로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이승만 다시 보기,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1만부 찍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시오.”

[뉴욕에서 인보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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