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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냐? 중국이냐? 이승만에 묻는다면 대답은?

국제정치를 일찍이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인식한 이승만…그의 명맥 이을 韓정치인은

입력 2014-11-23 13:33 수정 2014-11-24 12:59

45회 이승만포럼 /2014. 11. 20() 정동제일교회 아펜셀러홀

 이승만 박사와 미국 - 오늘 한국의 외교에 대한 斷想

 이춘근 (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I. 국제정치를 일찍이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인식한 이승만

 아직 국제정치학이 독립 된 학문으로 출발(1919년을 그 효시로 삼는다)하기 훨씬 이전인 1904(단기 4237) 이승만 박사가 약관 29세에 옥중에서 저술한 책 독립정신은 그의 식견이 이미 국제정치학의 대가 수준에 올라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나라는 생사존망의 급급 엄엄
(急急 奄奄)함이 조석에 달린 바다를 헤쳐 가는 한 조각배와 같으며, 우리 국민 2,000만은 모두 그 항해에 일정부분의 직책이 있다고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정치의 무정부적 상태를 일찍이 인식하고 있으며,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그 나라의 힘과 능력이라는 사실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政治學국민 모두를 포함 하는 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國際政治學은 서구에서 겨우 2차 대전 발발 직전 소개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진수를 이미 포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민주정치론은 미국 정치제도, 독립과 역사에 대한 소상한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며
그의 국제정치학 역시 미국의 막강한 힘과 발전이라는데 기초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 세계 1위의 패권국이 되기 이전의 미국이 미래 세계 정치에서 차지하게 될 위상을 정확히
예측하고 한국이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과 거래를 해야 하고 미국의 발전을 모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당시 보통인의 사고를 훨씬 넘어서는 탁견이 아닐 수 없었다.

이승만은 미국은 천동설을 거스른, 지구가 모난 물체가 아니라 둥근 줄 알고 과감히 도전한 용감한 자들이 만든 나라, 지금 한국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는 나라, 보배로운 권리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해 스스로 희생한 나라, 세계 모든 인민이 다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믿고 있는 나라라고 인식한다. 미국은 그야말로 현재 존재하는 세계 제일의 나라인 것이다.

이승만은 중국을 요순이후 문명이 일찍 되어 교화와 정치가 선미한 정도에 이른 고로 교만한 생각이 생겨 천하에 나 혼자만 나라이요 그 외에 토지를 상접한 여러 나라는 다 東夷, 西戎, 南蠻, 北狄의 모든 오랑캐라 하여,... 교만 방자한 생각으로 세상에 나 하나만 있다하여 남과 상통하기를 엄금하였나니 천하에 이렇듯 고루하고 편벽됨이 다시 어디 있으리오.” “설령 테밖에도 강한 나라가 있을진대 마땅히 얼마나 크며 어떻게 강한 것을 비교해 보아 나도 더 강하게 하여야 쇄폐하기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독립정신, p. .137)라 하여 중국의 유교 주의적, 불평등적 세계관을 이미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그의 이해 또한 탁월하다.
서구 열강 들은 (러시아)의 진출을 막기 위해 1859露土전쟁(크리미아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러시아는 더 이상 유럽으로 진출을 포기하고 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된다. 1892년 시베리아 철도를 시작 14년을 작전하고 18,000리가량을 통해 나오니... 대한 북도와 청국 동편에 연접한 곳이라... 서양에서 막은 물이 동양에 미쳐오는 지라 그 위급 절박함이 실로 조석에 달렸도다.” (p.145)
분석은 오늘의 1급 국제정치학자들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그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냉혹한 논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폴란드가 강대국에 의해 분할 되는 운명을 당하게 된 나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한국의 운명도 능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의 주변에서 다투는 나라가 그런 부류의
강대국들인 러시아, 중국 같은 나라들이었기 때문이다.

강대국 세력균형론에 대한 그의 정확한 이해는 한청 양국은 아직 모르고 앉아 점점 벋어 들어오는 화근을 방비하지 않은 즉 그 형세가 심히 위태한 지라, 만일 러시아가 청국을 향하여 호령만
크게 하여도 청국이 곧 두려워하여 대한은 본래 우리 것이 아니니 아낄 것이 없다하여 제 것처럼 허락하고 저만 화를 면하려 할 것이오. 대한인즉 헤아리되 기왕이 남의 속국 되기는 일반이니
러시아에 속하는 것이 과히 원통타 할 것도 없거니와...”(146)라는 문장에서 정확히 표현 되고 있다.

나이 30이 되기 이전 이처럼 국제정치 사상가 수준의 경지에 오른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유학을 통해, 그리고 평생 지속된 외교적 수단에 의한 독립 노력을 통해 더욱 더 국제정세
분석에 능통한 인물로 성장, 결국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과 같은 허약한 신생국이 살아가는 방법은 강대국의 힘을 빌리는 방법이 최선이다.
자신의 힘으로 살겠다는 방책은 공허한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일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외교를 통한 방법, 가능하면 믿을 수 있는 강한 국가와 동맹을 맺는 방법이야 말로 이룰 수만 있다면 최고의 방책이 아닐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리한 국제정치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에 의거, 결국 대한민국을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엮어 놓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이루어 진 일은 아니었다.

 II. 좋은 한미 관계는 한국의 숙명

 한국에게 있어서 미국은, 한국 스스로의 힘으로 중국 혹은 일본과 맞장을 뜰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 질 때 까지는
, 숙명적 관계에 있는 나라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관계는 사랑과 협력과 평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한국은, 너무나 가까운 곳에, 너무나 막강한 나라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
가히 세계 최악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야 하는 나라다.
한반도의 이웃에는 세계 4대 강국 중 세 나라가 존재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한국과 사실상 붙어있는 나라다.
너무 가까이에 있는 이들 세 강대국들은 모두 한국에 대해 영토적 이해(territorial interest)
가지고 있다
.

중국, 러시아, 일본은 모두 한반도 전부 혹은 그 일부가 자기 영토이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나라들이다.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포함 시키는 작업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북한을 중국의 영토에
포함 시키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는 중국 국가전략의 일환이다.

중국과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제정치적인 문외한들이 대한민국에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문외한이기 보다는 이념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반미주의자들은 대체로 從北, 혹은 親北주의자들일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동시에 친중(親中)주의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그래서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일본과의 군사 협정을 반대하는 한국인들은 반대 이유로 중국을 자극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들이 자극 하지 않기를 원하는 중국은 북한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연구 계획을 완성해
놓은 지 이미 오래다.

러시아, 중국, 일본이라는 막강한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가 이들의 야욕에서부터 당당하게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논리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스스로 중국, 일본이 막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필자는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더 빠르고 편한 두 번째 방안이 있다. 즉 좋은 동맹을 가지는 것이다.
국제정치의 역사가 시작 될 무렵부터 있어온 오래 된 것이 바로 동맹이라는 국제정치적 장치다.
국가들이 자국의 영토와 주권을 지키는 여러 가지 방법 중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은 자국과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적당한 나라를 찾아서 그 나라와 동맹관계를 맺는 일이다.
특히 막강한 나라와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유용한 일이 된다.
약한 나라가 막강한 나라와 동맹을 맺는 경우 그 나라는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막강한 나라들의 침략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역사와 지정학적 조건을 분석 할 때 한국이 동맹으로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는 미국인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의 영토 그 자체를 탐하지 않지만 전략적 이해관계 때문에 한국과 동맹을 맺어 중국, 일본, 러시아를 견제 해 줄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이 한국의 영토를 탐하지 않는 다는 것은 지리적 거리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중국도 한국에 대해 미국과 마찬가지의 국제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정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미 지난 역사 이야기지만 만약 1900년쯤 조선이 미국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 이래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인 주변 강대국 중에서 한반도에 대해 영토적 야심이 없는 강대국은 미국이 유일하다. 오늘 한국의 전문가들과 정치가들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 역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대한민국이 안심하고 동맹을 맺을 수 있는 강대국이 미국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정학적 사실과 더불어 우리가 원하는 정치사회경제 제도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동맹국이 되기 적격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다. 모두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가치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에 관한 위의 분석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精髓地政學에 의거한 분석이며 이미 이승만 대통령이 30세 도 되기 전에 저술한 독립 정신에 그 대강이 敍述 되었던 것이다.

 III. 한국전쟁, 미국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한국이 건국 된 이후 미국군이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이 194911월 무렵이었고
한국군은, 당시 미국의 군사전문가가 평가했듯이, 남북전쟁(1861-1864) 당시 미국군대 수준으로 무장된, 정말 보잘 것 없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반면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가 남겨준 기계, 화학공장 등 풍부한 전쟁 수행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북한은 중국의 공산 혁명을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군사적 여력도 있었고 전쟁개시 이전 따발총(多發銃)이라는 국산 자동소총까지 만들었다.
1950
625일 새벽 38선 전역에서 북한 공산군은 침략 전쟁을 개시 했다.

6.25 전쟁이 발발 했을 때 미군이 한국에 파견 되지 않았다면 역사가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은 아무리 오래 버텼다 해도 1950년 가을 중 멸망당했을 것이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결정은 대한민국의 생과 사를 결정지은 사건이었다.

1950625일 일요일 아침 이승만 대통령은 창덕궁 비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이미 이승만 박사가 오래전 예감하고 있었듯이 이날 새벽 4시를 기해 북한 공산군은 38도 선 전역에서 남침 전쟁을 개시하고 있었다. 오전 1135분 무초 주한 미국 대사의 방문을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에게 시급히 필요한 소총과 탄약을 미국에게 요청하면서, 국가 총력전을 통해 전쟁을 지도하겠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이 제2의 사라예보가 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
한국의 통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FRUS, 1950. Vol. VII, pp.129-131. "The Ambassador in Korea (Muccio) to the Secretary of State (June 25, 1950).

무초 대사와 면담을 마친 이승만 대통령은 오후 1시 주미 한국 대사관의 한표욱 참사관과
장면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저놈들이 쳐들어 왔어. 우리 국군은 용맹스럽게 싸우고 있어... 어떻게 하든 미국의 원조가 시급히 도착하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지시했다.
(한표욱, 한미외교요람기(서울: 중앙일보사, 1984), pp. 76-77)

이승만 대통령은 625일 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미국, 일본에 전화를 걸어
전쟁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6일 새벽 3시 동경의 맥아더 장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연결시켜 주지 않으려는 보좌관에 호통을 친 이승만은 맥아더 장군에게
오늘 이사태가 벌어진 것은 누구의 책임이요. 당신 나라에서 좀 더 관심과 성의를 가졌으면 이런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요…….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라며 다그쳤다.
프란체스카 도너 리,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6.25와 이승만(서울: 기파랑, 2010), p. 23.)

국가가 위기에 처한 순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위대한 장군에게 한편으로 호소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 호통을 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위기의 순간에서, 허둥지둥 거리기보다는 냉정한 전략 감각을 가지고 미국과 주변국에 과정과
절차를 밟아 지원을 호소한 이승만 대통령이 1950625일 대한민국의 경무대를 지키고 있던 주인 이었다는 사실은 한국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생존, 승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자고 있던 미국군 원수에게 전화를 걸어 책임지라며 호통을 칠 수 있었던 이승만 박사는
반공주의자로서의 트루먼 대통령의 국제정치 인식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승만 박사는 먼저 대한민국 국군이 잘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후,
미국이 한국을 지원 해 달라고 호소하고 북한의 남침을 세계평화에 대한 파괴행위로 정의하고, 미국은 이번 기회를 맞이해서 효과적이고 시기에 맞는 원조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트루먼이 좋아하는 말을 골라 쓴 이승만의 호소문은
미국의 한국전 참전 결정을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목표는 광의의 국권 수호와 통일이었다.
즉 궁극적인 북진통일을 국가전략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매진했었다.
남정옥, 이승만 대통령과 6.25 전쟁(서울: 이담, 2010), p. 81.

물론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 통일 정책이 현실성이 있는 것이었느냐의 문제는 별개다.
그러나 그의 북진통일 정책은 이승만 대통령이 보다 거시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한국 전쟁에 임했음을 알려주는 것이 된다.

이승만 대통령의 목표는 단순히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승만의 목표는 이를 기회로 자유민주 통일을 이룩하는 것 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전쟁 목표가 적을 단순히 격퇴하는 것 이상이었음은 영국 수상 처칠의 언급에서도 나타난다. 처칠은 영국은 이승만을 위한 북한 정복 전쟁에 나서면 안 된다.”고 언급함으로써 유엔군의 활동 목적이 대한민국을 북한의 침략에서 구원하는 것으로 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전쟁을 끌어가려 했고, 이승만 박사의 전쟁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은 처칠로 하여금 미국을 좌지우지하여 자신의 정치 쇼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하게 했다. (Robert Oliver,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 (New York: Dodd Mead and Co., 1955); 황정일(), 이승만: 신화에 가린 인물(서울: 건국대 출판부), p. 342.)

처칠의 언급은 이승만을 비판한 말이지만 동시에 이승만 박사의 능력을 증명해주는 증언이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장군에게 작전 지휘권을 넘기다

한국 전쟁에 미군이 개입한 이후 양국군 간에는 긴밀한 합의 하에 작전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군은 후퇴 하는 중에도 신속한 부대 재편성을 시작했고 한국군 병력은 신속하게 증원되었다. 77일 개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군 사령부 설치에 대한 결의안 84호를 채택 했다. 이 결의안은 유엔 안보리를 대신, 한국에서의 침략자와 전쟁을 수행하는 권한을 미국 대통령에게 위임하고, 회원국들이 파견한 군대는 미국의 통일된 지휘체제 아래 둔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같이 진행 되자 이승만 정부는 국군의 작전 지휘권 이양 문제를 검토했다.
7
14일 한국군 육군 본부는 대구로 이전, 8군 사령부 인접지역에 개소하여 합동회의를 가졌다. 사실상 이때부터 한국군은 유엔군의 각 구성군과 통합 작전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이 같은 여건을 감안한 이승만 대통령은 이날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시하의 정책적 조치로서 우선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유엔군 사령부의 지휘를 받으라는 명령을 구두로 하달한 후,
(정일권, 정일권 회고록(서울: 고려서적, 광명출판사, 1996), p. 171.)
주한 미국 대사를 통해 맥아더 원수에게 정식으로 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현 작전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이양한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 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에게 위임한 것은
미국군을 한국전쟁에 불러들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 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군에게 한국 전쟁 수행의 책임을 맡겨 놓는 방법이 가장 안전한 전쟁 수행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전투의 현장에 있는 사령관은 그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통적인 군사 이론이 알려주는 지식이다.
특히 맥아더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 이외의 대안은 없다.(In war there is no substitute for victory.) Theodore Kinni , Donna Kinni, No Substitute for Victory: Lessons in Strategy and Leadership from General Douglas MacArthur (New York: FT Press, 2005).라는 금언을 남겼을 정도로 전쟁에서의 군사적인 승리에 집착하는 인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함으로서
미국에게 전면적인 한국 전쟁 수행 책임을 맡겼다
.

군 통수권자가 자신의 군사 지휘권을 외국군 지휘관에게 이양하는 경우 이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작전권 이양에 관한 서한을 우선 신성모 국방장관과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견해를 구했다. 정일권 참모총장은 몇 가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문제가 왜 없겠는가. 나도 그 점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일권 장군은 우리 국군의 자체 편제라든지 인사 문제는 절대로 보장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국군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 되는 작전을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불편도 각오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정일권, Op. Cit., p. 170.)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렇지만 이 중대한 때에 우리는 미국군을 비롯한 참전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요. 그러니 그러한 불편을 겪더라도 그들과 작전을 원만히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므로 이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 할 때는 언제라도 작전 지휘권을 되찾아 올 것입니다. 이점을 유의해서 앞으로 미군과 잘 협조하여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바랍니다.” (  Ibid., pp. 170-171.)

 한국 전쟁이 발발 한 직후 꼭 한 달 사이에 이승만 대통령의 전쟁 목표인 미군의 한국전 참전,
미군 주도의 전쟁 수행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이루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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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결정이 있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사령관이 한국군 전 병력을 공식적으로 지휘하게 된 것이 725일의 일이었으니 단 한 달 만에 한국군과 미군은 융합 상태가 되었다. 이제 한국군은 UN군의 일원임은 물론 미군 사령관의 명령을 받아 전쟁하는 군대로 탈바꿈했다. 전쟁 승리를 위한 결정적인 장치가 전쟁 발발 1개월 만에 완성 되었다고 말해도 되는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승만의 38선 돌파명령과 작전통제권

 한국 전쟁이 발발 한 지 1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에 의해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이 미군에게 귀속되는 조치가 취해졌지만 이 조치를 위반한 첫 번째 사례가 나타날 때 까지는 불과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작전권 이양을 결심한지 2개월 보름 만인 195010, 미국군 사령관의 명령과 관계없이 대한민국 국군에게 38선을 돌파해서 북진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710일 미국군과 한국군이 지속적으로 패퇴하며 지연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38도 선은 자연 해소 되었다.” (외무부, 한국외교 30(서울: 외무부, 1979), p. 105.)고 선언 했듯이 195010138선을 존재하는 선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한국군은
928일 서울을 탈환하고 일로 북진 공격을 개시한다.
한국군은 곧 바로 38선에 도달하게 되었고 38선에 도달함으로서 한국 전쟁은 다시 기로에 도달한다. 이 시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발휘한 기지는 단순이 전시 외교의 성격을 넘어 전쟁지도, 군사지도자로서 이승만 대통령의 역량을 말해주는 계기가 된다.

38선 돌파는 이미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 업무 목록에 올라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직도 패퇴 중이던 719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38선 돌파의 당위성을 이미 피력 해 두었던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서울 수복을 기념하기 위해 929일 오전 중앙청에서 거행된 서울 환도식이 끝난 후 맥아더 장군에게 지체 없이 북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930일 부산의 경무대는 장군들을 호출했다.
이대통령은 간밤에 38선에 도달한 부대가 어떤 부대인가를 묻고 이 부대를 표창하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승만 대통령은 그런데 정 총장, 정 총장은 어느 쪽인가, 미군 쪽인가라고 대통령이 질문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38선에 도달한 우리 국군에게 어찌해서 북진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소? 38선 때문인가 아니면 딴 이유 때문인가?” 이 질문에 정일권 장군은 “38선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승만 박사는 격노하여 “38선이 어찌 됐다는 것인가? 무슨 철조망이라도 쳐있다는 말인가?” 라며 장군들을 꾸중했다. 정일권 장군은 그때처럼 이대통령이 노여워하는 것을 본적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정일권, 회고록: 6.25 비록 전쟁과 휴전(서울: 동아일보사, 1985), p.155.)고 회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 장성들의 견해를 들었고 그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 했다. 대한민국 국군이 자기 땅에서 38도 선을 돌파하는 것을 미국
사령관이 어떻게 할 수 없으며,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하는 경우 그것은 전쟁의 기정사실이 될 것이며, 결국 미국군과 다른 나라의 유엔군도 38선을 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이승만 대통령은 확신했던 것이다.

 IV. 이승만 대통령 미국을 한국에 묶어두다

 이승만 외교의 최대 업적: ROK-US Alliance

 동맹(alliance)에 관해 한국 사람들이 잘 못 가지고 있는 인식중 하나는 동맹이란 친한 나라들이 맺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동맹은 친한 나라가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적을 가진 나라가 체결하는 것이다. 심지어 서로 사이가 나쁜 나라들 일지라도 공통의 적을 가진 나라는 동맹을 맺을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전혀 친한 나라가 아니었지만 나치 독일, 군국주의 일본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기에 전혀 체제가 다른 미국과 소련조차 동맹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독일과 싸우는 소련에게 대대적인 군사 및 전략 물자를 지원했고, 소련을 일본과의 전쟁에도 끌어들였다.

그러나 아무리 공통의 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약한 나라가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본과 영국이 동맹을 맺었을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본은 영일동맹의 체결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했다. 당시 일본의 수준으로 영국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꿈같은 일 이었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인 영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한 일본은 영국의 지원을 받아 1904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를 격파하는 기염을 토한다. 일본은 청나라, 러시아를 차례로 격파한 후 아시아의 맹주가 되었다.
영국과 동맹 체결에 성공한 후 일본의 논평가들은 영일동맹을 두꺼비(일본)가 달님(영국)과 결혼한 것이 비유했다’ (Choon Kun Lee, "Russo Japanese War," 본 논문은 필자가 미국 오하이오 대학 역사학과에서 제출했던 페이퍼.)

도무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일본인들을 영일동맹 체결을 자축하며 즐거워했다.
영국과 동맹을 체결한 일본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는 것은 따 논 당상이었다.

한미동맹은 영일동맹에 비교해도 동맹 체결 당사자의 실력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방적인 동맹이었다. 세계 최고의 막강한 강대국과 세계 최하위권의 허약하고 빈곤한 나라가 체결한 방위조약이었다. 물론 미국이 한국과의 방위조약을 기분 좋게 흔쾌히 맺어준 것은 결코 아니다.
한미동맹 체결은 이승만 박사가 혼신의 노력을 퍼부은 벼랑 끝 외교정책을 통해 이루어낸,
한국 외교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보아야 할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조약을 체결하는 날 감격에 겨워 우리 국민들에게 여러분들은 이 조약으로 인해 두고두고 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는 한미동맹의 덕을 보고 있다. 안보는 물론이거니와 다음으로 눈에 띄는 덕은 경제적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과 비슷한 안보 상황에 있는 국가들 중에서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다. 2014년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2.6% 정도로서 세계 평균수준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지만, 이 같은 놀라운 일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한미동맹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의 방위를 위해 지출하는 돈은 한국의 국방비와 거의 맞먹는 돈이다. 한미동맹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국민들에게 수백억 달러의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V. 이승만 박사의 국제정치관으로 보는 오늘의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이승만 박사보다 국제정치의 작동 논리를 정통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 이승만 대통령이 살아계셔서 대한민국의 오늘 상황에 대해 평가하고 훈수를 둔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정책, 대미정책의 경험을 통해 상상화를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이 당면한 국제정치 구조의 문제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아시아 안보환경이 변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겁먹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에 경도된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웃 나라들에 대해 막말을 하며, 도무지 외교적이지 않은 폭언으로 약한 나라를 겁주고 있다.


바로 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은 이웃을 겁주는 깡패(bully)같은 행동으로부터 미국의 동맹국들을 보호할 것임을 단호한 어조로 언급했다. 이웃을 겁주는 나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bully 역할을 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사실을 모를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최근 대외정책의 기조는 친중, 반일, 그리고 한미동맹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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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전 이후 사상 처음으로 현 정부는 ---라는 사실상의 관용어를 놀랍게도 ---로 바꿔 부르는 정부가 되었다. 순서가 뭐 중요한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일본은 격렬한 항의를 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만약 앞으로 우리나라가 이를 다시 ---로 바꾸어 부를 경우가 온다면 그때 중국으로부터 격렬한 반대, 혹은 그 이상의 난관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승만 박사가 철저히 신봉했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 의하면
국제정치에 미운나라, 좋은 나라는 없다. 다만 무서운 나라와 덜 무서운 나라가 있을 뿐이다
.

  
투키디데스는 국가들은 두려움과 명예(Fear and Honor)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 말했다.
국가안보란 무서운 나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모든 행위를 통칭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나라, 두려운 나라는 북한을 제외 한다면 어떤 나라일까?

일본이 가장 두려운 나라인가? 그래서 중국과 힘을 합쳐 그 무서움에 대항해야 하는 것인가?
최근 우리나라 신문 중에는 놀랍게도 연중제일(聯中制日) 즉 중국과 함께 일본을 제압해야 한다는 기가 막힌 용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어느 나라가 국가안보의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인가를 알려주는 확실한 기준을 제시한다. 우선 인접 국가들 중에서 제일 강한 나라가 안보정책의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이어야 한다. 역사상 발발했던 전쟁들의 90%가 국경을 공유한 나라들 사이에서 발발했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영토적으로 붙어있는 나라이며 역사상 한국이 치른 전쟁의 90%를 훨씬 넘는 수의 전쟁이 중국 혹은 중국에 있던 나라와의 싸움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중국이 이제는 한국과 다툴 이유가 없어졌는가? 바로 얼마 전 까지도 오랑캐, 침략자라고 부르던 중국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중국의 국방비 증가율은 양차 대전 이전의 독일 국방비 증강을 방불케 하는 나라다.

일본은 물론 한국을 침략해서 정복했던 나라다. 그런 일본은 지금은 민주국가가 되었다.
일본은 과거와 같은 군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최근 10년간 국방비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든
나라다. 중국의 국방비 증강에 대해 온 세계가 신경을 쓰는데 한국은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가? 중국 국방비 증강과 도무지 비교할 수도 없는 일본 국방비의 미세한 증강을 군국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더욱 곤란한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다.
한국의 친중은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망가트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

중국과 미국이 다투는 이유는 두 나라가 서로 못된 나라이기 때문은 아니다.
두 나라의 힘이 상호 막강하다 보니 당연히 충돌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힘의 증강은 기왕의 질서에 도전했고 기왕의 질서를 유지하던 미국과 충돌하게 되었다.
중국의 힘이 증강하는 한 미국과의 충돌은 운명적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자들마저도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우리는 중립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우선 우리는 법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나라다.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미국과 중국이 다툴 때 중립을 견지하려면
우선 미국과의 동맹을 단절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과 동맹국인데 어떻게 우리가 미중 갈등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한국과 중국이 다툴 경우, 미국은 한국을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동맹국 아닌가?
미국은 동맹을 맺고 있는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런 미국에 대해 우리가 미중 갈등에서 중립을 지킨다던가 미·중 등거리 외교 운운 말하면 안 된다.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며 중국은 아직도 법적으로 우리의 적국인 북한의 동맹국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두 나라와 등거리 외교를 하겠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우리가 한미동맹을 유지한 채 미중 갈등에서 중립을 지킨다면
중국이 우리 행동을 믿지 않을 것이며 미국은 한국의 행동을 괘씸하게 볼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본질적인 친구는 아니다. 숙적이며 앙숙이었다.

다만 중국의 부상에 함께 대처하기 위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미일 두 나라는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이 그런 일본과 끊임없이 적대 관계에 놓일 경우, 결국 한미동맹에
심각한 훼손이 초래 될 것이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 중 한나라를 동맹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경우
미국은 어느 나라를 택할까?
미국이 한국보다 일본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날, 즉 한미관계가 훼손당하는 날
중국은 한국을 나라 취급이나 해 줄는지 모르겠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작금의 친중반일 정책은 문제가 많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미관계에 아무런 문제없으니 걱정 말라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 사회 일각에서 한국은 결국 중국 편이 될 것이니 한국은 빼고 일본, 인도, 호주, 베트남 등과 더불어 중국을 견제하면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다.
한국을 제외한 중국 주변국 거의 모두가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마저도 미국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중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최근 베트남은 미국과 거의 동맹수준으로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석유시추선을 베트남 앞바다(중국은 물론 자국 앞 바다라고 말한다)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무기 수출금지조치를 해제했고 베트남 해군과 필리핀 해군은 함께 훈련도 벌이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었다면 지금처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없다면 우리에게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하나?
이승만 박사에게 묻는다면 그는 당연히 미국이라고 대답할 것이 확실하다.
그것이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이 알려주는 정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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