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당헌·당규대로 치르는 전당대회의 종착역은 정계개편?
  • ▲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12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첫 회의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12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첫 회의를 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렇다고 실제로 개헌이 될 수는 없죠."

    지난달 6일, CBS노컷뉴스가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 수가 개헌안 의결 정족수를 훌쩍 넘는 231명에 달한다는 보도를 내놓아 정치권이 후끈 달아올랐을 때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논리는 명료했다. 현행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에만 의견이 일치할 뿐 각자 그리고 있는 새로운 헌법의 모양새가 달라 막상 논의가 시작되면 진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컷뉴스의 조사에서도 개헌에 찬성하는 231명의 의원이 그리는 새 헌법의 모양새는 4년 중임제(105명)·이원집정부제(94명)·내각제(33명) 등으로 제각각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일고 있는 전당대회 규칙 논란을 바라보면 개헌론을 다시 보는 듯한 데자뷰가 느껴진다.

    당내 모든 계파에서 현행 전대 룰에 이런 저런 불만이 있지만, 각자 불만의 지점과 고쳤으면 하는 방향이 다르다.

    현재 논의되는 핵심 쟁점은 대표와 최고위원의 통합·분리 경선 여부와 대권~당권 분리론, 모바일 투표 등이다. 전당대회 경선 결과를 뒤바꾸는 것도 모자라 특정인의 출마 자체를 봉쇄할 수 있는 내용들이 전당대회가 치러지기까지 불과 석 달도 안 남은 이 시점에서 '논의 시작 단계'다.

    입 가진 사람이라면 중구난방식으로 전당대회에 대해 한 마디씩 던지고 있지만, 새정치연합 관계자에 따르면 내년 2월 8일 전당대회는 결국 현행 당헌·당규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금의 설왕설래는 '소문난 잔치'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이유 또한 개헌론이 용두사미로 끝날 것임을 지적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각 계파가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규칙을 논하다보니 서로 생각하고 있는 그림이 달라서, 실제로 당헌·당규를 바꿀만한 동력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 ▲ 지난달 10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당무위원회 회의에서 문재인 비상대책위원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사진 왼쪽부터).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달 10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당무위원회 회의에서 문재인 비상대책위원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사진 왼쪽부터).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친노 진영은 현행 당헌·당규를 고쳐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기를 원한다. 2012년 한명숙 체제, 그리고 이해찬 체제를 출범시켰을 때 채택했던 제도다.

    문재인 비상대책위원을 필두로 하는 친노(親盧) 측에서 재도입을 강하게 주장했고, 친노에 속하는 문희상 비대위원장까지 "그것만큼 공정한 게 어디 있느냐"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정세균·박지원 비대위원 등 비노(非盧) 진영에서 강하게 반발해 도입이 어려워졌다.

    반대로 비노 진영은 당헌·당규를 고쳐 전당대회를 원 트랙(One Track·대표와 최고위원을 한 번에 통합해 선출) 방식으로 하기를 원한다. 역시 과거에 민주당에 택했던 방식이다.

    박지원 위원은 "분리 선거를 하면 최고위원들이 마치 2부 리그 같고, 뒤에서 파벌 보스들이 조정을 한다"며 "정치라는 것은 왕도가 없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필요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좋다"고 운을 띄웠다.

    하지만 이번엔 투 트랙(분리 경선)을 선호하는 친노 진영이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위원의 대변인 격인 윤호중 전대준비위원은 "다시 (분리 경선으로) 돌아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들어보겠다"면서도 "단지 특정 후보의 유불리의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라면 고려의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모바일 투표 재도입을 시사했을 때는 현행 당헌·당규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았던 문희상 위원장도 입을 씻고 "현행 당헌·당규는 한 점 한 획도 고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모바일 투표 반대에 박지원 위원과 보조를 맞췄던 정세균 위원마저 "매번 전대할 때마다 룰을 바꾸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원 트랙'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정세균 위원의 이러한 입장은 정세균계에 속하는 3선의 최재성 의원 등이 최고위원 출마를 강력히 원하는 계파내 속사정 등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렇게 되자 고립된 박지원 위원은 "일부에서는 자꾸 규정을 바꾸는 것보다는 현재의 규정을 그대로 고수하는 게 좋다는 얘기도 있다"며 "나는 어떠한 방법이든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결정하면 좋다는 생각"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 ▲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노패권주의가 청산되지 않으면 야권발 정계 개편의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조경태 전 최고위원. 조경태 전 최고위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노패권주의가 청산되지 않으면 야권발 정계 개편의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조경태 전 최고위원. 조경태 전 최고위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통합~분리 경선 논란에 이어 불판에 올려진 당권~대권 분리론도 문재인·정세균·박지원 위원의 처지와 셈법이 모두 달라 뚜렷한 결론을 내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현행 당헌·당규대로 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새정치연합 관계자의 전망이다.

    다만 전당대회가 석 달도 안 남은 이 시점에서 전대 규칙에 대한 논의가 쏟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친노가 차기 당권을 잡으면 당이 깨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의 당헌·당규, 즉 현행 전대 규칙은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이며 결속력이 탄탄한 친노를 이끄는 문재인 위원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전대 규칙 논란은 '분당(分黨)'을 배제한 전제에서, 친노를 견제하기 위한 견제구다.

    하지만 전대 규칙 논란이 결론을 맺지 못하고 현행 당헌·당규대로 전대를 치러 친노의 당 장악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되면, 그 때는 분당과 신당 창당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당내에서 던지는 견제구의 수준을 넘어서,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게 되는 셈이다.

    새정치연합의 전대 룰 논란에서 어른거리는 야권발 정계 개편의 그림자, 그 실현 여부에 정치권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