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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가 뭐길래, KBS 이인호 사퇴하라고?

서상기, "대꾸할 가치조차 없어" ... 조해진, "학문적 평가를 곡해하다니"

입력 2014-10-28 14:29 수정 2014-10-30 13:19

▲ 22일 KBS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했으나 야당 의원들의 사퇴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인호 KBS 이사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2014년도 국정감사가 종료됐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의원들이 이인호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에 대한 무분별한 정치공세를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위원들은 28일 "이인호 KBS 이사장은 즉각 자진사퇴하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배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이인호 이사장은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김구 선생을 거론하는 게 옳지 않다거나, 헌법 전문의 임시정부 법통을 인정하지 않고 정신사적으로만 인정한다고 주장했다"며 이를 "해괴한 논리"라고 공박했다.

나아가 이들은 "이인호 이사장이 우리 헌법까지도 부정하는 국기문란적 발언과 행태"를 했다면서 즉각적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당 차원의 대응을 자제했다.
새누리당 소속 미방위원들도 별다른 공식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 소속 미방위원인 서상기 의원(대구 북구을)은 "뻔한 정치공세이기 때문에 대꾸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22일 KBS신관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했으며, 당시 여야 의원들과 충분한 질의와 답변을 진행한 바 있다.

서상기 의원은 "그날 야당 의원들이 하고 싶은 질문을 다 했고, 듣고 싶은 답변도 다 들었다"며 "속기록이나 동영상이 공개되면 알 일이지만, 사퇴할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국감에서 모든 게 해명됐기 때문에 (야당의 주장은) 국민들의 공감을 전혀 얻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 자리에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더니..."라고 야당의 정치공세적 행태에 혀를 찼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대구 북구갑)도 "역사학자인 이인호 이사장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 것인데 이를 문제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KBS 이사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야당의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권은희 의원은 "국감에서 KBS 이사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 결격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그 분은 원래 역사학자이자 교수로서 자신의 역사관이 있기 마련인데 (업무 능력과 무관한) 역사학자로서의 소신을 문제삼기 시작하면, 이런 역사관을 빼고 저런 역사관을 빼면 누구를 임용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나아가 미방위에서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창녕)은 야당의 성명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해진 의원은 "국정감사 때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정통성의 시발점이 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인호 이사장의 입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며 "대한민국의 건국을 발판으로 번영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이인호 이사장의 역사관에 절대 다수가 공감하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조해진 의원은 야당이 성명서에서 문제 삼은 '대한민국 공로자로서의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의 법통(法統)' 발언에 대해 설명했다.

▲ 국회 미방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구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이인호 이사장이 일제에 저항하고 독립운동을 한 김구 선생의 역할과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1945년까지 김구 선생의 혁혁한 공로를 국정감사에서 모두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인호 이사장은 (1945년 이후) 1948년까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김구 선생의 공로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라며 "야당은 이를 마치 일제 36년 치하에서 김구 선생의 헌신과 노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는 듯이 비난하는데 이는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 상태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김구 선생의 공로는 인정하고,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까지 3년간 대한민국의 건국과 관련해서는 김구 선생의 공로가 없었다는 것을 엄밀히 학문적으로 구분지어 평가한 것인데, 이를 뭉뚱그려 비난하는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라는 지적이다.

임시정부의 법통에 대해서도 "이인호 이사장은 (국감장에서) 임시정부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했다"고 전제하며 "다만 '법통(法統)'이라는 두 글자를 해석함에 있어 차이가 있었던 것인데 야당은 이를 곡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임시정부의 수립이 곧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아니며, 1948년 정식의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임시정부는 이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기여를 했으며, 일종의 주춧돌과 밑받침이 됐다는 학문적 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이를 야당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곡해하는 것은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는 것이 조해진 의원의 설명이다.

조해진 의원은 "학문적 평가와 정치적 해석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야당 의원들은 그날 국감장에서도 (이인호 이사장이) 이 점을 설명하려고 하면 말을 끊고 설명을 못하게 하면서, 뒤늦게 이렇게 (사퇴 요구하고) 나오는데 이러면 그 누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아울러 조해진 의원은 "야당 또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 생각하며, 그 건국의 주역들을 폄하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만일 그렇다면 큰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관련 기사 1]

[류근일 칼럼] 이인호 이사장은 역사적 사실을 말했을 뿐

이인호의 역사적 발언! 김구를 뭐라 해야 되나?

있었던 사실 있었던 그대로 말했다고 마구 인신공격하다니...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이인호 이사장은 역사적 사실을 말했을 뿐
 

▲ 류근일 본사 고문ⓒ뉴데일리

이인호 KBS 이사장이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김구 선생의 민족적 충정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그분의 입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을 두고 야당의원들과 일부 미디어들이 “감히 백범 김구를?" 하고 야단들인 모양이다.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역사상 인물에 대한 평가에는 성역(聖域)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학자들이 자료와 양심에 입각해서 특정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 긍정적이든 비판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밝히는 권리는 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에 관해서도 이점은 예외일 수 없고 예외여서도 안 된다.
 
또 하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사실(fact)을 사실대로 지적하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백범은 위대한 민족주의 리더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이었다.
이건 사실이고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는 권리가 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북한에서는 [김 씨 왕조] 이외의 인물을 [민족의 리더 급]으로 숭모하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그것을 100% 보장하고 있다.
이인호 이사장은 그 헌법상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 22일 KBS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했으나 야당 의원들의 사퇴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인호 KBS 이사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똑같은 차원에서 김구 선생이 [단독정권(대한민국)수립 반대 또는 수립 유보요청]을 했다는 사실도, 있었던 그대로 진술하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이인호 이사장이 그렇게 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니, 그럼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해야 하나?

김구 선생은 이승만 박사의 대한민국 건국 노선에 [찬성했으나 반대] 했다고?
 
김구 선생은 해방 직후에는 남노당 등 극좌계열에 의해 [반동]의 수괴 중 하나로 몰렸다.
필자 자신도 초등학교 시절 이승만, 김구를 한 데 묶어서 악당으로 그린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청소년층을 상대로 한 좌익 프로파간다 물(物)이었던 듯싶다.
 
그러던 김구 선생이 어느 날 아침, 경교장 뒷문으로 나와 북행(北行) 길에 올랐다.
정문 앞에선 우익청년들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팔선을 베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분단을 막겠노라”라는 비장한 결의와 함께.

 

▲ 1948년 4월 총선직전에 김구의 한국독립당등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에 간 백범 김구가 김일성과 회담하려 뒤를 따르고 있다.(자료사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때부터 좌익 세력이 “우리가 김구 선생을 언제 반동으로 몰았더냐?”며 시치미를 딱 떼더니, 그분을 대한민국 건국세력, 대한민국 건국노선, 특히 이승만 박사를 배척하기 위한 정당화의 거목(巨木)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참 교활하기 짝이 없는, 얄팍하고 속보이는 표변이었다.
 
우익 민족주의를 [부루주아 민족주의]라고 매도하다가도, 필요하다 싶으면 한 순간에 태도를 바꾸어 그것을
[민족 부루주아]라며 한껏 치켜세우는 게 바로 해방공간에 등장했던 극좌 세력의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전략전술이었다.
이런 표변은 조지 오웰<1984>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인호 이사장은 1948년의 건국 전후에 있었던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지적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공산당이 그 분을 그렇게 전술적 단위로만 소모하려 한 사실을 지탄한 것뿐이다.
당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럼 그렇게 말 하지 않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공산당이 김구 선생을 전술적으로만 대한 것은 오늘에 와서 볼 때 참 잘되고 좋은 일이었다”고 해야 하는가?
 


[관련기사 2]

[박성현 칼럼] 이인호 KBS 이사장을 닥달하는 것들에게

김구, 대한민국 건국 위해 뭐했나?

"대한민국 관점에선 김구는 말년에 모든 업적을 스스로 깍아 먹었다"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저술가



너희가 역사관을 검증한다고?


▲ 원로 사학자인 이인호 KBS이사장이 국감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뉴데일리

새민련 의원들이 원로 석학 이인호 KBS 이사장을 국감장에서 닥달했다.
그들에 의하면 이인호 이사장은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될 편협하고 위험한 역사관을 가진 사람”

이란다.

그으래?

이인호 이사장의 역사관이 과연 무엇인가?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1948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체제로 건국되었으며, 이것이 대한민국의 번영을 결정지은 주춧돌이다”

김구에 대해 묻자, 이인호 이사장은 이런 취지로 답했다.

“그분은 훌륭한 독립운동가이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에 반대했던 것은 잘못이다.”


이와 같은 역사관을 두고 ‘편협하고 위험하다’고 하는 새민련 공격수들이야말로 구역질나는  중상모략을 범하고 있다.


▲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면서 김일성과 합작하겠다고 평양에 간 김구. 김일성 뒤를 따라 걷고 있는 김구의 모습이 보인다. 5개 지방신문 공동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파견된 강원일보 소속 송광호 기자가 당시 북한의 실질적 통치자인 슈티코프 아래서 북한 정치를 쥐락펴락하던 레베데프(당시 소련군 소장) 가족으로부터 입수한 사진이다.ⓒ뉴데일리

당신들에게 묻는다.

첫째, 김구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것은 사실 아닌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사람을 “대한민국의 건국 공로자”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 직전에 북한으로 가서 김일성에게

“제가 그 전에 공산주의자들을 암살했던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빌며, 대한민국 건국에 극렬 반대했었다. 


당시 김일성의 나이 서른 여섯. 
흰색 수트에 흰색 모자를 쓰고 백구두를 신고 소련이 제공한 자동차를 타고 다닌,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전형적 정치 투기꾼 청년이었다.

당시 북한의 실질적 국부는 김일성이 아니었다.


▲ 해방후 소련군과 함께 평양에 나타난 김일성. 서울에서 평양으로 도망온 박헌영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 김일성 옆에 슈티코프 모습도 보인다. 사진을 볼 때 김일성 오른쪽이 윤레나-박헌영 부부. ⓒ뉴데일리 사진DB

 

▲ 47년 3월5일 북한 주둔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대장 이임 환송연에서 김일성이 레베데프 부인과 건배하며 웃고 있다. 김일성 왼쪽은 부인 김정숙. 사진 맨 오른쪽은 북한 정치 담당 레베데프 소장. 이 사진은 5개 지방신문 공동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파견된 강원일보 소속 송광호 기자가 당시 북한의 실질적 통치자인 슈티코프 아래서 북한 정치를 쥐락펴락하던 레베데프(당시 소련군 소장) 가족으로부터 입수한 것ⓒ 뉴데일리 사진DB

1930년대 말 스탈린 대숙청 때 선배 당원을 잡아죽인 개백정에...
소련 공산당 최연소 레닌시(지금의 뻬떼르부르그시) 시당위원(권력 서열 100위 급)에...
제2차 세계대전 중 9백일에 걸쳐 포위고립되어 시민의 1/3이 굶어죽고 얼어죽었던 레닌그라드를 지배했던 염라대왕에...
“한반도 적화와 중국 공산화”
라는 스탈린 특명을  받고 하루아침에 극동군 사령관으로 변신한 정치거물에...
1945년 8월부터 신속하게 북한 지역에 사회주의 체제를 이식한 전체주의 시스템 엔지니어에... 
“친일파가 문제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친일파를 때려잡는다”라는 [친일파 vs. 혁명가]라는 거짓 프레임을 만들어낸 천재적 선전선동가….
테렌티 슈티코프(Terenti Fomitch Stykov)라는 거물 악마가 북한의 국부였다.


▲ 47년 3월5일 북한 주둔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대장 이임 환송연에서 김일성이 레베데프 부인과 건배하며 웃고 있다. 김일성 왼쪽은 부인 김정숙. 사진 맨 오른쪽은 북한 정치 담당 레베데프 소장. 이 사진은 5개 지방신문 공동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파견된 강원일보 소속 송광호 기자가 당시 북한의 실질적 통치자인 슈티코프 아래서 북한 정치를 쥐락펴락하던 레베데프(당시 소련군 소장) 가족으로부터 입수한 것ⓒ 뉴데일리 사진DB

김일성슈티코프가 내세운 아바타에 지나지 않았다.
소련이 직할한 총알받이 부대 ‘동북항일연군’의 쓸모가 1937년 중일전쟁으로 끝나자, 동북항일연군의 고사(枯死)에 협조했던 배신자였으며, 그 이후 소련군 88국제여단에 배속된 소련군인이었던 김일성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인물이 바로 슈티코프이다.  


▲ 김일성이 당시 세살인 아들 김유라(김정일)를 안고 찍은 사진. 옆은 아내 김정숙.ⓒ연합뉴스

소련군인 김일성의 아들이 [유라]이다.
[유라]는 나중에 조선땅에 들어와서 [김정일]로 개명된다.
[유라](Yura)는 애칭이고 정식 이름은 [유리](Yurie)이다.
뜻은 대충 [변강쇠+술고래+맥가이버] 쯤 된다.
김정일이 맥가이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변강쇠와 술고래로 살은 것은 맞으니까, 대충 원래 이름 대로 살다 간 사람이란 점에서, 제대로 지은 이름이다.

필자 주:
동북항일연군의 존재이유는,  일본에 대해 “우리 소련을 향해 침공하는 대신에 중국을 침공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압력 수단이었다.
1937년 여름 일본이 중국을 침공하자, 동북항일연군은 소련에 의해 체계적인 말려죽임을 당했다.
또한 그해 가을 연해주 동포 20만명이 뿌리째 뽑혀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던져졌다.


1948년 72살이었던 김구는 노회한 스탈린의 충복 슈티코프도 아닌 새파란 배불뚝이 김일성의 손을 잡고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통일을 이루시거든 그저 황해도에 과수원이나 하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읍소했다.
대한민국이 탄생하던 그 순간에, 정신이 혼미한 노인으로서 태아 대한민국의 유산을 위해 온 몸의 기력을 쥐어짜냈던 인물이 바로 김구이다.
그는 필생 독립운동의 공을 이때 모두 까먹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년의 김구는 가련한 반역자이다.

따라서 “그분은 훌륭한 독립운동가였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공로는 없다”는 취지의 이인호 이사장의 발언은  사실 김구를 지나치게 좋게 표현해 준 셈이다.
진실을 냉정하게 말하면 이렇다.

“김구는 말년에 추악한 정치투기꾼 노인으로 타락했다.
그는 한반도가 적화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적화된 한반도]에서 한 자리 해 보겠다고 추잡한 짓을 저질렀다.
필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위대할 뻔 했던 원로가, 말년에 이 같은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 것이야말로, 김구 본인의 비극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이다.”

 

둘째, 아시아 전체에 번진 스탈린의 공산화 물결을 막아낸 것은 바로 신생 대한민국 아니었던가?

한가지만 묻자.
아시아 대륙(일본 제외!) 전체에서 공산화되지 않은 나라가 있었나?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빼고는 몽땅 공산화되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자 마자 바로 공산 전체주의를 막아내는 최일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그 자체로서 인류적 사건이며, 인류적 프로젝트이다.
새민련의 주축 세력인 [4전패](486 전대협 패거리)들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공산주의 타령 하시남요?”

안철수조차 이런 시건방진 소리를 고스란히 복사해서,

“지금 세상에 빨갱이가 어딨나요?”

라고 말한다.

싸가지 없는 소리다.
“대한민국은 건국 때부터 공산 전체주의를 막아낸 인류사적 사건이다”라는 말과, “너, 공산당이지?”란 말은 전혀 다르다.

말해주마.

너희 [4전패] 따위는 감히 진짜 새빨간 공산당이 될 자격조차 없다.
너희는 스무살 무렵부터 “김일성에게 충성을 바쳐 대한민국을 거덜내서 한자리 해 처먹자!”라는 천박한 정치투기 기술을 배운 개생양아치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너희를 “공산당” 혹은 “빨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희는 존재 자체가 [맹독성 산업폐기물]이요, 인격 파탄자이며, 무도덕/부도덕의 극치일 뿐이다.


▲ 486 전대협 패거리의 역사인식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에게 가장 두드러진다.ⓒ뉴데일리 사진DB

왜?

  • 너희는 스무살무렵부터  金朝전체주의 부역자였기 때문이다.
    인류 최악, 인류 최후의 전체주의에 대하여 도덕적 판단을 포기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를 주인으로 떠받든 종자들은, 그 자체가 무도덕/부도덕의 극치 아닌가?
    캄보디아 폴포트의 대량학살보다 더 참혹한 상황에 대해 “그래도 수령님이 좋아! 수령님과 손잡고 대한민국 회쳐서 먹으면 돼!”라고, 스무살 무렵부터 생각한 인종들이 바로 너희 [4전패] 아닌가?
  • 이 같은 무도덕/부도덕 상태에선 인격(personality)이 온전히 유지, 성장할 길 없다. 그래서 너희는 인격파탄자들이다.
  • 너희 같은 이상야릇한 종자들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바로 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고도 산업화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너희는 초고속 산업화가 만들어낸 [맹독성 산업폐기물]이다.

그러니 너희는 안심해도 된다.
너희는 절대로, 절대로 진성 빨갱이 공산당이 아니다.
너희는 이미 스무살에 추잡한 정치투기꾼의 길을 선택한, 金朝전체주의 부역자이며, 인격파탄자이며, 맹독성 산업폐기물일 뿐이다.

“대한민국 건국기의 선배세대는 피와 땀으로 스탈린모택동의 공산전체주의를 막아냄으로써, 대한민국 자체를 인류사적 사건으로 만들어냈다”

라는 우리 자자세 시민 (자유통일, 자유민주주의, 세계시장 지지자들)의 역사해석은, 결코 너희 따위를 [진성 빨갱이 공산당]이라고 낙인찍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김일성슈티코프의 꼬붕이었고, 박헌영슈티코프의 또 다른 졸개였다고 본다.
우리는, 선배세대가 김일성-박헌영과 싸운 것이 아니라 스탈린-모택동과 싸웠던 것으로 본다.


▲ 현대문명이 배출한 전체주의, 그중에서 좌파 전체주의의 쌍두마차였던 스탈린(오른쪽)과 모택동. 대한민국은 스탈린-모택동과 정면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끝에 오늘날의 번영을 이룩한 세계사적 기적의 산물이다. 우리선배들이 김일성-박헌영 따위를 앞세운 스탈린과 모택동에 패배했다면, 오늘날 한반도에는 쿠바나 캄보디아 같은 나라가 존재했을 것이다. ⓒ뉴데일리 사진DB

셋째. 지금 대한민국의 운명은, 지구에 단 하나 남은 최악질 전체주의를 끝장내고 통일 대한민국을 이루는 것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인류적 차원의 운명 아닌가?
대한민국의 경제가 세계시장과 한 몸체가 되었듯, 대한민국의 운명은 인류의 운명과 한 몸체가 되었고, 대한민국의 시민됨은 인류적 차원의 시민됨과 한 몸체가 되었다.
그 시민됨은 바로 전체주의를 종결시키고,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드높이는 것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거대한 축복 속에 살고 있다.
개인됨(becoming oneself—나 자신이 되는 것—나의 자아가 되는 것)과, 시민됨인류됨이 하나의 고갱이로 통일되어 있는 운명을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
새민련의 주축세력인 [4전패]는 이 운명을 몰라 볼 뿐 아니라, 이 운명에 반역하고 있다.
운명적 존재가 되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걷어차고 있는 이 황당 시츄에이션의 머저리 주인공이 바로 너희 [4전패]이다.

운명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거대한 축복이다.
지난 20만년 동안 대부분의 인류는 운명적 존재가 아닌, 소모품적 존재로 덧없이 스러져갔다.

더욱이 이 운명이 바로 “개인됨(자아됨)-시민됨(국민됨)-인류됨의 통합”이라는 것이야말로 거대한, 너무나 거대한 축복이다.
지난 20만년 동안 무수한, 너무나 무수한 사람들이, 개인-가족-씨족-부족-민족-국가-인류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 마찰 속에서 덧없이 스러져갔다.

그렇다. 우리
자자세(자유통일, 자유민주주의, 세계시장 지지)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인류사적 사건으로 파악하며, 자유통일을 인류적 프로젝트로 전망한다.
우리는 이미 개인임과 동시에, 공화국 대한민국의 시민임과 동시에, 보편적 인류임을 획득한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 자자세 시민들은, 맹독성 산업폐기물임과 동시에 인격파탄자임과 동시에 부도덕/무도덕의 무저갱으로 전락한 너희--[4전패] 깡통진보를 연민한다. 

너희 따위가 감히 우리의 “역사관을 검증하겠다”고 고함치면서 애꿎은 이인호 이사장을 불러, 그 여릿여릿한 원로 학자에게 호통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차라리 너희를 연민한다.

이미 스무살 무렵, 너희가 金朝전체주의를 떠받들기 시작했을 때, 너희 자신의 손에 의해 목졸려 숨진 너희의 가련한 영혼을 위해,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기도한다.

 

“무엇이라 불러야 할 지 모를, 가물가물한 당신이시여….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목졸려 숨진 채 30년 동안 이승을 떠돌고 있는 저 가련한 넋의 조가리들을 이제 편히 잠들도록 거두어 주소서.
그리하여 스스로의 넋을 제거한 저 가련한 몸뚱어리들이, 그나마 이승에서 온전한 꼴로, 온전히 목숨을 다할 수 있도록 살펴 주소서.”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angmo77


[관련기사 3]


화제의 책 [김구 청문회] 만들어진 신화 '독립영웅'의 정체를 벗긴다

김구 이런 사람? <백범일지>는 사실과 다르다?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이사 회장/전 조선일보 편집국장

지난 8월 출판가를 강타한 책 <김구 청문회>를 이제야 읽었다.
출판계만이 아니라 한국 국민전체를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을 만한 핵푹탄이다.
항일투쟁의 상징 같은 백범 김구를 국민 앞에 불러다 놓고 과거의 행적 자료를 제시하며 낱낱이 추궁하는 청문회 현장중계를 보는 것 같다.
책의 선전띠가 말하 듯 [친일파 문인 춘원 이광수가 윤문 각색한 <백범일지>와 김구의 정직한 이력서]라는 이 책의 목차만 보아도 [성역 김구]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책이다.

▲ <김구 청문회> 저자 김상구, 매직하우스 발행ⓒ뉴데일리 사진DB


저자 김상구의 머리글 [나는 왜 김구를 비판하는가]를 인용해보자.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며 단독4정부를 세우는 데는 혁력하지 아니하겠다”는 말을 남기며 남북형석회의에 참석코자 북쪽으로 갔으며 그후 안두희에게 피살당한 주인공
...(중략)...
반탁을 빙자한 임정정통 봉대론은 분단 건국노선을 결정적으로 도와준 셈이 되었으며,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의 암살, 그리고 백의사 대한민청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세력들이 남과 북에서 행한 살인, 테러 행위에도 김구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중략)...
백범일지에 묘사된 그의 모습은 대부분 사실과 다릅니다. 


그는 동학의 접주를 지낸 적이 없으며, 일본 육군중위로 알려진 쓰치다는 평범한 상인이었습니다.
임정의 경무국장시절, 요즘 화폐가치고 환산해 20만원정도 돈을 일본 영사관으로부터 받았다는 죄로 17살 소년을 죽였을 뿐 아니라, 수많은 한인독립지사들을 공금횡령범, 일제의 밀정, 빵갱이 등으로 모함하여 죽이기도 했습니다...
(중략)...
조선의용대를 파괴하려는 장개석의 음모에 동조하여 ‘광복군9개전승’이라는 모욕적인 조약을 체결했고...
(중략)...
겨우 몇 백명 그것도 전혀 무장되지 않은 광복군을 수 만명 광복군이 태평양 각지의 전투에서 연합군과 전투하였다고 광복군의 전과를 부풀리기도 한 것이 임정의 실체였습니다...
(중략)...
부일협력 재벌 최창학으로부터 제공 받은 김구의 거주지 경교장, 송진우로부터의 900만원, 김연수에게 700만원, 그리고 주석 김구각하로 극존칭을 써가며 김구와 임시정부 홍보에 앞장섰던 동아일보...등은 극히 일부의 예입니다.
더욱이 1962년 김구에게 수여된 건국공로훈장은 이병도 등 친일사학자들이 심사하여 결정한 것입니다...
(중략)...
신화가 된 김구의 이미지를 넘어 이제 김구의 실체를 보아야할 시점입니다...
(후략)

▲ 남한 단독정부를 지지하다가 돌연 북한 김일성을 찾아 평양에 간 김구가 연설하는 장면.(자료사진)



[독립영웅] 김구
의 허상은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특히 <백범일지> 내용이 역사의 진실과 다른 김구의 과장과 [자화자찬]이 많다고 지적한다.


▲ 남한 단독정부를 지지하다가 돌연 북한 김일성을 찾아 평양에 간 김구가 연설하는 장면.(자료사진)


특히 백범 항일투쟁의 대표작 쯤으로 알려진 윤봉길 의거의 주모자는 김구가 아니라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 수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김구 세력이 갑자기 “주모자는 김구다”는 글을 한글과 영문으로 만들어 배포, 대대적으로 보도되게 함으로써 일약 [영웅]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윤봉길이봉창도 의거 전후에는 물론 사형될 때까지 김구를 몰랐다고 한다.

▲ 문화일보가 '단독'으로 보도한 '김구청문회' 서평 기사(홈페 캡쳐)


당시 자료들이 증언하는 내용들은 충격적이다.

“김구는 윤봉길을 먹이로 삼은 사람이다...

김구 일파는 한국혁명운동단체 통합의 걸림돌이다...
미주교포들과 중국의 지원금을 독식하고 있다...
노선이 다른 혁명동지들을 암살하고 있다...”

등등.

▲ 문화일보가 '단독'으로 보도한 '김구청문회' 서평 기사(홈페 캡쳐)


저자는 좌우 단체의 기록들과 일본경찰 비밀문서까지 광범한 인용문을 제시한다.  
“김구의 그늘에 가린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에 대한 보다 치열한 공부를 촉구하는 책”(박노자 독후기)이란 말처럼 좌익의 독립운동사를 공식화하려는 목적으로 내놓은 책이라 할지라도, 저자가 보여주는 풍부한 역사기록들은 보다 치밀한 종합연구를 재촉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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