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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주민 3명 합쳐봐야, 영천시민 1명 수준

재·보선 가능성 등 정치일정 고려, "표의 등가성만큼 지역 대표성 중요" 반론도 제기

입력 2014-10-31 10:37 수정 2014-10-31 15:09

▲ 헌법재판소. ⓒ조선일보 사진DB

헌법재판소가 30일 공직선거법상 선거구 구역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근거는 표의 등가성(等價性) 원칙 위배에 있다.

평등선거의 원칙은 단순히 유권자 1인이 1표를 형식적으로 행사한다고 준수되는 것이 아니라, 각 유권자가 행사하는 1표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뜻이다.

◆표의 등가성 원칙, 역사적인 유래는 영국에서

역사적인 유래는 민주주의의 발상자인 영국의 부패선거구(Rotten Borough)로부터 찾을 수 있다.

산업혁명에 가장 먼저 돌입한 영국은 이촌향도 현상도 가장 먼저 나타나면서 농촌 지역구가 공동화됐다.

1831년 4월 총선에서는 전체 406석 중 총 유권자 100명 이하의 지역구가 152석이 있었으며 심지어 유권자 50명 이하의 지역구도 88석에 달했다.

최소 지역구에서는 7명의 유권자가 국회의원 1석을 선출했는데, 이는 인구가 수십만 명에 달하는 맨체스터와 리버풀 같은 신흥 산업 도시의 의석 수인 1석과 동일했다.

이래서는 1인 1표라고 해서 평등선거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돼, 영국은 1832년 선거법 개정으로 부패선거구를 통폐합하고 인구비례에 따른 선거구 획정을 시작했다.

▲ 헌법재판소 전경. ⓒ조선일보 사진DB

◆헌법재판소, 95년 처음으로 인구 편차 이유로 선거구 위헌 결정

우리 헌법재판소도 그간 일관되게 이 원칙에 따라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줄여왔다.

1995년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국회의원 선거구 구역표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선거구간 인구 편차에 대해 아무런 기준이 없었다.

국회에서 토호(土豪) 의원의 이해 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획정을 했던 관계로, 문제의 심각성은 150년 전 영국의 부패선거구에 못지 않았다.

당시 전남 장흥 선거구의 인구는 불과 6만 1,529명으로 부산 해운대·기장 선거구 인구의 6분의 1에 불과했다.

헌법재판소가 이 해 처음으로 선거구 구역표에 대해 인구 편차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함에 따라, 국회는 이듬해 1996년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을 재정비하면서 처음으로 인구편차 기준을 만들었다. 당시 기준은 최저 선거구 7만 5,000명, 최다 선거구 30만 명으로 인구 편차 허용 한계는 4 대 1 이었다.


◆2001년, 인구 편차 보다 엄격히 정하며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는 2001년 다시 한 번 국회의원 선거구 구역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시행 중이었던 공직선거법상 선거구 구역표에 따르면 경기 안양 동안 선거구의 인구는 33만 1,458명이었으며, 경북 고령·성주 선거구의 인구는 9만 656명으로 인구 편차는 3.65 대 1 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인구 편차 허용 한계를 4 대 1 로 결정한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이제는 3 대 1 로 결정할 때가 됐다며, 장기적으로는 선거구간 인구 편차의 허용 한계를 2 대 1 로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1995년과 달리 2001년 결정에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정치 일정과 관련이 있다.

1995년 결정 시점에서는 바로 이듬해에 총선이 열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재·보궐선거가 열릴 예정이 없어 국회의원 선거구 지역표에 대해 바로 위헌 선언을 해 전부 무효로 만들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2001년 결정 시점은 직전해에 총선이 열렸었기 때문에, 선거구를 바로 위헌 결정하면 재·보궐선거가 열려야 할 지역구가 통폐합돼서 사라지거나 변경되는 등 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있었다.

▲ 헌법재판소. ⓒ조선일보 사진DB

◆2014년, 표의 등가성 원칙 완성하는 헌법불합치 결정

30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헌법소원은 이번에도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문제삼았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선거구 구역표에 따르면, 서울 강남갑 선거구의 인구가 30만 6,000명을 넘는 반면 경북 영천 선거구의 인구는 10만 3,000명에 불과하다. 영천시민의 한 표가 강남구민의 세 표의 위력에 맞먹어, 표의 등가성이 훼손되고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헌법재판소가 30일 결정에서 선거구 구역표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하면서, 선거구간 인구 편차 허용 한계를 2 대 1 로 결정한 것은 13년 전 결정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이번 결정에서도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에도 재·보선 가능성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표의 등가성만큼이나 지역대표성 중요하다는 이견도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표의 등가성 원칙과 평등선거를 이유로 인구 편차가 과다한 국회의원 선거구 구역표를 꾸준히 위헌 내지 헌법불합치로 결정해 왔다.

하지만 헌법학계와 정치권 및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도 있었다.

비판적 견해의 근거는 우리나라가 세계 대부분 국가와 달리 단원제 국회를 채택하고 있어 국회의원이 국민대표임과 동시에 지역대표성도 띄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일본·독일 등은 국회가 상원(참의원)과 하원(중의원)으로 나뉘어진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원은 철저한 인구비례 원칙, 상원은 철저한 지역대표성 원칙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미국 하원은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에 53개 의석이 있는 반면 같은 주(州)지만 버몬트주는 1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상원은 캘리포니아주와 버몬트주가 동일하게 2석이다.

우리나라는 단원제 국회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표의 등가성을 강조해 인구비례 원칙에만 철저하게 되면, 인구가 희박한 산간 벽지나 농어촌 도서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의 30일 결정에서도 박한철·이정미·서기석 헌법재판관은 소수 의견을 제기해 "도시를 대표하는 의원 수만 증가할 뿐 지역대표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농어촌 의원 수는 감소할 것이 자명하다"며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이 투표 가치의 평등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우려했다.

▲ 30일 헌법재판소의 공직선거법상 선거구 구역표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각 헌법재판관들의 찬반의견. ⓒ조선일보 사진DB

◆헌재 결정에 정치적 근거?… 사법부 중립 해칠 우려

한편 헌법재판소가 이날 결정에서 정치적 근거를 내세운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현행 선거구 구역표는) 지역 대립 의식이 크고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영호남 지역이 수도권이나 충청 지역보다 과대 대표되고 있다"며 "이는 지역정당 구조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역정당 구조는 분명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정당이 위헌적이라는 규정이 있거나 그렇게 유추해석할만한 헌법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정당 구조의 심화라는 정치적 이유를 헌법불합치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헌법재판관들이 법률적 근거에 철저하지 못하고, 현재의 정치 구도를 악(惡)으로 주관 아래에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헌법재판의 결과에 반영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철저하게 헌법과 법률에만 근거해 진행되면 될 헌법재판을 함에 있어서 헌법재판관들이 지나치게 정치적 파장이나 영향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법조 관계자는 "헌법재판소는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심판의 경우에도 결정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지나치게 숙려하는 나머지 법정시한(헌법재판소법 제38조)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헌법재판을 행함에 있어서 정치적 논리나 파장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것은 되레 사법부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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