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인자' 황병서에게 농락당한 언론과 정부

    그들의 목적은 오직 ‘閉會式(폐회식) 참가’였지 ‘對話’가 아니었다.
    이제 관심사는 10월10일 김정은의 출현 여부이다.


李東馥(전 국회의원)   

<2人이 1人을 수행>  
  북한이 추구하는 대외정책과 對南(대남)정책의 핵심 전술은
이른바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다.
그러나, 북한의 對外(대외)·對內(대내)정책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기(長技)’가 있다. 그것은 ‘깜짝 쇼’다.

북한은 이번에도 남한을 상대로 북한 특유(特有)의 ‘깜짝 쇼’를 연출했다.
김정은(金正恩) 체제의 권력핵심 ‘3인방(三人幇)’의 갑작스러운 ‘인천(仁川) 나들이’가 그것이다. 16일간 계속된 ‘인천 아시아 경기’ 마지막 날인 10월4일 북한의 3대(代) 세습독재 체제인 김정은 정권의 ‘권력실세(權力實勢)’들로 알려지고 있는 세 사람이 당일치기로 인천을 다녀갔다. 북한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와 <조선노동당> ‘비서’ 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최룡해 및 <조선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사업부장’ 김양건이 문제의 세 사람이다. 
  
  남한의 경망(輕妄)스러운 언론이 이들 ‘세 사람’을 가리켜 ‘북한 권력실세 3인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내용을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같은 표현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이들 ‘세 사람’ 사이에는 불평등한 상하관계(上下關係)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 ‘세 사람’ 사이의 상호 관계는 어디까지나 황병서가 ‘중심인물’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황병서의 ‘보좌인원’들이다. 이들 일행의 인천 방문 사실에 관한 북한 관영 언론의 보도가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뒷받침한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4일 오전 9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며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조선인민군 차수 황병서 동지가 4일 비행기로 평양을 출발했다”면서 “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최룡해 동지, 김양건 동지가 동행했다”고 전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황병서의 인천 방문”을 “최룡해·김양건이 수행”한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   이번 행차(行次)의 주역(主役)이 황병서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조역(助役)이었다는 사실은 인천에 체류하는 동안 세 사람이 보여준 행보(行步)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인천을 방문하는 동안 이들 일행을 김정은을 경호하는 ‘호위총국’ 소속 경호요원들이 밀착 경호했지만 이들의 경호 ‘대상’은 세 사람 가운데 황병서에 한정되어 있었고 최룡해와 김양건은 그들의 ‘경호 대상’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이 움직이는 동안 최룡해와 김양건은 황병서에 대해 ‘손 위 사람’으로 깍듯이 예우(禮遇)했고 남측 인사와의 ‘대화’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김양건은 걸핏하면 “우리 총정치국장의 승인을 받아서”라든가 “우리 총정치국장이 오셨다”라는 등의 생소한 경칭(敬稱) 수식어(修飾語)를 사용하기도 했다. 
      
      <몸부림>
      
      이들 세 사람이 ‘인천 나들이’를 당일치기로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남한 사회, 특히 북한 관련 뉴스에 관해서는 ‘호들갑’이 장기인 남한 언론에서는, 이들이 인천 깜짝 방문의 목적에 관하여 10인 10설의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 공리공론(空理空論)이 무성하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남한 방문 3인방’의 구성을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 이들의 이번 ‘인천 나들이’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사실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이들 세 사람의 남한 방문은 급작스럽게, 그것도 아시아 경기에서 북한이 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4개로 참가국 45개국 가운데 7위의 우수한 성적표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 시점에서, 그리고 특히 9월29일 여자축구 준결승전에서 남한에 1대0의 극적 승리를 거둔 뒤에, 결정된 ‘깜짝 쇼’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같은 돌발적인 결정은 북한이 현재 대내·대외적으로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대내외 환경은 2013년12월에 있었던 장성택(張性澤) 숙청극(肅淸劇) 이후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왔다. 對內的(대내적)으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난국(難局)은 경제난이다. 북한은 특히 2011년 말 김정일(金正日)의 사망에 따라 김정은에 의한 3대째 권력세습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재정적 지출을 감당해야 했지만 이를 지탱할 재정적 수입은 늘지 않고 오히려 감소되어 왔기 때문에 김일성(金日成)·김정일 시대에 비축(備蓄)했던 비자금(秘資金)을 소진(消盡)시키면서도 인민경제 개선은 방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북한의 농업생산은, 표면적으로는 일기불순이 이유로 꼽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지속되는 당 주도의 정치논리에 입각한 농업정책의 결과로, 금년에도 부진하여 북한은 금년 겨울에도 심각한 식량난이 예고되고 있다. 
      
  •   <국제사회 현혹에도 실패>
      
      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시간이 흐를수록 축적되는 가운데 휴대용 전화와 비디오 및 CD 불법 시청, 그리고 남쪽으로부터 날아오는 풍선에 의한 전단(傳單)을 통한 외부정보에의 노출 증대 등 북한 사회의 불안 요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작금 북한의 실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무엇보다도 시진핑(習近平) 체제 등장 이후 북한의 생명선(生命線)이었던 중국과의 전통적 동맹관계가 표류(漂流)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정권이 고수(固守)하는 “핵무기 개발과 경제건설 병진 전략”으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은 이의 타개를 위하여 주로 일본과 러시아를 상대로 북한식 ‘미소외교(媚笑外交)’ 판을 벌여 왔고 최근에는 금년도 유엔총회 개막을 앞두고 이수용 외무상과 강석주 국제담당 당 비서를 동원한 순방외교 행각(行脚)을 통해, 인권 논란에 대응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제사회를 현혹(眩惑)시켜 보려는 시도(試圖)도 벌였지만 결과는 ‘빈 손’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아시아 경기가 남한 땅 인천에서 개최되었다. 북한은 처음부터 이번 아시아 경기를 이같은 절박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할 생각이었다. 전례 없는 대규모 선수단 파견과 함께 ‘대규모 미녀 응원단’의 파견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것은 그 같은 발상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미인 응원단’의 파견은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번의 경우 이익보다는 손실이 클 것 같다는 손익계산에 도달했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포기했다. 그런데, 이같이 궁지(窮地)에서 허덕이는 북한에 예기치 않았던 ‘호재(好材)’가 굴러들어 왔다. 아시아 경기에서 북한 선수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보(善戰譜)가 인천으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다. 더구나 9월29일에는 남북대결에서 가장 상징성(象徵性)이 큰 축구경기 가운데 여자축구 경기에서 북측이 남측에 극적인 승리를 거둔 ‘사건’이 발생했다. 
      
  •   <여자 축구팀의 승리가 깜짝 쇼의 계기>
      
      아시아 경기에서의 북한 선수들의 이같은 선전보는 선전(宣傳)과 선동(煽動)을 국가통치의 가장 핵심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손에 땅에 떨어진 북한 주민들의 사기를 진작(振作)시켜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는 사회적 불안 분위기를 수습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호재를 쥐어주었다. 북한 정권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선 북한은 10월1일 밤 뒤늦게 남북한이 대결한 여자축구 4강전(4强戰) 경기 실황을 북한 TV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방영(放映)하면서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했다. 이어서 내려진 결정이 황병서 일행의 아시아 경기 폐회식 참가였다. 
      
      이제 북한 정권은 당분간 아시아 경기에서의 북한 선수들의 선전보를 김정은의 ‘영도력’에 의한 ‘업적’으로 각색(脚色)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홍보함으로써 이를 통해 생활난으로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마비(麻痹)시키는 캄플 주사의 효과를 추구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선수들의 '영웅적 선전보'를 부각시키는 ‘영상물(映像物)’이 필요하고 이 ‘영상물’에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지도부의 존재가 각인(刻印)될 필요가 생겼다. 아시아 게임이 이미 종반전에 들어와 있는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그 필요성이 부각된 이 정치선전물에서 북한 정권의 지도부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이용할 수 있는 최적(最適)의 장면은 임박한 아시아 경기의 폐회식이었다. 
      
      <최룡해와 김양건의 역할>
      
      그러나, 김정은이 직접 인천으로 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이 정치선전물에서 김정은의 ‘권위(權威)’를 상징할 수 있는 ‘대역(代役)’이 필요해졌다. 황병서가 그 ‘대역’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황병서의 인천행에는 문제가 있었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직함을 가진 ‘황병서’가 아무런 각색(脚色) 없이 인천에 와서, 더구나 하루 뒤로 임박한 아시아 경기 폐막식에 갑자기 참가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데는 논리의 비약이 수반되지 아니 할 수 없었다. 이같은 논리의 비약을 해소시킬 카드가 최룡해의 등장이었다. 당비서인 최룡해는 동시에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의 직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북한은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룡해의 ‘수행’으로 황병서의 아시아 경기 폐회식 참가를 합리화시키는 묘수(妙手)를 찾아낸 것이다. 
      
      황병서의 인천행에는 그 밖에도 문제가 또 있었다. 황병서의 인천 방문에 대한 남한의 대응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남한은 정부 차원은 물론, 민간의 차원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남북대화’를 가지고 북한을 보채고 있었다. 황병서의 이번 인천 방문의 유일한 목적이 아시아 경기 폐회식 참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병서 일행이 남한 땅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남한 쪽에서는 정부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이 그들의 남한 방문을 이용하여 어떠한 형태로든지 ‘남북대화’의 불씨를 살리려고 기를 쓰리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고 북측으로서는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황병서는 물론 최룡해 또한 ‘남북대화’에는 문외한(門外漢)이었다. 남측에서 들이밀 것이 분명한 ‘대화 공세’에 대해 이 두 사람은 적절하게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 북측으로서는 이에 대비한 별도의 카드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서 북한은 ‘김양건 카드’를 꺼내들게 되었다. 
      
  •   <한국 언론의 호들갑이 연출한 笑劇(소극)과 정부의 망신>
      
      김양건이 지금 북한의 권력구조에서 ‘실세(實勢)’의 하나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가부간 단정하기 어렵다. 현직인 당 ‘통일전선사업부장’인 김양건은 북한의 對南(대남)정책의 최고 당국자임에 틀림없고 장기간에 걸쳐서 그 직위를 유지해 온 인물이다. 그러나, 작년 12월에 발생한 장성택 숙청 이후 김양건의 정치적 위상은 물론 안위(安危)에 대해서는, 그가 ‘당비서’와 ‘통일전선사업부장’의 직책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엇갈린 추측이 지속되어 왔다. 왜냐 하면 그는 오랜 동안 장성택의 ‘측근인물’의 하나로 분류되어 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양건은 북한의 현 권력구조에서 명실 공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對南(대남) 문제의 전문가로 북한의 對南(대남)전략의 계속성을 보증하는 인물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바로 이 전문성 때문에 김양건에게 이번 황병서의 남한 방문을 ‘수행’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이번 인천 방문 기간 중 아시아 경기와 관련된 영역의 바깥에서 ‘남북대화’의 차원에서 남한 측의 조야(朝野)와 접촉이 불가피해질 경우 황병서의 ‘대변인’이 되어서 황병서를 ‘대리’하여 모든 상황에 '임기응변(臨機應變)'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병서 일행이 인천 공항에 발을 내려디디는 순간부터 남한에서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남쪽에서는 황병서 일행이 마치 북한 김정은의 ‘특사(特使)’이기나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이를 계기로 ‘남북대화’의 꺼져 있는 불씨를 되살려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군색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남쪽에서는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류길재 통일원장관이 나서서 황병서 일행을 환대하면서 ‘티파티’와 ‘오찬’을 베풀었고 이 ‘티파티’와 ‘오찬’ 모임이 마치 ‘남북회담’이나 되는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청와대에서도 “기왕 남한 땅을 밟은 길에 청와대로 와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만나보고 가지 않겠느냐”고 완곡하게 운(韻)을 띄웠다가 북측으로부터 “이번에는 시간관계로 어렵겠다”고 면피(免避)를 당하는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대남공작 담당자에게 붙어다닌 통일부 장관의 추태>
      
      이번 황병서 일행이 벌인 인천 방문 ‘깜짝 쇼’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남쪽의 정부와 정치권 및 언론이 보여준 ‘호들갑’은 정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치는 것이었다. 이날 인천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남북접촉(‘티파티’와 ‘오찬’ 회동)은 ‘회담’이 아니라 ‘환담’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환담’의 자리에서 서로 주고받은 ‘덕담(德談)’ 수준의 토막대화가 마치 무슨 의미가 있는 ‘발언’인 것처럼 과장(誇張)되어서 경망스러운 남한 신문의 지면(紙面)과 TV의 화면(畫面)을 요란하게 장식했다. 
      
      주업(主業)이 ‘통일전선’이라는 이름의 대남 적화혁명(赤化革命) 공작의 책임자인 김양건 ‘통일전선사업부장’의 곁을 마치 껌처럼 붙어 다니던 이 나라의 ‘통일부장관’은 심지어 김정은의 안부에 관한 그의 물음에 김양건이 “아무 일 없다”고 건성 대답한 것을 가지고 마치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 언론에 ‘디브리핑’(Debriefing)하고 남측의 언론은 앞을 다투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경박(輕薄)한 광경이 펼쳐지기에 이르렀다.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지의 여부는 이제 앞으로 2-3일 뒤에는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10월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로 이날 기념행사에 김정은의 출현 여부는 김정은의 건강의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 확실한 근거가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만약 10월10일의 당 창건 기념일에 김정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그의 건강 이상설이 사실상 확인될 때 이 나라 ‘통일부장관’이 그같은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대통령까지 들떴나?>
      
      박근혜(朴槿惠) 정부는 10월4일의 ‘오찬 회동’을 ‘고위대표 접촉’이라고 호칭하기까지 하면서 이 회동에 공식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는 한편 북측이 “지난 2월에 있었던 제1차 접촉 이후 속개되지 않고 있는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오는 10월 말에서 11월초 사이에 남측이 원하는 시기에 개최하는 데 동의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이번 접촉에서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보자는 데는 다 같이 의견 일치를 봤으며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한 굉장히 의미 있는 단초가 만들어진 것은 틀림없다”고 주장하면서 정홍원 총리와의 ‘면담’ 석상에서 황병서가 했다는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는 발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남북이 2차 고위급 접촉 개최에 합의한 것은 향후 남북 관계 개선에 轉機(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남북) 고위급 접촉이 단발적 대화에 그치지 않고 남북 대화의 정례화를 이뤄 평화통일의 길을 닦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이번 황병서 일행의 訪南(방남)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남북 간의 ‘해프닝’성 접촉에 공식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 관계는 접촉 후에도 분위기가 냉각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북한도 방한 시 언급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는 사족(蛇足)을 붙임으로써 ‘만남’ 자체보다 “작은 합의부터 실천하고 신뢰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방점(傍點)을 찍기는 했지만 이번에 있었던 남북 접촉의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없지 않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   <신기루를 증발시킨 NLL 포격>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이같은 태도는 이번의 황병서 일행의 인천 방문의 의도에 대한 오판(誤判)을 근거로 북한 김정은 정권을 안이(安易)하게 상대하는 위험한 과오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황병서 일행의 인천 방문을 통해 떠올랐던 남북관계의 신기루(蜃氣樓)는 그들이 다녀간 사흘 후에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 해군 경비정의 NLL 침범으로 촉발(觸發)된 쌍방 해군함정 간의 포격전(砲擊戰)으로 순식간에 증발(蒸發)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더구나, 황병서 일행이 평양으로 귀환한 뒤 북한은 그들의 방남(訪南) 사실에 대해서는 완전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7일 인천으로부터 평양으로 귀환한 북한 아시아 경기 선수단 본진(本陣)이 도착한 순안 비행장과 평양 시내에서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연출했고 여기에 황병서를 ‘수행’했던 최룡해와 김양건도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들이 인천을 방문했던 사실은 물론 그들이 인천에서 남측 고위급 인사들과 만나서 ‘대화’했던 내용은 물론 ‘대화’를 가졌던 사실까지도 완전히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결론적으로, 황병서 일행의 인천 방문이라는 ‘깜짝 쇼’는 ‘남북대화’는 물론 남북관계와는 무관하게 순전히 아시아 경기 폐회식 참석 자체가 목적이었음을 웅변(雄辯)해 준다. 불가피하게 남북간에 이루어졌던 ‘접촉’ 과정에서 있었던 북측의 발언은 그때그때 '임기응변'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덕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와 정계 및 언론이 보여준 ‘호들갑’은 문자 그대로 “떡 줄 놈과 상관없이 혼자서 김치국을 마시는 꼴”이 된 것이다. 
      
      <황병서는 1.5인자?>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번 황병서 일행의 인천 방문 ‘해프닝’을 통해 작년 12월에 있었던 장성택 숙청극 이후 해답을 찾기 어려웠던 하나의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 같다는 것이 소득이었다. 그 의문은 장성택 숙청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제2부부장(군사 담당)이었던 황병서는 그 동안 김정은의 ‘하수인’으로 장성택 숙청의 ‘집행자’였던 것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 동안 장성택의 숙청이 '김정은의 지시로 황병서가 집행한 것'인지 아니면 '황병서가 주역으로 김정은을 업고 단행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의 인천 나들이를 통하여 황병서는 북한 권력구조 내에서 숙청되기 이전의 장성택의 위상을 꿰어 찼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장성택을 능가(凌駕)하는 위상의 소유자가 되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정은의 ‘전용 항공기’를 이용하고 김정은 일가를 전담하는 호위총국 경호원들이 동행한 최룡해와 김양건을 젖혀놓고 황병서만을 경호하며 ‘당 비서’들을 ‘수행원’으로 대동하고 ‘수행’한 ‘당 비서’들이 깍듯이 ‘상급자(上級者)’로 예우하는 등의 특전(特典)은 장성택의 경우에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남측 언론은 그에게 ‘2인자’라는 라벨을 붙였지만 이번 행보를 통하여 황병서는 실제로는 그가 북한에서 ‘1인자’ 또는 최소한 ‘1인자’와 ‘2인자’ 사이의 ‘1.5인자’의 권력 서열의 주인공일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특히 건강 이상에 관한 무성한 추측 속에서 김정은이 장기간에 걸쳐 공개활동을 중지한 채 은둔(隱遁) 중에 있다는 사실과 관련시켜서 생각해 본다면, 이같은 황병서의 위상은 북한 권력구조 최상층부에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변화’가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에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데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지금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김정은 유고(有故)' 의혹이 공공연하게 유포(流布)되고 있는 사실이다. 바로 이같은 관점에서, 지금의 시점에서 필자의 관심사는 오는 10일 평양에서 전개될 <조노동당> 창건 기념일 행사에 과연 김정은이 모습을 보일 것인가의 여부와, 모습을 보이게 될 경우 과연 어떠한 모습일 것이냐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북한의 장래와 남북관계의 미래에 관하여 10월10일 이후에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보다 깊게 생각해 볼 필요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