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흘 밤만 자면 北의 동생을 볼 수 있었는데…"
    강원 이산가족 상봉자 갑작스러운 소식에 "웬 날벼락"



     "이제 나흘 밤만 자고 나면 60여 년간 꿈에 그리던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질 수 있게 되는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닷새 앞둔 21일 북한의 남동생을 만날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이명한(88·홍천군) 할머니는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추석 상봉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북한의 발표를 딸인 이옥남(54) 씨에게서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소식은 이 할머니에게 날벼락과도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남동생 이광한(69) 씨를 만난다는 소식에 추석연휴 내내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밤잠도 설친 이 할머니였다.

    남동생에게 줄 속옷과 생필품 등의 선물 꾸러미를 '쌌다 풀었다'를 몇 차례 반복하며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딸 이옥남 씨는 "이게 웬 날벼락이에요. 외삼촌을 만날 날만을 손꼽으며 '이제 나흘 밤만 자면 된다'고 크게 기대하셨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황해도 연백군 해룡면 금천리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1945년 8월 해방 즈음에 강원도 삼척으로 시집을 왔다가 부모 형제들과 생이별했다.

    당시 2남 5녀의 맏이인 이 할머니는 친정집이 황해도에서 함북 청진으로 옮긴 이후 서신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전쟁이 터진 이후 60여 년간 친정과는 연락이 끊겼다.

    이번에 만날 이광한 씨는 이 할머니가 시집가기 전까지 업어 키우다시피 했고, 막냇동생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소식을 최근에야 접했다.

    이와 함께 남북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에 포함되자 "생애 최고의 추석 선물을 받았다"며 기뻐했던 이명호(82) 할아버지도 크게 낙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할아버지는 이번 상봉 때 막냇동생 철호(77)씨와 조카들을 볼 예정이었다.

    이 할아버지의 아들(50·경기 파주)은 "추석 명절을 쇠고서 속초 집으로 가셨는데, 휴대전화를 두고 가셔서 이산가족 상봉 연기 소식을 아직 접하지 못하셨을 것"이라며 "행여나 큰 충격을 받으실까 봐 아예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추석 연휴 내내 작은아버지와 사촌 동생들을 만나게 됐다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며 "평생을 기다리셨는데, 실망감이 너무 크실 것 같다"고 전했다.

    강원도 통천군 고조읍이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부모님과 친지를 남겨놓고 인민군 징집을 피해 형 2명과 함께 월남했다.

    당시 19살 고등학생이던 이 할아버지는 강릉 주문진에 정착해 몇 년을 거주하다가 속초로 이주해 50년 넘게 속초에서 살았다.

    같이 월남한 형 2명도 오래전에 상봉신청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떴다.

    고향을 그리며 눈물 속에 살아온 이 할아버지는 동생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부모님은 어떻게 되셨는지', '언제 돌아가셨는지'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연기 소식에 반나절 내내 땅을 치고 통곡한 이 할아버지는 "동생 만나면 주려고 의약품과 겨울옷 등 선물 꾸러미를 한가득 챙겨놨다"며 "한평생을 기다린 끝에 이제야 유일한 혈육인 막냇동생을 보겠다 싶었는데,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려나"고 망연자실했다.

    25∼30일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자는 도내에서 강릉·원주 각 2명을 비롯해 속초·양양·인제·철원·춘천·홍천 1명 등 모두 10명이다.

    도내 이산가족 신청자는 7월 말 현재 모두 4천299명으로, 2000년 8월 15일 제1차 상봉 이후 현재까지 13년간 18차례에 걸친 대면상봉으로 북의 가족과 얼굴을 직접 맞댄 도내 상봉자는 2.8%인 120명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