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보훈청장 “저게 뭐냐” 항의…광주시 합창단 지휘자 징계 회부광주 시의원 “문화수도 광주에서 ‘겨우’ 의상문제로 징계 너무해”
  • ▲ 지난 15일 광주시가 주최한 제68주년 광복절 기념식 행사 모습.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원들이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티를 입고 있다.
    ▲ 지난 15일 광주시가 주최한 제68주년 광복절 기념식 행사 모습.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원들이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티를 입고 있다.

    지난 15일,
    광주에서 열린 제68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난데없이
    쿠바의 [공산주의 학살자] <체 게바라> 얼굴이 등장했다.

    이 일로 독립유공자들을 모시고 기념식에 참석했던
    광주보훈청은 [뒤통수]를 맞았다.

    15일 오전 10시,
    제68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의 식전 공연 중 일어난 일이다.

    <광주시립소년소녀 합창단> 48명이
    흰색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올라 <아리랑>을 합창했다.

    합창단은 이어
    <고 은>이 지은 시
    [광주는 빛이어라]를 토대로 한 공연을 시작했다.
    이때 흰색 저고리를 벗자
    <체 게바라>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찍힌 검은 티셔츠가 드러났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단체로 입고
    [광복절 기념공연]를 하는 모습을 본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은 황당함에 빠졌다. 

    광복절 기념식은 지자체 주관이기에
    사연을 알 수 없었던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은
    옆에 있던 <강운태> 광주시장에게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저게 뭐냐?
    광복절 기념행사 취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이에 <강운태> 광주시장도 당황하며,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답했다.

    광주시청 측이 진상을 조사한 결과
    <체 게바라> 단체 티셔츠 공연은
    <광주시립소년소녀 합창단> 단장이자 지휘자인
    이 모 씨(여․37)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합창단 측에서 밝힌,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이유라는 게 이랬다.

    “고의는 아니었다.
    공연에 적합한 검은 티셔츠가 필요했는데,
    단체복을 구입할 여유가 없어
    지난 6월 22일 음악극 공연 때 입은 단체복을 입은 것이다.”


    합창단 측이 밝힌 6월 22일 공연은
    [어린이들의 꿈과 도전을 그렸다]는
    음악극 <나는 여기에 있었음을>(I was Here)이라고 한다.

    이 같은 보고를 받은 광주시 측은
    이 모 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
    8월 말까지 징계수위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체 게바라> 티셔츠를 합창단에게 입힌 이 씨를
    징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홍인화> 광주시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 "단순 해프닝인데, 의상 문제로 징계하는 건 너무하다"고 말한 홍인화 광주시 의원. [사진: 광주 KBS 보도화면 캡쳐]
    ▲ "단순 해프닝인데, 의상 문제로 징계하는 건 너무하다"고 말한 홍인화 광주시 의원. [사진: 광주 KBS 보도화면 캡쳐]



    “고의성이 전혀 없는 단순 해프닝인데도
    보훈청 지적에
    광주시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다.

    [문화수도]를 지향하는 광주에서
    겨우 [의상을 문제 삼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옳은 것인지 정확한 경위를 파악해 보겠다.”


    다른 지역 시민들은
    <광주시립소년소녀 합창단> 지휘자와 광주시 의원의
    이 같은 발언에 더 놀라고 있다.

    <체 게바라>는
    냉전 시절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이 활개를 칠 때나
    [혁명가]로 찬양받은 인물이다.

    <체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 부유층에서 태어났다.

    <체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大 의대에 재학 중
    중남미 무전여행을 떠난다.

    이때 멕시코에서 망명 중이던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 공산혁명에 참여했다.

    <체 게바라>는 1956년 11월
    카스트로 형제 패거리와 함께 쿠바 남부해안에 상륙했다.
    이후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 지대장으로 활약했다.

    1959년 1월,
    카스트로 형제가 쿠바를 장악한 뒤
    <체 게바라>는 <라 카바나 정치수용소장>으로 취임했다.

    이때 <체 게바라>가 한 일은
    이전 정권 인사들을 심문하고 처형하는 것이었다.
    <체 게바라>가 처형한 [정치범]은
    최소한 1만 4,000여 명이라고 밝혀졌다.

    <체 게바라>는 1964년 8월에는
    <흑인자유전선>(Black Liberation Front)이라는
    미국의 테러단체 지도자 <로버트 스틸 콜리어>를 만났고,
    그해 말에는 <자유의 여신상> 폭탄 테러를 논의했다.

    <체 게바라>의 실체는
    냉전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중남미 저널리스트와 학자들이 밝혀낸
    <체 게바라>의 실체는 잔인하고 비열한 학살자일 뿐이었다.

    <체 게바라>는 사람을 죽일 때 서슴없었다고 한다.
    이를 본 카스트로가
    그를 [정치수용소장]으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 ▲ 쿠바의 공산주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왼쪽)와 체 게바라(오른쪽).
    ▲ 쿠바의 공산주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왼쪽)와 체 게바라(오른쪽).

    <체 게바라>는
    <라 카바나 정치수용소>를 맡은 뒤
    이전 정부의 군인은 물론, 종교인, 지식인, 공무원 등
    1만 4,000여 명을 학살했다.

    <체 게바라>는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들]을
    권총으로 직접 쏴 죽이는 걸 즐겼다고 한다.
    특히 어린 소녀와 임신한 여성이 그 대상이었다.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의 명령에 따라
    소규모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콩고 내전에 참가했고,
    볼리비아에 가서도 [공산혁명]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다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체 게바라>는
    처형당하는 순간에
    목숨을 구걸하며 비겁하게 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

    그럼에도 <체 게바라>는
    쿠바 공산정부와 소련에 의해 [우상화]되어,
    [혁명가]로 불렸다.

    심지어 프랑스의 [깡통진보] 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
    [20세기의 예수]라 불렀다.

    이런 <체 게바라>가
    <광복절 기념공연>과 [어린이 음악극]에 등장했음에도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책임자와 [광주시 의원]은
    [단순 해프닝] [겨우 의상을 문제삼아]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유치를 위해
    공문서를 조작한 <광주시>. 

    <광주시>가
    민족의 해방과 독립영웅들의 희생을 기리는 <광복절>에
    [양민학살자] 얼굴을 아이콘처럼 삼은 공연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공문서 위조]보다 더 큰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