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前총리 마지막 가는 길 배웅…“고도성장 이끈, 탁월한 경제지도자”
  • ▲ 故남덕우 前총리의 영정을 들고 가는 유가족. 남 前총리를 빼고선 대한민국 산업화를 논할 수 없다. [사진: 연합뉴스]
    ▲ 故남덕우 前총리의 영정을 들고 가는 유가족. 남 前총리를 빼고선 대한민국 산업화를 논할 수 없다. [사진: 연합뉴스]

    22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대한민국 산업화의 선봉장 <故남덕우 前국무총리>의 [마지막 배웅길]에는
    100여 명의 국내외 주요 인사 등 300여 명이 모였다.

    지난 18일 숙환으로 타계한 故남덕우 前총리의 영결식은 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나카소네 히로후미> 자민당 참의원 의원, <벳쇼 고로> 주한 일본 대사 등도 참석했다.

    국군의장대가 태극기로 덮인 고인의 영구와 영정을 들고 현충관으로 들어서자
    영결식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서 고인에게 예를 표했다.

    장례위원인 김윤형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이어 공동 장례위원장인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의 추도사와
    부위원장인 이승윤 前부총리의 조사(弔詞)가 이어졌다.

    한 회장은 추도사에서 故남덕우 前총리의 업적을 기렸다.

    “당신께서 이룩하신 경제발전과 무역입국의 토대 위에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 나라를 위한 고뇌와 헌신, 그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이승윤 前부총리도 남은 후배들이 [뜻]을 이어가는 모습을 꼭 지켜봐 달라고 기원했다.

    “한국의 고도성장 뒤에는 <남덕우>라는 탁월한 경제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도 영광과 번영의 길로 나아갈 선진한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지켜봐 달라.”


    참석자들은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추모 영상을 지켜본 뒤 유가족부터 차례로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면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故남덕우 前총리는 박태준 前총리, 김 준 초대 새마을운동 중앙회장 등이 안장된
    [국가유공자 3묘역]에 안장됐다.

    앞서 유가족 등은 오전 7시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인 환송 예배를 가졌다.

    100여 명의 친지, 교회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발인 환송예배는
    <이용만> 온누리교회 장로의 대표 기도, <박태효> 목사의 인도,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의 설교 등으로 이어졌다.

    고인의 영구를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운구하는 길에는 강남 삼성동 <한국무역센터>를 들렀다.
    <한국무역센터> 앞에는 무역협회 직원 100여 명이 나와 고인을 배웅했다.

  • ▲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센터. 故남덕우 前총리는 무역협회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허허벌판이던 강남에 무역센터를 세우기로 한다. 이제 무역센터는 무역강국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센터. 故남덕우 前총리는 무역협회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허허벌판이던 강남에 무역센터를 세우기로 한다. 이제 무역센터는 무역강국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국무역센터>는 남 前총리가 무역협회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1983∼1991년)
    설계부터 완공까지 직접 지휘했던 시설이다.

    <한국무역센터> 입구에는 남 前총리가 쓴 <무역흥방(貿易興邦. 무역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
    라고 새긴 정초석(定礎石)이 보였다.

    무역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무역진흥을 위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자 고별 의식을 준비했다.
    남덕우 前총리가 아니었으면 [무역강국]의 상징과도 같은 <한국무역센터>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 생전에 '뉴데일리'와 인터뷰할 당시 故남덕우 前총리. 그는 말년에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 생전에 '뉴데일리'와 인터뷰할 당시 故남덕우 前총리. 그는 말년에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故남덕우 前총리는 우리나라 산업화를 기획하고 실행한 대표적 인물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재무부 장관을 맡은 뒤
    10년 동안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아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1980년부터 1982년까지는 국무총리를 맡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83년 관직을 떠나 무역협회 회장을 맡은 뒤 무역진흥에 앞장섰고,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 원로자문단 좌장, 해공 신익희 추모회 회장을 맡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2005년에는 후세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재단법인 <한국선진화포럼>을 만들어
    대학생, 대학원생 등과 오피니언 리더들 간에 소통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 ▲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고인의 빈소를 찾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고인의 빈소를 찾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빈소를 찾아 조문하면서 고인의 영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