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냇물을 바위로 막는다? "절대 못 막아!""흐름을 내 편으로 가져오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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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한국 시리즈 7차전.

     

    기아 타이거즈는 6회까지 5대1로 끌려가고 있었다.
    상대는 탄탄한 불펜과 빈틈없는 수비로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한 SK 와이번스.

    상대팀의 위엄을 고려하면 기아의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다.
    흐름은 SK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6회말,
    기아의 선두 타자가 유격수 앞으로 평범한 땅볼 타구를 보냈다.
    유격수가 공을 더듬는 실책을 범하면서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경기를 포기하다시피 했던 기아에게 SK의 [실책] 하나는 반전의 기회였다.
    이어진 나지완 선수의 타석.
    결정적인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5대3, 기아가 맹추격을 펼친다.

    이어진 7회 말 기아의 공격.
    한 번 탄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다.
    홈런 한 방을 포함한 타선의 폭발로 결국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9회말,
    나지완 선수의 끝내기 홈런으로 기아는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 ▲ 2009 한국시리즈 7차전 기아와 SK의 경기 9회말 1사 상황 기아 나지완이 끝내기 홈런을 친후 환호하며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2009.10.24 ⓒ 연합뉴스
    ▲ 2009 한국시리즈 7차전 기아와 SK의 경기 9회말 1사 상황 기아 나지완이 끝내기 홈런을 친후 환호하며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2009.10.24 ⓒ 연합뉴스


    [실책] 하나였다.
    실책 하나가 모든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SK가 6회에 범한 실책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1루에 주자가 있고 없고에 따라 투수들이 던질 공이 달라진다.
    다음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다고 한들
    2점짜리와 1점짜리의 무게는 너무나도 다르다.

    더군다나 한국시리즈, 그것도 사활을 건 마지막 7차전이었다.

    지고 있는 팀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하여 수많은 시도를 한다.
    홈런 한 방에 분위기가 뒤집히기도 하지만
    흐름을 끌어 오고, 또 흐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홈런보다 안타로 주자를 모아 놓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어이없는 플레이와 실책은 추격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다.
    자고로 흐름의 싸움이다.

    감독이 심판에게 강하게 어필을 하거나,
    투수가 고의로 타자들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진다는 것 또한
    분위기 전환을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지고 있는 팀은 어떻게든 흐름을 끌어 와야 하고,
    이기고 있는 팀은 어떻게든 상대방의 묘책에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

    [흐름]을 타려는 자와 [흐름]을 거스르려는자 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터가 야구장이다.

    야구공에 실밥이 있는 이유는 공기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공에 실밥이 없다면 공기의 저항이 심해진다.
    홈런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실밥을 손가락으로 감싸 안고 투수들은 공을 던지는 것이다.
    투수들은 야구공에 인위적인 힘을 가하여 공을 휘게 만든다.
    [마그누스 효과]라는 것이 있다.

    야구공의 한쪽 방향으로 회전력을 주면 공기저항을 받아 압력이 높아지고,
    반대쪽은 상대적으로 압력이 낮아진다.

    공기의 압력 차가 발생하면 공이 압력이 낮은 방향으로 휘려는 성질이 발생하고,
    우리가 말하는 변화구가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자연 법칙을 거스르면서 공을 던진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극대화]할 수 있는 투구를 선사하는 투수가 에이스가 되는 것이다.

    악마의 공이라 불리는 너클볼은 공이 회전하지 않게 던지는 공이다.
    회전하지 않게 던진 야구공은 공기의 저항과 부딪히면서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어떻게 공이 날아갈지는 투수도 모른다.
    포수도 어떻게 들어올지 모른다.
    타자는 오죽하랴.
    강타자들도 너클볼은 [치기 보다는 우선 맞추기에 급급하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러한 너클볼 역시 자연의 흐름이 만들어 낸 신기한 결과다.
    야구는 보이지 않는 [흐름]에 가장 충실해야 하는 스포츠인지도 모르겠다.

    타자에게는 [결대로 쳐라]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공이 날아오는 방향대로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테가 뻗어나간 방향대로 나무를 재단하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깎이지만,
    나이테가 뻗어나가는 방향을 무시하고 자르면 흠이 생기는 이치다.

    타자의 몸 쪽으로 파고들어오는 공은 끌어 당겨 치고,
    타자의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볼은 밀어 쳐야 한다.

    방망이를 [툭] 갖다 댄 것 같은 데도 홈런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이 날아오는 흐름의 궤적에 따른 배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힘이 강하다고 하여 홈런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공의 궤적과 방망이의 궤적이 일치해야 하고,
    배트에 힘이 실린 곳에 공이 맞아야 한다.

    방망이가 부러지거나,
    [먹히는 타구](뭉툭한 소리를 내면서 공이 멀리 나가지 않는 경우)는
    공의 흐름과 배트의 흐름이 부조화를 이룬 것이다.

    분위기라는 이름의 흐름에서부터
    그리고 자연의 법칙이 가져다주는 흐름까지.

    야구는 결국 흐름을 잘 타는 팀이 웃을 수 있는 묘한 스포츠다.

    야구는 인생과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자연에는 원리가 있다.

    시장에도 보이지 않는 패턴과 자생적으로 발생되는 질서가 존재한다.
    흐르는 냇물을 바위로 막는다고 한들, 물이 멈춰지지 않는 법이다.

    흐름을 가져오려는 시도들은 인위적인 거스름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흐름]을 내 편으로 가져오려는 노력일 뿐이다.

    결국엔 흐름 속에 나를 맡기고,
    그 안에서 최선의 것을 얻으려는 노력이다.

    흐름의 미학이 담긴 야구.
    오늘은 어떠한 감동이 야구의 흐름 속에서 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