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게이츠가 한국을 방문,
    장순흥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박원석
    한국원자력연구원 소듐냉각고속로 개발사업단장 등 두사람을 만나
    4세대 원전 개발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 ▲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빌 게이츠ⓒ
    ▲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빌 게이츠ⓒ

    빌 게이츠는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도 새로운 원자력 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도 4세대 원전에 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빌 게이츠는
    자선사업과는 별도로 지난 2008년 <테라파워>라는 원자력발전 전문회사를 설립해
    새로운 원전 개발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원전의 열을 식혀줄 냉각제로 기존의 물 대신,
    다른 성질을 가진 액체금속을 채택하는 것이
    4세대 원전 설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 쟁점이다.

    여러 액체금속 가운데 소듐(Sodium) 즉 나트륨(Natrium)을 택한 것이
    <소듐냉각고속로>(Sodium-Cooled Fast Reactor ; SFR)이다.
    반면에 납(Lead)-비스무트(Bismuth)를 채택한 것이
    <납-비스무트냉각고속로>
    (Lead-Bismuth-Cooled Fast Reactor ; LFR)이다.

    SFR은 화재-폭발에 취약하고,
    LFR은 부식-지진에 취약하다는게
    지금까지 지적되는 단점으로 알려져있다.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 SFR에 주목하는 회사다.
    <테라파워>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앞으로 6개월간 SFR 공동개발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타진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SFR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히 존재한다.
    일방적으로 SFR에 매달렸다가 국가적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LFR 기술 개발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게 이런 쟁점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 의견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 말을 검증할 능력도 없는 언론으로선,
    자칫 일부 전문가들의 말에 휘둘릴 위험성도 높다.
    그렇기에 이  논점이야말로 전문가들의 [지적 정직성]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대한민국 미래 에너지의 살 길을 위한 박근혜 정부의 고독한 결단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지도자의 바른 결정을 위해
    언론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왜곡없이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2010년에 나온 글이만 필자의 허락을 얻어 다시 전재한다.
    빌 게이츠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화를 추론해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편집자 주]




    평생을 좌우할 원자력 표준 선택



    강규형 교수 2010.08.19


  • ▲ 강규형 명지대 교수ⓒ
    ▲ 강규형 명지대 교수ⓒ

    인류문명의 전개 과정은 과학기술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과학기술의 역사는 표준을 놓고 벌어진 경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송전방식을 놓고 벌어진 에디슨과
    그의 조수였던 크로아티아 출신의 세르비아인(人) 니콜라 테슬라 사이의 경쟁은 좋은 예다.
    에디슨은 직류를,
    테슬라는 교류를 지지했다.
    우리가 [위인]으로 알고 있는 에디슨은
    이 다툼에서 교류를 무산시키기 위해 온갖 추악한 방해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테슬라의 승리였다.
    인류는 현재도 압도적으로 우월한 교류를 표준으로 사용한다.

    드문 경우지만 꼭 우월한 기술이 표준이 된 것은 아니다.
    비디오 카세트 시장에서 소니가 독점하던 우월한 베타막스 방식이
    반(反)소니연합군의 다소 열등한 VHS 방식에 패배한 것은
    마케팅의 중요성, 그리고 과도한 시장독점 시도 실패의 고전사례로 남았다.
    그러나 두 기술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한국은 41년 전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있어서
    현명하게 올바른 표준을 택해 오늘날 원전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당시 한국 정치·경제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던 유대인 거상(巨商) 사울 아이젠버그는
    영국 회사의 로비스트로서 그 시절 주류 기술이었던 가스냉각로 방식(AGR)을 한국에 강요했다.
    많은 한국의 정치인·과학자들도 AGR을 지지했다.

    그러나 1969년 1월 박정희 정부와 과학·산업계 리더들은 면밀한 검토를 통해
    미국의 가압경수로(加壓輕水爐) 방식(PWR)이 미래표준이 될 것을 간파하고 PWR을 선정했다.향후 AGR을 택하겠다는 각서를 아이젠버그에게 써주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곧 AGR은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AGR을 고집한 영국은 원전 경쟁에서 영원히 낙오됐다.
    그때 한국이 AGR을 택했다면 같은 운명을 걸었을 것이다.

    며칠 전(편집자 주=2010년 8월경) 미국은 올 가을에 시작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한국이 요구하는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에 대해 본격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HLW)을 분리 수거하는 건식정련 기술이다.
    분리된 HLW를 제4세대 고속소각로에서 다시 태우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다시 뽑아내면서,
    독성이 1,000분의 1로 줄어든 중-저준위 폐기물로 바뀌고 부피도 100분의 1로 준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개발하는 기술이지만,
    일말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 때문에 미국이 꺼리던 의제였다.

    그래서 진지한 협상을 예고한 것은
    일단 한국의 평화적 원자력 사용 의지가 부분적으로나마 인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4세대 고속로에서도 두 개의 표준이 존재하니,
    소듐냉각고속로(SFR)와 납-비스무트냉각고속로(LFR) 방식이 그것이다.

    최근까지 한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은 SFR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요즘은 LFR의 장점을 인식하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잠정적으로 두 방식을 병행 발전시키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SFR은 지진에 강한 장점이 있으나,
    화재에 매우 취약해 상용화에 30~40년이 더 걸릴 전망이다.
    SFR을 채택한 러시아는 2년에 한 번꼴로 화재를 겪었고,
    일본의 <몬주> 원자로도 비슷한 문제로 95년 가동을 중단한 후,
    14년5개월 만인 올해 5월에야 재가동됐으나 계속 문제가 생기고 있다.

    반면 화재 위험이 없는 LFR은
    올해 벨기에가 주도하는 EU의 차세대 원자로 <미라>(MYRRHA)에 채택되면서
    급속히 주목받고 있다.
    소형화와 빠른 원자로 건설(2020년 이전 완공 가능)이 가능해
    파이로 프로세싱으로 추출된 재활용가능 HLW를 즉시 소각할 수 있다.
    즉, 플루토늄 추출과 핵무기 전용에 대한 의혹을 잠재울 수 있기에
    대미협상에서도 유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다만 부식과 지진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
    부식방지 신소재 개발과 첨단 내진설계 등으로 취약점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결국 누가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최소화하느냐에 따라 세계적 표준이 세워질 것이다.
    표준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 또는 몇 세기의 향방을 결정짓기도 한다.
    한국이 주도하는 평화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원자력 기술에 대한 표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40여 년 전 슬기롭게 경수로 방식을 택한 원자력 선구자들이 보여준 지혜를 발휘할 시점이다.
    (필자는 <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 국제협력위원장이다.)

    <중앙일보> 기고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