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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간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김광일 /조선일보 논설위원 -
아들이 군인이다. 북위 37˚90′쯤에서 근무한다. 어쩌다 주말이면 부대 공중전화로 목소리를 들려준다. 목소리가 씩씩하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아들이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요즘 분위기 탓에 애틋하다.
우리는 전화기를 붙들고 서로 고함을 친다. 대화 내용은 평범하다. 일부러 평범하게 한다. 날씨나 음식, 친척들 이야기를 한다. 보름쯤 뒤 면회를 가겠다고 말해준다. 아들은 감사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말한다. 군대식 대화법이 몸에 뱄나 보다. 전화인데도 물을 때 '~까?' 하고 말하고 대답은 항상 '~다'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북한 위협 따위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초토화, 불바다' 같은 말도 하지 않는다. 구태여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아들 목소리가 우렁차고 힘이 있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태평성대였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사내들끼리 불끈 솟는 근육질 유대감을 느낄 때도 있다.
주변에 유별나게 형제가 많은 집안이 있다. 그런 집일수록 ROTC 장교로, 사병으로 모두 군 복무를 마쳤다. 조카들도 군의관으로 현역병으로 다들 군 복무를 했다. 우리는 명절에 만나도 군대 얘기는 잘 하지 않았다.
작은아들은 아직 어리다. 학교에서 돌아와 묻는다. "아빠, 전쟁 일어나요?" 나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대답해준다. 우리가 싸우는 실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그럴 일 없다고 말해준다. 나는 전쟁 전문가가 아니다. 잘 모른다. 전문가도 전세(戰勢) 파악이 틀릴 수 있다. 작은아들에게 "그러나 전쟁을 두려워하면 전쟁에서 진다"고 말해준다. 작은아들에게 상무(尙武) 정신을 심어주고 싶다. 화랑 관창과 계백장군 얘기도 들려주고 이스라엘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찾아서 공부해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국경을 맞댄 무장 단체들이 로켓 포탄을 퍼붓고 있는 곳으로 아들딸을 군대 보낸다. 이스라엘 부모는 군대 간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라고 항상 일사불란하게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건 아니다. 후회도 한다. 군 복무를 면하려고 꾀부리는 젊은이도 있다. 그들은 솔직하고 평범하다. 평범함 속에서 힘이 나온다.
우리는 올해 자원입대가 늘어나고 있다. 어느 지방 병무청은 올 1~3월 자원입대자가 지난해보다 25.4%나 늘었다고 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때도 해병대 지원자가 급격히 늘었다. 위기 때마다 든든한 일이다.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 새 정부 출범 두 달째다. 새 정부를 이끌고 갈 고관들 인사청문회도 얼추 끝났고 장관 진용(陣容)도 거의 갖췄다. 병역 면제, 위장 전입, 전관예우, 탈법 증여,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다운계약서 같은 온갖 구린내 나는 목록을 한동안 듣지 않아도 될 듯싶다.
외국인이 보면 한국인은 다들 그분들처럼 그러고 사는 줄 알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보통 사람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지 않는다. 자원입대하는 자식을 안아주고 격려해주는 보통 아버지가 99%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강한 나라다.
지금 전쟁 위험을 겁낼 건 아니다. 해군작전사령관을 지낸 분이 말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국 군사력이 '장닭'이라면 북한 군사력은 '병아리' 수준이라고. 그 말을 믿는다.
나도 위기 상황일 때 군 복무를 했다. 군화를 벗지 못한 상태로 취침하는 밤이 몇 달이고 계속됐다. 나는 아들이 씩씩해도 좋고 조금쯤 투덜대도 좋다. 투덜대야 건강하다.
(조선일보 [김광일의 태평로] 2013.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