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의 외교안보통일 분야 ‘컨트롤 타워’ 역할 맡을 듯現위기관리실-외교안보수석실 통합 가능성도 슬며시 나와
  • 인수위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에 따라 다양한 이슈도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청와대 ‘국가안보실’ 신설계획이다.

    윤병세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은 8일 오후 서울 삼청동 금융원수원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국가안보실)의 구성, 기능 역할 등에 대해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대선공약 때 말씀드린 대로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가 청와대에 필요하다고 해서 큰 틀에서 기존의 외교안보기능 보다 향상된 기능과 구조가 설치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


    윤창중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도 ‘국가안보실’에 대해 언급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외교국방통일분과에서 검토해 인수위 협의와 최종 보고 등 절차를 거쳐 확정해 나가게 될 것이다.”


  • ▲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때부터 눈길을 끈 청와대 지하벙커. 위기관리실이 관리한다.
    ▲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때부터 눈길을 끈 청와대 지하벙커. 위기관리실이 관리한다.

    ‘국가안보실’은 박근혜 당선자의 대선공약 중 ‘미래창조과학부’ 신설과 함께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지난 정부들과 안보전략이 어떻게 달라질 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통일부가 외교안보전략을 이끌었다.
    통일부 장관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수석부의장을 맡았고, 통일부는 자체적으로 ‘정보국’까지 갖췄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 내에 대외전략비서관과 2010년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확대된 ‘위기관리실’이 있었지만 전반적인 안보전략은 외교부 출신들이 주도하다시피 했다.

    때문에 박근혜 당선자의 ‘국가안보실’이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를 놓고 ‘전문가’와 정치권에서는 희망 섞인 예측들을 내놨다.
    대표적인 두 가지가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내 NSC 사무처의 재건’과 ‘장관급 거대기구 편성’이다. 


  • ▲ 2011년 5월 작전명 '제로니모(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 중계를 보기 위해 백악관 주요 관계자들이 워룸(War Room)'에 모였다. 노무현 정권도 이런 모습의 '안보기구'를 원했지만 실패했다.
    ▲ 2011년 5월 작전명 '제로니모(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 중계를 보기 위해 백악관 주요 관계자들이 워룸(War Room)'에 모였다. 노무현 정권도 이런 모습의 '안보기구'를 원했지만 실패했다.



    ‘북한에 다 퍼줘도 남는 장사’라는 말까지 했던 노무현 정권은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이 목표 아래 청와대와 통일부를 뒤에 업고 ‘총괄 조정 역할’을 맡았던 곳이 청와대 NSC 사무처였다.
    이때 ‘실세’라는 표현이 붙기도 했다.

    노 정권 시절 NSC 사무처장으로 유명한 사람이 이종석 前통일부 장관이다.
    이 前장관은 세종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親盧인사들과의 인연으로 NSC 사무처장을 거쳐 장관이 됐다.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여론의 비판으로 물러났다.

    ‘국가안보실이 장관급 거대기구가 될 것’이라는 말은 정치권과 언론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한 말이다.
    ‘국가안보실’이 현재의 청와대 위기관리실(수석급)과 외교안보수석을 총괄하려면 ‘장관급’이 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아쉬운 건 언론이 전하는 ‘예측’ 중에 ‘미래안보’나 ‘국가안보 역량강화’를 위한 내용은 보기 드물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국내정치에 필요한 ‘정무적 제안’ 뿐이다.


  • ▲ 1979년 6월 방한한 카터 당시 美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했다. 이를 막는데 박근혜 당선자의 공이 컸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회담 모습.
    ▲ 1979년 6월 방한한 카터 당시 美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했다. 이를 막는데 박근혜 당선자의 공이 컸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회담 모습.



    때문에 이런 ‘예측’들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거나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싫어하는 박근혜 당선자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예상과는 다른 모습의 ‘국가안보실’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국가안보실’의 구성은 20대 때부터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으며 1979년 6월 ‘박근혜-카터 회담’이라는 성과를 이끌어 냈던 박근혜 당선자의 국가안보전략 밑그림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