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창중 칼럼세상>  

    박정희 부관참시 또 들고 나온 문재인


  • ▲ 윤창중 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 윤창중 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그래, 잘 들고 나왔다. 문재인, 그가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어제(2012년 11월28일) 부산에서 또 ‘유신 독재론’을 들고 나왔다. “5·16 군사 쿠데타, 유신독재 세력의 잔재를 대표하는 박근혜 후보가 독재를 찬양하고 미화한 역사인식으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느냐.”  

    이미 33년 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박정희를 또다시 환생시켜 ‘박정희 과거사’를 대선 막판 쟁점으로 부각시키려는 기도!  

    이미 두 달도 넘는 9월24일, 박근혜가 기자회견을 갖고 아버지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정치에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아버지 박정희’를 거침없이 밟고 지나가는 결별식을 가졌는데도.  

    다시 박근혜의 말을 재생해 본다.

    “60~70년대 보릿고개의 절대빈곤과 북한의 위협 속에서 경제발전을 이루고 국가안보를 지킨 기적적 역사의 뒤편에서 노동자들의 희생, 국가안보를 지켰던 이면에 공권력이 인권을 침해했다.” 


    그럼에도 문재인이 또 ‘박정희 부관참시’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

    문재인 입장에선 안철수의 예상 못했던 사퇴로 박근혜가 승기(勝機)를 잡은 걸로 보이니 급한 나머지 다시 과거사를 꺼낸 것!  

    문재인, 그가 과연 유신독재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그가 ‘유신’에 대해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는지 하나하나 열거하겠다.
    그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 기록된 사실들을 중심으로.  

    그가 1972년 경희대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응시한 게 언제?
    그는 자서전에서 “대학 재학 중 3학년 겨울 방학 때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한번 합격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한다.(‘문재인의 운명’ 169쪽)  

    1975년 겨울?
    유신헌법이 발표된 게 1972년 10월17일!
    유신헌법이 시행된 지 3년 넘게 흐른 시점에서, 문재인은 유신헌법을 달달 공부해 1차 시험에 합격한 것!  

    그럼 그토록 증오하는 유신시대에 왜 유신헌법을 공부해 판·검사 되려했나?
    문재인,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왜 유신체제에 부역하기 위해 판·검사 되려했고, 지금은 왜 유신독재를 비난하는지.  

    문재인은 그후에도 사찰을 돌아다니며 유신헌법 공부에 매진한다.

    “긴장을 유지하려고 일부러 몇 달에 한 번씩 장소를 옮기곤 했다.”

    그 때의 고생담을 늘어놓다가 “1979년 초 사법시험 1차에 합력했다”고 감격해한다.  

    그러다가 1980년 4월 제22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쳤다.
    그 때도 헌법은 유신헌법!
    그런 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내와 함께 강화도에 있는 장인의 농장에 놀러갔다가 학내시위로 구속돼 유치장에 들어간다.  

    문재인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기록한 이 대목은 안철수가 군대 가는 날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대목과 어쩜 그렇게 비슷한지. 들어보자.

    “구속된 지 이십삼, 사일쯤 됐을까, 뜻밖의 낭보를 받았다. 반가운 소식을 가장 먼자 들고 온 사람은 아내였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무렵 합격자 발표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1975년 1차 시험에 첫 합격한 뒤 5년 동안이나 사찰 돌아다니며 공부했던 2차 시험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다음 얘기는 더 웃긴다.
    얼마나 사시 3차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는지. 그 때 경희대 출신으로 2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단 두명 뿐, 그래서 경희대 학생처장, 법대 동창회장 등이 구속된 문재인을 구명해 무난히 3차 면접시험에 합격시키기 위해 벌인 노력들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마침 그때 경희대 대학원장이 육사 1기 출신 김점곤 교수였다. 한국전쟁 때 평양에 제일 먼저 진입한 연대장으로 전사(戰史)에 기록된 분이다. 그 분이 중대장일 때 육사 2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밑에서 소대장을 했다고 한다. 그분이 계엄사 쪽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는 말을 들었다. 석방은 아마 그 덕택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특별수사본부의 ‘참고인’도 끝났고, ‘계엄포고령위반’ 조사도 유야무야됐다.” 

    계엄사에 ‘빽’을 써서 풀려나 3차 시험에 합격!
    문재인은 회고한다,
    “다행히 최종 합격했다”고!

    그 어렵다는 2차 시험에 합격한 이유를 들어보면 기도 안찬다.

    “나는 ‘헌법과목’에서 거의 최고득점을 했다. 그것으로 나머지 과목의 낮은 점수를 만회해 간신히 합력할 수 있었다.” 

    ‘헌법과목’?
    유신헌법 아닌가!

    문재인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판사가 되길 원했지만 “시위 전력으로 결국 판사 임용이 안 돼 변호사의 길로 나서게 됐다”고 애석해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 길목에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게 됐다.” 

    이런 위선자들이 다 어디 있나?

    박정희가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 잃어버린 청년이 만주군관학교 나온 걸 트집 잡아 친일파로 매도하고 있는 이들!

    자기네들은 유신체제에 부역하는 판·검사로 들어가 인생역전하려했던 노무현, 그의 아바타 문재인이 또 대선판에 유신체제를 끌어들여 박정희를 부관참시하고 있는 이 이중성과 위선을!
    딴 소리 하는 이들을!

  • ▲ 윤창중 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
    정치 칼럼니스트/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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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naver.com/cjyoon1305

    정치부기자 30년.
    그 중 14년을 정치담당 논설위원, 논설실장으로 활동한 정치 전문 칼럼니스트.
    정치 외교 안보 분야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다.
    청와대 외교부 정당 등 권부를 모두 취재했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독특한 문체와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대한민국의 퓰리처상이라는 서울언론인클럽 칼럼상 수상.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자문위원 공직자 윤리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