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ㅡ정치광신도 김광진: 군중연구가의 분석

    넘치는 자유와 행복을 감당 못하는 군중인간의 깽판질

    조영환 /올인코리아 편집인
     

  • 김광진과 같은 패륜적이고 자기파괴적이고 반란적인 정치광신도(political fanatics)는 왜 탄생될까?
    왜 졸부는 자기무덤을 파는 좌익선동꾼이 될까?
    김광진과 같은 광신적 군중인간은 이미 서양의 군중연구가들에 의해 충분히 분석됐다. 다만 서구사회에는 전체주의적 군중운동이 공산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종식되었는데, 한국사회에는 김대중-노무현 추종 좌익분자들에 의해 아직도 기존체제를 전복하려는 군중선동이 지속되고 있다.

    김광진과 같은 패륜적이고 반란적인 군중인간은 바로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의 군중선동 본색을 증거한다. 김광진을 모범청년으로 국회의원에 영입한 민주통합당은 바로 패륜과 반역의 주체세력이기 때문에, 김광진을 모범청년으로 취급한 것이다. 유유상종이라고, 김광진이나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나 같은 부류의 김대중-노무현 추종자(follower)들이다. 기만과 억지와 깽판의 화신인 김대중과 노무현은 수많은 ‘김광진’들로 한국 정치판에 부활한 것이다. 문재인, 박지원, 안철수 등등으로...

    아래에 자기의로움(self-righteousness)에 빠진 정치적 광신도(political fanatics)의 본질을 파헤친 군중연구가들의 분석들을 소개한다. 이들을 통해서 김광진은 물론이고, 그를 감싸고 있는 좌익진영의 속성까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이 지금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좌익선동극은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식적인 자해극에 불과한 것이다. 김용민, 이종걸, 천정배, 박지원 등의 패륜적이고 반란적이고 반역적인 언행은 먼저 그들의 존립을 허물고, 대한민국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하는 망국적인 자멸극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한국사회에 활착시킨 좌익세력의 군중선동은 자신과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멸의 속성을 띠고 있다. 이런 자멸적 군중선동은 공산주의나 전체주의가 번성할 때에 통하던 통치방식인데,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에 의해서 21세기에 한국사회에 부활했다. 해방전후상황으로 대한민국을 되돌리기를 꿈꾸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이념전쟁은 지금도 좌익야당과 좌익단체들에 의해서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좌익군중운동의 속송을 군중연구가들을 통해서 살펴보자.

    군중운동 연구의 대가인 오르테가 가세트는 “완전한 직접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초청할 것이다. 군중현상은 무자격자들에 의한 주권행사 혹은 민주적 폭군(democratic tyranny)의 지배를 말한다. 지식인(귀족)의 군중(천민)화와 군중(천민)의 지식인(귀족)화가 군중사회에는 일어난다. 무식한 자가 완벽한 지식을 자랑하는 배운 무식장이(learned ignoramus)가 나타나서 지적 교만을 부린다. 공중(public) 혹은 엘리트는 집단에 헌신하면서도 자신의 개체성을 유지하는데, 군중은 집단에 자신의 개체성을 자진해서 포기하는 순응주의자(자발적 노예)이고, 군중은 남에게 부화뇌동하는 게으른 다수의 쭉정이 인간들이다. 민주주의에 무자격자들이 소수의 엘리트들의 역할을 차지한 군중현상이 이 시대의 새로운 병리적 현상이다(the revolt of masses, p. 14-17, 요약)”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자신이 대심문관이 되어서 백선엽 장군을 ‘민족반역자’라 하고, 어버이연합을 ‘곱게 늙어 처먹으라’고 일갈한 김광진의 교만과 무지와 천박함이 연상되지 않는가?

  • ▲ 오르테가 가세트(Ortega Y Gasset, Jose. 1883~1955 /스페인 사상가)
    ▲ 오르테가 가세트(Ortega Y Gasset, Jose. 1883~1955 /스페인 사상가)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인간은 이 세상은 풍요하고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승리감에 도취된 인간이고, 자신의 도덕적, 지적 능력은 완벽하기 때문에 외부의 간섭이나 충고도 필요 없는 이 세상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인간이고, 자신의 항상 우월한 ‘천박한 관점’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직접적인 행동을 할 왕과 같은 인간이라고 착각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군중인간은 원시적 야만인에 불과한 천박하고 미개한 수준의 정신의 소유자로서 사회의 기존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문명파괴적 인간(the revolt of masses p. 107)”으로 오르테가 가세트는 봤다.


    군중인간은 현대문명의 혜택을 가져온 과학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혜택을 가장 공짜로 누리면서 자유로 불평불만만 하는 부도덕한 부자집 유산상속자의 심보를 가지고 있어서, 본질적으로 천박하다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분석했다. 백선엽 장군에게 '민족반역자'라고 대들고 어버이연합에게 '곱게 처늙어라'고 대드는 패륜적인 김광진이 연상되지 않는가?

  • ▲ 김광진 막말 패러디.
    ▲ 김광진 막말 패러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책임을 중시하는 전통적 민주주의에서는 법치를 존중하는데, 과잉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군중인간은 법치를 파괴한다(the revolt of masses p. 18)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봤다.
    민주주의와 기술과학문명으로 너무 풍요해진 군중들이 소수의 엘리트들의 역할인 정치, 판결, 입법 등에서 통치자의 행세를 하는 것이 ‘무자격자의 주권행사’처럼 군중선동정치를 가능케 한다(the revolt of masses p. 24-25)는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을 ‘자신에게 이렇게 자유와 풍요를 선사한 국가와 국민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패륜적 속성의 인간쓰레기들'”이라고 비판했다.

    가세트는 입만 열만 ‘미래주의’를 떠벌이는 진보주의자들은 사실상 어제의 입장에서 아무런 모험이나 도전도 하지 않고 내일을 고정적으로 판단하는 내일이 없는 가장 게으른 군중인간으로 봤다(the revolt of masses p. 49). 군중인간은 삶의 목표가 없고 시류에 떠다니는 부이와 같다고 평한 오르테가 가세트는 게으르고 냉소적인 군중인간을 문명의 기생충이라고 혹평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16). 김광진과 같은 좌익군중인간이 연상되지 않은가?

    유럽사회에서 군중이 엘리트를 정복하고 문명을 야만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보일 때에, 헤겔은 묵시론적으로 “군중은 앞으로 내몰린다”고 말 했고, 오그스트 콩트는 “군중이 설치는 시대에 새로운 정신혁명이 없으면, 인류는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고, 니체는 “나는 니힐리즘의 홍수 파도를 봤다”는 말을 했다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소개했다(the revolt of masses p. 59).

    오늘날 한국사회에 군중선동세력이 설치는 것을 보면서, 파시즘이나 볼세비즘이나 문화혁명이나 월남패망을 경고하는 역사가들은, 오르테가 가세트가 주장한 것처럼, 예언자에 속할 것이다.

  • ▲ 2002년 6월 일본에 간 김대중-이희호 부부가 일본왕 아키히토와 함께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 그 전날 서해 연평해전에서 북한군 공격에 우리해군 참수리호가 침몰되고 국군6명이 전사했다. 남침정보를 무시하고 '먼저 쏘지말라'는 교전수칙때문이었다.
    ▲ 2002년 6월 일본에 간 김대중-이희호 부부가 일본왕 아키히토와 함께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 그 전날 서해 연평해전에서 북한군 공격에 우리해군 참수리호가 침몰되고 국군6명이 전사했다. 남침정보를 무시하고 '먼저 쏘지말라'는 교전수칙때문이었다.

    군중을 선동해서 한국사회를 정치적 광신도들의 아지트로 만드는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망가뜨리는 문명파괴세력이 될 것이다. 김광진은 자유대한민국을 파괴하는 김대중-노무현 세력의 아이콘이다.

    자유대한민국이 보장하는 자유와 번영과 안보가 복에 겨워서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충동에 휩싸인 자가 바로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의 정치광신도 김광진이다. 자신과 나라를 파괴하는 망국의 광기에 김광진은 사로잡힌 것이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방자하고 게으르고 공짜스러운 군중들이 현대사회에서 대세를 이루면서 국가를 그들의 여론으로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여론을 조성하는 선동기관들이 이런 무책임하고 파괴적인 군중인간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면, 국가공동체는 붕괴될 수 있다. ‘군중인간이 지배하는 정치는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라고 지적(the revolt of masses p. 146)한 오르테가 가세트는 “너무 풍부해져서 왕보다 더 풍족한 물질과 여유를 누리는 현대인들은 무의미성에 시달리면서 사실은 자살할 정도로 파괴적인 상태에 빠져있을 수 있음(the revolt of masses p. 148)”을 경고했다. 가세트는 이런 무책임하고 파괴적인 군중인간들에게는 정상적인 권위를 가진 명령기관(정부)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김광진이나 박지원은 대한민국의 정부나 법치가 붕괴되었음을 상징한다. 법치와 예절이 권위를 가진다면, 민주통합당의 패륜적 좌익광신도들은 정치판에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정상적 권위를 가진 정부나 풍토가 사라진 한국사회의 병리증성을 김광진이 체현(embody)한 것이다.

  • ▲ 2002년 6월 일본에 간 김대중-이희호 부부가 일본왕 아키히토와 함께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 그 전날 서해 연평해전에서 북한군 공격에 우리해군 참수리호가 침몰되고 국군6명이 전사했다. 남침정보를 무시하고 '먼저 쏘지말라'는 교전수칙때문이었다.

    “독재자가 선동가를 척결하는 경우는 그나마 군중선동가에게 정부와 국민이 먹힌 나라에 비해서 훨씬 더 다행이라는 사실(the revolt of masses p. 153)”을 오르테가 가세트는 지적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얼마나 민주주의 수호에 필요한 정치지도자인지를 가세트는 알고 있는 것이다. 한번 정부의 지배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군중은 패륜과 반란에 자신감을 얻어서, 파괴충동에 휘둘리면서 이기심의 미로에 빠져 헤매게 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정부가 군중을 제압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패륜적이고 파괴적임을 오르테가 가세트는 지적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54). 김광진은 과잉 민주주의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파괴적이고 적대적인지를 잘 증거하는 상징이다. “정상적으로 명령하고 정상적으로 복종하는 것보다 더한 자유와 행복을 국가는 줄 수 없다(the revolt of masses p. 157)”고 가세트는 주장했다. 패륜적이고 반란적인 행동에서만 행복을 찾으려는 군중인간 김광진에게 권위적 정부나 예절은 진정한 힐링이 될 수 있다. 김광진은 군중인간의 병리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가세트는 군중은 아무런 권위나 외부인의 충고나 도움도 필요하지 않는 완전한 자족적 인간이라고 착각해서 이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교만한 인간이라고 봤다.

    군중인간은 이렇게 풍요한 문명이 누군가의 천재적 노력에 의해 달성된 것에 대한 최소한의 감각이나 감사가 없이 공짜로 군중의 특혜만 누려야 한다고 외치는 싸가지 없는 공짜쟁이라고 봤다. 그 결과 극단적인 경우에 유리창을 깨고 빵집에서 빵을 약탈해 먹어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을 정도로 이 세상에 구축된 문명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부자집 망나니와 같은 웰빙족이라고 봤다(the revolt of masses p. 65).

    그는 현대의 군중들은 너무 풍요해서, 자족감에 빠진 군중들은 원시적이고, 야만적이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갈 저주에도 동시에 직면했다(the revolt of masses pp. 108-111)고 분석했다. 김광진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여자를 미혹하는) 글을 보면, 삶의 무의미성에 시달린 흔적이 나타난다. 일하지 않고 물려받은 부를 감당하지 못하는 졸부는 삶의 무의미성에 시달리면서, 타락한 생활에서 의미를 찾게 된다.

    군중인간은 무엇이든지 다 자기 뜻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인간이고, 그 결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천박한 사회의 기생충으로 전락하고도 수치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누려야 한다고 공동체에 강요하는 폭군이라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봤다.

    군중은 주어진 웰빙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려고 하면서 문명의 원칙을 무시하고 이 세상의 이치에 무지하는 고집불통의 부자집 망나니인데, 아무리 높은 귀족의 자녀라고 문명에 감사가 없고 자신을 계발하지 않고 자기교만에 빠진 고집불통은 군중이지 귀족이 아니다(the revolt of masses p. 73)라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말했다.

    “내 안에 완벽한 대답을 가지고 혼자 고립되어 은둔하다가 갑자기 직접적 행동(폭력)으로 자신의 고집을 공동체에 강요하는 극단적 이중성을 군중은 보여준다(the revolt of masses pp.75-)”고 그는 말했다. “군중은 은둔자와 선동꾼의 양면은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반성하고 개선할 초월적 전통이나 규범이나 권위가 없다”며, 군중의 급작스러운 폭력성을 오르테가 가세트는 지적했다.

    군중들의 토론이 없는 직접적 의사표현(폭력행사)은 문명을 파괴하게 된다.
    군중은 사회적 제약, 기준, 예절, 간접적 소통방식, 정의, 이성 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오직 단순화된 구호를 사회적 난제의 해답으로 강요한다(the revolt of masses p 82)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주장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복합성의 애매성을 깊이 고려하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배려와 타협이 가능하지만, 군중인간은 확정적 단순해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단으로 점거해서 농성과 시위를 하는 것만이 해결의 방식으로 알고 있는 체질적 극단주의자들이다.

    자기열등감과 자기확신감을 마음에 동시에 품은 군중인간은 남에 대한 공평한 배려가 없고 굴종하지 않으면 군림한다. 군중현상이 만연된 곳에서는 토론과 타협이 사라지고 쇠파이프를 던 폭도가 문제의 가장 확실한 직접적 해결사들이 된다고 주장한다(the revolt of masses p9. 82-2). 지금도 ‘광우병 촛불폭동’이나 ‘희망버스’ 등 야간 군중폭동을 ‘국민의 직접 민주주의’라고 지금도 우기는 좌익선동꾼들은 북한과 같은 좌익전체주의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좌익혁명을 기도했다.

  • ▲ 2002년 6월 일본에 간 김대중-이희호 부부가 일본왕 아키히토와 함께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 그 전날 서해 연평해전에서 북한군 공격에 우리해군 참수리호가 침몰되고 국군6명이 전사했다. 남침정보를 무시하고 '먼저 쏘지말라'는 교전수칙때문이었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기술과학의 발달이 원시적 군중인간을 만들어내는 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the revolt of masses pp. 85-96)와 혁명이 어떻게 원시적인 군중인간을 만들어내는지(the revolt of masses pp. 97-105)에 대해서도 서술했다.
    과학기술은 전문화를 통해서 야만족 군중을 만들어낼 수 있고, 혁명은 문명을 파괴함으로써 야만적 군중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과학자가 자기교만에 빠져서 세상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최악의 무지하고 부도덕한 군중인간이 된다. 그리고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는 개인을 집단에 노예로 전락시키고 문명 자체를 붕괴시키면서 인간을 원시적 상태의 야수로 만들 수 있음을 그는 지적했다. 그는 군중은 체질적으로 수구적이고, 대부분의 혁명은 문명을 원시상태로 전락시키는 퇴보운동이라고 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01). 좌익세력의 군중선동이 작동되는 곳에서는 야만적 패륜과 원시적 독재와 무법적 혼란이 만연하게 된다.

  • ▲ 2002년 6월 일본에 간 김대중-이희호 부부가 일본왕 아키히토와 함께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 그 전날 서해 연평해전에서 북한군 공격에 우리해군 참수리호가 침몰되고 국군6명이 전사했다. 남침정보를 무시하고 '먼저 쏘지말라'는 교전수칙때문이었다.

    대중 세력이 말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를 가장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좌익 전체주의를 뜻한다.




    오르테가 가세트에 의하면, 왕조사회가 무너지면서 황제로 등극한 군중의 횡포가 민주주의와 과학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어떤 권위나 진실이나 공동체도 준중하지 않는 군중인간을 만들었고, 그 예로써 파시즘과 볼세비즘을 들었다. 그는 특히 과학주의가 지나친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전문가가 만물박사가 되면서 보여주는 교만과 무지가 몰고 올 낳은 군중사회도 경계했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의 속성은 바로 극단주의라고 했다(extremism as a form of life), Man and Crisis). 어떤 결정적 기회가 되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모든 복합적인 조건을 단순화시켜서 자신이 오직 유일한 구세주인양 모든 것을 투신하여 싸우다가 좌절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주의자가 바로 오르테가 가세트에게 군중이다. 변두리에 있을 때에 극단적으로 현실을 부정하다가 중심에 접근하면 극단적으로 현실을 장악하려는 것이 군중의 이중성이다. 김대중-노무현 추종 좌익세력은 극단적으로 평화나 민주를 외치지면, 그 이면에는 극닥적으로 폭력적이고 독재적이다.
  • ▲ 2002년 6월 일본에 간 김대중-이희호 부부가 일본왕 아키히토와 함께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 그 전날 서해 연평해전에서 북한군 공격에 우리해군 참수리호가 침몰되고 국군6명이 전사했다. 남침정보를 무시하고 '먼저 쏘지말라'는 교전수칙때문이었다.

    에릭 호퍼는 “좌절과 소외에 시달리는 마음(the frustrated mind)을 가진 군중은 모든 것을 자신이 신봉하는 망상을 위해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사회적으로 좌절된 군중은 기존체제를 타도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확신범이 되고, 그 군중에게 도덕적 성실성(moral integrity)은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보통 세속인들은 합리적 계산에 따라서 악과 타협하기도 하고 고통을 피해 도망도 가지만, 확신을 가진 군중인간은 목숨을 던져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용사가 된다고 그는 봤다.

    에릭 호퍼는 종교적 사고방식(희망과 신앙)이 광신적 군중을 키우는 싹이라고 봤으며, 지나친 환상이 없고 자신의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자족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군중인간을 치료하는 것으로 봤다. 에릭 호퍼는 헛된 꿈을 믿는 광신도가 아니면, 좋은 꿈을 믿는 신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환상을 쫓지 말아야 파괴적 군중인간이 되지 않는다’고 처방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거짓 환상인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대선후보자들은 거짓 꿈을 추구하는 망상적 군중인간들이다.

  • ▲ 2002년 6월 일본에 간 김대중-이희호 부부가 일본왕 아키히토와 함께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 그 전날 서해 연평해전에서 북한군 공격에 우리해군 참수리호가 침몰되고 국군6명이 전사했다. 남침정보를 무시하고 '먼저 쏘지말라'는 교전수칙때문이었다.

    구스타브 르 봉은 ‘자신의 개성을 잃고 집단에 휩쓸리는 익명의 인간을 군중’으로 봤다. 그는 군중을 ‘얼음이 투명하기 때문에 유리가 녹을 것으로 믿는 궤변자’들로 봤다. 군중은 변증법적 논리나 합리적 설명 대신에, 일방적 프로파간다를 훨씬 더 선호한다고 르 봉은 봤다.
    진리를 오류로부터 구별할 비판정신을 소유하지 못한 군중인간은 예속감정의 노예라고 그는 봤다.
    르 봉은 “군중은 우상이 암시하는 단순성과 과장성에 중독되어 광신적 희생을 하기에, 군중인간을 미혹하려는 정치종교지도자는 절대적 확신과 위엄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과장하고, 주장하고, 반복하고, 비합리적으로 우기는 것이 정치선동가의 논쟁방식이다.

    군중선동가는 군중에게 ‘신비적 의식(mystique consciences)'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군중은 절대 복종하면서 열광주의(enthusiasm)에 빠진다”는 취지의 주장도 한다. 군중은 군중선동가의 신비주의적 기만과 암시에 미혹되어 반지성적 폭도가 되기에, 사실(reality) 보다는 현상(appearance)에 의존하는 피상적 판단자가 된다고 르 봉은 봤다.

    “한 문명의 근간을 이루던 도덕적 세력들이 그 위력을 상실하면 그때부터 이른바 야만족으로 알려진 무의식적이고 사나운 군중이 등장하여 그 문명을 최종적으로 해체시켜버린다(군중의 심리 P. 30)”고 르 봉은 주장했다. 그는 “문명들을 창조하고 지도한 자들은 오직 소수의 지식귀족들이었지 결코 군중은 아니었다. 군중은 오직 파괴력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군중의 규칙은 언제나 야만적인 수준에 머문다. 스스로를 방치하는 군중들은 이 모든 조건을 실현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실로 입증했다(군중의 심리 P. 32)”며 군중인간의 무능함과 파괴성을 지적했다.

    르 봉은 “한 문명의 구조가 썩으면 그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군중이다. 하지만 군중은 파괴의 힘만 강하다”고 봤다. 그는 “군중은 의식의 개성이 소멸되는 경향, 무의식의 개성이 우위를 점하는 경향, 감정과 생각이 암시에 걸리고 전염됨으로써 동일한 방향으로 집중이 되는 경향, 암시된 생각이 직접 행동으로 이행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군중의 심리 P. 53)”고 갈파했다.

    김광진은 사실상 좌익세력의 집단의식에 전염된 정치적 광신도일 뿐이다.

  • ▲ 구스타브 르 봉(Gustav Le Bon, 1841~1931 /프랑스 사상가)
    ▲ 구스타브 르 봉(Gustav Le Bon, 1841~1931 /프랑스 사상가)

    르 봉은 “군중은 충동성, 과잉반응성, 추론력 결핍, 판단력과 비판정신 부재, 과장된 감정표현을 포함하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군중의 심리 P. 58). 군중의 편협성, 독재성, 보수성. 군중은 오직 단순하고 극단적인 감정들만 인식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암시된 견해, 사상, 신념을 전체로 뭉뚱그려 수용하거나 거부하고, 절대적 진리로 여기거나 절대적 오류로 치부해버린다(군중의 심리 P. 83)”며 “독재성과 편협성을 군중에게 일단 부과되면 군중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들을 실천으로 옮기며 기뻐하기까지 한다(군중의 심리 P. 85)”고 주장했다.

    르 봉은 “군중은 세속적 유습들의 영향력에 너무 깊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극도로 보수적(수구적)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무한한 자유를 선사해도 그들은 그런 무질서를 금방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본능적으로 노예상태로 돌아간다(군중의 심리 P. 86)”고 지적했다.

    오늘날 진보를 앞세운 한국의 좌익세력이 얼마나 수구적 군중인간들의 패거리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하나다. 좌익세력의 대선후보자들은 원탁회의와 같은 좌익사령탑의 명령에 완전히 굴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군중은 환상과 이미지를 추구하지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군중을 상대로 설득을 하려는 정치인은 개념보다는 이미지를 줘야 한다.
    군중은 언제나 환상의 창조자에게 더 많은 신전과 동상을 만들었다(군중의 심리 P. 166)”고 전체주의적 군중선동술을 지적한 구스타브 르 봉은 “군중은 환상을 선사할 군중선동가를 마치 불을 찾는 불나방처럼 본능적으로 찾아나선다(군중의 심리 P. 20). 군중은 결코 진실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시험하지 않을 증거들은 외면하지만, 자신들을 유혹하는 오류들이라면 무조건 존경하고 신성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에게 환상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들의 지배자가 될 수 있디. 그러나 그들의 환상을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들의 희생물로 전락하고 만다(군중의 심리 P. 169)”며 군중인간들의 체질적 허구성과 기만성을 지적했다.


    김대중-노무현 추종 좌익세력은 평화나 복지와 같은 몽상한 구호를 앞세워서 불나방 같은 군중인간들을 미혹해서 환상의 불길 속에 던져버리는 악마적 군중선동세력이다.

  • ▲ 구스타브 르 봉(Gustav Le Bon, 1841~1931 /프랑스 사상가)

    군중지도자는 이성적 논리보다 감성적 호소에 의존함을 르 봉은 주목했다. “행동가형 지도자들은 주로 병적이리만치 신경질적이고 성마르며 이따금 발광도 하는 미치광이와 거의 흡사한 인간들 중에 배출된다”고 르 봉은 주장했다. “그들이 신봉하는 사상이나 추구하는 목표가 아무리 부조리해도 그들의 확신은 너무 강력해서, 어떤 이성적 논리도 그들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군중들은 강력한 의지를 지닌 사람의 말을 언제든지 끝까지 경청한다(군중의 심리 P. 179)”며 정치광신도가 된 군중인간의 행동방식을 지적한 르 봉은 “군중을 미혹하는 열광적인 선동가는 먼저 자신의 신념에 홀려야 한다. 군중은 노예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로 삼을 강력한 확신이나 의지나 폭압이라도 있어야 한다(군중의 심리 P. 183) 군중선동가는 확언, 반복, 전염력을 가진 연설을 할 수 있어야 한다(군중의 심리 P. 187). 군중의 여론과 신념을 유포시키는 것은 감염력이지 이성적 추론은 아니다(군중의 심리 P. 198)”라고 주장했다.

    미몽한 학생들을 미혹하는 안철수의 감성적 선동술이 연상된다.

  • ▲ 구스타브 르 봉(Gustav Le Bon, 1841~1931 /프랑스 사상가)


    윌리암 콘하우저는 사회적 다원주의(자유민주주의)에 가장 해로운 적으로 ‘군중운동’을 지목한다.
    “군중운동은 자유민주적 정치체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졌다”는 게 콘하우저의 ‘군중사회의 정치학’에 주제이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5).
    “군중운동은 계급운동을 넘어는 개념이기 때문에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에 모두 나타나는데, 이는 전체주의사회로 넘어가게 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14-6)”고 콘 하우저는 봤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원자화를 부추기기 때문에, 군중선동과 전체주의사회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군중선동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를 초빙할 수 있다”고 콘하우저는 경고한다.

    김대중이 광우병 촛불폭동 당시에 말한 ‘직접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전체주의사회로 만들기 위한 그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콘하우저는 군중사회의 특징은 ‘권위의 상실’로 가장 먼저 규정했다. 군중의 (떼)법이 엘리트의 법을 대체하는 것이 군중사회의 조건이라고 콘하우저는 지적했다. 전두환의 권위가 김대중의 민주보다 더 구조적으로 민주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콘하우저는 원자화된 사회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외롭고 불안한 군중은 우상적 상징이나 지도자에 완전히 자신의 개체성을 포기하는 자아상실적 군중운동에 몰입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32-3). 그는 군중사회의 조건들로서 사회 전반적으로 자율성이 결핍되면, 엘리트나 대중들이나 군중선동가의 선동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고 봤다. 원자화된 군중이 소외감과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군중운동에 자신을 던져서 의미를 찾으려(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군중인간들은 사회적 쟁점들을 해결하는 데에 도덕적, 법률적, 상식적 제한이나 기대를 무시하고, 직접 물리적 힘에 의존해서 완전히 해결하려고 한다고 콘하우저는 봤다. “군중운동의 사회적 원천은 권위로부터의 단절, 공동체로부터의 단절, 사회로부터의 단절 등이 있다.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가 직접 군중운동에 원천은 아니지만, 일정한 연관성은 있다. 이런 사회적 변동들은 소외된 원자화된 군중을 만들어 내면서 전체주의적 선동에 취약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군중사회는 전체주의 운동에 취약하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121)”고 콘하우저는 봤다.

    전체주의 연구가인 탈몬은 “완전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체주의자의 군중 장악과 예속의 음모를 경계해야 한다. 이른바 ‘완전한 민주주의 개념’은 사실상 전체주의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모든 개인들의 주장과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 군중들의 주권을 한 개인의 의지 속에 예속시키려는 음모”라는 취지의 경고를 했다.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민중의 뜻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뜻(의견/권익)을 파벌적, 이기적, 불법적이라고 정죄하는 것이 바로 군중선동가가 말하는 ‘완전한 민주주의’이다.

  • ▲ 구스타브 르 봉(Gustav Le Bon, 1841~1931 /프랑스 사상가)

    김대중의 ‘아테네 이후에 최고의 직접민주주의’라는 말은 전체주의적 선동가의 대표적인 본색을 표출한 것이다. 군중의 신격화가 전체주의 운동의 전제조건이다. 군중은 전체주의 운동을 통하여, 인격이 말살된다. 군중은 무의식적 인격에 조종된다. 암시와 감정적 호소에 휘둘리면서, ‘동지와 적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빠진 방자한 폭력배가 된다. 민주주의가 넘쳐서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자신들만이 ‘민주정부’를 만들 수 있다고 선동하는 좌익진영의 후보자들은 기만적이고 교만하다.

    데이비드 엡터는 “개발도상국가에서는 ‘권위주의적 정부의 부재’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데에 적이다. 군중의 난동질이 민주화를 파괴하는 데에 가장 해로운 변수”라고 주장했고, 사무엘 헌팅턴은 교육받은 ‘지식군중인간’이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원인임을 지적했고, 합리적이고 권위적인 정부를 지식군중이 거부하는 현상을 주목했다.

    칼 만하임은 “유토피안적 의식구조(환상)가 현실의 중요한 부분을 은폐시킨다. 현실을 오판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토피안적 환상에 대한 신념을 위협하거나 혁명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군중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는 방자한 군중들이 설치게 방치하면, 전체주의가 도래하는 전제조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처럼, 엘리트 군중인간인 안철수는 기존질서를 완전히 거부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고 떠들대지만, 그것은 미성숙한 학생들이나 미혹하는 저급한 군중선동일 뿐이고, 현실세계에서는 구조적으로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정치판에서 지나치게 고상한 선동구호보다 더 사악하고 유해한 것은 없다.

  • ▲ 논문다운 논문도 없는 안철수가 '세계적인 석학'이란 간판을 걸고 토크쇼를 벌이는 방송장면. 상징조작 선전선동의 좋은 예.
    ▲ 논문다운 논문도 없는 안철수가 '세계적인 석학'이란 간판을 걸고 토크쇼를 벌이는 방송장면. 상징조작 선전선동의 좋은 예.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의 짐승화가 바로 군중현상이다. 군중인간은 지성과 사랑이 사라진 인간 이하의 짐승의 상태가 된다. 인간이 자동기계(automaton)가 되는 상태가 군중현상이다. 그는 인간을 위협하는 두 개의 핵심적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핵무기와 군중운동이라고 봤다. 핵무기는 몸을 파괴하지만, 군중운동은 인간의 인격을 완전히 파괴하는 더 나쁜 인류의 적(Man against Mass Society에서)”이라고 봤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서구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인간의 지성과 사랑을 가르쳐주는 기독교가 악마적 군중운동을 제압할 수 있는 '평화유지자(peace-maker)'라고 주장했다. 폴 틸리히는 인간의 자기우상화를 교만한 군중인간의 특징으로 봤다.
  • ▲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Honore Marcel, 1889~1973 /프랑스 철학자 극작가)
    ▲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Honore Marcel, 1889~1973 /프랑스 철학자 극작가)

    로버트 니스벳은 수백만의 독일 민중이 나찌즘의 교리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독일 민중의 소외감, 환멸감 때문이었다고 봤다. 김광진의 건방진 패륜행각도 그가 가진 열등감의 표출일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자들은 대체로 치유(healing)가 필요한 사회적 소외자나 낙오자, 혹은 열등의식에 찌든 반항자들일 것이다.

    조지 소렐은 “거짓 환상을 쫓아서 폭력혁명에 나서는 인간들이 군중들이다. 그 환상은 곧 신화(myth)로서 합리적 토론과 과학적 진실을 배격한 맹목적 행동을 강요한다. 군중은 그래서 자동적으로 폭력적이다”라며 “참된 신화는 미래에 대한 합리적 개념이 아니라, 폭력혁명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환상, 꿈 혹은 감각적 충동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군중선동가의 신화에 중독되면, 과학적 분석이나 합리적 토론을 배격하고 맹목적 행동으로 내몰린다. 군중선동의 대가였던 히틑러는 “소위 객관적 사실 따위의 미지근한 태도로서는 결코 군중을 선동하지 못 한다. 군중을 선동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입장(one-sided orientation)을 반복해서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중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광기로 가득찬 하나의 신념”이라고 주장했다.

    복잡한 실존세계의 진실을 감추고 단순한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치면 군중이 속는다. 조금씩 거짓말을 보태는 저급한 군중선동꾼인 안철수 추종자들이 그런 단순하고 파편적인 판단을 가진 군중인간들로 보인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은 유리 깨는 소리에 창조의 희열을 느끼는 파괴의 충동자들이다. 야간에 불을 사용해서 군중의 파괴충동을 극대화시키는 수가 있다. 군중은 난폭한 심판자이면서 동시에 희생적 순교자이기도 하다. 강압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에서 광신적 자기희생(fanatic self-surrender)은 군중의 대표적 속성으로서 동전의 양면”이라는 진단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군중연구의 최고 대가는 나의 스승인 신유길 박사다. 대학에서 바른 말을 하다가 추방된 신유길 박사는 “군중선동가는 유한한 사물을 절대화 해서, 군중들로 하여금 전적인 헌신(total commitment)을 유도하는 군중예속능력을 지녔다”며 “군중인간은 ‘위대한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면서, 동시에 군중도 자기영광(self-glorification)을 취한다. 군중이 우상을 섬기는 이면적 원인은 변태적 교만을 표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이 결국은 노예와 같은 군중의 상태로 잠복해 있는 것”이라고 간파했다. 좌익세력의 교만한 군중선동꾼들은 열등의식에 찌든 자들이다.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