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꼭 돌봐야 할 분들을 잊고 있다" 귀환 촉구 목소리김태영 전 장관, 김석기 전 청장, 김태우 전 차관 등 참석
  • ▲ 국군포로 생환자들, 물망초 회원들, 재미교포들이 한 테이블에 섞여 앉아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양호상 기자
    ▲ 국군포로 생환자들, 물망초 회원들, 재미교포들이 한 테이블에 섞여 앉아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양호상 기자
     
  • ▲ 국군포로 생환자들, 물망초 회원들, 재미교포들이 한 테이블에 섞여 앉아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양호상 기자

    '잊혀진' 국군포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조국은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탈북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오갈 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불려졌다.

    그러면서 납북 경위와 북한에서의 고통스러웠던 삶도 간략히 소개됐다. 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생환 국군포로 간담회'에서다.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귀환환 국군포로는 80 여명. 현재 생존자는 57명이다. 이들 가운데 20 여명은 거동이 불편해 외출이 어렵다.

  • ▲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 ⓒ 양호상 기자
    ▲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 ⓒ 양호상 기자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
    "우린 너무 빠른 기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래서 꼭 돌봐야 할 분들을 잊고 있다."

    국군포로들은 이날 사단법인 <물망초>가 마련한 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은 감회를 밝혔다. 

    "국방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와서보니 시민단체 행사였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이런 행사가 없으면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가 참 어려운데 너무나도 좋다."

    "(박선영 이사장은) 단식도 하고 북한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여자가 그렇게 하기 힘들텐데…."

  • ▲ 국군포로 생환자 유영복 씨. 그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강제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다시 국군에 입대해 싸우다 전쟁포로가 됐다. 유 씨는 북에서 겪은 자신의 삶을 한권의 자서전 '운명의 두 날'로 펴낸 바 있다. ⓒ 양호상 기자
    ▲ 국군포로 생환자 유영복 씨. 그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강제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다시 국군에 입대해 싸우다 전쟁포로가 됐다. 유 씨는 북에서 겪은 자신의 삶을 한권의 자서전 '운명의 두 날'로 펴낸 바 있다. ⓒ 양호상 기자

    북한에서 48년간 억류됐던 유영복(83)씨는 북한에 끌려갔던 날에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있고. 국민과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있는 한. 포로가 된. 수만명이 되는 우리들을. 반드시 찾는 날이 올 것이다."

    유 씨는 "10년이 지나고 또 수십 년이 지나도 그날은 오지 않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조국 땅을 밟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고 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으로 온다고 해서 우리들은 기대가 컸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우리들 얘기가 전혀 없었다."

    유 씨는 "남북회담이 끝나고 한달 뒤인 7월 27일.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넘어 조국땅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보니 비전향장기수는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국군포로 납북자는 왜 단 한명도 찾아오지 않았는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끝으로 그는 "북한에 국군포로들이 남아있다.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사무국장. ⓒ 양호상 기자
    ▲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사무국장. ⓒ 양호상 기자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사무국장은 "제 아버지는 6.25 휴전 3개월을 앞두고 포로가 됐다"고 했다.

    "아버지는 제게 고향 주소와 형제. 군번을 알려주며 '내가 죽으면 내 고향 꼭 가라. 나도 억울한데 이 고난을 되물림하는게 억울하다."

    손 씨는 "국군포로 자녀들은 평생 맞을 매를 다 맞고 살아왔다"고 했다.

    "국군포로 가족은 원망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하는 가장 낮은 신분이다. 저는 불법 마약 제조와 유통에 강제 동원됐다가 전기고문을 당해 오줌을 싸기도 하고, 심하게 맞아 피가 우수수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국군포로 귀환용사들을 자신들 사업에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도와달라. 이용하지 말아달라. 진심으로 함께해달라."

  • ▲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이 국군포로 생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양호상 기자
    ▲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이 국군포로 생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양호상 기자

    이 자리에 참석한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은 환영사에서 "제가 제일 주니어급"이라고 했다.

    "6.25 전쟁이 났을 때 2살이었으니까 기저귀차고 피난갔을 때다. 그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다. 이런 자리에서 군 대선배님들을 뵙게 돼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부끄러운 점이 많다."

    ""42년간 군생활을 했다. 여러분 앞에 선 것이 죄스럽다. 정전이 되면 포로교환으로 당연히 돌아왔어야 하는데 국제법을 모두 어긴 김일성 때문에 정말 힘들게 사신 분들이다."

    뉴욕자선단체 <그레이스 앤 멀씨(Grace & Mercy)> 재단의 서상원 대표는 "박선영 이사장에 대한 믿음이 있어 고민하지 않고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듣기만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직접 뉴욕에서 이곳까지 오게됐다"고 했다.

    국제인권단체 <굿 오브 올(Good of All)> 설립자 맷 데니얼스 박사는 "우리 임무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펼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도 그 임무를 수행하고 싶다"고 했다.

  • ▲ 이날 간담회엔 재미교포들이 참석해 국군포로 생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양호상 기자
    ▲ 이날 간담회엔 재미교포들이 참석해 국군포로 생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양호상 기자

    이날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 장태평 전 농림수산부장관(현 마사회장),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김석우 전 통일부차관 등 물망초 소속 인사 40여명 국제인권단체인 'Good of All'의 설립자 맷 대니얼스 박사, 뉴욕의 자선단체인 'Grace & Mercy' 서상원 대표 등 재미교포를 포함해 100 여명이 참석했다.

    우리나라 제1호 제과제빵기능장인 임영래 씨는 이날 할아버지들을 위한 특별 초콜릿과 과자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음은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이 간담회를 마치고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가슴 속에 맺혀 있을까요? 얼마나 긴 세월을 가슴 속에 묻어야 했을까요?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앞으로도 끊임없이 쏟아내야 그 눈물이 마를까요?

    오늘 전쟁기념관에서 생환해 오신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물망초 오찬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바싹 말라버린 입을 열면 혀보다도 가슴이 먼저 바빠져 바튼 기침 사이로 목이 메이고, 지나간 세월을 더듬으면 한숨보다 더 빨리 뚝, 하고 떨어지는 눈물, 눈물들.

    물망초 임원들도, 미국에서 오신 1.5세들도, 멀리 아프리카 가나와 나이지리아에서 오신 재외국민들도, 통역을 통해 전해 들어야 하는 국제인권재단의 관계자들도, 모두가 가슴이 시리고 죄송스러워 할아버지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누란에 선 나라를 지켜 주셔서. 죄송합니다, 그런 분들을 우리가 우리 손으로 구해드리지 못 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병든 몸으로 당신들이 스스로 탈북해 돌아 오셨음에도 편안히 모셔드리지 못 해서....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진정한 우리의 영웅이자, 우리 역사의 조난자들이십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버텨주세요. 저희가 요양원을 만들어 드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