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활발 “市民과 멀어지면 市長에게 당한다”
  • 제3의 노총인 국민노총이 과연 노동운동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 지난해 11월 설립된 국민노총(국민노동조합총연맹) 정연수 위원장(56)은 “2,3년 내로 우리나라 노동 운동이 확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투쟁 일변도의 좌익 노조가 급속히 몰락하고 우익 노총인 국민노총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국민노총 회원수는 4만3천명 수준. 한국노총(80여만명)이나 민노총(60여만명)에 비할 만한 세력은 아니지만, 정 위원장은 노조운동의 급격한 변화를 낙관했다. 시대에 뒤지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과격한 좌익 노동운동은 2,3년내로 급격히 퇴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위원장은 “70년대 일본 노조도 90%가 과격한 좌익 성향이고 10%만이 우익이었지만, 불과 3,4년만에 좌익 노조는 10%정도로 줄어 들었다”고 강조했다.

    국민노총은 이번 주부터 울산지역을 방문해, 대형 노조들을 국민노총에 가입시키는 작업을 벌인다. 현대중공업 노조 와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현대차 노조와는 접촉을 시작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우려도 있지만, 정 위원장은 “시작이 반 아니냐”고 말했다.

    정 위원장이 특별히 민노총에 대해서 강경발언을 하면서 자신감을 갖는 이유가 있다. 민노총의 기반을 자신이 만들었으니 자신이 “민노총의 원류가 아니냐”고 말했다. “민노총은 내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 국민노총은 활동 내용이 매우 특이하다. 올 5월 1일 노동절에 국민노총은 효잔치를 벌였다.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3천명을 초청해서 무료급식, 무료의료검진, 구두닦아주기, 영정사진 촬영 등 효(孝)실천 봉사활동을 폈다. 한국노총은 마라톤대회를 열고,  민노총이 서울광장에서 노동법 개정 총파업 투쟁 출정식을 연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봉사하는 노조, 국민과 함께 하는 노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 위원장의 확고한 신념이다. 요즘도 국민노총은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학생시절부터 참여했을 것 같은데

    “학생시절엔 노동운동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어요. 제가 1981년에 입사한 서울시지하철은 84년에 공사로 바뀌었는데, 그때만 해도 군 출신 장성들이 경영을 비롯해서 핵심적인 일을 맡아했죠. 지하철 공사에 사내 민주화는 없고 병영같은 회사조직 안에서 경영진의 부패가 심했습니다. 그때 노무사제도가 막 생기면서 저는 1회 시험을 준비하다가 노조결성하는 일을 맡았죠.”

    비인간적인 제도와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순수한 직장내 노동운동이었으나, 노조설립에 학생 운동권 출신들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민청학련 출신 등과 이론적 대립을 거듭하던 그는 1,2차 노조 집행부에서 법규부장을 지냈지만, 극복할 수 없는 노선 차이에 신물이 났다. 혁명운동의 과정으로 노동운동을 하는 그들과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어 싶어 89년 노조를 떠나 직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과격 노동운동은 그를 다시 노조활동으로 이끌었다. 집행부만을 위한 노조활동, 과격한 이념 등으로 어느새 노조는 조합원 위에 군림하는 권력세력으로 바뀌어 있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조합원을 징계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시작한 일 내 손으로 수습하자는 생각에 그는 다시 94년부터 노조활동으로 돌아갔다. 민노총은 이듬해인 1995년 정식으로 설립됐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 위원장은 민노총에 대해 “그들 보다 내가 원류이나 내게 시비를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이 자신감을 갖는 데는 목숨을 건 투쟁 경력이 큰 재산이다. 1988년 그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섰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지하철 공사 내부 비리를 캔 수십쪽 짜리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 국회의원인 노무현과 서석재를 찾아가서 담판을 지었다.

    "이 자료를 가지고 엿 바꿔 먹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달라, 내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가겠다."

    다짐을 받은 그는 동료 서너명과 증인으로 나서기로 했으나, 정씨는 “국정 감사장에 가 보니 나만 나왔더라”고 했다.

    그가 지하철 공사 내부 비리를 파헤쳐 공개하려 할 때 방해공작은 예상외로 완강했다. 자신도 모르게 정보부 관계자들은 ‘정연수 행방불명’ 처리를 해 놓았다. 보통 행방불명 처리를 하려면, 6개월 동안 소재파악이 안돼야 하지만, 1개월 전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을 뗀 흔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행방불명을 시켜버린 것이다.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행불됐으니 당신은 죽어도 아무도 의문을 달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목숨 건 증언으로 지하철 비리는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군출신 50명 정도가 옷을 벗었다.

    현재 국민노총은 서울지하철공사를 비롯해서 공무원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과격한 노동운동으로 피폐해진 민간기업등에서 참여가 늘고 있다. 방송쪽에서도 KBS에 있는 3개 노조중 하나가 국민노총이고, MBC에도 국민노총이 설립됐다. YTN은 준비중이다.

    -며칠 전에는 ‘공영방송 독립을 위한 제도개선 세미나’에 축사하러 가셨더군요.

    “언론방송개혁이 필요해요. 언론과 방송이 국민을 대변하는 대신, 소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전락했습니다. MBC 노조가 파업하니까 오히려 국민들의 아픔을 긁어주는 프로그램이 나오네요.  MBC노조는 파업하는게 국민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파업을 안 하면 방송프로그램이 사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요.
    교육도 마찬가지에요. 민노총과 전교조의 이념 투쟁에 묶여 교사들이 교육권을 잃었어요. 교사가 아이들 체벌하면 고발하고, 학원선생이 패면 맞아요.  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소수의 정치적 욕망 때문에 국민사회로부터 멀어졌어요. 몇 사람의 정치적 목적에 노조가 움직이고, 소수 지배계급을 위해 지배질서가 형성되고 노동자 위한 헌신봉사를 안해요. 노동자들의 희생위에 군림하죠.”

    그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시장 등 선출직 지도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시장은 계약직이에요. 그런데 시장되면 정치적인 목표와 욕심을 가져요. 정치자금 위해 사업벌이고, 선거 논공행상 위해 사조직을 심어놓아요. 계약기간(임기) 동안 시장이 시민들의 재산을 유린하지는 않는지 현장에서 감시해야 합니다. 노동자가 주인의식가지고 감시하고 견제해야 해요.
    제가 한번은 이명박시장에게 물어봤어요.
    ‘당신이 사용자입니까 근로자입니까’
    시장이 그러데요. ‘내가 사용자니까 여기 왔지’
    제가 또 물었어요. ‘그러면 월급을 받습니까. 정기적으로 월급 받으니 노동자 아닙니까. 노동기간이 정해진 근로자이죠.’
    저는 노조원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주인입니다. 우리 직장 우리가 더 아끼고 사랑해야지 갈 놈들이 유린하는 것 감시해야 해요.’”

  • -국민노총은 사회봉사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게 과연 먹힐까요?

    “노조도 사회에 공헌하는 노동운동해야죠. 일본 도요다 자동차나 비쓰비시 자동차의 노동조합 간부들이 선거에 나오면 거의 당선돼요. 책임감 있지, 전문성 강하지, 노동조합 간부 경험 있지,  70%가 정치인으로 성공합니다. 일본 노조 집행부는 벌써 확 바뀌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국민들에게 노동조합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쇠파이프, 화염병, 머리띠, 꽹가리... 그리고 파업이죠.

    제가 2006년에 강원도 봉평에 수해복구 지원 나갔어요.  2,000만원 어치 라면 속옷 김치 싣고 2박3일동안 120명이 봉사했어요. 봉평 할머니가 물어보대요. 어디서 왔냐고. ‘서울지하철에서 왔습니다’ 하니까 이러데요 ‘아 거기 파업하는데?’

    이래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하철 직원은 시민들이 지하철 이용하니까 운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번도 시민에게 베푼 적이 없어요. 그래서 한번은 1만5천명 초청해서 한강 체육대회를 열었어요. 참가비 만원 받아 10만원 어치 신발도 주고 그랬죠. 순식간에 마감됐습니다.

    앞으로 노동운동은 주인정신가지고 전문성 있게 사회공헌에 나서야죠. 국민들이 ‘재들 좀 시켜보자’ 소리 나오게 말이죠.

    저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고건도 갔고 이명박도 갔고 오세훈도 갔고. 그렇지만 우리는 천만시민을 평생 모십니다.”

    -봉사활동 좋지만, 봉사 많이 하는 게 실질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국민들이 지지를 해 줍니다. 그게 우리 힘이죠.”

    -아무리 그래도 조합원 입장에서야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고용과 임금에서 보장받아야지,  봉사 많이 해서 좋은 소리 듣는 것 외에 조합원에게 득이 된 적이 있나요?

    “2009년 오세훈 시장 때 2,880명 구조조정하려 했어요. 그때 시민들이 나섰어요. 저희들 봉사 활동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게 우리 편이 되어 주었죠. 그래서 2,880명 구조조정하는 것 막고 700명 더 뽑았어요.
    구조조정은 말뿐이고, 한편에서는 논공행상으로 특채로 집어넣고는 슬림화시킨다고 하면서 직원 줄이려고 하고, 사실 눈 가리고 아웅이죠. 자회사나 만들고 숫자노름만 하는 것이죠.
    국민들에게 왜 봉사하느냐고요? 시민과 거리가 멀면 시장에게 당해요.”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에도 참여했던데 노조 위원장이 그런데도 갑니까?

    “봉사하다보면 새터민들에게 식사제공하고 그런 일도 많이 해요. 새터민 만나보면 안타깝고 어렵죠. 이들은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 가슴 아파하죠. 다시 붙잡혀 가더라도 북한 가서 가족 데려오려 하고 가슴 속 응어리와 죄책감이 많습니다.
    남한 사회 정착도 어렵고 동료들에게 정착금 네다바이도 당하고...그래서 저희들이 이부자리를 사다 드렸어요. 좋은 이불에 누워서 잠이라도 편히 주무시라고.”

  • 정 위원장은 일본의 ‘렌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連合)를 여러 번 언급했다. 1987년 여러 노조가 통합해 만들어진 렌고는 노조원이 670만명에 달하는 일본 최대 노조연합체이다. 전체 노동자의 20%가 가입했다.

    국민에게 봉사하고, 과격한 투쟁하지 않아도 노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은 렌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일본 노조도 강경투쟁해서 임금 20% 올려보니 물가는 30% 올라가는 바람에, 실제 삶의 질은 나빠졌다. 렌고는 새로운 노동운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는 임금인상 자제하겠다. 정부는 물가를 잡아 달라.’
    임금 안 올리니까 사회적 힘이 생겨나서 영향력이 커지면서 렌고 출신들의 정치 참여도 늘어났다.

    정 위원장은 1987년에 설립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도 겸직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지하철노조는 민노총을 탈퇴하고 11월에 설립한 국민노총으로 가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