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 '베를린 신포니에타' 상임지휘자 됐다! 동-서 베를린 음악계 양대 산맥 혼혈 교향악단의 첫 상임지휘자'마에스트로' 박성준 "이제 시작이다"베토벤 교향곡 양대작품 연주..'베를린 필하모니'선 9번,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선 5번
  • <베를린 신포니에타>(Berlin Sinfonietta).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교향악단이다.
    하지만 베를린 시민들에겐 이웃사촌처럼 친근한 관현악단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은 단연 <베를린 필>이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이런 거장들의 손 끝 아래, 단연 오케스트라의 제왕으로 손꼽히고 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베를린은 동-서 양 진영이 치열하게 벌이는 냉전의 각축장이었다.
    경제-기술-스포츠에서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벌어졌다.
    동독 공산당 정권은 서독에 지지 않으려 안간 힘을 썼다.

    국가가 직접 관장한 엘리트 스포츠 양성이 대표적 사례.
    피겨 스케이트의 여제 카타리나 비트는 동독이 국가적 차원에서 양성한 대표적 스포츠 스타이다.


    관현악단과 콘서트홀은

    한 나라의 문화력을 가늠하는 척도!


    한 나라의 문화력을 가늠하는 대표적 척도로 손꼽히는게 관현악단이다.
    동시에 관현악단이 음악을 연주할 음악당(콘서트홀) 역시,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기능한다.



  •   베를린 필의 주무대인 <베를린 필하모니>. 
          현대적 디자인으로 건축된 음악당으로 세계 음악-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네이버 백과사전


    1963년 10월 15일.
    동서냉전이 한창일 무렵.
    서베를린에 서독을 대표하는 콘서트홀인 <베를린 필하모니>가 문을 열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이 개막 연주회를 장식했다.

    <베를린 필하모니>는 현대적 디자인과 음향공학에 입각한 콘서트홀 설계로
    일약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카라얀의 주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가던 <베를린 필>의 본거지라 더욱 명성을 얻었다.

    동독 정부는 큰 자극을 받았다.
    동독 공산주의 정권이 왜 자극을 받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적 싱황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


  • ▲ 서 베를린에서 연설중인 케네디 미국 대통령. ⓒ
    ▲ 서 베를린에서 연설중인 케네디 미국 대통령. ⓒ

    서 베를린에서 연설중인 케네디 미국 대통령.


    <베를린 필하모니>가 준공되기 몇달 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해 유명한 연설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6월 26일 서베를린을 방문하여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였다.
    베를린 장벽 설치를 공산주의의 실패의 증거로 삼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자유인은 그들이 어디에 있건 베를린 시민이라 할 수 있으므로
    저 또한 자유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독일어: Ich bin ein Berliner.)]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서베를린 시민의 5/6이 거리에 나왔으며, 케네디 자신도 놀랐다고 하였다.
        -<네이버 지식사전>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둘로 갈라지자,
    동독지역에 위치한 베를린도 동-서로 양분됐다.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진영과 전체주의-공산주의 진영이 정면대결을 하던 시절.
    그중에서도 남-북한과 동-서독은 전 세계적-전 지구적 체제 경쟁의 최전선에 있었다.
    동-서독 체제경쟁의 하이라이트는,
    동독 영토내에 섬 처럼 존재하면서 다시 도시가 반으로 갈라진 베를린이었다.

    케네디가 서베를린을 방문하기 1년전인 1962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는 문제로
    3차 세계대전이 그것도 핵전쟁 발발 일보직전까지 갈 정도로,
    미-소간 갈등은 최고조로 증폭됐다.

    1948년부터 1949년 사이,
    소련과 동독 공산정권은 서독으로부터 서베를린으로 가는 모든 육로를 봉쇄했다.
    서베를린 거주 2백만 여명의 주민들 생존이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미-영 주축의 서방진영은 무려 462일 동안 비행기로 서베를린에 생필품을 실어 날랐다.
    62초에 한 대씩 미국 수송기가 서 베를린 공항에 착륙했다.
    총 27만 7,264회의 미국 수송기가 생필품을 실어 날랐다

    [베를린 봉쇄]를 겪은 지 몇년후인 1963년.
    <베를린 필하모니>가 문을 열었으니,
    이런 역사적 아픔을 겪은 서 베를린 시민들의 감격은 각별했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디자인이 초현대식인 이유가 짐작이 간다.
    <베를린 필하모니>는 동베를린의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서베를린의 [자유주의]의 상징이었다. 


  • ▲ 베를린 공수 물자를 운송하는 항공기를 기다리는 서베를린 시민들ⓒ[Author=United States Air Force]
    ▲ 베를린 공수 물자를 운송하는 항공기를 기다리는 서베를린 시민들ⓒ[Author=United States Air Force]

     ▲ 공수 물자를 운송하는 항공기를 기다리는 서베를린 시민들ⓒ[Author=United States Air Force]


    동독이 얼마나 열 받았을까. 

    동독정부의 고심은 깊어갔다.
    드디어 1976년 <베를린 필하모니>에 대척하는 음악당 건립이 시작됐다.

    2차대전중 폭격으로 폐허로 변한 채 20년 넘게 방치되어 있던
    동베를린 지역의 <쾨니글리셰 샤우슈필하우스>(프로이센제국 왕립 연극공연장) 복구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 곳은 1826년 9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베를린 초연이 이뤄진 역사적 장소.
    왕립 연극공연장을 동독을 대표하는 세계적 음악당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서베를린엔,

    <베를린 필>

    <베를린 필하모니>

    동베를린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서독-서베를린의 문화 아이콘으로 등장한 <베를린 필하모니>는,
    당시로선 초현대식 디자인을 들고 나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베를린의 음악당은,
    프로이센 시대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그대로 복원했다.

    [역사와 전통]으로 [초현대적 디자인]을 누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동독이 독일제국을 계승한 적장자라는 정치적 함의를 내외에 과시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런 동독정부의 의지가 복원공사에 담겨졌다.

    동독-동베를린의 문화 상징 아이콘 복원공사는 8년이나 걸려 1984년에야 끝났다.
    이름도 <콘체르트하우스 겐다멘막트>(Konzerthaus am Gendarmenmarkt)로 변경됐다.
    독일이 자랑하는 시인 겸 극작가 <프리드리히 쉴러>의 동상이 서있는
    <겐다멘막트 광장>에 위치한 음악당이란 뜻이다.


  • ▲ 베를린 공수 물자를 운송하는 항공기를 기다리는 서베를린 시민들ⓒ[Author=United States Air Force]

     ▲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모습.
    한때 동독-동베를린의 음악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이제는 <베를린 필하모니>와 함께 베를린 음악문화를 꽃 피우는 양대 기둥으로 자리잡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서독의 <베를린 필>에 대항마로 동독이 내세운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신포니 오케스트라>(Berlin Sinfonie Orchestra, 1952년 창단)이다.
    이 오케스트라는 84년부터 이 음악당을 상주 무대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쳤다.

    <베를린 신포니에타>는
    바로 이 <베를린 신포니> 멤버들을 주축으로 1974년에 만들어진 챔버 오케스트라다.
    모 악단인 <베를린 신포니> 처럼,
    동베를린의 대표 음악당인 <콘체르트하우스 겐다멘막트>를 본거지로 활동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베를린 음악계의 통합 불러왔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졌다.
    모든 것이 변했다. 

    장벽 붕괴의 감격은 수많은 음악 활동으로 표출됐다.

    장벽이 무너진 한달 반 뒤인 크리마스 저녁.
    <콘체르트하우스 겐다멘막트>에서는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됐다.

    1826년 9월 <합창>이 베를린에서 초연된 곳이 바로 이 곳이란 역사적 상징과 장벽 붕괴의 감동이 버무려졌다.
    세계 각국 출신으로 구성된 연합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무대에 섰다.
    4악장 <환희의 찬가>는 <자유의 찬가>로 바뀌어 불려졌다.

    번스타인은 이틀전엔 서베를린의 <베를린 필하모니>에서도 같은 곡을 연주했다.
    독일 통일의 의미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통일 독일 시대의 개막은 특히 동독 음악계에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1994년.
    <콘체르트하우스 겐다멘막트>는 이름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로 바꿨다.
    동독을 대표하고 이곳을 상주무대로 <베를린 필>과 경쟁하던 <베를린 신포니>도,
    2006년에 이름을 <베를린 콘체르하우스 오케스트라>로 바꿨다.

    동-서독 체제경쟁의 음악적 상징이었던
    [베를린 필하모니=베를린 필] 대(對) [콘체르트하우스 겐다멘막트-베를린 신포니]
    경쟁구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통제 획경제에 익숙해있던
    동베를린의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상대적으로 상업적 명성에서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서구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익숙한
    서베를린의 <베를린 필하모니>와 <베를린 필>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그것이 음악성에서도 뒤떨어진다는 증표는 아닐 것이다.


    <베를린 신포니에타>는

    동서 베를린 넘나든다!

    <베를린 필하모니>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두 곳 모두에서 연주 활동!


    동-서 베를린으로 양분되어 있던 베를린 음악계도 장벽 붕괴후 통합되기 시작했다.

    독일통일후 <베를린 신포니에타>는
    모악단인 <베를
    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주축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전개했다.
    <베를린 필> 정단원들이 겸임으로 <베를린 신포니에타>에 대거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명성있고 쟁쟁한 관록을 지닌
    <베를린 필>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세계적 연주자들이
    <베를린 신포니에타> 단원을 겸하게 됐다.

    이를테면 <베를린 필>의 유명한 <한스 요하임 베스트 팔>(Hans Joachim Westphal)이
    얼마전 질환으로 은퇴할 때까지 <베를린 신포니에타>의 제 2 바이얼린 수석으로 맹활약했다.
    카랴얀 시절부터 <베를린 필> 바이올린 정단원인
    <헬무트 메베르트>(Helmut Mebert)는
    지금도 <베를린 신포니에타>의 악장을 맡아 이 자유분방한 관현악단을 이끌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베를린 신포니에타>는
    베를린의 양대 음악당인 <베를린 필하모니>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두 곳 모두를
    근거지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는
    자유분방한  챔버 오케스트라로 자리잡게 됐다.

    <베를린 신포니에타>야말로
    동베를린에서 시작해서 서베를린을 받아들여
    자유로운 음악활동으로 [양베를린] 통합에 성공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 ▲ 베를린 공수 물자를 운송하는 항공기를 기다리는 서베를린 시민들ⓒ[Author=United States Air Force]


    ▲ 베토벤의 본 고장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하는 박성준. 
       서베를린 음악 문화의 본산인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서 열린 2012년 1월 2일의 신년음악회 장면.

     

    이런 <베를린 신포니에타>에 분단국가 한국의 젊은 지휘자가 진출했다.


    눈이 파란 백인이 한국에서 김치장사를 시작해 성공할 확률은?

    손바닥이 하얀 흑인이 메주 쑨 김에 된장까지 담궜다는데 그 맛이 일품일 가능성은?


    2012년 1월 2일 저녁 8시.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
    전통의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레퍼토리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신포니에타>.
    지휘자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에 미쳐 지난 2004년 독일로 떠난 박성준(47).

    베토벤 후손들 앞에 선 한국인 지휘자의 연주.
    백인이 담근 김치요 흑인이 쑨 메주인 셈이다.


  • ▲ 베를린 공수 물자를 운송하는 항공기를 기다리는 서베를린 시민들ⓒ[Author=United States Air Force]


    ▲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에서 열린 박성준 지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신년음악회 포스터. 
         베를린시 곳곳에 부착되어 있다.


    베토벤의 <합창>은 해석하기가 참 어려운 곡.
    워낙 유명한 곡이다보니 한 치의 실수도 금방 드러나기 마련인 곡.
    그래서 정상급 지휘자들도 더 조심스러운 곡.

    그는 독일로 가기전 <뉴데일리>와 만나 이렇게 말했었다.

    "결코 어떠한 음악적 가미를 할 수 없는 곡입니다.
    한국적 정서는 물론 독일적 정서도 첨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베토벤이 귀가 완전히 멀고 난 뒤 작곡한 교향곡이죠.
    그토록 좌절한 베토벤이 시련을 준 하나님과 화해를 하는
    코스모폴리탄적 사상을 노래하고 싶어요."

    "천국에서 신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변증법적 논리가 아닌 종교적 해석으로 접근하고 싶습니다.

    천국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음악도 그러하고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 9번이니까요.

    [시간의 지배]를 받지않는 위대한 에술 작품,
    기악과 성악,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그리고 인간과 신의 [화해]로 승화시키는 것이 목표이자 꿈입니다."


    연주가 끝났다.
    커튼콜이 쏟아졌다.
    그것도 무려 일곱차례나….

    그리고 몇달 후…. 

    그는 <베를린 신포니에타>의 첫 상임지휘자가 됐다.
    창단 이래
    상임지휘자 없이 객원지휘자만으로 운영되어온 <베를린 신포니에타>로선 엄청난 변화였다.  

    베토벤을 중심으로 한 독일 레퍼토리에 강하다는 점을
    단원들이 높이 사준 것 같습니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신년-부활절-크리스마스-송년 시즌 등에 주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고릅니다.
    베토벤 교향곡 <합창>, 교향곡 5번 <운명> 등은 [독일 국악]인 셈이죠
    감정은 되도록 배제하고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접근합니다.
    [본토박이식 해석]
    [베토벤에 대한 깊이 있고 육중한 해석]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2012. 6. 21) 


    2004년 독일진출,
    2005년부터 객원 지휘.
    드디어 2012년 상임지휘자.
    인고의 땀냄새가 느껴진다. 

     

  • ▲ 박성준 지휘자가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서 신념음악회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리허설을 하고 있다. ⓒ
    ▲ 박성준 지휘자가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서 신념음악회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리허설을 하고 있다. ⓒ

    박성준 지휘자가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서
    신념음악회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리허설을 하고 있다. 



    국내 오케스트라는 연주를 앞두고 1~2주 연습을 하지만,
    독일에서는 단 3일만 연습하고 무대에 오른다.
    단원 계약서에 기재된 연습시간이 5분만 넘어도 곧바로 항의한다.

    그는 2005년부터 이 악단의 객원 지휘자로 꾸준히 호흡을 맞춰왔다.
    첫 해 크리스마스에 연주한 헨델의 <메
    시아>는
    객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단원들도 눈을 크게 뜰 정도였다.

    그때 [아, 이제 뭔가 되는구나] 싶었는데,
    장장 7년을 지켜보더라구
    요.
    고른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단원들과 작품 해석을 놓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즐겼습니다. 그
    래도 상임이 되니 단원들의 집중도가 확실히 달라지더군요.
    "
        -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휘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클래식의 종가집인 독일에 진출하는 것을 꿈꾼다.
    독일에서도 베를린,
    베를린에서도,
    <베를린 필> 근거지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의 포디움(지휘자가 올라가는 단)에
    서는 것을 상상한다고 한다.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의 벽은 무척 높다.
    아무나 입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인 지휘자들에게는 특히 인색했다.

    그간 국내 지휘자 중에는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만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에 섰다. 

    지휘자 정명훈에 비하면 박성준의 국내 인지도는 [듣보잡] 수준.
    하지만 유럽에서의 인지도는 국내와는 너무나 다르다.
    유럽에서 꾸준히 활동한 경력이
    오늘날 박성준이 <베를린 필하모니>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다.

    “지휘자의 권위요?
    그건 포디움에 올랐을 때면 충분합니다.
    평소에는 오케스트라 구성원들과 많이 웃고 친밀하게 이끌면서
    신뢰감을 주는 게 중요해요.
    연주를 이끌면서 드러내는 음악적 표현,
    지휘자의 카리스마는 그거면 충분해요.
    지휘봉을 들었다고 해서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면,
    오케스트라 단원이 먼저 지휘를 따르지 않아요.
    그러면 당연히 청중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없죠."

     

  • ▲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포스터.ⓒ
    ▲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포스터.ⓒ

     

    2012년 4월7일.
    부활절이다.
    유럽에선 부활절이 아주 중요한 날이다.

    <베를린 신포니에타> 상임지휘자 박성준은,
    이번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포디움에 섰다.
    부활절 기념음악회.

    레퍼토리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 들어있다.
    연초 신년 음악회는 서베를린 지역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한 그다.
    이번엔 동베를린 지역의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5번 <운명>을 연주한 것이다.

    베토벤의 나라 독일.
    그 독일의 심장부 베를린.
    그 베를린의 동서 양쪽에 있는 양대 음악당에서
    베토벤 교향곡의 양대 작품 5번(운명)과 9번(합창)을 지휘하다니….
    그것도 <베를린 필>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뛰어남이 섞여 있는 교향악단을….


    "이제 시작이다."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에 섰다고 배부른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유럽에서 지금까지 이룬 성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세계적 지휘자로 발돋움하는 길에 중요한 발판이 되는 경력들이다. 

    박성준은 서구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음악감독을 목표로 아직도 전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클래식 수준이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지휘자로서 아직 저는 절대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줄곧 음악을 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이제 자신감이 붙었어요.
    지휘자를 꿈꾸는 후배들이 유럽으로 많이 건너와 함께 한국을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 ▲ 지난해 연말 베를린으로 떠나기전 <뉴데일리>와 만나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 박성준 지휘자.ⓒ
    ▲ 지난해 연말 베를린으로 떠나기전 <뉴데일리>와 만나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 박성준 지휘자.ⓒ


     

    남보다 늦게 시작한 음악...유럽서 꽃피다


    영화 <남남북녀>, <비무장지대> 등을 연출한
    영화계 원로 박상호 감독의 아들인 박성준은 예술계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음악을 일찍 시작한 건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들에 비해 음악을 늦게 시작한 것.
    경희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향한 박성준은,
    89년 빈 국립음대 교수 <칼 외스터라이허>(Karl Oesterreicher)’의 개인제자로
    본격적인 지휘자 수업에 들어갔다.
    <외스터라이허> 교수는 지휘학 분야에서 당대 최고로 꼽히던 분이다.

    현재 세계 최고(지휘자 랭킹으로 1위)로 거론되는
    <마리스 얀손즈>(Mariss Janson) 현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도
    <외스터라이허> 교수 문하생이다.
    세계적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도 지휘 레슨을 그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외스터라이허> 교수는 별도의 사설 지휘학교(private conducting school)를 운영했다.
    세계의 많은 지휘자들이 여기서 그로부터 레슨을 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주 극소수만이 허락되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 상임지휘자로 있던 <얀손즈>와
    지휘에 관심을 보이던 <도밍고> 등이
    보다 더 정교한 지휘 테크닉을 습득하기 위해 이 학교에서 개별 레슨을 받았다,
    박성준도 이들과 같은 무렵, 그의 지도를 받았다.

    일본의 지휘자 여러 명도 돈 보따리를 싸들고 사설 레슨을 받으려고 이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테스트에서 모두 탈락됐다.
    박성준은 <외스터라이허> 교수가 1995년 서거하기전, 그의 마지막 개인제자였다.

    박성준은 91년 <빈 국제마스터클래스>에서
    50여명의 코스참가자들 중 가장 뛰어난 지휘자 3명중 한명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박성준에겐 <프로 아르테 오케스트라 비엔나>를 지휘할 기회가 부상으로 주어졌다.
    유럽에서의 첫 지휘자 데뷔는 그렇게 이뤄졌다.

    이후 폴란드-불가리아-체코 등지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던 박성준은,
    2004년 <라이프찌히 국제 지휘자 코스>에서 <콜린 매터스> 영국 왕립 음악원 교수에 의해,
    최고 지휘자로 선정됐다.
    유럽에서 소위 메이저 반열에 오를 기회를 잡은 것이다.


  • ▲ 2006년 '꿈의 무대'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린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회서 지휘하는 박성준. 이때에는 메인홀이 아니라 챔버홀이었다.ⓒ
    ▲ 2006년 '꿈의 무대'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린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회서 지휘하는 박성준. 이때에는 메인홀이 아니라 챔버홀이었다.ⓒ


    ▲ 2006년 [꿈의 무대]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린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회>서
    지휘하는 박성준. 이때에는 [메인홀]이 아니라 [챔버홀]이었다.


    이후 그는 독일로 무대를 옮겼다.
    2005년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크리스마스 음악회 (헨델 메시아/베를린 신포니에타),
    2006년 <베를린 필하모니>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회(모짜르트 대관식 미사/베를린 신포니에타) 등
    유럽 최고의 무대에서 서서히 영역을 넓혔다.


    "베를린 콘서트홀의 양대 기둥인 <베를린 필하모니>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두 곳 모두를 자유롭게 오가며 연주활동을 할 수 있다는게
    <베를린 신포니에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입니다.

    두 콘서트홀 운영진 모두로부터 음악성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베를린 필>과 <베를린 콘체르르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현역 단원들이
    <베를린 신포니에타> 단원을 겸하고 있는 덕분이지요.

    형식은 챔버 오케스트라이지만, 곡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편성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베를린 신포니에타>의 특징입니다."


    박성준 지휘자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앞으로 3년간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지휘해보려 합니다.
    또 구스타프 말러의 대표 교향곡 1, 2, 4, 5, 9번에도 도전합니다.

    그밖에도 모차르트-브람스-차이코프스키-베르디-드보르작-파가니니-라흐마니노프 등의 주요 작품들도 연주곡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바흐의 오라토리오나 헨델의 메시아 등
    종교 음악 연주도 계속 레퍼토리에 넣을 생각입니다."


    <베를린 신포니에타>의 연주를 국내에서 접할 수는 없는지 물어 보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베를린 신포니에타>의 방한 연주를 추진할 생각입니다.
    하나로 합쳐진 베를린 음악계의 숨겨진 보석을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소개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박성준 독일내 주요 연주 경력]

  • ▲ 비엔나 신포니 독일 투어 포스터.ⓒ
    ▲ 비엔나 신포니 독일 투어 포스터.ⓒ

    - 2004년  라이프찌히 <게반트하우스>
                  송년음악회 지휘

    - 2005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크리스마스 음악회 지휘
                   ★헨델의 메시아

    - 2006년  <베를린 필하모니> 챔버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음악회 지휘
                   ★바이얼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대관식미사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송년음악회 지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 2007년  <비엔나 신포니 오케스트라>(Das Sinfonie Orchester Wien) 독일투어 지휘

    - 2010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부활절 음악회 지휘
                    ★바흐 마태 수난곡

    - 2012년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홀
                   신년음악회 지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부활절 기념음악회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