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판시(判示)한 강종헌의 김일성 獻歌(헌가)

    “김일성 원수님이시여 만수무강하옵소서”

     

    김성욱 객원논설위원

  • 위의 사진은 19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以下 75년 간첩단 사건)’당시 법원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5번 강종헌이 북한에 건넸다고 판시한 김일성 찬양 노래다. 사진 출처는 1972년 4월14일 로동신문이다. 

    강종헌은 75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 받은 뒤 13년을 복역한 인물이다. 그는 1988년 출소 이후 일본으로 추방돼 북한정권을 추종해온 反국가단체 <한통련>(在日한국민주통일연합)과 利敵단체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간부 등을 지내다 19대 총선에서 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강종헌은 “1972. 2. 5. 김일성 회갑 축하선물로 노래를 작사․작곡하고 맹세문을 작성하여 하시모도에게 제공, 고무 찬양하고, 1973. 8. 3. 가시와사끼 해안에서 공작선에 승선, 8. 6. 청진항 도착, 8. 18. 노동당입당, 지령수수를 한 것”으로 나온다. 

     법원이 판시한 강종헌이 ‘김일성에 바치는 회갑 축하 노래’는 1972년 4월14일 로동신문 2면에 게재됐고, 이 같은 사실(날짜·출처 등)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委)가 2010년 작성한 <재일동포 강종헌에 대한 간첩조작 의혹 사건 조사 보고서>에도 확인돼 있다. 

    로동신문은 당시 작사·작곡자를 명기하지 않은 채 “이 노래는 남조선의 한 청년혁명가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예순 돐에 즈음하여 수령님께서 부디 만년장수하실 것을 축원하는 뜨거운 마음을 담아 작사, 작곡하여 보내온 충성의 선물”이라고 적었다. 

    이어 “음악전문가도 아닌 그가 충성의 노래를 짓게 된 것은 일편단심 수령님께 영원히 충성을 다할 한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아래와 같은 가사를 적었다. 

    《암흑천지 남녘땅에서 모대기는 인민들 우에 민족영웅 4월의 태양 밝고 밝은 빛을 뿌리네. 수령님의 탄생 예순 돐 충성으로 축하합니다. 김일성 원수님이시여 만수무강하옵소서.

    미제 놈과 앞잡이들의 파쑈 광풍 불어치는데 우리 앞길 밝혀주시고 승리에로 령도하시네 남녘의 땅 청년학도의 경애하는 어버이수령. 김일성원수님이시여 만수무강하옵소서. 

    조국 통일 달성을 위해 조선혁명완수를 위해 주체사상 높이 받들고 목숨으로 빛내여가리. 수령님께 충성 다지는 무명전사 돌봐주시는 김일성원수님이시여 만수무강하옵소서.》

    강종헌은 2010년 진실委 조사에서 문제의 김일성 노래 작사·작곡 및 75년 간첩단 사건 연루 사실을 모두 부인했었다. 그는 조사에서 “나는 작사․작곡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북한에 그런 내용의 노래를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었다. 

    그러나 진실委는 “범죄사실 조작 여부는, 판결에 나타난 범죄사실과 배치되는 자료 등에 비추어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중요 참고인 등을 조사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범죄 사실이 조작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일부 再審(재심) 권고’를 내렸다. 강종헌은 2011년 서울고등법원에 재심(再審)을 청구,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재심(再審)을 통해 75년 간첩단 사건의 무죄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고 또 무죄 판결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과거 판시된 내용은 사실로 볼 수밖에 없다.

    강종헌의 감옥친구인 金鉉獎(김현장)씨는 강종헌이 김일성 찬양 노래를 작사·작곡해 북한에 보냈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현장 씨는 5월20일 <조갑제닷컴>에 기고한 <김현장이 강종헌에게 보내는 편지>(이하 편지)’에서 “노동당 당원까지 된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하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라며 “고등학교 다닐 적부터 기타 치기를 좋아했고, 북한의 각종 기념일, 특히 김일성 주석의 생일 때는 찬양하는 노래를 작사, 작곡하여 북으로 보냈다는 이야기” 등을 회고했다. 

    김현장 씨는 이상(以上)의 내용을 21일 기자(記者)와의 전화통화에서도 다시 확인해주었다. 

    김현장 씨는 5월14일 편지에서도 “너는 철두철미하게 김일성 주석이 영도하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즉 38 이북을 너의 조국이라는 신념하에 살아온 삶이었다. 13년의 옥살이를 통해서 더욱 단련되었고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은 너의 육신을 불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뜨거웠다. 너에 비해 나라는 놈은 혁명적이지도 못하고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도 없는 맹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자네의 표정이 항상 근엄하였지만 얼음장처럼 더 차가운 눈빛과 목소리로 자네가 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였다”며 “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조선노동당의 당원임을 떳떳하게 밝히기로 하였고,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유학생의 신분으로 남한에 들어와서 활동한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고 했지”라고 덧붙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