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민과 이정희

  •   이정희는 말했다. “나는 김용민을 신뢰한다”고. 도대체 그의 무엇을 신뢰한는다는 것인가?
    통합민주당 역시 이렇다 할 조치가 없다. 역시 그를 신뢰해서일까? 김용민이 만약 새누리당 사람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정희와 한명숙은 어떤 독한 말들을 쏟아냈을까?

      이것을 보며 새삼 느끼는 것은 후흑(厚黑) 철학이란 것이다. 두껍고 시꺼먼 것. 상대방이 김용민 같은 말을 내뱉었다면 “저런 X 당장 사퇴시켜야!” 했을 사람들이, 자기네 사람이 그러면 “오, 내 새끼” 하는 후흑. 이게 ‘진보’인가?

      한 석이 아쉬운 판에 김용민을 자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 보라. 운동권 학생 이정희가 그때 그 시절 권위주의 하에서 다짐했을 법한 자신의 초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마도 나름대로의 ‘도덕적 분노’였을 것이다.

      ‘막말 김용민’은 그 '도덕적 분노'와 맞는 사람인가? 아무리 그랬어도 ‘우리 편은 우리 편’이란 식의 정치공학적 계산을 앞세운다면, 이정희는 이미 그들이 매도해 마지않던 상대방의 정치공학을 닮아 간 것이나 다름없다. 미운 X을 닮는다고...

      이정희는 또 말했다. “저는 진지한 반성과 변화의 결심이 확고한 진보인사라면 여성인권도 진보의 시각에서 인식할 수 있다고 보고 지금의 김용민 후보는 그럴 만한 사람이라 판단 한다"

      여성인권에 대한 ‘진보의 시각’이란 대체 무엇인가? 여성인권이라는 보편적인 잣대보다 자신들의 당파적 이해득실이 더 우선한다는 것일까? 하기야 ‘진지한 반성’이라는 것을 앞세우긴 했다. 그러나 X끝이 타도록 다급해서, 낭떠러지 끝으로 밀려서 질러댄 ”살려 줍시오“ 한마디를 과연 무죄방면의 사유로 봐줄 수 있을까?

      ‘막말 김용민’ 감싸기에서 ‘진보적’이라기보다는 그저 또 하나의 권력정치적인 수사학으로 내닫는 ‘진보’ 아이콘의 무리수를 읽는다.

     류근일  본사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