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 <탈북자 북송반대> 단식하다 '응급실행'여대생 500명, 옥인교회 앞 모여 "사랑합니다. 총장님" 목 놓아 외쳐"탈북자 모두는 우리와 같은 인간.." <탈북자 북송반대 선언문> 낭독참담한 北현실 노래한 가사, 흥겨운 리듬에 실려..가슴 '먹먹' 감동
  •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에서 새삼 여성의 위대한 힘을 느꼈다. 처음 단식을 감행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 18일간 단식을 하면서도 평양식 온반(닭육수에 야채와 닭고기를 고명으로 얹은 밥을 넣어 국밥처럼 먹는 음식)을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던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그리고 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이 모두 여성이다. 또 경인여대에서 참가한 500여명의 학생들도 모두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1. 오후 1시 35분

  • ▲ 1시 반부터 북적이던 옥인교회 앞.
    ▲ 1시 반부터 북적이던 옥인교회 앞.

    경인여대 학생들이 지난 13일 오후 2시에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가방을 챙겨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간 60여명의 인원이 꾸준히 집회를 벌려왔던 서울시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교회 앞은 이미 600여명의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500여명의 경인여대 학생들과 일반인 참가자 80여명 그리고 취재진 20여명이 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밝은 표정의 여학생들은 각자 준비해온 풍선을 불면서 집회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때로는 수다스럽게 떠들면서도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풍선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Save my friend(제 친구를 구해주세요)"

    선명한 글자가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풍선을 손에 꼭 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인기 연예인 공연을 기다리는 열성팬처럼 보였다.

    설레는 표정으로 집회 개막을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문득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인동초'가 떠올랐다. 

    막연한 절망이 아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읽혀졌다.

    #2. 오후 2시 5분

  • ▲ 학생의 호소력 짙은 눈매가 인상적이다. 강제북송반대를 외쳤던 경인여대의 김민 학생대표.
    ▲ 학생의 호소력 짙은 눈매가 인상적이다. 강제북송반대를 외쳤던 경인여대의 김민 학생대표.

    사회를 맡은 경인여대 김민 학생대표는 “수업도 제쳐두고 이곳에 찾아왔다. 우리 학교를 설립하고 현재 명예총장님으로 계신 김길자 총장님이 탈북자 강제북송 저지를 위해 단식투쟁을 감행하시고 계신다. 오늘 김 총장님이 11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오늘 6개 학과에서 500여명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경인여대 학생들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발랄했던 분위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느새 비장한 분위기가 장내를 감돌았다.

    첫번째 순서는 국민의례였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사실 대한민국에서 이뤄지는 공식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은 당연한 식순이다. 하지만 최근 국민의례를 허례허식이라고 판단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또 일부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이 국민의례 대신 이른바 민중의례를 하면서 젊은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본보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나라사랑의 '첫 걸음'인 애국가 제창이 '구식'으로 치부되는 오늘, 경인여대 학생들의 국민의례가 뜻밖의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3. 오후 2시 15분

  • ▲ 김길자 총장이 앰뷸런스로 옮겨졌다.
    ▲ 김길자 총장이 앰뷸런스로 옮겨졌다.

    단식 11일째를 맞은 김길자 총장은 학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사실 김 총장은 사전에 요청했던 인터뷰도 "몸이 부어올라 힘들다. 단식이 끝난 뒤 병원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간 꾸준히 김 총장을 만났던 기자의 눈에도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단식 10일째 저녁까지도 "괜찮다"고 말했던 김 총장이었다. 김 총장은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어렵게 학생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학생들의 눈에는 금세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고였다.

    걱정스럽게 자신을 응시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김 총장은 있는 힘껏 마이크를 잡았다.

    김 총장은 “우리 경인여대 학생들이..감사하고..대견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을 더 이어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입을 뗄 기력조차 그에겐 남아 있지 않았다.

    김 총장은 앰뷸런스를 요청했다. 김 총장은 자신의 제자들이 500여명이나 참석한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이화여대 목동병원으로 후송됐다.

    #4. 오후 2시 25분

  • ▲ 국민의례를 하는 진지한 경인여대 학생들.
    ▲ 국민의례를 하는 진지한 경인여대 학생들.

    경인여대 학생들은 김 총장을 눈물로 보내며 “사랑합니다. 총장님”을 목 놓아 외쳤다.

    앰뷸런스가 출발하고 눈에서 저만치 멀어져도 학생들의 외침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 총장의 갑작스런 '병원행'에 학생들은 일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다행히 집회는 일정대로 진행됐다.

    식품영양학과 1학년 김진실(20)양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녀는 경인여대 전체를 대표해서 선언문을 낭독했다. 김 양이 속한 경인여대 식품영양학과는 지난 11일 탈북자 강제북송을 저지하기 위해서 18일째 단식을 감행했던 이애란 원장이 강의를 하던 학과이기도 하다.

    이날 낭독된 경인여대 학생들의 <탈북자 북송반대 선언문>은 아래와 같다. 그들의 절절한 진심이 느껴진다.

    시민 여러분 그리고 중국대사관 관계자 여러분 저희는 인천에 있는 경인여자대학 학생들입니다. 저희는 정치를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이익단체는 더더욱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살기위해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붙잡혀 강제북송이 될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의 생명을 걱정하는 학생이고 인간일 뿐입니다.

    현재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살기위해 탈출한 그들이 북송된다면 배신행위로 간주되어 탈북을 감행한 사람과 가족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 됩니다. 그들의 죄는 살기 위해 북한을 떠난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들도 누군가의 어머니고 아버지고 자식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소중하듯 그들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우리 경인여자대학 학생들은 죄없는 귀중한 생명들이 꺼져 나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여기모인 한 사람의 발자취가 그들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죽음 앞에 절규하는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희의 애타는 호소와 작은 마음들을 널리 알려서 부디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북송하지 못하도록 도와주세요. 저희의 호소와 바램이 그들에게는 생며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글을 올립니다.

    - 인간의 소중함을 알고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실천하고자 하는 경인여자대학 학생 일동

    #5. 오후 2시 35분

  • ▲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경인여대 방송연예과 학생들.
    ▲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경인여대 방송연예과 학생들.

    "그대가 웃고 즐기는 이 순간에도 우리 형제는 기아에 허덕이고...
    탈북자는 북송되고 비참하고 억울하게 쓰러져 간다"
    ,
    "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가 있는데 이를 막는 이들은 또 누군가요.
    어둠속에서 죽어가는 제 친구를 제발 구해주세요."

    '눈물'과 '통곡'만이 연상되던 행사장에 흥겨운 랩이 등장했다.

    무겁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청년 특유의 '열정'이 노래 속에 묻어났다.

    힘들다고, 절망적이라고 고개를 숙이는 대신, 꼿꼿이 서서 현실을 직시하는 패기도 느껴졌다.

    이날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를 위해 경인여대 방송연예과 강현구 교수는 ‘Save My Friend'라는 노래를 직접 만들었다.

    방송연예과 학생들은 랩이 들어간 2곡의 노래를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힘있게 불렀다.

    그간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무대였다.

    작곡·작사를 도맡아 2곡을 만든 강 교수는 사실 '강개토'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싱글앨범 'feel your brain'을 프로듀싱하며 작사, 작곡, 편곡, 연주, 엔지니어링을 혼자 힘으로 해 내 화제를 모았었다.   

    강 교수는 "젊은이들이 쉽게 따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탈북자 강제 북송에 관한 관심을 가질수 있도록 노래와 랩이 어우러진 곡을 작곡했다"며 "한 곡의 작사는 내가, 다른 한 곡은 작사가 고훈준의 도움을 받았다. 리듬도 중요하지만 의미가 남다른 노래라 가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6. 오후 2시 45분

  • ▲ 자유발언을 한 한 여학생. 수줍게 웃는 모습이 한없이 순수해 보인다.
    ▲ 자유발언을 한 한 여학생. 수줍게 웃는 모습이 한없이 순수해 보인다.

    경인여대 학생들은 자유발언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주저 없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중국 정부에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

    호텔경영학과의 한 학생은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인권이 있다. 현재 중국정부의 강제북송은 당연히 중지돼야 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대한민국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생명은 나의 생명과 동일하게 존귀하다 ."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방송연예과의 한 학생은 “탈북난민 강제북송 반대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이 동참했으면 좋겠다. 모두 바쁘고 모두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집회를 하는 순간에도 탈북자 중 누군가는 죽음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을 받는 우리의 친구들을 위해서 이 운동을 계속 확대해야 한다. 특히 전국의 대학생들이 집회에 참가해 젊은이들의 활발한 활동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젊은 대학생들의 동참을 종용했다.  
     
    #7. 오후 3시 5분

  • ▲ 집회가 끝나자 아쉬움을 못이겨 자리를 못 뜨는 경인여대 학생들.
    ▲ 집회가 끝나자 아쉬움을 못이겨 자리를 못 뜨는 경인여대 학생들.

    경인여대 학생들에게 허락된 1시간은 짧았다. 옥인교회에서도 자체 일정이 있기에 교회 앞에서 장시간 집회를 하지 못한다. 2시부터 딱 1시간만 허락된 그들의 집회에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특히 마지막 자유발언에선 시간부족으로 발언을 다 마치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다. 당연히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듣고 싶어한 시민들의 표정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1시간을 가득 채우고도 뭔가 여운이 남았는지 학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였다.

    날씨가 풀렸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3월 어느 오후였다. 

    글/사진 윤희성 기자 ndy@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