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연락부(225국), 從北조직-정당-사회단체 관리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공격을 개시해야” 
    金泌材    
      
    2007년 1월9일자 보도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공격을 개시해야만 한다. 전국적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의 도처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전화·발전소·방송국 등 중요한 공공시설을 점거함과 동시에 전력의 공급중단과 함께 통신·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北)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한다” <김일성 교시, 1974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북한의 대남공작기관 소속 인원들은 1970년대 초 이래 대략 15,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후로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이 운영하고 있는 대남전문공작부서로는 당 중앙위원회 산하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35호실’ 등 4개의 공작부서와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있다. 이들 조직은 각자 독립성을 유지한 채 독자적인 대남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중요 공작사안에 대해서는 각 부서에서 특급 공작요원을 차출해 특별팀을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남공작조직 목표 “미군 축출-남조선 혁명-사회주의 통일”

    특히 북한 대남공작기관의 목표는 ‘남조선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통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통일전선부는 “북조선은 1945년 공산화와 더불어 식민지배와 모순된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일거에 벗어났으나, 남조선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미군을 축출하고 남조선 해방과 혁명 그리고 북한식 사회주의 통일을 동시에 이루는 길”이라고 밝히고 있다.

    ▲통일전선부(통전부): 조선로동당 산하의 4개 대남부서 가운데 ‘수석’은 통전부로서 김정일이 추진하는 대남공작의 기본 골격이 이 조직에서 만들어진다. 통전부는 1977년 김일성의 직접교시에 따라 만들어졌다.

    통전부는 선전, 대남방송, 삐라배포, 해외교포들의 포섭 및 남한 내 친북조직 관리 등 공개적인 선전·선동공작을 펼친다. 이부서는 직할부서로 직접침투과, 남북회담과, 해외담당과, 대남심리전 및 정보자료를 분석하는 조국통일연구원 등이 있으며 다른 공작부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공개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통전부의 외곽단체로는 지난 2004년 4·15 총선 당시 ‘반(反) 한나라당 투쟁 지침’을 내려 국내친북세력을 지도하기도 했던 한국민족민주전선(반제민전)을 비롯하여, 범민련과 범청학련(이적단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통협),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등은 모두 통전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

    대부분의 통전부 소속 대남공작 요원들은 공개적인 행사나 회담 때 주로 가명(假名)과 가직위(假職位)를 쓴다. 남북대화나 교류 등으로 낯익은 전금진(본명 전금철), 안병수(본명 안경호), 이종혁, 94년 3월 남북실무접촉에서 ‘서울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영수(사망) 등 대남전위기구 간부들의 실제 소속직책과 직급도 통전부의 부부장 급이다.

    통전부장, 대남공작 총괄하는 최고 실무책임자-김정일 최측근

    그동안 통전부의 최고 책임자는 지난해 8월 사망한 임동옥 제1부부장이었다. 통전부장은 대남공작을 총괄하는 최고 실무책임자로, 김용순(2004년 9월 사망)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을 비롯해 역대 부장이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다. 대북전문가들은 통전부장으로 기용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현재 부부장으로 활동 중인 이종혁·최승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 부위원장,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꼽고 있다.

    40대 후반의 최승철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적십자회담 북측 단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뒤, 남측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짧은 기간에 과장에서 부부장으로 고속 승진했으며, 현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한 대북전문가는 “임 부장과 달리 최 부부장이 제1부부장이라는 보도에 대해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그동안 보여준 모양새로 미뤄 제1부부장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만 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세대교체 생각이 있다면 그를 임명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직책에 비해 경력이 너무 짧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지난해 6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던 안경호의 기용 가능성도 나오고 있지만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그가 임명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종혁 역시 남북관계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미국과 일본 등 국제관계에도 매우 밝지만 그동안의 활동경력으로 볼 때 비중은 떨어진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이나 김기남 노동당 비서의 기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장성택은 종전 남북관계와 관련 없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있으면서도 2002년 10월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남한의 산업시설을 참관하는 등 남북 관계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대외연락부(舊사회문화부, 225국으로 명칭 변경): 통전부가 북한의 통일방안을 만드는 ‘두뇌’라면 대외연락부는 통전부가 만드는 통일방안을 실행하는 ‘수족’이다. 특히 대외연락부는 남한 내 친북 조직을 유지·확대하고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침투하는 간첩을 관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대남사업을 관장한 후 대외연락부는 남한지역을 관장하던 10개 지역 담당과를 4개 지역과로 통폐합하고 그 대신에 4개의 남조선 지도층 고위인사 포섭당담과를 신설했다.

    이부서의 대표적인 공작원으로는 남한출신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오른 거물간첩 정경희를 비롯해, 92년까지 지하당인 남조선로동당을 만들어 김낙중(평화연대 평화연구소 고문) 등을 관리하다 북한으로 도주해 지난 2000년 사망한 이선실, 95년 10월 24일 부여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검거된 ‘부여간첩’ 김동식, 15대 대선직전 적발 체포된 ‘울산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자살), 98년 12월까지 반국가단체인 민혁당을 지도하다 여수 앞바다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돌아가다 해군 광명함의 포격을 받아 반잠수정이 격침됨으로써 사망한 대외연락부 5과장 윤택림 등이 모두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었다.

    현재 대외연락부는 전 통전부 제1부부장이었던 김일성의 외오촌 조카 강주일(본명 강관주)이 총괄하고 있다. 강주일은 김정일의 ‘수족’으로 불릴 정도로 김정일과 밀착관계이며, 조총련과 평양을 연결하는 채널로서 조총련에서 김정일에게 전달되는 성금을 관리하고 있다.

    ▲작전부: 오극렬 노동당 작전부장(북한 인민군 대장)이 지휘하는 작전부는 평양의 모란봉구역 전승동 노동당 3호청사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남 및 대외공작부서로서 남한과 제3국에 비합법적으로 침투하는 공작요원을 일정한 장소까지 안내하는 임무와 요인암살 및 납치, 군사정찰 폭파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작전부 산하 ‘4·14연락소’ , 위성통신 전파 분석 및 독극물 제조

    북한 간첩들을 두 가지로 분류할 때 전투원(무장간첩)과 공작원(고정간첩)으로 나누는데 이중 전투원은 바로 노동당 작전부 요원을 지칭한다. 작전부는 간첩을 비무장지대(DMZ)나 해안선을 통해 남한에 직접 침투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여러 공작기구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평양의 ‘3호청사’ 근처에 있는 4·14연락소는 노동당 작전부의 실무적인 지휘본부이다. 이 4·14 연락소에는 국외에 있는 북한 간첩에게 지령을 보내는 통신시설을 비롯해 각종 독극물의 제조소 등 간첩활동에 대한 지원시설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2미의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4.14연락소는 지난 76년경부터 자체 제작한 위성통신 안테나로 위성통신에서 나오는 전파를 잡아낸 뒤 이를 분석해 김정일에게 보고해 왔다. 물론 이 연락소는 국제위성통신기구(INTELSAT)에 가입하지 않았다. 4.14연락소의 통신기술은 북한의 다른 연구소나 전문기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최첨단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연간 수백만 달러를 김정일로부터 지원받는다. 4.14연락소는 역사가 35년 정도 됐다.

    1965년 가을 김일성은 당시 대남사업을 이끌던 이효순에게 “대남사업에서 통신은 생명”이라고 강조하고 “통신을 정보조직의 골간으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1965년 겨울에 창설된 4·14연락소는 현재 본사 인원 3천명, 지방근무인원 2천명 규모로 되어 있다.

    ▲35호실(대외정보조사부): 평양시 창광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35호실은 과거 대외정보조사부의 후신으로서 각종 테러 및 대남·해외정보를 수집하고 해외인사를 포섭·매수해 남한으로 투입시키는 등 대남 우회침투 활동을 주로 한다.

    해외간첩공작, 국제·대남테러공작 등도 35호실의 주요 임무로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과 베를린, 파리 등 주요 도시에도 공작거점을 두고 있다. 35호실은 주로 제3국을 경유해 침투하는 간첩을 관리하고 있다. 87년 대한항공 KAL 858기 공중폭파사건, 최은희·신상옥 부부 납치사건 등이 대표적인 35호실 작품이었으며 교수간첩 무함마드 깐수(본명 정수일·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도 35호실 소속이었다.

    건국이래 최대 위기 직면, ‘연방제 적화 통일’ 배제할 수 없어

    특히 잠비아주재 대사관 소속 정보원으로 활동하다 귀순한 차성근씨도 35호실 소속의 공작원이었다. 월간조선 최근 보도에 따르면 현재 35호실의 책임자는 부부장 중 한 명인 허명욱이 지난 2000년 3월에 이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허명욱은 1978년에 발생한 영화배우 최은희 씨 납치사건과 1979년 4월의 고상문(당시 직업 교사) 납북사건을 지휘한 장본인이다.

    35호실은 5명의 부부장 밑에 해외담당부서, 대남사업부서, 지원부서 등이 있는데 동남아 지역은 ‘35호실 3과’에서 담당한다. 최근 김정일 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마카오에서 돈 세탁을 담당했던 ‘조광무역’이 대표적인 ‘35호실 3과’ 소속의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북한의 대남공작조직은 실재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공작활동의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한다.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론, 그리고 '우리민족끼리'로 위장한 '거짓' 평화공세에 대북경계심이 이완된 까닭이다.

    북한의 대남공작 활동과 이에 부응해온 남한 내부의 친북좌경화 상황을 연결시켜 본다면 우리사회가 곧 ‘적화’ 되고 북측 통제에 의한 ‘연방제 통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건국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국가 원로들의 지적을 가볍게 봐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의 노동당 정권이 지난 반세기 동안 구축해온 대남공작 조직이 지금도 '남조선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통일'을 목표로 활동 중에 있기 때문이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