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 레토릭으로 장인-장모-처의 책임 회피하려 하지말라"
  • 그 장인에 그 사위

    감성적 레토릭으로 노무현-권양숙-노정연의 법적-정치적-도덕적 책임을 피해가려는 노무현 사위에게서 '인간의 용렬함과 잔인함'을 본다.

    강철화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의 아내인 노 전 대통령 딸 노정연씨가 최근 미국 호화아파트 매입 건과 관련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데 대한 항변의 글이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근 제 아내가 불쑥 언론에 등장했습니다.
    셋째 아이의 출산을 불과 20여일 앞둔 아내의 모습이 처량합니다.
    저로서는 지금까지 보도된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제 아내가 이 정도로 비난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부부로서 약 10년의 생활을 함께 한 모습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한들, 제 아내는 아비를 잃은 불쌍한 여인입니다.
    그것도 하늘에서 떨어진 모습을 목도했고, 지금껏 마음을 삭힐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입니다.
    이미 자신의 행위책임을 넘는 충분한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남편인 저는, 그 곁을 묵묵히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인간의 용렬함 그리고 잔인함을 봅니다.>

    출산을 앞두고 다시 구설에 휘말린 노정연씨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연민의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연민의 마음과 함께 머리에 떠오른 것은 “그 장인에 그 사위”라는 생각이었다.

    노무현,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2002년 大選(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장인인 권오석이 6-25 당시 양민학살 등 附逆(부역)행위를 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장인의 附逆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노무현 후보는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받아쳤다.

    노빠들과 노빠언론은 노무현의 이 발언에 열광했고, 이를 ‘사나이 순정’으로 포장해 퍼뜨렸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의 발언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었다. 권양숙씨하고 계속 같이 살 것인지, 이혼할 것인지를 물어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장인 권오석의 附逆행위에 대한 평가여야 했다. 노무현 후보가 “장인의 행위는 대한민국의 正體性(정체성)을 훼손하는 附逆행위였다. 장인 때문에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사죄한다.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의 正體性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 장인 대신 贖罪(속죄)하겠다”고 대답했다면, 정답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장인의 附逆행위를 합리화를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이 정정당당한 사람이었다면, 그 질문에 그런 식으로 정면대응했어야 했다. 그게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라는 公人(공인)의 자세였다. 하지만 노무현은 ‘논리’로 대답해야 할 문제를 ‘감성’으로 비껴나가는 ‘꼼수’를 택했다.

    노무현 자살은 권양숙 책임

    곽상언 변호사 역시 2002년 장인 권오석의 附逆행위에 대한 질문을 변칙적으로 빠져 나가던 장인 노무현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지금 노정연씨와 관련된 논란의 핵심은 노정연씨가 무슨 돈으로 160만 달러라고도 하고 240만 달러라고도 하는 미국 뉴저지의 호화아파트를 구입했느냐 하는 것이다.

    2009년 노무현 비자금 사건 수사 당시 알려진 바에 의하면 권양숙씨가 박연차 회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서 돈을 만들었고, 그 돈을, 미국을 國賓(국빈)방문할 때 전용기에 실어(국빈방문하는 외국 국가원수의 짐은 검색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미국 유학 중이던 아들 노건호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이 검찰에 소환되는 등 수사가 확대되어 갈 즈음 노무현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자살했고, 사건은 서둘러 封印(봉인)되었다. 수사가 계속되었으면 파렴치범으로 감옥에 갔을지도 모르는 그는 자살함으로써 ‘정치적 殉敎者(순교자)’가 됐다.

    하지만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새어나왔다. 그 중에는 문제의 부정한 돈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노무현보다는 부인 권양숙씨에게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상문 비서관이 받았다는 3억 원과 100만 달러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다. 그 돈이 그냥 빚 갚는 데 쓰인 게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 집 사는 데 쓰인 것을 알고 충격이 굉장히 크셨다. 그런데도 홈페이지에는 수사를 정치적 음모로 보고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글들이 올라오니까 ‘그건 아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다’고 생각하고 계셨다”고 토로한 바 있다.

    지난 2월 20일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노무현 시대에 대한 망각>이라는 칼럼에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1차적인 동기는 부인 권양숙 여사였다”면서 “전직 국가원수를 사지(死地)로 안내한 것은 무엇보다 부인의 책임이다. 노무현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부부 신뢰관계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라고 쓴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어찌됐건 노정연씨의 미국 호화아파트 구입 사건은 ‘서민대통령’이라는 노무현의 평판을 땅에 떨어뜨린 사건이었다. 권양숙씨가 미국을 국빈방문하는 비행기에 돈가방을 실어나른 게 사실이라면 이는 國格(국격)을 아프리카 3류 국가수준으로 떨어뜨린 망신스런 행위였다.

    왜 지금 노무현 비자금을 거론하나?

    사정이 이렇다면 親盧세력이나 노무현 가족들은 自肅(자숙)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親盧세력은 어떠한가?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였다”는 소리를 스스럼없이 입에 달고 산다.

    그리고 죽은 노무현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정치적 飛上(비상)을 꿈꾸고 있다. 심지어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던 문재인씨는 차기 大權(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더 웃기는 건 김진 논설위원의 말처럼 ‘전직 국가원수를 死地로 안내’한 권양숙씨의 행보다. 그녀는 지금 안희정, 이광재 등의 정치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등 親盧세력, 자칭 진보세력의 ‘대모(代母)’행세를 하고 있다. 염치없는 짓이다.

    지금 노무현 비자금 사건이 다시 문제가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 그렇다면 3년 전 노무현의 자살로 따지지 못하고 넘어갔던 문제들을 한번 명확하게 계산해 보자는 것이다.

    - 도대체 노무현 비자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가?

    - 검찰수사가 계속됐다면 노무현은 과연 형사처벌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질렀나? 아니면 천사같이 순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검찰이 陰害(음해)한 것인가?

    - 부정한 돈을 받은 것은 노무현인가, 권양숙인가, 정상문인가?

    - 노무현을 죽인 것은 누구인가? 이명박인가, 검찰인가, 권양숙인가?

    - 노정연은 무슨 돈으로 뉴저지의 호화아파트를 샀나? 그게 ‘서민대통령’ 노무현의 딸에게 걸맞는 행동이었나?

    - 노무현은 과연 ‘서민대통령’으로 尊崇(존숭)을 받을 만한 훌륭한 대통령인가, 아니면 ‘서민대통령’을 가장한 僞善者(위선자)인가?

    - 노무현의 측근들은 ‘대통령 노무현’을 얼마나 제대로 보좌했는가? 청와대에 있으면서 그들은 얼마나 깨끗했는가?

    - 문재인씨는 대통령비서실장의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가? 자기 밑에 있던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권양숙씨의 부정한 돈을 관리한 사실을 알고 있었나, 모르고 있었나? 알고 있었다면 그는 부정부패의 共犯(공범)이요, 모르고 있었다면 무능한 비서실장이다.

    이런 게 바로 지금 다시 노무현 비자금 사건이 거론되는 이유다. 노무현 비자금 사건은 법률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혹은 그 부인의 형사처벌이 거론될 수도 있는 문제다. 역사적-정치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親盧세력에 대한 평가의 문제다.

    앞에 던진 질문들에 대해 노무현이 무고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다면, 親盧세력과 노무현 유족들은 거리를 활보하면서 정치적 부활을 모색해도 좋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머리 숙이고 자숙해야 마땅하다.

    남상국 사장을 기억하나?

    그런 문제를 곽상언 변호사는 전혀 변호사답지 않게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문제, ‘아비를 잃은 불쌍한 여인’의 문제로 치환(置換)시키고 있다.

    이런 감성적인 접근은 전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장인 권오석의 附逆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노무현이 권양숙을 버리느냐, 안 버리느냐가 본질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노정연씨를 ‘아비를 잃은 불쌍한 여인’이라면서 “이 사건에서, 인간의 용렬함 그리고 잔인함을 본다”고 말하는 곽상언 변호사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남상국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느냐?”고.

    남상국씨는 전 국민이 시청하는 TV방송에서 노무현이 공개적으로 그 이름을 거론하면서 망신을 주는 바람에 수치심을 못 이기고 한강에 투신자살한 전 대우조선 사장이다.

    남편을, 아버지를 그렇게 잃고서도 遺族(유족)들은 노무현 정권 내내 죄인처럼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노무현은, 권양숙은, 노정연은, 노건평은, 노건호는, 곽상언은, 남상국씨의 유족들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사죄의 뜻을 표한 적이 있나? 단 한번만이라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 그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나?

    寡聞(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노무현이나 그 가족들이 남상국 사장 유족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남상국 사장이야말로 ‘노무현이 세 치 혀를 잘못 놀려서 죽인’ 분인 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점에서도 곽상언 변호사는 노무현을 꼭 닮았다. 노무현은 생전에 장인 권오석에게 학살당한 이들이나 유족들에게 一言半句(일언반구) 사과한 적이 없다. 곽상언 변호사도 제 아내의 억울함은 절절하게 주장하면서도 남상국 사장 유족의 아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서 '인간의 용렬함과 잔인함'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