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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폭력, 범죄, 왕따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성인범죄 증가율은 연 6% 남짓하지만 청소년 범죄 증가율은 11%나 됩니다. 청소년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소년 머릿수에 비교한 범죄 빈도는 엄청나게 높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청소년의 범죄는 살인, 강도, 집단폭행, 강간, 윤간, 방화 등 나날이 흉포해지고 있습니다.
학교는 사냥터, 학우는 먹잇감, 선생은 ‘응징해야 할 꼰대’
나아가 학교를 ‘사냥터’로 생각하는 청소년들도 많습니다. 학교에 가면 쥐어팰 수 있는 어수룩도 있고, 돈을 뜯을 수 있는 어리버리도 있고, 빵셔틀을 시킬 수 있는 얼빵도 있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주먹질도 좀 하고, 돈도 좀 벌고, 빵셔틀 놀이도 즐기는 것이지요. 학교는 사냥터, 학우는 ‘갈취대상’입니다.
학우를 먹잇감으로 대하다 보면 선생은 ‘겁대가리 없는 꼰대’쯤으로 보이게 되지요. ‘간덩이 부은 꼰대’가 머리카락 길이를 가지고 시비하면 어떻게 응징해 줘야 할까요? 머리끄댕이를 잡아 뽑아 버려야 합니다. 담배를 가지고 참견하면 어떻게 가르침을 내려 줘야 할까요? 이단옆차기로 한 방 먹여 줘야 합니다.
아, 이 ‘겁대가리 없는’ 어른들은 학교에만 있는 것일까요? 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1등 하는 데, “너는 왜 전국1등 못 하냐?”라고 들들 볶는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여 놓고 시체가 있는 집에서 태연히 밥 해먹고 친구 불러 놀았던 학생이 있었지요. 이 역시 ‘꼰대에 대한 응징’입니다. 아, 살벌합니다.
학교는 감옥이다
이게 왠 일입니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요? 학교가 감옥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잠깐! “학교는 감옥이다”란 이야기는 전교조와 행동을 같이하는 ‘중딩 고딩 정치 조로(早老) 단체’ 아수나로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시험, 입시 때문에 학교가 감옥이 됐다”는 게 이 조로증 청소년들의 주장입니다. 입시 없는 세상, 평가 없는 세상, 룰라랄라 인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꿈’이란 것을 압니다. 인생은 룰루랄라, 붕가붕가가 아니란 것을 압니다. 도전, 고난, 고통, 인내, 희생, 성취, ..이런 것이 인생을 인생답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아수나로의 조로증 중딩 고딩들은, 전교조의 비호 아래, “시험 없는 세상을 만들자! 평가 없는 학교를 만들자! 우리에게 행복할 권리를 달라!”라고 외치지요. 이 중딩 고딩들 귀때기를 붙잡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질질 짜면서 나약한 척 하지마. 인간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하고 숭고한 존재야. 혹은 상당히 튼튼하게 생겨먹은 암탕나귀, 수탕나귀들이지”
아. 무슨 상스런 비유냐구요? 천만에!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이야기입니다. 학교가 감옥이 된 것은 시험과 경쟁 때문이 아닙니다. 학교의 수업이 의미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교의 시험은 ‘수업한 적 없는 수업에 대한 평가’가 되어 버렸죠. 토 나옵니다. 학교의 경쟁은 ‘가르친 적 없는 가르침에 관한 경쟁’이 되어 버렸죠. 학교를 불질러 버리고 싶어 집니다.
편차가 너무 커서 수업이 붕괴했다. 차라리 평상을 깔아라!
왜 학교의 수업이 붕괴했냐구요? 학급 안의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소설을 쓸 수 있는 학생과 주어-동사를 식별하지 못 하는 학생이 함께 앉아 있습니다. 수학 미적분을 팡팡 풀어내는 학생과 최대공약수를 구하지 못하는 학생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수업은 시간 때우기가 될 수 밖에 없고, 오직 학원에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학교는 ‘조는 곳’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배울 게 없어서’ 졸고, 공부를 못 하는 학생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몰라서’ 좁니다. 나머지는 ‘다른 학생이 조니까’ 좁니다. 선생님은 절대로 조는 학생을 깨우지 말아야 합니다. 조는 학생을 깨웠다가는 1시간 이내로 학부모로부터 격렬한 항의 전화를 받습니다.
“당신이 뭔데 우리 애 깨워? 걔가 어제 학원에 갔다가 몇 시에 온 지 알아? 집에 온 게 12시야! 12시! 그리고 새벽 3시까지 공부했다구! 그리고 불과 세 시간 동안 눈 붙이고 나간 애야. 이 인정머리도 없는 것들아! 애, 잠 좀 자게 해라!”
아, 차라리 평상을 까는 편이 낫습니다. 오전 취침시간. 점심. 씨에스타(점심 후 취침시간). 하교 전 취침보충시간. 하루 종일 재우는 편이 낫습니다. “떳떳하게 널부러져서 잠잘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학생인권조례가 추진된다면 저희는 100% 찬성합니다. 이왕이면 선생님도 함께 주무시면 좋지요. 교사임용 시험은 단 한 과목만 봅니다. “언제, 어디서든 의자에 앉기만 하면 잠 잘 수 있는 능력”만 보면 됩니다. 다음과 같은 시(詩)가 읊고 있는 깨달음을 가진 분을 선생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잠이 내 눈을 건드리면 눈이 점점 감기지.
잠이 내 입을 건드리면 입이 헤 벌어지게 돼.
아, 잠은 정말 살금살금 오지. 도둑놈 중에 최고의 도둑놈이야.
그리고 생각을 멈추게 하지.
그리고 나는 여기 이 의자처럼 조용하게 되지.
하지만 의자와는 달라. 의자처럼 버티고 있을 필요가 없지.
나는 이미 누워있잖아?”
이 무슨 비아냥이냐구요? 아닙니다! 니체의 ‘짜라두짜’(Zarathustra) 제2장이 전하는 깨달음입니다. 정말 대단한 철학자이죠. 대한민국의 학교가 이렇게 개판이 될 줄, 일찌감치 꿰뚫어 보고 이런 시를 남겼던 게죠. 전교조 선생님들! 전교조를 해체하시고 진지동(진보적 취침을 위한 ‘교실 지킴이’ 동맹)을 만드십시오. 학교가 무너졌는데, 교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교실 지킴이’가 있을 뿐 아닙니까? 진지동을 만드시면 저희가 매달 후원금을 빵빵하게 내겠습니다.
너는 버러지야!
요즘 왕따가 유행입니다. 폭력화되었습니다. 마침내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까지 발표되었죠. . 담임이 두 명이 되고 경찰이 개입합니다. 이런 대책이나마 나온 것이 다행이죠. 잠을 편하게 자려면 최소한의 질서와 평화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이 역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업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근본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중고교 6년 동안의 ‘무의미한 강제 수용’이 이제 초등학교까지 확장되어 ‘12년 동안의 무의미한 강제 수용’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미군 부대의 징벌 중에 가장 무서운 징벌은 흙을 파서 쌓았다가 다시 메웠다가 다시 팠다가 다시 메웠다가…이를 반복하는 징벌입니다. 무의미한 일을 하루 종일 강제하는 것이죠. 징역은 이에 비하면 천국입니다. 징역 살면서 만드는 물건은 쓸모가 있으니까요. 같은 자리 흙을 팠다가 메웠다가 반복하는 것에는 오직 무의미 밖에 없습니다. 이 징벌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너는 규칙을 어기고 사고를 쳤어. 너는 인간이 아니야. 너는 버러지 같은 놈이야. 버러지로 취급해 줄께. 버리지가 뭘까? 의미없는 일을 한없이 반복하는 존재가 바로 버러지야. 한번 버리지가 되어 봐!”
가름침 없는 가르침, 수업 없는 수업, 시험답지 못 한 시험, 평가답지 못 한 평가, 경쟁답지 못 한 경쟁을 위해, 즉 무의미한 일을 하기 위해 12년 동안 ‘학교’라는 장소에 갇힙니다. 이게 미군 부대의 흙 파서 메꾸는 징벌과 무엇이 다른가요? 똑같을 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12년 동안 ‘무의미한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폭력, 일탈, 왕따를 통해 ‘나다움’을 느낀다
버러지 취급을 당한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폭력, 일탈을 통해 반항합니다. 왕년, 50년대에 날리던 영화가 있었지요. ‘이유없는 반항’. 제임스 딘(James Dean) 주연의 영화였습니다. 청소년은 원래 반항하는 존재입니다. 세계와 구분되는 자아를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이 자아를 주체하지 못 해 가끔씩 반항합니다. 이른바 사춘기이지요. 민감하고 위험한 시기이죠.
하지만 당시 미국은 우리와 완전히 달랐죠. 우선 우리처럼 학교에서 무의미한 생활을 하는 존재, 즉 수업아닌 수업, 가르침 아닌 가르침, 경쟁 아닌 경쟁, 평가 아닌 평가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둘째, 당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였죠. 그런데도 제임스 딘은 ‘목숨을 건 반항’을 합니다. 풍요가 넘치는 천국 같은 사회에서의 반항. 당시 가난에 찌든 한국의 청년 관객들은 이 ‘천국 속의 반항’을 동경했습니다. 제임스 딘을 흠모했지요.
그래서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김수영은, 이 이상야릇한 상황—찢어지게 가난한 한국의 청년이 ‘천국과 같은 풍요 속의 반항’을 동경하는 상황을 보고 배알이 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임스 딘을 ‘제임스 띵’이라고 불렀고, “아이스크림 핥아 먹는 게 그리도 부러워? 차라리 양키놈 x대강이나 빨아!”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참, 아이스크림을 팔기 시작한 게 1968년 경입니다. 그 전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께끼’(딱딱한 아이스 바)만 있었지요. 그때 아이스크림 상표가 ‘포모스트’ ..나중에 ‘빙그레’로 이름이 바뀌었죠.
아무튼! 천국과 같이 풍요롭고, 학교가 온전히 운영되어도 청소년은 반항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학교가 미군 부대 영창 징벌과 같이 운영된다면? 폭력과 일탈이 일반화될 수 밖에 없지요. 고등학생은 힘이 세니까 살인 혹은 폭행을 하고, 중학생은 성적 욕망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강간을 하고, 초등학생은 힘이 없으니까 불을 지릅니다. 이 모두 버러지 취급을 당하는 존재들(되다만 자아들, 망가진 자아들)이, ‘나다움’(becoming oneself)을 느껴보겠다고 저지르는 발악적 행동입니다. 불쌍하지요.
평준화를 없애라!
방법은 평준화를 없애는 것입니다. 불평등을 조장한다고요? 그렇다면 지금은 평등한가요? 하향 평준화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그 전에는 없는 집 아이도, 좋은 중학교,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명문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엄청난 사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혹은 아예 조기유학을 가야죠.
값비싼 고급 사교육이나 조기 유학을 감당할 수 없는 보통사람들의 자제는? 그냥 그럭저럭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사다리 걷어차기이죠. “우리는 상류층이야. 우리 집 아이는 어차피 고급 사교육과 조기 유학으로 글로벌 인재가 될 거야. 너희 집 아이? 개들은 그냥 하향 평준화된 강제수용소에서 12년 동안 썩도록!”
무상급식을 적극 지지한 박영선의 자제는, 연간 학비가 4천만원이 되는 고급 외국인 학교에 다닙니다. 평등과 복지를 부르짖는 정동영의 자제는 보스톤 지역 최고의 사립고등학교 브룩스 하이(Brooks High, 학비, 기숙사비, 방학 주거비용, 기타비용을 합치면 요즘에는 매년 거의 1억원이 들어갑니다)에 다녔습니다.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학교에 대해 적대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곽노현의 자제는 김포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는 박원순의 자제는 서울 미대에서 유일하게 서울 법대로 전과했고, 외국계 기업 몽블랑으로부터 유일하게 해외 유학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모두 사다리 걷어차기입니다. 이 사람들 및 이 사람들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하는 세력들은 죄다 “하향 평준화”를 부르짖습니다. 평등과 복지라는 구실을 내세워서.
애 낳기 전에 끝장내자!
교육개혁의 핵심은 평준화 철폐입니다. 박정희가 시작했고 전두환이 강화시켰습니다. 급기야 이해찬 교육부 장관에 이르면 “학교는 목적이다”라고 망발을 했습니다. 학교교육이 개판이 되더라도 학교는 여전히 철밥통이 되어야 한다라는 소리입니다. 교도소 간수가 “교도소는 목적이다”라고 부르짖는 꼴이죠.
평준화를 철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부모들이 나서야 할까요? 힘듭니다. 애 낳아서 학교에 보내기 시작하면 소심해지기 때문입니다.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정성을 아이에게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교육개혁 운동을 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교육개혁 운동은 청년들에 의해 주도되어야 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애 낳기 전에, 애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교육개혁을 완성해야 합니다. 바람직하게는 애 낳기 전에 끝장내는 편이 속이 편합니다. 얼마나 쿨 합니까?
청년세대 중에 저보고 “당신은 애 다 길렀으니까 속 편한 소리를 할 수 있지!”라고 말씀하는 분이 계실 지 모릅니다. 저도 고비가 많았습니다. 첫째 아이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한 때 ‘삐딱선’을 탔습니다. 둘째 아이는, 중2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알고, 저에게 졸라서 막판에 방향을 틀어서 특목고에 턱걸이해서 들어갔습니다. 셋째 아이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거부해서 예체능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렇게 아이 셋이 자라는 과정을 보고 나서 더욱 더 절실하게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의 학교 12년은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도록 강제하는 수용소이다. 끔직한 터널이다. 하루빨리 평준화를 없애고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청년 여러분! 애 낳기 전에 이 끔직한 강제수용소를 때려 부수십시오. 전교조든, 정치인이든 하향 평준화를 찬미하는 소리는 악마의 유혹입니다. 하향 평준화로는 평등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불평등을 은폐할 뿐입니다. 은폐된 불평등은 더 큰 불평등이 되어 우리 아이들의 영혼, 인격, 자아를 박살냅니다!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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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hat, One Kill. 수다 한 방에, '학교가 바뀝니다'.
[저격수다 제 18 화] 학교는 감옥이다들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