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김근태 死亡에 조전(弔電) 보내 
      
     '조선사회민주당'과 '민족화해협의회'의 정체
    金泌材    
      
    <1> 북한의 조선사회민주당(이하 ‘조사당’) 중앙위원회와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이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死亡에 애도를 표명하는 弔電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일자 <연합뉴스>보도에 따르면 조사당은 이날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거쳐 민주통합당 앞으로 조전을 보내 “金 선생이 오랜 병환으로 서거한 데 대해 애석하게 생각하면서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조사당은 또 “金 선생은 오랜 기간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화해, 단합을 이룩하기 위해 적극 노력했다”면서 “우리는 김 선생이 바라던 대로 북남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화협은 “金 선생은 고초를 겪으며 파쇼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 잘 싸워왔으며 6.15 북남 공동선언의 이행과 조국통일을 위해 적극 활동했다”며 “金 선생이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공헌은 겨레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 김근태 死亡에 弔電을 보낸 북한의 조사당과 민화협은 북한의 대남공작 기관으로 알려진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 연계 및 산하 조직이다. 조사당의 당수인 김영대는 현재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 부위원장으로 통전부 산하단체인 민화협 회장을 맡고 있다.

    통전부는 통일전선공작과 남북대화업무를 주관하는 대남 사업의 핵심부서로 1978년 설치됐다. 남북회담, 해외교포공작사업, 대남심리전 및 통일전선 공작사업, 국내 좌익운동권지도 등의 업무를 주관해 왔으며, 가장 큰 특징은 공개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통전부의 산하단체로는 민화협과 함께 2004년 4.15 총선 당시 ‘反(반)한나라당 투쟁 지침’을 내려 國內親北세력을 지도했던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비롯, 범민련과 범청학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통협),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조선아시아태평양화위원회(아태평화위)등이 있다.

    종교단체로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조선카톨릭교회협회 등이 명목상 존재하는데, 이 종교단체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산하에 있다. 

    이들 조직 가운데 민화협의 경우 98년 6월8일 북한이 8.15 대축전 제의(6.10)에 앞서 북한의 정계, 사회 문화계, 종교계 등 각계 단체들과 인사들로 구성한 대남 통일전선단체이다.

    이 기구는 북한이 ‘민족화해’를 앞세워 결성한 최초의 협의체로 김정일의 ‘민족대단결 5대 방침’(1998년 4월)에서 언급한 “온 민족의 접촉 대화와 연대 연합”을 실현하기 위한 실무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3> 북한에 존재하는 모든 정당·사회단체들은 모두 북한의 통일노선 선전과 反韓·反美 선전활동을 수행하는 노동당 전위조직으로 조사당의 경우 실제로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교류국 3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作故(작고)한 황장엽 前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조선사회민주당은 인사, 조직, 예산을 통전부에서 관리하며 통전부의 직접지시를 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황 前비서는 “(조선사회민주당의) 對外활동은 중앙당 국제비서의 지시를 받는 유령단체”라고 했다.

    이와 함께 황 前비서는 “조선사회민주당의 대외활동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선전하고, 해외 사회민주당 계열 黨과의 협력 사업이 主(주)임무”라고 밝힌 뒤,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사민당은 조선사회민주당을 끼워주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북한 對南공작기관의 목표는 ‘남조선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통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北朝鮮은 1945년 공산화와 더불어 식민지배와 모순된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 南朝鮮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미군을 축출하고 남조선 해방과 혁명 그리고 북한식 사회주의 통일을 동시에 이루는 길”이라고 밝히고 있다. 

    [관련기사] 숙부(叔父)와 세 형 모두 월북(越北)한 김근태
    김근태 계열 인사, 서울시에 전진 배치

     


  • ▲김근태는 북핵 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20일 개성을 방문, 북한 접대원들과 '춤판'을 벌였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선거캠프 고문으로 활동한 金槿泰(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前열린당 의장)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집요하게 국보법 폐지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金이사장은 2001년 11월28일 국회의원 20명과 함께 국보법폐지법률 서명을 주도했으며, 2004년 9월10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국보법폐지 저지를 선언하자 이렇게 비판했다.

    “그토록 정권에 악용되고 국민의 자유민주주의를 탄압한 한낱 임시법이요, 악법 중의 악법인 국보법을 마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인 양 비장하게 말하고 있다…(중략) 악법이 대한민국의 체제와 연결된다는 발상 자체가 극악스러울 뿐이다…(중략) 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독재정권의 안위를 위해 악용되던 국보법에 한나라당이 그토록 애착을 보이는 것은 군사독재의 적장자임을 자인하는 모습이라 더욱 씁쓸하다.”

    경제적 관점(?)에서 국보법 폐지 주장

    金이사장은 2005년 1월12일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국보법을 계속 갖고 있으면 북한과 중국과 계속해서 협력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불필요한 장애가 된다”면서 경제적 관점에서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金이사장은 같은 맥락에서 한총련 등 국보법을 위반해 온 反국가행위자들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비호해왔다.

    ▲ “한총련 합법화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 검토를 바라며 양심수 석방과 수배자 해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용단을 기대한다.” (2003년 4월 18일 與野의원 47명과 함께 한 성명 中)

    ▲ “송두율에 대한 공격은 舊(구)시대적 매카시즘(2003년 10월6일)”, “본인의 소원대로 조국에서 후학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2003년 10월14일, 2004년 7월 ‘북한 대남공작원’이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송두율에 대한 발언)

    ▲ “젊을 때 열정을 갖고 있더라도 나이가 들면 시들어 지는데 한결같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던 분이다. 한 번도 원칙을 포기한 적 없는 활동가며 지식인이었다.” (2005년 1월7일, ‘金日成수령영생’ 등 북한을 미화해 온 간첩전력자 김남식 장례식장 출처 <통일뉴스>)

    金이사장은 또 2005년 10월18일 검찰이 강정구 구속수사 방침을 정하자, 강정구를 비판한 당시 박근혜 대표와 조갑제 前월간조선 대표를 비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 1월 ‘친북비호 독재정권 타도는 합헌’이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내란선동혐의로 고발된 월간조선 조갑제씨에 대해 구속수사하지 않고 무혐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중략) 수구 기득권 세력들의 과도한 주장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대해서는 침묵하다가, 한 관념적인 교수(강정구)의 과도한 주장에 대해서 구속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 무슨 대한민국이 큰 결딴이라도 나는 것처럼 마구 소동을 피우는 박근혜 대표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南北국회회담으로 6.15선언 법제화” 주장

    김근태 이사장은 反헌법적 6.15공동선언의 계승·발전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그는 2003년 6월3일 국회의원 29명과 함께 5억 달러에 달하는 不法대북송금사건에 대해 특검반대성명을 발표한 뒤, 같은 달 22일 “대북송금 사건은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막고 남북화해를 위한 결단이었다”면서 “햇볕정책과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04년 5월6일 “오는 8월15일에 남북국회회담 개최를 추진하겠다”면서 “국회회담에서는 △2000년 남북공동선언을 법제화, 제도화하기 위한 기본법 제정 △경제교류협력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金이사장은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문제제기는 냉전수구적 색깔론이라고 매도해왔다.

    그는 2006년 1월25일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박근혜 대표와 대적할 사람은 색깔론의 희생자인 내가 적임자”라거나 “한나라당은 모든 것을 색깔론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같은 달 9일, 8일, 4일 사학법 관련 발언”고 주장했었다.

    이와 함께 그는 2004년 12월21일 이철우 파동 당시 “더 이상 이 땅에 냉전과 색깔논쟁의 망령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2003년 7월17일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이적행위로 매도하는 한나라당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행태”라고 비난했다.

    金의장은 2006년 5월29일 지방선거 유세에서 “테러와 폭력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듯이 싹쓸이와 민주주의도 양립할 수 없다”면서 한나라당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호소했으나, 2004년 4월 총선에서는 “거대여당 견제론이라는 유언비어가 수도권까지 넘어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부활을 막지 못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면서 열린당 싹쓸이를 주장했었다.

    金이사장, 세 명의 형과 숙부 모두 越北(월북)

    金이사장의 理念성향은 그의 혈연관계에서도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월간조선>이 2004년 3월 보도한 과거 정부의 ‘김근태 신원 및 배후사상관계’ 파일에 따르면 金의장의 큰형은 서울대 美大 출신으로 6·25당시 김일성 초상화를 제작한 후 越北(월북)했다.

    둘째 형 역시 越北 후 평성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중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셋째 형은 의용군으로 越北해 교육성 장학사를 거쳐 통일전선부 對南공작원으로 선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金이사장의 숙부는 越北 후 인민경제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성 부국장을 역임했으며 숙모는 6·25때 越北했다. 이 파일에는 또 1973년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金이사장의 셋째 형을 남파시키려했으나 김정일이 중지시켰다는 첩보가 실려 있다.

    김근태 이사장은 민청련 의장으로 활동 중이던 1986년 국보법위반으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 1988년 가석방됐고, 1990년에는 전국연합의 전신인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정책기획실장으로 국보법을 위반,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전민련은 출범 이후 국보법철폐, 민주자유당 해체 등의 ‘반독재민주화투쟁’,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주한미군철수 등의 ‘반외세자주화투쟁’, 8·15범민족대회 등 ‘조국통일투쟁’ 등을 전개해오다 1991년 12월 전국연합이 결성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체됐다.

    한편, 박원순 변호사는 서울시장 당선 이후 정무부수석비서관실을 신설, 이곳에 김근태계 인물들을 포진시켰다.

    일례로 기동민(前박원순 선거캠프 비서실장) 정무수석비서관은 김대중 정권 시절에 청와대 행정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 고건 前서울시장 시절 신계륜 정무부시장의 비서를 지냈다. 성균관대(85학번) 총학생회장 출신의 기 씨는 전대협 대변인을 거쳐, 김근태 이사장이 極左단체인 전국연합을 이끌 당시 우상호, 이인영 등과 함께 실무자로 일했다.

    기동민 정무수석비서관 밑에는 이홍영·권상훈·김동현 정무비서관 3명이 있다. 이들 가운데 이홍영 비서관은 金이사장 보좌관 출신으로 박원순 선거캠프에서 TV토론팀장을 맡았다. 김원이(前청와대 행정관) 정무보좌관 역시 김근태 계로 신계륜 정무부시장의 비서 출신이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자료] 김영대(金永大): 북한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위원장, <민족화해협의회> 회장
    출처: 통일부 '북한 자료 센터'

    ▲출생: 1937.12.12

    ▲주요경력

    연도미상 김일성종합대학 3년 수료
    1989. 9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부위원장
    1990. 4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
    1990. 5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자격심사위 위원, 외교위원회 부위원장
    1991. 1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
    1991. 5 북-이란 친선의회 그룹 부위원장, 북-인도네시아 친선의회 그룹 위원장
    1991. 7 북-일 우호친선협회 부회장
    1998. 6 민족화해협의회 회장
    1998. 8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위원장
    1998. 9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 겸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2002. 5 민족통일대축전 북측 준비위원장
    2003. 9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겸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2005. 6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준비위원회 명예위원장
    2005.10 연형묵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2006. 3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명예공동위원장
    2008.10 박성철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2009. 4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겸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2010. 4 김중린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2010.11 조명록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주요활동

    1992. 3 '범민련' 북측본부 대표단원으로 일본 방문
    1995.12 '범민련' 북측본부 임시총회 참석
    1996.11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 의장단 확대회의 참석
    1999. 2 사회민주당 제6기 20차 전원회의 참석
    2000. 6 남북정상회담시 공항영접, 환영만찬, 공식면담 등 참석
    2000. 8 남북공동선언 지지 실천을 위한 정부, 정당, 단체 연합대회 참석
    2001. 8 민족통일대축전 개막식 및 연회 참석
    2002. 5 민족화해협의회 주최 박근혜 의원 환영연회 참석
    2002. 8 8.15민족통일대회 북측 대표단장으로 방한
    2003. 8 북측 대표단장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민족통일대회 등 관련 행사 참석
    2003.10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 북측 대표단장으로 제주도 방문
    2004. 1 정부, 정당, 단체 연석회의 참석
    2004. 6 ‘6.25미제 반대투쟁의 날’ 군중대회 참석
    2004. 7 김일성 사망 10주기 중앙추모대회 주석단 참석
    2004.10 단군릉 개건 10돌 개천절 기념행사 참석
    2005. 4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3차 회의 주석단 참석
    2005. 5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결성 50돌 기념 중앙보고회 주석단으로 참석
    2005. 6 6.15공동선언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개막식 주석단으로 참석
    2005. 8 조선사회민주당대표단-민주노동당대표단간 회담시 배석
    2005.10 당 창건 60돌 경축 중앙보고대회 주석단 참석
    2005.12 김정일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14돌 경축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으로 참석
    2006. 1 당, 군, 국가 간부 및 내각성원들과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2006. 3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총회 참석
    2006. 4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4차 회의 주석단으로 참석
    2006. 5 조국광복회 창건 70돌 기념 중앙보고회 주석단 참석
    2006. 6 6.15공동선언 발표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축하연설(광주)
    2006. 7 김일성 사망 12주기 당-정-군 간부들과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2006.10 南 민주노동당 대표단 평양 방문시 영접 및 전송
    2007. 3 南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 대표단(단장: 이해찬)과 면담(평양 고려호텔)
    2007. 4 조선인민군 75돌 경축 열병식 주석단으로 참석
    2007.10 정상회담 참가차 평양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영접(4.25문화회관 광장)
    2007.10 노무현 대통령 일행을 위한 김영남-박관오 주최 연회 참석(목란관)
    2007.10 노무현 대통령 평양 출발시 전송
    2007.12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 16돌 경축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으로 참석
    2008. 2 2.16경축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으로 참석
    2008. 2 제17차 백두산상 국제피겨축전 개?폐막식 참석
    2008. 4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6차 회의 주석단으로 참석
    2008. 4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 60돌 기념 중앙보고회 참석
    2008. 4 최태복, 국제의회동맹 제118차 총회 참가 후 귀국시 영접
    2008. 8 방북 美 그라함 목사와 면담
    2008. 9 정권수립 60돌 경축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으로 참석
    2008.10 10.4선언 발표 1돌 기념 연구토론회에서 토론
    2008.10 10.4선언 발표 1돌 기념 중앙보고회 참석
    2008.12 김정일 인민군 최고사령관 17돌 경축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으로 참석
    2009. 2 김영남, 2.16경축 재일조선인예술단과 면담시 배석
    2009. 2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회의 참석
    2009. 3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선거 참가
    2009. 5 5.1절 경축 축포야회 ‘우리는 승리하리라’ 관람
    2009. 6 6.15공동선언발표 9돌 기념 중앙보고회 참석
    2009. 7 김일성 사망 15주기 중앙추모대회 주석단 참석
    2009. 9 김정숙 사망 60주기 중앙추모대회 주석단 참석
    2009.10 당 창건 64돌 경축 축포야회 ‘위대한 당을 따라 신심높이 가리라’ 관람
    2009.12 오중흡 사망 70주기 중앙추모회 주석단으로 참석
    2010. 1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총회 참석
    2010. 3 2.8비날론연합기업소 준공 경축 함흥시군중대회 주석단으로 참석
    2010. 4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2차 회의에 주석단 참석
    2010. 4 6.15공동선언발표 10돌 기념 중앙보고회 참석
    2010. 7 오중흡 생일 100돌 중앙보고회 주석단으로 참석
    2010. 9 강건 사망 60돌 중앙추모회 주석단으로 참석
    2010.10 고려연방 창립방안 제시 30돌 기념 평양시보고회 참석
    2010.10 당 창건 65돌 경축 열병식·대경축야회 주석단 참석
    2010.11 故 조명록 빈소 조의 방문 및 장례식 참석
    2010.12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 19돌 기념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으로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