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이야기』의 저자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민족 중심의 역사교육을 비판하며 ‘자유’와 ‘개인’이라는 문명의 요소로 20세기 역사를 재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경제사학자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대표 학자로 친일파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 식민지시대를 미화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며, 일제의 진정한 수탈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뤄졌는지 맨눈으로 살피자고 힘주어 말한다.

    바이트에서는 지난 4월 2일부터 5월 14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이 교수와 대학생 대담을 진행했다. 조선패망의 원인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한국 근현대사 전반을 다룬 대담은 지난 13호(4월 20일자)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지면의 한계로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2011년 마지막호에서 풀고자 한다. -편집자 주-


    못 다한 이야기1 -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면서 이 땅에 근대국민 탄생했다.


    민족보다 더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역사의 단위는 ‘자유로운 개인’이다

    민족은 20세기의 한국사를 조명하는 중요한 시각이긴 합니다만, 그것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역사의 단위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개별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별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쓴다고 해서,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개별인생사를 나열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이고 도덕적 이기심이고 협동능력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지지하고 보장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법과 제도가 어떻게 쟁취되고 발전해 왔는가의 역사를 쓰자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자유주의적 문명사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명사의 시각에서 지난 20세기를 보면 민족사에만 초점을 맞출 때와는 상이한 역사가 보입니다. 인간들의 삶을 규정한 여러 차원의 질서에서 적잖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음을 관찰하게 됩니다.

    식민지기에 독립운동이 중요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습니다만, 그것만이 역사의 전부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국민국가를 건설할 주체로서 근대문명을 이해하고 실천할 능력의 인간군이 생겨나고 있었음도 식민지기에 있었던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사이지요. 민족이 분단되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잘못 세워진 나라라는 주장은 관점을 돌려놓기만 하면 애당초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이지요.

    조선왕조의 비극은 신분제를 끝까지 해체하지 못한 데 있다

    조선왕조는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주인에 의해 사고 팔리는 아주 열악한 처지의 인간들이 노비인데, 그 노비가 많을 때는 인구의 40%나 되었습니다. 18세기 이후 노비의 수가 줄긴 했지만 19세기에도 인구의 10%는 노비였습니다. 나머지 90%의 인간들은 양반과 상민으로 신분이 나뉘었습니다. 상민들은 사회적 차별을 받았고, 정치적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반상의 구분이 제도적으로 철폐된 것은 식민지시대입니다.

    저는 조선왕조의 비극은 이 노비와 반상의 신분제를 끝까지 해체하지 못한 데 있다고 봅니다. 고종황제는 조선인에게 근대적 국민으로 권리를 부여하고 국방의 의무를 갖게 하는 국민 개병제도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반상의 구분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화의 길”이라고 고종은 말했습니다. 개병제도를 실시해 부국강병을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망하지 않죠. 그러나 조선왕조는 그런 개혁을 하지 못했어요. 근대적인 국민을 창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국민은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면서 확립된 거예요. 인간은 자유의 존재라는 이념이 구한말 전파되어 오고, 그것이 독립협회의 자유민권운동으로 발전하고, 그 이념을 신봉한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나아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세운 것입니다.

    농지개혁으로 신분제에서 벗어난 ‘국민’이 만들어지다

    물론 식민지기의 신분제 해체는 어디까지나 공적 영역에서의 일이었습니다. 관습과 의식의 영역에서 신분차별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 전라도 구례군 토지면의 유씨 양반가의 일기는 정월 초하루에 집안의 종들이 찾아와 사랑에 앉은 주인을 향해 세배를 드리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날 주인은 “비록 세상이 변하였지만, 주노(主奴) 간의 상하 의리는 변하지 않는구나”라고 일기에다 적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바뀌면 주인집을 찾아 마당에서 수캐처럼 엎드려 세배를 드려야 했던 것이 종놈의 처지였습니다. 그 종놈의 신분이 농지개혁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농지를 분배받은 그들은 토지를 팔고 자기의 원래 신분을 모르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새로 토지를 구입하여 독립자영농으로 열심히 일하여 꿈에 그리던 일가를 창립하지요. 그중에는 자식농사를 잘 지어 초등학교 교사까지 시킨 사례가 채집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민평등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지요.

     빈농의 자식이라도 머리만 좋으면 대학에 다니고 판검사도 하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제헌헌법이 선포하고 있는 그대로 어떤 형태의 차별도 특수계급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은 건국 이념이 농지개혁을 통해서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

    시인 서정주의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자화상>(1937)이란 시를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애비가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시인은 종의 신분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라고 노래했습니다. 조선시대의 노비문서를 보면 수개(壽介)라는 점잖게 생긴 이름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만, 실제론 수캐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그 수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처럼 헐떡이며 나는 왔다.” 저는 아직 이렇게 자신의 천한 신분을 한 시대의 아픔으로 승화시켜 노래하는 고결한 영혼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흔히들 시인을 친일파라고 욕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시 하나만으로도 그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못 다한 이야기2 - 식민지근대화론,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다.


    일제시대, 근대적 경제 개발이 일어나다

    신분제 해방과 함께 일제시대의 상징적인 변화 중 하나는 근대적인 경제 개발과 성장입니다.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나온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0』이란 책을 보면 1910~1940년간 연간 평균 3.6% 정도 경제가 성장합니다. 동기간 인구증가율은 연평균 1.3%이니까 일인당 실질소득은 연평균 2.4% 증가한 셈입니다. 이 같은 성장률은 같은 기간 주요 자본주의 국가가 정체와 위기의 시대였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에 따라 1차산업 농업의 비중이 줄고 2차산업 공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산업구조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9세기 조선왕조 양반은 ‘면허받은 흡혈귀’

    어떻게 하여 이 같은 경제성장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경제성장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만, 저는 식민지기와 같은 체제의 전환기에는 사유재산제도의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제도가 성립해 있지 않으면 누구도 저축을 하려하지 않습니다. 언제 누가 와서 강제로 빼앗아 갈지 모르니까요. 또 누구도 투자를 하려 하지 않지요. 투자의 과실이 자기 것이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실제 오늘날 아프리카나 남미의 여러 나라가 좀처럼 경제성장의 궤도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사유재산제도의 미비에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 비슷한 상황을 19세기 조선왕조를 찾은 많은 외국인이 이야기했습니다. 예컨대 청일전쟁 이후 한반도를 두루 여행한 저명한 지리학자 이자벨라 비숍(Isabella B. Bishop) 여사는 당시의 지배계급 양반을 가리켜 ‘면허받은 흡혈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일반 민중들은 양반관료의 자의적 수탈의 대상으로 무방비상태에 있었습니다.

    1912년 조선민사령으로 ‘사적 자유의 원칙’이 세워지다

    한국사에서 유․무형 재산의 포괄적인 범위에 걸쳐 사유재산제도가 성립하는 것은 1910년대 초의 일이었습니다. 1912년 일본의 민법이 이식되면서부터죠. 재산권에 관한 근대 민법의 기본 원리는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소유권 절대의 원칙’입니다. 소유권은 절대적이며, 국가도 이를 임의적으로 침해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계약자유의 원칙’입니다. 이는 재산권을 양도하거나 처분함에서 소유자의 자유의사에 기초한 계약만이 법적으로 유일하게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 이 두 가지 원리를 보장하기 위해 민법은 모든 재산권은 국가가 정한 법에 따라 등기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에 맞추어 1912년 ‘조선부동산등기령’이 공포됩니다. 그보다 앞서 1910년에는 ‘특허법 등을 조선에 시행하는 건’이 공포되어 일본에서 시행 중인 특허법, 의장법(意匠法), 실용신안법(實用新案法), 상표법, 저작권법이 조선에도 시행되었습니다. 그렇게 무형의 지적재산에서도 사유재산제도 성립하였습니다.

    이렇게 재산제도를 정비한 다음 일제는 조선과 일본을 하나의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였습니다. 1920년까지 사치품 몇 개
    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관세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렇게 상품과 자본이 오가는 데 장애가 없어졌습니다. 요사이 말로 FTA[자유무역협정]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에 따라 두 지역 간의 수출입 무역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자본이 일본에서 건너와 조선의 농토를 개간하고 수많은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식민지의 경제성장을 이끈 요인은 일본의 시장과 투자였습니다.

    일제, 수탈이 아니라 투자를 통해 한반도를 일본인의 소유로 만들어갔다

    그런데 그런 식의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조선의 토지와 자원과 공업시설은 점점 일본인의 소유가 되지요. 바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식민지적 수탈이지요.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여 한반도의 자원과 공업시설을 일본인의 소유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동화정책에 따른 실질적인 수탈의 무서운 결과를 보게 됩니다. 이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이라 하면 사람들은 일제의 조선 지배를 미화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이지요. 문자 그대로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였습니다.

    그런데 식민지근대화론은 이러한 제국주의 비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제국주의의 지배가 법과 제도와 시장을 통한 것인 만큼 그것은 새로운 인간과 사회원리의 새로운 문명이 이식되어 전통과 충돌하고 접합하면서 나름의 형태로 정착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 점을 동시에 보자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바로 그 과정에서 조선인 자신이 스스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자신을 근대인으로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일제시대, 억압과 차별의 시대였지만 근대문명을 학습한 시기이기도 했다

    일제시대가 민족차별과 억압의 시대로 불행했던 시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식민지기는 일본을 통해서 근대 서구 문물이 이식되고, 제도로서 정착된 시대입니다. 일제가 이식한 근대적인 법, 제도, 시장경제체제는 원래 서유럽에서 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일제가 남긴 것이라기보다 20세기 인류가 공유한 선진 문명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건국 당시 초대 헌법 부록 101조를 보면 ‘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기존의 모든 법령은 유효하다’고 돼 있습니다. 일제의 법과 제도를 계승한 것입니다.

    한편 북한은 1946년 ‘건국 20개 조항’을 발표하면서 ‘일제가 통치의 목적으로 시행한 모든 법을 폐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근대적인 기구와 제도가 폐지되고 난 뒤 북한의 역사가 어떻게 됐습니까. 저는 일제시대의 제도와 문물을 근대문명의 수용이라는 큰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그 시대와 투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복합적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바로 그러할 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세워진 나라라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 • 이유미 발행인(worldey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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