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치' 멀리한다는 이대통령, 82분간 국회설득대통령-여야 지도부 정책협의,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
  • ▲ 15일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박희태 국회의장-여야 지도부들과 한미 FTA 비준 동안 처리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청와대
    ▲ 15일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박희태 국회의장-여야 지도부들과 한미 FTA 비준 동안 처리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선(先) 발효-후(後) 재협상'이라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은 것은 여야 협상의 물꼬를 트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도 국정 및 시정연설이 아닌 정책 설명을 위한 국회 방문을 통해 한 제안이라 중량감이 더해 보인다. 박희태 국회의장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 함께 한 자리였다.

    여야간 한치의 양보 없는 정치 공방 속에 비준안 표류가 장기화돼 내년 1월 한-미 FTA 발효가 무산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하자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승부수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법안이나 조약의 처리를 요청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협상'에 가까운 논의를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의도 정치'를 멀리 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한 결심을 하고 국회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가 절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조속한 처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국회 지도부 및 여야 대표와 구체적인 문제를 갖고, 이런 형식으로 논의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제안 요지는 국회가 먼저 비준안을 처리한 뒤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을 국회 차원에서 요청하면 책임지고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한-미 양국은 FTA 발효 뒤 이의가 있는 조항에 대해선 90일 내에 재협의할 수 있도록 이미 부속문서를 통해 합의한 상태다. 따라서 비준 후 ISD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재협의를 요구할 수 있다.

    차이점은 이 대통령이 ISD를 적시해 국회에서 재협상 요구를 하면 수용하겠다는 `약속'했다는 점이다.

    먼저 한-미 FTA가 발효돼야 재협상이 가능해지는 만큼 발효 후 ISD 재협상 요구를 미국 정부에 전달하겠다는 약속을 대통령이 직접 야당과 한 대목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제안'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일단 "미흡하다"는 반응을 내놓은 민주당은 16일 의원총회에서 제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 반응은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한-미 FTA 발효 뒤 여당이 재협상에 합의해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국회 합의에 따른 공식적 요청이 있어야만 발효 후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 수석은 민주당이 ISD 폐기를 전제로 재협상을 요구해올 경우 "폐기가 정당하냐, 그렇지 않느냐는 국민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국회가 총의를 모아 건의해오면 미국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ISD 폐지와 FTA 재협상에 부정적인 이 대통령이 `재협상'이란 단어를 직접 거론하며 새 제안을 하게 된 경위와 시점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직전까지도 재협상 제안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11일 이 대통령이 처음 국회 방문을 계획할 때부터 ISD 재협상 제안을 염두에 두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3~14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기간 이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 `ISD 재협상'과 관련한 제안을 하겠다는 취지의 귀띔을 했거나, 미국과 사전 조율을 거쳤을 것이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정보가 없다"고만 밝히고 있다.

    이 대통령도 여야 지도부와의 면담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정상 사이에 실제로 뭐가 있었다, 없었다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