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단독정부 주장한 ‘이승만 책임론’은 덮어씌우기 전술
  •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공산 전체주의’이자 ‘소련 제국주의’가 한반도에 진출한 결과라는 역사적 사실이 다시 확인되었다. 일본의 항복과 함께 북한을 점령한 소련은 처음부터 한반도에 위성국을 세우려는 작전을 추진했고 그것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상실한 한반도를 회복하기 위한 오래된 전략의 실행이었다는 것이다.

  • ▲ 30일 열린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1차 학술회의에서는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미국과 이승만이 아니라 소련 제국주의의 책임이란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사진은 북한에서 김일성세력이 스탈린의 지령으로 공산주의 선동에 나서고 있는 장면.ⓒ
    ▲ 30일 열린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1차 학술회의에서는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미국과 이승만이 아니라 소련 제국주의의 책임이란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사진은 북한에서 김일성세력이 스탈린의 지령으로 공산주의 선동에 나서고 있는 장면.ⓒ

    30일 열린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1차 학술회의에선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정의 산물인 분단의 성격 및 소련 공산주의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미국과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편파적 책임론을 거론하는 일각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와 관련, 나라정책연구원 김광동 원장은 “지금까지 이승만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사실을 근거로 (종북 좌파세력에 의해) 민족분단의 주역인 것으로 평가돼왔다”고 운을 뗀 뒤 “이 같은 평가는 전체주의체제의 편향된 시각에 의한 역사 해석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고교 교과서에 서술된 ‘이승만은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중단되자 곧바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는 표현을 거론, 한국사회에 이승만 주도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및 분단론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원장은 “북한이 스스로 1945년 11월 북조선 행정10국의 조직이 ‘인민정권’ 기반이 됐고,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와 ‘중앙 인민정권’을 세워 인민민주주의 독재를 수행했고 그 모든 것은 김일성과 조선로동당의 투쟁의 결과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김 원장은 분단을 획책한 소련 제국주의와 김일성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이승만의 열정적 노력과 예리한 혜안 등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본의 패망으로 자유민주체제가 보장된 것이고 소련 전체주의의 북한 점령에도 불구, 자유민주적 통일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란 안이한 인식과 주장은 현실성을 외면한 전체주의세력에 의한 정치적 공격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분단과 북한의 공산체제 건설에 맞서 이승만은 건국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전체가 식민지 내지 위성국으로 소련 전체주의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인식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이 과정에서 이승만은 자유민주 독립국가를 지향하는 민족역량과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한반도에 소련 제국주의 확산을 저지했고, 그 결과로 대한민국을 건국해 성공적인 길을 걸었으며 북한에까지 자유와 민주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승만은 반소·반전체주의 건국투쟁을 통해 광복과 미·소 군정시기에 소련의 제국주의 성격을 인식했으며 앞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1년 봄에 쓴 저서에서 “나치스·파시스트·공산주의는 모두 동일한 세력이며 파괴분자일 뿐이다”라고 본질을 꿰뚫어보기도 했었다.

    결국 이승만은 소련과 김일성과 달리 결코 외세와 결탁, 정권을 장악한 것이 아니며 소련과 대결에 나서지 않은 미국을 설득해 소련 공산주의의 한반도전역 확산을 저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전쟁참여를 호소했듯 이승만은 미국이 소련의 공산 전체주의에 대항해 자유와 민주를 향한 투쟁에 나서라고 촉구해야만 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전체주의 성격과 제국주의적 성격을 누구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대처했다”고 평가한 뒤 “공산주의자들의 선동과 폭동에 맞서지 않고 용납하는 것으 곧 중국이나 폴란드의 내전을 한국에도 허용하는 길로 가자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세검정에 위치한 연세대 이승만 연구원(우남관)에서 3부로 진행된 제1차 학술회의에서는 총8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이주영 건국대명예교수의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쟁점' 기조강연에 이은 발표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제1부: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 논쟁'(오영섭, 연세대 이승만 연구원 연구교수)
                 '한반도 분단과 대한민국 건국의 성격'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2. 제2부: '이승만과 반공'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 추진과 성과'(김승옥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이승만 대통령의 경제개발전략 연구쟁점' (최상오 서울대경제학부 연구교수)
    3. 제3부: '6.25전쟁시 이승만대통령의 피란과 한강교 폭파 문제'(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전쟁, 국가건설: 부산정치파동의 공화주의적 소고'(김용직 성신여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3.15부정선거, 4.19학생의거, 그리고 이승만의 선택'(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
    토론에는 이명화(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철순(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교수) 김수자(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HK교수) 정진아(건국대 통일연구단 HK교수) 김명섭(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류상영(연세대 국제학대학원교수) 홍용표(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소)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