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 견제는 뒷전, 무조건 반대에만 혈안절도에 뇌물..자질 없는 의원 뽑은 유권자도 책임
  • 2011년은 지방자치와 함께 지방의회가 생긴지 20년이 되는 해다.

    나이로는 성년이 됐지만, 여전히 지방의회는 그 존재 의의를 의심케 하는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주민을 먼저 챙기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미 지방의원들은 당파 싸움에 열을 올리는 것이 현실이며 그 정도는 상급 기관인 국회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더욱이 지난해 6·2지방선거 이후 집행부 단체장과 의회를 점령한 다수당이 서로 당파가 다른 여소야대 현상이 생기면서 그 폐단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의회 민주당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이는 힘겨루기가 가장 좋은 예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모습은 그나마 언론의 조명을 받는 서울시의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민생안전은 팽개친 채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지방의원들의 백태를 살펴봤다.

  • ▲ 2011년 서울시가 위험하다. 힘을 모아도 시원치 않을 집행부와 의회가 사사건건 서로 트집만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이 서로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2011년 서울시가 위험하다. 힘을 모아도 시원치 않을 집행부와 의회가 사사건건 서로 트집만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이 서로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견제? 이것은 단순한 ‘시비’일 뿐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서울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치단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만 보게 된다.”

    서울시의회는 올 들어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의한 조례안 14건을 모조리 부결시켰다. 지방의회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초유의 사태다.

    반면 진보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제출한 6개의 안건은 모두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점령한 서울시의회가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시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여소야대였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나라당도 하지 않았던 일방적인 편들기다.

    문제는 이같은 시의회의 오세훈 발목잡기로 인해 시민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이다.

    시의회에 의해 보류된 안건들을 살펴보자.

    서울시는 올해 6·25전쟁 납북 피해자들을 구제하겠다는 목적으로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서울시에는 피해신고 접수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서울시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현재 사업 진행이 불투명한 상태다.

    상임위를 통과한 뒤, 서울시의회 본회의에 계속 잠자는 안건으로 남아있다.

    광진구 화양동 건대입구역 일대도 서울시의회의 어깃장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7호선 개통 이후 주민들이 능동로 확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제출한 의견청취안을 시의회가 막아 세웠다. 덕분에 인근 주민들은 매일 교통지옥에서 생활해야 하는 기간이 더 늘어났다.

     

    ◇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이 외에도 서울시가 입법 예고해놓고도 서울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안건이 상임위 미상정 24건, 본회의 보류 8건 등 총 32건이나 된다.

  • ▲ 무상급식 조례를 두고 서울시의회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서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 무상급식 조례를 두고 서울시의회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서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8대 시의회가 지난해 7월 구성된 이후 총 33건의 안건을 통과시킨 것과 비교하면 가결율이 50.8%에 불과하다.

    그것도 굵직굵직한 주요 조례안은 계속 보류된 상태이고, 의견청취안 등 당장 사업추진과는 연관이 적은 안건을 위주로 통과시켰다.

    특히 주민 재산권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도시정비 계획 변경 안건 등 서민 생계와 관련된 안건만 8건이 잠자고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 피해가 돌아갈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공사가 지연되면서 추가 비용도 늘어나고, 후속사업 변경이 불가피해지면서 행정 낭비도 초래된다.

    이런 문제는 비단 서울시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역만 다를 뿐 여소야대 의회가 구성된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무상급식으로 시작된 한나라당 소속 김문수 지사와의 갈등은 이후 추진 중이던 경기도 역점사업 예산 삭감으로 이어졌다.

    이사형 서울시 의사협력팀장은 “시의회의 본연의 목적이 집행부에 대한 견제에 있다지만, 이번 사태는 그 본질이 다르다”면서 “대화와 토론은 사라진 채 무작정 반대만 하는 통에 그 피해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했다.


    ◇ '자격 미달' 막말에 폭행, 그리고 뇌물에 절도까지…

    주민센터 난동, 스카프 절도, 공무원 폭행, 뇌물 파문, 동료의원 폭행, 집단 따돌림, 막말 파문까지…

    올해 지방의회에서 나온 추태들이다.

  • ▲ 이숙정 의원의 주민센터 난동 당시 CCTV 화면 ⓒ 자료사진
    ▲ 이숙정 의원의 주민센터 난동 당시 CCTV 화면 ⓒ 자료사진

    지난 1월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민센터에서 난동을 부린 성남시의회 이숙정 의원(당시 민노당).

    서울 신당동 대로변에서 50대 여성 동장에게 큰소리로 막말을 하다 경찰 조사까지 받은 서울시의회 김연선 의원(민주당). 김 의원은 이후 폭행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워낙 자격미달에다 직분도 제대로 모르는 수준이다 보니, 뇌물을 챙기는 일은 물론 잡범 수준 범죄도 발생한다.

    주인 몰래 아울렛 매장에서 스카프를 훔친 혐의의 용인시의회 한은실 의원과 아파트 인허가 관련 5차례에 걸쳐 4억3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경기 광주시의회 이길수 의원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학생들이나 하는 집단 따돌림 현상도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의회의 경우 ‘남양주시 지역아동센터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 처리를 둘러싸고 한 시의원과 다른 의원들 간에 갈등 끝에 이른바 왕따 논란이 등장하게 됐다.

    또 화성시의회에서는 한 의원이 “XX 의원이 나서는 게 꼴 보기 싫다”, “XX 의원 목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등 특정 시의원에 대한 비난 목소리를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

     

    ◇ 개선 의지도 없어, "지방의회 변해야 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스스로 반성하는 지방의원들의 개선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고를 친 뒤에는 진정성을 담은 사과보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동료의원들도 ‘같은 의원’, 또 ‘같은 당 소속’ 임을 들어 징계조치 자체를 미루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상황이다.

    성남시의회 이숙정 의원도 진정성을 담은 사과는 커녕 잠적을 감춘 채 의원직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주민센터 난동 사태’ 이후 매월 지급된 의정활동비만 1,200만 원 수준이다.

    ‘절도 시의원’ 꼬리표를 단 용인시의회 한은실 의원은 ‘심신이 허약해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빌미로 자신의 제명요구안을 결정하는 윤리특별위원회에서의 절도혐의에 대한 소명절차를 미루다, 결국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제명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의회 5기가 시작된 2006년 7월부터 3년간 비리로 처벌된 지방의원은 광역 71명, 기초 155명 등 226명에 달한다.

    전체 광역의원 738명의 9.6%, 기초의원 2888명의 5.4%에 해당한다. 이들의 혐의는 선거법 위반이 74.8%로 가장 많고, 도로교통법, 뇌물, 공문서 위조, 상해, 폭력 순이다.

    또 선거법 위반 등으로 중도 하차한 자리를 채우는 이번 4.27 재보궐선거 38곳 가운데 기초의원이 23곳으로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지방자치 20년이 헛세월로 전락한 셈이다.

    현재 기초자치단체까지 적용하는 정당공천제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주민과 자치단체 전체 이익보다 자기 당만 챙기는 정당이기주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자질을 갖춘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것은 유권자의 숙제로 남는다.

    유권자들도 학연·지연·혈연과 물적 대접을 받고 자질이 안 되는 의원을 뽑는 일은 스스로는 물론 자치제도를 망치는 일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거 이후에도 꾸준히 의원들에 대한 감시활동을 강화하는 일 또한 유권자들의 몫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