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정치 등과 관련한 루머 무차별 확산
  • 허위 정보의 유통 경로인 증권가 사설정보지(일명 찌라시)가 감독 당국의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찌라시 관리를 강화하도록 증권사들에 권고하고 나선 지 한 달이 됐지만, 서태지와 이지아 소송 사건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등을 계기로 찌라시는 잦아들기는커녕 `물 만난 고기'마냥 되레 확산하고 있다.

    감독 당국이 과거에 경고음을 울리면 잠깐이라도 증권가가 숨죽였지만, 이번에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형 이슈가 생긴 탓인지 금감원의 경고 발언은 마이동풍격이다.

    연예인 이지아가 서태지를 상대로 50억원대의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서는 찌라시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서태지-이지아 이혼소송 관련 추가속보'라는 찌라시를 통해 개인 신상은 물론 만남부터 결혼, 이혼에 이르는 미확인 루머가 퍼져 나갔고, 일부 온라인언론은 이를 토대로 기사화하면서 폭로전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급기야 이혼의 이유가 다른 데 있었다는 악소문까지 나돌면서 다른 어린 여자 연예인으로 불똥이 튀었고, 숨겨진 아이로 지목된 해당 연예인도 덩달아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 사이 전산장애가 발생한 농협은 `이지아의 보안력을 배워라'는 식의 패러디물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차기 대권 후보로 밀기로 하고 이재오 특임장관을 미국에 보내려 한다는 이른바 `이재오 살생부' 찌라시가 대구ㆍ경북 일대에 나돌아 정치권 안팎에서 파문이 일었다.

    금감원이 지난달 1일 권고한 `금융회사의 정보통신수단 등 전산장비 이용 관련 내부통제 모범규준'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형국이다.

    이 규준은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업무용으로 사용할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지정하고 사용기록과 내용, 송수신 정보, 로그 기록 등을 보관ㆍ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만연한 허위정보가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대ㆍ재생산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지만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3일에도 정치, 재계ㆍ금융, 관가, 사회ㆍ언론 등 영역별 중요 이슈를 소개하고 배경과 여파 등을 분석하는 내용의 찌라시가 증권가에서 유포돼 모범규준을 무색케 했다.

    증권가에 기생하는 찌라시가 강력한 단속에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독버섯처럼 살아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만 해도 일본 방사성 물질 상륙, 건설사 부도 블랙리스트 등 굵직한 악성루머가 퍼지면서 관련 주가가 폭락하는 원인이 됐다.

    2008년에는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 우려로 흉흉했던 금융권의 분위기를 틈타 기업 자금난 소문이, 작년에는 유럽 재정위기와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우려 속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와 일본 신용등급 강등 등의 루머가 경제계를 강타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악소문이 끝없이 확산하자 감독 당국이 특별팀까지 만들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유통과정이 워낙 복잡한데다 피해자의 의뢰 없이는 사실상 수사하기 어려운 탓에 찌라시를 근절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수사를 통해 유통 가담자를 적발하더라도 `받은 쪽지를 단순히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하면 처벌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메신저에 이어 트위터 등 찌라시를 유통하는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단속이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

    실제 지난 3월 방사성 물질 상륙 소문은 미확인 상태로 불과 1시간 만에 트위터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코스피가 순식간에 폭락했지만, 금융 당국은 속수무책이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음습한 정보를 요구하는 수요자가 있는 한 찌라시는 근절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러 차례 대대적인 루머 단속이 있었지만, 매번 핵심 인물을 잡아내지 못하거나 불법성을 규명하지 못해 단속이 흐지부지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