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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숲이 그리웠다” 말레이 꼬마의 청계산 일기

청계산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했다"나는 언제 저 숲속을 내달리며 뒹굴 수 있을까"

입력 2010-12-15 09:55 수정 2010-12-16 09:21

<방민준칼럼> “단지 숲이 그리웠다”-‘말레이 꼬마’의 청계산 일기

 

             

◆ 말레이반도의 밀림을 떠올리게 하는 청계산 숲

5년 전 여름, 처음 서울대공원에 왔을 때 나는 청계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푸르고 깊은 산은 긴 여정의 피로를 잊게 했다. 한 살도 채 안 돼 말레이반도 남쪽의 밀림에서 인간에게 붙잡혀 동물원에서 유년기를 보낸 내게 숲은 엄마 품과 같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서울대공원 우리에 갇혀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눈만 뜨면 마주 할 수 있는 청계산의 짙푸른 숲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방사장으로 나올 때마다 성큼 다가오는 청계산의 울창한 숲은 고향 숲을 연상시키며 나를 들뜨게 했다.

청계산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언제 저 숲속을 내달리며 뒹굴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서울대공원에 들어온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런 기회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육사들이 감시하고 있기도 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들로 에워싸이는 우리 밖은 탈출의 엄두도 못 내게 했다.

동물원 우리 속의 하루는 편했지만 지루했다. 사육사가 주는 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좁은 우리에서 인간들의 구경거리가 돼주다 저녁이면 편한 잠자리에 들면 되었다.

사육사는 우리 말레이 곰 가족을 잘 보살펴 주었다. 나는 고향 말레이반도의 밀림에서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인간에게 붙잡혔다. 이후 동물원에서 같은 인간들의 보살핌을 받아온 터라 인간과 싸우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엄마 아빠는 어린 내게 인간들과는 항상 멀리 하도록 가르쳤다.

“인간들은 주어진대로 살 지 못한단다. 우리를 잡아 가죽을 벗겨 옷을 해 입고 내장을 꺼내 약으로 먹는단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줄고 있지. 너도 인간을 조심해야 한단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지금껏 인간들은 내 편이었다.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 와서도 인간들은 내게 ‘꼬마’란 이름으로 부르며 내 마음을 얻으려고 애를 썼다. 고향 말레이 밀림의 엄마 아빠처럼 나를 보살펴주었다.

 

◆ 지루한 일상, '말순이'와의 냉전이 숲으로의 탈출 충동 일으켜

인간 세상에선 내가 24살 연상의 ‘말순이’와의 불화로 스트레스가 쌓여 탈출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엽적인 문제다.

‘말순이’는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해 구석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나를 잘 보살펴주었다. 그동안 홀로 지낸 탓인지 아들 뻘 되는 나를 무척 아껴주고 사랑해주었다.

잔뜩 겁먹고 있던 나는 친절하고 자상한 ‘말순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수컷 암컷이었다. 우리 세계의 습성대로 나는 ‘말순이’와 사랑을 나누었다. 사육사에 의해 짝이 지어졌지만 사실 ‘말순이’는 내게 누나이자 엄마이기도 했다.

그러나 둘 사이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었다. 처음엔 ‘말순이’가 나를 보챘고 최근엔 ‘말순이’가 시들해 내가 보채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티격태격 한 적도 있고 최근에는 음식을 놓고 다툰 적이 있지만 ‘말순이’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날은 보통 때와 달리 우리 밖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계절 탓이기도 했고 날씨도 매우 추웠다. 사육사는 방사장을 청소하기 위해 나를 ‘말순이’와 함께 격리칸에 몰아넣었다. 그때 철창 사이로 보인 청계산 숲이 그렇게 투명해보일 수 없었다. 말레이반도 열대우림의 숲과는 색깔이 달랐지만 숲에 대한 그리움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고향의 숲이 풍성하고 부드럽다면 건너편의 숲은 좀 거칠고 딱딱했고 겨울이라 푸르름도 덜 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실제로 숲으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저 속에서 뒹굴고 달리며 울부짖고 장난치면 얼마나 좋을까.

숲을 내달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왜 갑자기 이런 충동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지루한 일상, 그리고 ‘말순이’와의 관계가 숲을 갈망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바위에 부딪쳐도 아픔을 모를 정도로 튼튼한 내 몸은 마음껏 사용해본 기억이 없다. 맘껏 달린 적도 없고 숨을 헐떡거릴 만큼 운동을 한 적도 없다. 지칠 때까지 장난치며 숲속을 헤매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마침 사육사는 온순한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말순이’는 아무데도 관심이 없다는 듯 한쪽 구석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격리칸 쇠문에 고리가 걸려 있었지만 쉽게 열 수 있었다. 그동안 열 필요가 없어 열지 않았을 뿐이다.

사육사가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 나는 태연하게 쇠문의 고리를 제쳤다. 내 키보다 약간 높은 철제 울타리는 숲을 향해 치달리려는 내게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사육사들이 뒤늦게 나의 탈출 사실을 알고 허둥지둥 할 때 나는 이미 청계산 자락에 이르렀다. 우리 속에 갇혀 지냈지만 몸은 가벼웠고 다리는 힘찼다. 두 다리로 뛰는 인간들은 아무래도 네 다리로 달리는 나를 따라올 수 없었다.

등산하는 인간들이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놀라며 멈칫했지만 해칠 눈빛은 아니었다. 나는 나름대로 인간들이 없을 것 같은 숲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렇게 깊어 보이던 청계산 숲에서 인간의 자취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인간의 발길로 닦여진 길을 피해 험한 숲으로 들어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헬기의) 요란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사냥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골짜기 여기저기에 인간들이 무리들이 몰려다니는 것도 보였다.

나는 다짐했다. 얼마만의 외출인데, 쉽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탈출 첫날밤 나는 남동쪽을 향한 비탈면의 바위틈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인간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데다 바람도 불지 않는 아늑한 장소였다. 밤이 되자 기온이 떨어져 춥기는 했지만 청계산의 밤은 견딜 만 했다. 살이 통통히 오를 만큼 영양상태가 좋아 배고픔도 몰랐다. 동녘에서 해가 떠오르자 햇살이 바위틈으로 들어와 추위를 가셨다.

하늘에서는 굉음이 간간히 들리고 산골짜기 여기저기서 인간들이 몰려다니는 발자국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인간들의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한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동굴 속에 꼼짝 않고 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낮에는 동굴이나 나무 위에서 자거나 쉬고 주로 밤에 숲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챙기는 게 몸에 밴 습성인 탓이다.

나의 모처럼의 야생생활은 해가 진 뒤 비로소 시작되었다. 인적이 끊긴 숲은 내 세상이었다. 부드러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바위와 땅의 촉감, 나뭇잎 밟히는 소리, 나뭇가지가 피부를 스치는 느낌, 잡 내음이 없는 숲의 공기, 그리고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 숲속의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숲속의 자유를 맘 편히 즐길 수만 없었다. 우리를 빠져 나온 이튿날부터 인간들이 산을 오르는 것을 막아 인간과 마주치는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나를 잡기 위해 나선 인간들과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몇 번이나 인간들과 아주 가까이서 마주쳤다. 그때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숲속으로 내달려 그들을 따돌려야 했다. 이 넓고 깊은 산속에 나 하나 숨어 사는 게 어때서 인간들이 나를 잡으려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인간에게 해를 끼칠 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져 입산금지가 해제되면서 내가 숨을 곳은 더욱 좁아졌다. 산 아래 저 넓은 곳을 다 차지하고도 숲속까지 차지하려 드는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인간을 피하고 인간에 쫒기는 며칠을 지내다 보니 서서히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추위도 갈수록 매섭게 피부를 파고 들었다.

그러나 참아보자. 얼마 만에 맛보는 숲속의 자유인가. 어딘가 인간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안전한 피난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청계산 숲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동물원의 건물들을 애써 외면했다.

 

◆ 인간들에게 쫓겼지만 행복했던 청계산 야생생활 

 우리를 탈출한지 한 주일 쯤 지나고부터 공복감은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변했다. 인간들을 피해 열심히 숲을 뒤졌지만 겨울이라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바싹 마른 도토리나 인간들이 먹다 버린 과일조각이나 껍질이 얻을 수 있는 먹이의 전부였다.

밤에 숲을 뒤지다 보니 향긋한 바나나 냄새와 닭고기 냄새가 나는 둥근 통(포획틀)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멈추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그것이 날 잡으려는 덫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안전한 먹이’와 ‘위험한 먹이’를 구별하는 법을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배웠다. 고향 말레이반도의 밀림에서는 나무에 자연스럽게 열린 과일이나 살아 있는 작은 짐승이 아니고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체험으로 깨달았다. 먹기 좋고 보기 좋은 먹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덫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형제가 배고픔을 못 참아 눈에 보이는 먹이를 덮쳤다가 덫에 걸리는 현장을 옆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자신 또한 가족과 떨어져 숲을 헤매다 꿀 바른 돌멩이에 앞발을 댔다가 덫에 걸려 잡히지 않았는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숲을 헤매다 인간들이 쌓아놓은 것 같은 무더기에서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천막 같은 것으로 씌워 놓은 무더기는 끈으로 단단히 동여매 있었다. 조심스럽게 끈을 끊고 천막을 헤치자 먹을거리가 나타났다. 라면. 소시지, 양갱, 막걸리, 음료수 등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겨우 허기를 면했으나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은 위험했다. 부지런한 인간들은 해가 뜨기도 전에 산으로 올라왔다. 별 수 없이 음식을 남겨두고 숲속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는 있었으나 배고픔이 문제였다. 산을 헤매면서 보아둔 몇몇 바위틈은 안전한 잠자리로 손색이 없었다. 바람이 없고 햇볕이 잘 들고,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인간들이 숨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이까지 수색했지만 나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내가 어디쯤 숨어 있는지 아는 것 같았지만 인간들은 더 이상 조여오지는 않았다. 대신 인간들은 이상하게 생긴 구조물(포획틀)을 숲길 여기저기에 놓아두었다. 그 안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 야채, 닭고기 등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인간들은 내가 배고픔과 추위를 못 참아 결국 먹이가 든 통으로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며칠은 통 속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참고 견딜 수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숲속의 밤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부드러운 발바닥은 추위 때문에 딱딱하게 굳었고 털 속 피부까지 가시로 찌르는 듯한 추위가 전해졌다. 생전 처음 맛보는 매서운 날씨 때문에 잠도 깊이 들지 않았다. 밤새 이빨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허기진 배가 쪼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동물원 우리 안의 따뜻한 잠자리, 한 끼니도 안 빠뜨리고 제공되는 풍성한 음식, 늘 내게 이상이 없나 챙겨주는 이쁜이 사육사의 얼굴, 다투긴 했지만 누나 아내 엄마를 겸한 ‘말순이’의 정겨운 모습 또한 눈에 어른거렸다. 특히 나의 탈출 때문에 걱정하고 있을 누나같은 사육사가 마음에 걸렸다. 

 

◆ 청계산이여 안녕!

 

이 땅에 와서 가장 추운 밤을 보낸 어느 날 아침.

걸음이 제멋대로 원통으로 향하는 것을 알아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음식을 품은 원통이 나를 가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물원 우리 속 생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원통 안으로 몸을 들이밀고 먹이에 입을 갖다 대는 순간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말레이반도의 밀림에서 인간의 덫에 걸렸을 때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그때는 몸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달아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조여 오는 덫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번에는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안에는 바나나며 닭고기 등 좋은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인간들이 나타나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이 몰려들었고 환성이 들렸다. 포획틀 구멍 사이로 사람들이 눈망울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번쩍번쩍 하는 불빛도 보였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조각을 넣어주었다. 얼마 만에 맛보는 초콜릿인가. 나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초클릿 맛에 내가 포획틀에 갖혀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초콜릿 맛을 음미하는 사이 어깨 쭉지에 뭔가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내가 반항할까봐 마취주사를 놓은 것이리라.  

나는 감겨지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노력했다. 짧았던 청계산의 숲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두 번 다시 이런 외출을 할 수 없으리라.  

나는 포획틀 구멍 틈으로 보이는 숲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떴다. 다시는 오지 못할, 밟을 수 없는 숲을 담아두기 위해.

아무도 내 눈에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안녕, 청계산 숲이여!

 

인간들은 우리 종족을 ‘말레이 곰(Helarctos malayanus)’이란 이름을 붙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곰의 일종이다. 태양곰이라고도 불린다. 몸길이는 1.2미터 정도로 곰 중에서 가장 작다. 몸무게는 30-50kg이다. 털은 검은색이고, 코는 회색 또는 오렌지색이며, 발은 밝은 갈색이다. 발이 크고 발바닥에는 털이 없으며, 발톱은 많이 구부러져 있고 끝이 아주 날카롭다. 귀가 몹시 짧고 다리는 길다. 앞가슴에 말굽 모양의 흰색 둥근 무늬가 있다. 혓바닥이 길어서 자유로이 움직인다. 수컷이 암컷보다 크며, 길고 가는 혀를 이용해 벌집에서 꿀을 뽑아 먹는 데 사용한다. 이외에도 작은 동물, 과일, 잎, 뿌리 등을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주로 밤에 사냥하고 낮에는 나무 위에서 잠을 자거나 햇볕을 쬔다. 나뭇가지를 휘거나 잘라서 나무 위에 새 둥지 같은 잠자리를 만든다. 보르네오섬·말레이반도·미얀마 등에 서식한다. 인간 외에는 천적이 거의 없지만, 서식지 상실과 인간과의 충돌 및 한약에 쓰이는 쓸개를 위한 남획 때문에 멸종위협을 맞고 있다.(위기디피아)

<뉴데일리 부사장/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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