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요구 성능, 군 실제 요구보다 더 높게 책정, 반면 개발비는 낮춰방산 관계자 “군 당국, 기술 평가할 능력 없어 비양심 업체에 끌려 다녀”
  • 계속되는 군의 ‘명품 무기’ 불량 사고는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그동안 수천억 원의 개발비로 자체 생산한 무기 대부분이 세계 일류라는 선전에 우리 군을 자랑스러워했던 국민들의 감정은 이제 ‘다음번에는 어느 무기 냐’는 우려로 바뀌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군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군의 무기 성능이 외제에 비해 무조건 나쁘다고 폄하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면제자들로 가득 찬 현 정부의 무지함이 부른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바로 신형 장비 도입과 관련된 군 기관과 방산업계의 문제다.

    IDIF 2010에서 만난 방산업체들의 이야기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서는 ‘2010 국제 최첨단 군 전자장비 시스템 산업전(International High-Tech Defense Industry Fair 2010. 이하 IDIF 2010)이 열렸다.

    대한민국 육군협회가 주최하고 국방부, 육군본부, 방위사업청, 한국국방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후원한 이번 전시회에는 우리 군의 주요 기관을 포함, 한화, 풍산, 대한항공, 넥스원, 도담 시스템, 퍼스텍, 한국항공우주산업, 휴니드 테크놀러지스 등 국내 주요 방산업체들이 참가해 자신들이 개발 중인 신형 장비와 무기들을 선보였다.

    이 전시회에서 만나 방산업계 관계자들에게 최근 일어난 ‘명품 무기 불량 사고’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물었다. 그들 중 다수는 무기 불량과 군 장비 획득 시스템과 관련한 질문에 대답을 꺼렸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이들이 지적하는 우리 군의 장비 획득 문제로는 ▲비현실적인 군 요구 성능 ▲군의 기술검증 시스템 문제 ▲현실을 도외시한 예산 편성 ▲국산화에 대한 집착 ▲시스템 통합능력의 부족 등이 있었다. 업체 관계자들은 이런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심각한 결함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정은 이렇다. 먼저 각 군이 현장에서 필요한 사양을 군 관련 기관들에 제시하면, 개념 설계를 하는 이들이 다른 군사 강대국들의 최신 무기와 비교하면서 이것저것 무리한 요구를 집어넣는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개념 설계가 마무리 될 때쯤에는 군 요구 사항에 맞는 무기라는 게 미군의 최신형 무기 아니면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지구 방위군 무기’가 돼버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지구 방위군 무기’라 할지라도 국내에서 자체 개발할 능력이 있고 미군만큼 충분한 예산이 있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체 개발할 능력이 되질 않아 시간만 끌다가 결국 해외 대형 업체로부터 핵심 부품을 수입하거나 면허생산을 한다. 물론 겉모양에 필요한 부품은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한 것이 대부분이며 부품 수로 따지면 더 많다. 이후 군은 부품 수로 따진 ‘국산화 비율’을 내세워 ‘90% 이상 국산화 성공’ 등의 문구를 넣고선 마치 우리나라가 모두 다 만든 것처럼 발표한다(이런 행태는 국내 스마트폰, IT, 자동차 업계 등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군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첫 번째는 시스템 통합 노하우의 부족이다. 미군은 지난 20년 동안 최신 장비를 도입함에 있어 최신, 최강의 무기를 모두 자체 개발해야 한다는 고집을 피우지 않고 있다. 군과 민간에 두루 사용되는 기술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군은 대신 전체 시스템을 빈틈없이 설계한 다음 여기에 맞는 부품을 세계 각지로부터 사들여 그 설계에 맞춰 조립한다. 이를 통해 원가절감과 원활한 부품 공급선 확보는 물론 유지보수가 수월한 무기들을 만들어 낸다. 이런 게 가능한 건 2차 대전 이후 쌓은 세계 최고의 무기 기술과 풍부한 예산 덕분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미군을 따라 하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하지만 국내 방산업체들은 보유 기술과 전체적인 능력 부족으로 미군 시스템을 제대로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데드카피(목표 모델의 겉모습을 보고 추정해 제작하는 방식)’나 ‘리버스 엔지니어링(역설계. 목표 모델을 입수, 분해해 재설계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이 조차도 부족한 기초 기술력과 무기개발 노하우의 부족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 군은 이런 현실을 그동안 무시해 왔다. 일부 군 관계자는 업체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도 했다. 그 결과 비양심적인 일부 업체들은 ‘실패’를 숨긴 채 성공한 사례들만 보여주며 눈속임을 하기도 했다.

    ‘실패’를 숨긴 비양심 업체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일부 주장도 있었다. 어떤 업체는 군의 ‘원가절감’ 요구에 납품단가를 맞춰주는 대신 중요한 부품 구성을 허술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부 방산업체 관계자들은 “어차피 군 관련 기관들에서 정밀 기술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대충 넘어가려는 기업들이 있고 이들에게 군 관련 기관들이 휘둘리고 있어 골치 아프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 군과 관련 기관은 신형 무기나 장비가 나오면 ‘국산화’ ‘세계 최고’ ‘명품 무기’ 등의 레테르를 붙여 자랑하기 바쁘다. 비양심 업체나 기술 지식이 부족한 군 기관들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군 입장에서는 실전 상황이 아니니 진짜 ‘명품’인지 아니면 ‘짝퉁’인지 겉모습만으로는 판단되지 않기에 새로운 무기를 보며 뿌듯해한다.

    ‘명품 무기’보다 필요한 건 ‘필수 장비’

    그동안 있었던 일련의 무기 불량 사고와 관련해 만난 민간 군사 연구가들, IDIF 2010에서 만난 방산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 군에 필요한 건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필요한 무기”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우리 군은 이런 목소리를 외면하는 듯하다.

    현재 우리 군은 정보 감시 장비가 크게 부족하다. 2015년 12월 이후의 전작권 전환에 대비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함에도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이 드물다. 통신체계는 지금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개인 장구는 지난 몇 년 사이 개량형이 보급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다. 특히 장병 개인의 안전에 필수적인 보호 장구류의 부족은 20년 째 지적당하고 있다. 전시에 장병들의 전투력 보존에 반드시 필요한 의무대 장비는 지금도 7~80년대 수준이다.

    공군력의 확장과 강화에 필요한 조기경보기나 공중급유기 사업은 논의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이제야 겨우 시작단계다. 수도권과 주요 지역 및 시설 방어를 위한 대공 미사일은 지금도 40년이 넘은 미사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병대의 상륙전 능력 강화에 필요한 해병 항공대 창설, 북한과 중국 등의 비대칭 전력에 맞서기 위해 필수적인 특수작전항공대 창설 등은 지금도 논의만 되고 있다.

    반면 강력한 화력과 듬직한 모습으로 주목받는 최신형 전투함, 전투기, 상륙함, 전차, 자주포, 보병용 복합소총 등의 개발과 생산은 예산 배정에서 늘 ‘0 순위’다.

    방산업계 관계자들과 민간 군사연구가들은 이런 게 우리 군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비록 화려하지도,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지만 장병들의 안전을 지키고, 우리 군의 실전 능력을 더욱 보강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전력에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군이 필요한 장비를 개발함에 있어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이나 예산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해외의 최강, 최고 무기를 따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우리 군에 필요한 건 한반도를 지키는 데 알맞은 무기이지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세계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만든 무기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민간 군사연구가와 방산업계 관계자의 지적을 들은 군 기관과 주변 관계자들은 “민간인들이 뭘 알아”라며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일련의 신형 장비 사고는 물론 아직 배치조차 되지 않은 몇몇 최신 무기의 알려지지 않은 불량 문제 등을 보노라면 이제는 군도 이런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계속 ‘비전문가인 민간인들의 주장’이라는 식으로 합리적인 지적까지 무시하다가는 언젠가 ‘맥나마라’와 같은 이가 군 전체를 확 뜯어고치려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