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폭풍 성장부터 ‘자주국방’ 둘러싼 비리…사정기관조차 ‘침묵’시킨 힘
  • ▲ 제51회 대종상 시상식 당시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KBS 중계방송 화면캡쳐
    ▲ 제51회 대종상 시상식 당시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KBS 중계방송 화면캡쳐

    DJ측근으로 분류되던 무기중개상 조풍언 씨의 후원으로 성공한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그는 조풍언이 미국으로 건너간 2003년 이후에는 ‘몸통 급’으로 성장한다.

    이규태는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직후 경찰 특수수사과의 방산비리 조사로 조풍언이 미국으로 건너가자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盧정권 시절 누가, 어떻게 이규태를 도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비주류 언론들’이 폭로한 이규태 후원자들


    지난 18일 작성한 기사 <美망명 국정원요원이 폭로한 ‘이규태’ 회장 배후> 가운데 재미저널리스트 안치용 씨의 기사를 인용한 부분에 ‘열쇠’가 있다.

    …일광공영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김영한 前사령관이 기무사령관 취임 전부터 일광공영을 드나들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장군들이 드나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 때는 전라도 출신의 로비스트들, 노무현 정권 때는 이규태 씨와 동향인 부산출신 장군들과 방위사업청 고위공직자들, MB 정권 때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고위공직자들의 출입이 빈번했다”고 말했다.


    이규태는 90년대 후반부터 조풍언의 후광을 업고 DJ 측근 인사들과 인맥을 쌓은 뒤,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을 무기로 상환 받는 ‘불곰사업’의 2차 거래를 따냈다.

    이때 이규태는 러시아 방산업체 에이전트를 맡으면서 한국군이 도입한 대전차 미사일 ‘메티스-M’과 고속공기부양정 ‘무레나’를 중개했다. 당시 거래 규모는 3억 1,000만 달러, 이규태가 받은 수수료는 약 2,300만 달러다. 이 사업으로 DJ 정권 인사들로부터 ‘불곰 이규태’라는 별명을 얻으며 ‘권력’의 각광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경쟁자였던 정호용(탤런트 이영애 남편) 씨는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조풍언이 미국으로 달아난 뒤 ‘DJ 군 인맥’의 핵심이자 조풍언과 밀접한 관계였던 이원형 前국방품질관리소 소장(육사 26기)이 특검 수사를 받으면서 힘을 잃었다.

  • ▲ 2014년 12월 4일 재미교포언론 '선데이저널USA'는 이규태에 대한 보도를 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조용했다. ⓒ선데이저널USA 당시 보도화면 캡쳐
    ▲ 2014년 12월 4일 재미교포언론 '선데이저널USA'는 이규태에 대한 보도를 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조용했다. ⓒ선데이저널USA 당시 보도화면 캡쳐

    盧정권 당시 이규태의 후원자 가운데 언론을 통해 드러난 사람 중 한 명은 김영한 前기무사령관이다. 2005년 2월 5일부터 2006년 12월 4일까지 제36대 기무사령관을 맡았던 김영한 前사령관은 최근까지 이규태의 일광그룹 계열사인 일광폴라리스(現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대표이사로 재직했다.

    하지만 언론들은 김영한 前기무사령관과 이규태를 다른 일로 기억하고 있다. 바로 기무사령부 신축 청사 설계도 유출 사건이다. 


    이규태 계열사 대표이사 맡은 前기무사령관


    2009년 8월 4일 경기도로 이전하는 국군기무사령부의 신축청사 설계도가 일광공영 사무실에서 발견됐다. 기무사령부 청사 설계도는 기밀자료였다. 수사에 착수한 軍과 검찰은 기밀 유출 시기가 2006년 9월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당시 기무사령관은 김영한 장군(육사 29기).

  • ▲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었을 때의 김영한 前기무사령관과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 ⓒ당시 보도화면캡쳐
    ▲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었을 때의 김영한 前기무사령관과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 ⓒ당시 보도화면캡쳐

    수사팀은 더욱 이상한 점도 찾아냈다. 신축청사 설계도가 유출된 즈음 기무사령부가 느닷없이 해당 자료의 보안 등급을 ‘기밀’에서 ‘공개’로 낮춰버린 것이다. 수사는 이상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결국 거창하게 시작한 수사는 기무사령부 영관급 장교 2명을 구속해 책임을 묻는 선에서 끝났다.

    한편 청사 설계도 유출 당시 관리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됐던 김영한 前기무사령관은 전역한 뒤인 2010년 8월 10일, 이규태의 일광그룹 계열사인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영한 장군이 기무사령관에 취임할 당시 국방부가 배포한 자료를 보면 “군 전력 증강 분야에 전문성이 탁월하고 개혁적 성향을 지녀 윤광웅(尹光雄) 국방장관의 국방 개혁 구상을 적극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당시 국방일보는 “김 사령관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전력계획과장, 국방부 획득정책관실 차장,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등을 역임한 전력 기획·국방 획득 분야 전문가”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영한 前기무사령관이 방산 분야 전문가라는 뜻이다.

    김영한 前사령관이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전 일광그룹에 일어났던 일도 이규태와 김영한 前사령관 간의 관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이규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8년 9월, 무기중개상으로 일한 지 24년 만에 처음으로 국세청의 특별 조사를 받게 된다. 당시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급성장한 기업들을 조사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설명이 흘러나왔다. 박연차의 태광실업도 그 대상이었다.

    국세청 4국은 일광그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결정적인 문제는 ‘불곰의 이규태’가 운영하는 기업이 ‘연 매출 20억 내외, 당기순이익 연 2,000~3,000만 원’이라고 신고한 탓이었다. LA의 한국계 은행 지점에 1억 달러를 숨겨놨다는 소문까지 돈 ‘거물 무기중개상’ 매출치고는 너무 적었다.

    국세청은 2009년 3월 일광공영을 ‘탈세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 검찰은 2010년 이규태를 구속기소했다. 이규태는 2012년 7월 재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형을 확정받았다. 러시아 업체로부터 받은 커미션을 수익으로 처리하지 않아 법인세 5억 원을 탈루했다는 것이었다. 이규태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 계좌로 커미션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령부는 이 일로 2009년 말 일광공영의 무기중개업 자격 등록을 취소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일광공영은 불과 6개월 만에 무기중개업 자격을 재취득했다. 그것도 기무사령부의 테스트를 거쳐서.

    김영한 前기무사령관은 일광공영이 무기중개업 자격을 재취득하고 두 달 뒤에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았다. 일광공영의 보안담당자였던 기무사령부 관계자의 부인이 일광그룹이 운영하는 일광복지재단에서 일했던 사실보다 더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노무현-이명박 정부까지 넘나든 이규태


    이규태는 노무현 정권이 끝난 뒤에는 이명박 정부에 줄을 대고자 노력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보이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특보를 지낸 이희원 前예비역 대장이었다.

  • ▲ 2014년 3월 (사)포사랑 행사 당시 기념사진. ⓒ포사랑 홈페이지 캡쳐
    ▲ 2014년 3월 (사)포사랑 행사 당시 기념사진. ⓒ포사랑 홈페이지 캡쳐

    2006년 전역한 이희원 前예비역 대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대통령 안보특보를 지냈다. 이후 꾸준히 ‘차기 국방장관’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곧 ‘포사람’이라는 기독교계 청소년상담 재단의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포사람’은 이규태의 일광그룹이 소유한 복지센터였다.

    ‘포사람’이라는 곳의 홍보대사는 모두 일광그룹 계열사인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이었다.

    이 ‘포사람’과 이규태, 이희원 前예비역 대장을 조사하면서 눈에 익은 이름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盧정권의 마지막 국정원장을 지낸 김만복 씨였다.

    2014년 7월 12일자 ‘한국성결신문’ 8면에는 7월 6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던 ‘제11회 희망과 사랑 나눔 열린음악회’ 관련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 속 사진에는 이규태와 이희원 (사)포사람 이사장, 김만복 당시 일광복지재단 이사장, 연예인 오윤아, 최정원, 양동근 씨가 등장했다. 김만복 現통일전략연구원 원장도 이규태와 상당한 친분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 한국성결신문이 보도한 이규태 회장과 관계자들의 사진. 이규태 외에 이희원 前청와대 안보특보, 김만복 前국정원장을 볼 수 있다. ⓒ한국성결신문 보도 캡쳐
    ▲ 한국성결신문이 보도한 이규태 회장과 관계자들의 사진. 이규태 외에 이희원 前청와대 안보특보, 김만복 前국정원장을 볼 수 있다. ⓒ한국성결신문 보도 캡쳐

    여기까지만 봐도 이규태는 盧정권 당시 기무사령관, 국정원장까지도 ‘품 안에 넣을’ 정도의 막강한 인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규태의 ‘파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설픈 치기로 시작한 ‘자주국방’
    5년 뒤 ‘10대 불량무기’로


    2005년 초, 사정기관들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방산비리를 은밀히 추적 중이었다. 2003년 경찰 특수수사과의 수사가 더욱 심도를 더한 것이었다. 이때 이규태도 사정기관의 레이더에 걸렸다. 그가 장로로 있는 교회도 주요 감시 대상이었다.

    사정기관은 안보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전력화 사업에서의 문제점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이때 안보 전문가들은 수상한 점을 찾아냈다. ROC(군 요구성능)가 어느 순간 이상하게 변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사정기관 관계자들과 관련 서류를 검토한 결과 당시 진행하던 무기도입 및 무기 국산화 과정에서 개발 및 시험평가를 하는 주체들 가운데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ROC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또한 국산화가 어려운 조기경보기 사업(E-X 사업), 차세대 공격헬기 사업(AH-X 사업)에 ‘이상한 입김’이 불고 있음을 경고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제 레이더와 브라질제 여객기를 조합한 모델이 적합하다”거나 “아파치 헬기는 한국 지형에 부적합하다”는 등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의견을 참고해 수사를 진행했지만 2005년 가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사팀은 해체되고, 담당자들은 전보발령을 받았다. 사실상 좌천된 것이었다.

    이후 ‘자주국방’을 내세운 무기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행스럽게 ‘불량무기 수입사업’은 전면 보류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들이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쉴새없이 사고가 터져,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던 ‘10대 불량무기’들이다. 이 가운데 K-21 장갑차와 K11 복합소총은 사상자까지 발생했다.

  • ▲ 2010년 7월 29일, '10대 명품무기'라고 자랑하던 K21 장갑차가 시험운행 중 강 속에 침몰했다. 이 사고로 부사관 1명이 숨졌다. 당시 ADD는 "설계에 일부 문제는 있지만 설계결함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뉴데일리 DB
    ▲ 2010년 7월 29일, '10대 명품무기'라고 자랑하던 K21 장갑차가 시험운행 중 강 속에 침몰했다. 이 사고로 부사관 1명이 숨졌다. 당시 ADD는 "설계에 일부 문제는 있지만 설계결함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뉴데일리 DB

    2010년 말이 되어서야, ‘10대 불량무기’ 사건의 시작은 盧정권 시절 추진한 ‘자주국방 정책’의 결과였다는 것이 일부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

    2005년 3월, 몇몇 청와대 관계자가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부, 합참 관계자들이 보고한 ‘국방개혁계획’을 들은 뒤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들은 군과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들에게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주력무기는 국산화해 자주국방을 이룩하자”고 주장했고,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국방부 관계기관과 관련 산업을 관리감독하는 정부 부처들까지 몰려들면서 ‘불량무기’를 양산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사정기관, 군사전문매체 등에서 나온 이야기와 2012년 7월 30일 이규태가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말을 함께 살펴보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일광그룹의 모체인 일광공영은 1985년 설립됐습니다. 기도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일광’을 찾았고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에서 ‘공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적은 돈으로 펼칠 수 있는 명분 있는 사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눈을 뜬 게 국가 방위산업이었습니다. 돈 한 푼 없이 시작한 이 사업은 공격용 무기를 거래하는 단순 중개업이 아닌 조국의 국토를 지키는 자주국방 사업입니다.”


    이규태 회장, 그도 혹시 盧정권 시절의 ‘자주국방’에 관여했을까.

  • ▲ 2012년 7월 30일 이규태의 인터뷰를 실은 국민일보 당시 보도. ⓒ국민일보 보도화면 캡쳐
    ▲ 2012년 7월 30일 이규태의 인터뷰를 실은 국민일보 당시 보도. ⓒ국민일보 보도화면 캡쳐

    형식적인 방산비리 수사,
    이번에도 ‘親MB 인사’나 쳐내고 끝날 듯


    전편에서 언급한 DJ정권 시절의 방산비리, 이규태가 급성장한 배경이 된 盧정권 시절의 ‘방산 비리 핵심들’은 여전히 제대로 수사를 받지 않았다. 20년 전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YS정권의 ‘방산비리 핵심’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번 박근혜 정부의 ‘방산비리 합동수사’도 큰 결실을 거두기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하는 이명박 측근 박살내기’에서 끝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민들이 이렇게 방산비리 수사를 얕보는 이유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집권 초기인 2003년 경찰 특수수사과와 국세청 등을 동원해 DJ 인맥들의 방산비리를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당시 언론들은 “이번 수사를 통해 천용택 前장관이 국회 국방위원장 당시 후원회를 통해 정 모 씨의 후원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거나 “유 모 국방부 차관이 무기중개상 정 모 씨의 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는 등의 ‘팁(Tip)’을 제공하면서 확실한 수사를 기대했다.

    특히 盧정권에 호의적이던 매체들은 “이번 방산비리 특별수사는 이원형 前국방품질관리소장 개인과 조직 비리, 천용택 前장관을 정점으로 한 ‘호남 군맥’ 등을 모두 색출해 처벌할 것”이라며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盧정권은 DJ정권에서 일어난 방산비리도 제대로 파내지 못했고, 자신들이 집권했을 당시 소위 ‘자주국방’을 명분으로 내걸고 일어난 방산비리는 하나도 잡지 못했다.

  • ▲ 이규태의 일광그룹은 현재 대종상 영화제를 운영하다시피 하고 있다. ⓒ(사)대종상 영화제 홈페이지 캡쳐
    ▲ 이규태의 일광그룹은 현재 대종상 영화제를 운영하다시피 하고 있다. ⓒ(사)대종상 영화제 홈페이지 캡쳐

    DJ-盧정권을 둘러싼 온갖 의혹과 루머를 파헤치겠다던 이명박 정권 또한 방산 비리는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  2009년 6월 30일 이규태가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조세피난처 바베이도스에 거액을 송금한 정황을 확보한 뒤에도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

    아니 이명박 정권은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면서, 이규태 같은 '잔챙이'만 괴롭힐 뿐 오히려 방산비리의 ‘진짜 뿌리’와 ‘진짜 몸통’은 더욱 대우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도 집권 직후부터 이런 ‘뿌리와 몸통’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현재 박근혜 정부의 방산비리 수사가 주로 이명박 정권 당시 활동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자, 다수 국민들은 이번 수사도 이전 정권들의 ‘한 탕식 방산비리 수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