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대통령령 따라 향토 지킨 대한청년단원“군경과 함께 하지 않았다” 국가유공자 인정 거절
  • 아버지는 피난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학교를 지켜야 한다.”
    할아버지와 재천씨 등을 떠밀어 남으로 보낸 아버지는 근무지인 서산중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20일 대한청년단원이었던 아버지 최광열 교사는 학교에서 인민군과 보도연맹원들의 손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다. 아직 마흔도 안 된 젊은 나이였다. 당시 서산 양대리로 끌려간 교사며 군인-경찰가족 등 400여명은 저들의 총탄과 수류탄에 한 자리에서 스러졌다. 최 교사의 동생도 같은 반공청년단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함께 희생됐다.
    가장이 없는 삶이 어땠을 것인가는 어렵지 않게 헤아릴 수 있다.
    당시 12살이던 최재천씨는 어느덧 일흔을 넘겼다. 태안에서 자리를 잡고 산다. 네 명의 동생들도 성실히 일한 탓에 이제 풍족하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아쉬움 모르고 살고 있다.
    어렵사리 오남매를 키워온 어머니는 3년 전 한 많은 세상을 등졌다.
    최씨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위해 학교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에게 ‘국가유공자’라는 명예를 찾아드리고 싶다”고. 하지만 최씨의 이런 바람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군경과 함께 일한 분들만 국가유공자로 인정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 ▲ 1949년 발행된 대한청년단원 신분증. 단장이 당시 국방부장관이던 신성모였다.ⓒ자료사진
    ▲ 1949년 발행된 대한청년단원 신분증. 단장이 당시 국방부장관이던 신성모였다.ⓒ자료사진

    6.25 전쟁이 일어나 국군의 열세로 인하여 전국이 공산 치하에서 신음하던 1950년 8월 4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령(긴급명령 제9호)으로 비상시향토방위령을 발령한다.
    주요 내용은 국민자위조직을 강화함으로써 향토를 방위하며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는 것 이었다.
    향토방위의 중핵체로서 자위대를 구성해 자위대원은 괴뢰군과 공비를 타도하고 질서를 유지하도록 명령했다. 자위대는 대한청년단원이 중심이었다.
    대한청년단원들은 대통령 명령에 따라 조국을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싸웠다. 군인과 경찰이 철수한 지역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지역을 지키며 활동했고, 공산군에게 잡히면 가차 없이 적군으로 치부되어 학살당했다.
    전쟁 중 그렇게 목숨을 잃은 이들은 헤아릴 수가 없다.

    살아남은 대한청년단 회원들은 정전 후인 1963년 청우회(대한민국건국회의 전신)를 세워 희생자를 발굴하고 그해 9월 21일 내무부장관으로부터 9444위의 전국순국반공청년운동자 명단을 인수해 10월 11일 전국순국청년운동자합동위령제를 거행했다.
    건국 50주년이던 지난 2005년엔 6.25전쟁 당시 순국자 265위를 추가로 발굴해 위패를 추가로 봉안하고 1만 7539위의 순국 열사에 대한 합동 추모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을 건국 유공자가 아닌 군인, 경찰과 함께 일한 민간인으로 분류해 이중 1만 309명만 군경유족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머지 7230명은 정부의 표창과 서훈에서 누락된 상태이다.

    지난 2005년 추가로 발굴된 순국자 265명의 후손들은 지방보훈청과 중앙보훈청에 ‘국가 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탄원을 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있다.
    군인-경찰과 함께 일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유족들의 입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조직적인 명령에 움직이는 군인-경찰과 달리 이들은 대통령 명령 하나로 군인과 경찰이 철수한 상황에서 향토를 지키다 공산군의 손에 순국했다. 향토를 지키라는 대통령 명령을 따른 탓에 안 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눈물도 메마른 이들 유족들은 “만일 이런 일이 또 있을 때 누가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서겠냐”고 물었다. 또 이런 말도 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을 나라가 찾지 않고 유족이 찾아서 나라에 인정해달라고 해야 하는 나라가 또 있느냐?”고.
    당시를 증명할 분들은 이제 고령이다.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 덕에 나라를 보존한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