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 하잰다.」

    불쑥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을 때 고속버스는 천안 휴게소를 지나는 중이었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으므로 정기철이 거침없이 묻는다.

    「왜?」

    정기철은 자신이 전혀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이혼 하자는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구나. 기철아, 어쩌면 좋니?」
    「나, 지금 집에 가는 길야.」
    「잘됐다.」

    어머니는 정기철이 친구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줄로 안다.

    어머니가 다시 서두는 분위기로 말했다.
    「네가 달래봐. 그렇지 않다고 말야. 가족이 왜 짐이 되는거니? 그럼 가족이 아니지. 아버지는 자격지심에 빠져 있는거야. 내가 달랬지만 안듣는구나.」
    「알았어. 너무 걱정마.」

    버스 앞자리. 통로 옆쪽도 비어 있었지만 정기철은 목소리를 낮췄다.
    「글고 엄마.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놔 주자구. 풀어주잔 말야.」
    「풀어주다니?」
    「족쇄에서. 아니, 감옥에서.」
    「아니, 그게 무슨말야?」

    주위를 둘러본 정기철이 목소리를 더 낮췄다.
    「아빠는 가족이 간수같고 가정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래.」
    「얘, 기철아.」
    「그렇다면 내 보내는게 나아.」
    「......」
    「우리가 어리광 받아들일 여유가 없단말야. 엄마.」

    그리고는 정기철이 길게 숨을 뱉았다.
    「집에 가서 아빠 만나고 다시 전화 할테니까 주인집 일이나 신경써.」

    핸드폰 덮개를 닫은 정기철이 어금니를 물고는 의자에 등을 붙였다.

    10월 초의 화창한 날씨였다. 고속도로변의 숲은 오색으로 물들었고 하늘은 구름 한점 보이지 않은채 푸르다.

    그때 다시 핸드폰이 진동으로 떨었으므로 정기철은 발신자 번호를 보았다.
    이유미다. 위쪽에 오후 1시 반이라고 시간이 찍혀져 있다. 오후 수업이 없는 모양이다.

    「응, 그래.」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부드럽게 응답했다. 이유미는 열흘만에 다시 전화를 했다.

    「이제 올라올 때 되었지?」
    하고 이유미가 가볍게 물었지만 긴장한 것 같다.

    핸드폰을 고쳐 쥔 정기철이 대답했다.
    「나, 지금 상경중.」
    「대단해. 국군이 북진하는 것 같어.」
    「고지에 태극기 꽂을 의사는 없음.」
    「누가 찍도록 놔 둔대?」
    「그럼 왜 전화한거냐?」
    「개 눈에는 똥만 뵌다더니. 너, 군대가서 야해졌다?」
    「끝난 사이에 이러는 이유가 뭔데?」
    「누가 끝났다고 그래?」
    갑자기 이유미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저절로 긴장한 정기철이 숨을 삼켰을 때 이유미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끝났다고 말하기 전까진 끝난게 아냐. 이 망할 자식아.」
    「얼씨구.」
    「글고 뭘 맹글었다고 자꾸 끝났다고 지랄해? 어쨌든 너, 나 만나.」
    「오늘은 바뻐. 해결 할 일이 있거든.」
    「그럼 내일.」

    자르듯 말한 이유미가 서둘로 말을 잇는다.
    「오후 8시. 홍대 앞 벤슨 클럽에서. 너, 잊어먹지 않았지?」

    그럴 리가 있는가? 맨날 만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