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정기철은 몸을 돌렸다. 옆에서 걷던 오윤수가 조금 늦게 돌아섰다.
새벽 4시 반, 아파트 공사 현장 입구였다. 아직 어둠에 덮인 마당에 여자 하나가 서있다.「어, 연희냐?」
오윤수가 놀란 표정을 짓고 여자에게 말했다.
「아니, 이 시간에 여긴 왠일이냐?」
「왜요? 아버지 찾아오면 안돼요?」
하면서 다가온 여자의 얼굴은 맑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매끈했고 희다.쌍꺼플 없는 눈, 눈꼬리가 조금 치솟아서 얼굴에 탱탱한 긴장감이 가미되었다. 얇지만 다부지게 다물려진 입술, 단정한 콧날까지 모여져 선명한 인상이 되었다. 여자의 시선이 힐끗 정기철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 그래. 가자.」
여자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던 오윤수가 정기철에게 말했다.
「어, 정일병. 내 막내딸이야.」
그리고는 여자를 정기철 정면으로 돌려 세웠다.
「여긴 동양대학 경제학과 3학년 다니다가 해병대에 입대한 정기철이. 지금은 아빠하고 벽지 작전의 한 팀이다.」「안녕하세요.」
하고 정기철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여자는 눈만 한번 내려깔았다 올리더니 그것도 눈동자 초점이 오윤수에게로 옮겨져 있었다. 그것을 본 오윤수가 이맛살을 찌푸렸다.「얘 이름은 오연희야. 강서대학 2학년 휴학하고는 올해 초부터 FT에 다녀.」
FT라면 벤처신화를 이룬 전자업체다.
그때 오연희가 들고있던 헝겊가방을 오윤수에게 내밀었다.
「아버지, 이거.」
「뭐냐? 돈이냐?」꽤 묵직해 보이는 가방이다. 오윤수가 웃지도 않고 묻자 오연희가 힐끗 시선을 주었다.
이제 셋은 나란히 서서 아파트 공사 현장을 나오고 있다. 어둠에 덮인 빈 광장에는 드문드문 경비등이 켜져 있었는데 그것이 더 을씨년스럽다.
이윽고 오연희가 대답했다.
「밑반찬이야. 내가 만들었어.」이제 오윤수는 묵묵히 발만 떼었고 오연희의 말이 마당 위에 울렸다.
「우리 걱정은 마. 엄마도 지난달부터 가게에 다녀. 엄마 친구 정옥이 아줌마 알지? 거기서 일하고 있어.」
「어, 잘됐다. 넌 수습 딱지 떼었냐?」
「뗀지가 언젠데.」
「월급 올랐겠구나.」
「돈 필요해?」
「내가 무슨 돈이 필요하겠냐? 이렇게 야근 뛰면 하루 일당이 20만원이다.」
「무리하지 마.」
「너 마침 잘왔다. 내가 3백쯤 모아놓은게 있으니까 가져가.」
「왜그래!」깜짝 놀랄만큼 소리친 오연희가 우뚝 걸음을 멈췄으므로 정기철까지 따라 섰다.
오연희가 오윤수를 쏘아보았다.
「너무 자책하지마, 아버지. 난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어. 글고 오빠도, 언니도.」
오연희의 말끝이 떨렸으므로 정기철은 외면했다.그때 오연희가 말을 잇는다.
「엄마도 후회하고 있다구!」
「어어, 알았으니까 그만.」손바닥을 흔들어 보인 오윤수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오연희의 어깨를 한팔로 감싸 안더니 정기철에게 말했다.
「난 내 딸 역까지 데려다 줄테니까 이따 기숙사에서 만나자구.」그러더니 한쪽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내가 전화번호 따 올게 기다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