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동네 사람들이 가족들을 찾아 울부짖고 있었다. 전날 밤 빨치산들이 산기슭에 구덩이를 파고, 수많은 주민들을 한구덩이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영광에서 벌어진 가장 큰 학살이었다. 너나없이 가족의 시신을 찾느라 혈안이 됐다. 나는 동생 교복 단추를 보고 어머니와 한 동생 시신만을 겨우 찾았다. 동생 4명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발견된 시신들은 하나같이 죽창에 찔려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버지를 여읜 지 2주 만에 가족 6명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음력 9월 10일에 온 동네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게 됐다. - 노정애(77. 경기도 안양시)

  • ▲ 6.25전쟁 60주년 조선일보 특별기획 '나와 6.25' ⓒ 뉴데일리
    ▲ 6.25전쟁 60주년 조선일보 특별기획 '나와 6.25' ⓒ 뉴데일리

    6.25전쟁은 먼 옛날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계속되고 생생한 아픔이다. 전쟁은 나라의 분단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개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전쟁 때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군인은 62만 명. 여기에 100만 명 가까운 민간인이 인명피해를 입었다. 부모와 형제, 자녀, 친 인척, 동창, 전우, 동네 친구…. 당시 남한 인구가 2천만 명 정도였으니, 가족과 친 인척까지 따지면 주변에 전쟁 때 죽거나 다친 사람 한명 없는 집안은 드물 정도다.

    지난 2월 조선일보가 ‘나와 6·25’ 사연을 공모한다는 첫 사고(社告)를 게재했고, 총 1500여건이 넘는 사연이 접수됐다. 또 직접 신문사를 찾거나 전화를 걸어 사연을 들려준 이들도 수백 명에 달했다. 이후 3개월간 연재된 이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큰 방향을 일으켰다. 전쟁과 관련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우리 주변에 아직도 너무나 많으며,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안정이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나와 6·25’은 이 중 300여건의 사연을 엮어낸 것이다. ‘그때 내 고향 무장(茂長)은 살인지옥이었다!’, ‘세월도 전쟁도 못 갈라놓은 부부애’, ‘내 심장에 박힌 1등 훈장…따발총 실탄’, ‘인민군 창고서 훔친 고사리를 무쳐 먹으니…’, ‘부역 중 파만 넣은 된장국 맛 아직 혀 끝에’, ‘치매 걸린 할머니, 지나가는 군인만 보면 “우리 호야 못 봤는교?”’ 등 한 시대를 살아간 서로 다른 이들의 전하는 인생의 무게가 오롯이 전해져 온다. 

    여기에 6.25전쟁의 주요 국면과 전황을 개략적으로 살핀 ‘미니 戰史’를 사연 사이사이에 배치해 이 민족사적 비극의 전모를 헤아릴 수 있도록 했다. 담담히 당시 상황을 전하는 실제 주인공들의 목소리에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아련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피와 눈물을 딛고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묻혀진 시간을 기억해 줄 차례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300쪽, 1만5000원